남용되는 ‘KFI인정’ 소방용품… “제품검사 여부 반드시 확인해야”KFI인정 보유한 전체 기업 427개사 중 102개사 제품검사 실적 전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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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소방산업기술원 전경 © FPN |
[FPN 최영 기자] =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이하 기술원)의 소방용품 자체 검ㆍ인증 제도인 KFI인정을 남용하는 사례가 끊이질 않고 있어 사용자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KFI인정서만을 획득한 뒤 제품검사는 받지 않고 마치 정상 인정품처럼 속여 시중에 유통하는 문제다. 기술원이 문제 해소를 위해 일정 기간 이후 제품검사 실적이 없을 때 인정 자체를 취소하는 방안을 추진하다 업계 반발로 재검토를 결정하는 일도 벌어졌다.
KFI인정 제도는 화재 예방과 구조, 구급 등에 사용되는 제품 중 소방법령에서 정한 소방용품 이외 제품에 대해 성능을 인정해주는 기술원의 자체 검ㆍ인증 제도다. 현장에서 확인이 어려운 제품의 성능을 기술원이 인정해줌으로써 제조사는 공인기관을 통해 품질을 확인받았다는 신뢰를 얻게 된다.
KFI인정은 ‘인정시험’과 ‘제품검사’로 구분된다. 인정시험에선 최초 견품의 구조나 형상, 성능 등의 시험을 거쳐 인정기준에 적합한지를 판단 받고 일정 시험시설을 심사해 인정서가 발급된다.
제품검사는 KFI인정을 받아 유통되는 양산품이 최초 인정받은 내용과 같은지를 검증받는 절차다. 이렇게 제품검사를 거친 제품은 합격표시가 부착돼 비로소 KFI인정 제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다. 현재 KFI인정 대상 품목은 방화복과 휴대용비상조명등, 방수총, 지진분리장치, 화재대피용 자급식호흡기구, 과압배출구, 소공간소화용구 등 68개에 달한다.
문제는 일부 업체가 이 같은 KFI인정서를 발부받은 후 제품검사를 받지 않고도 마치 인정품인 마냥 시중에 제품을 공급한다는 사실이다.
실제 지난 2019년에는 가스계소화설비에 적용되는 과압배출구의 KFI인정을 받은 한 업체가 KFI인정품임을 홍보해 놓고도 제품검사를 받지 않은 제품을 시중에 유통해 온 사실이 알려져 논란을 낳았다. <FPN/소방방재신문> 보도로 논란이 불거지자 해당 업체는 자체적으로 ‘생산중단’ 사유를 들어 KFI인정을 반납했다.
2015년에는 특수방화복 생산 업체가 소방관서에 공급된 제품을 교환해 주는 과정에서 검사를 받지 않은 제품을 공급한 사실이 본지 취재로 밝혀져 인정 자체가 강제 취소된 사례도 있었다.
특히 지난해 국정감사에선 ‘소공간소화용구’ KFI인정을 보유한 특정 업체 제품이 논란이 됐다. 당시 행정안전위원회 문진석 의원(더불어민주당, 충남 천안갑)은 “배ㆍ분전반 등 소규모 공간에서 화재 진압을 목적으로 개발된 소화용구가 화재 진압은커녕 오히려 폭죽 소리를 내며 폭발을 일으킨다”면서 KFI인정 과정의 부정 의혹을 제기했다.
이 지적 이후 기술원이 해당 제품을 조사한 결과 KFI인정을 획득한 제품은 아니었다. 그러나 해당 업체가 소유한 KFI인정 보유 제품과 형상이 유사해 인정품으로 오인하는 혼란을 불러왔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를 계기로 기술원이 KFI인정 현황을 자체 조사했더니 인정 보유업체 427개사 중 인정 취득 후 단 한 번도 제품검사를 받지 않은 업체가 무려 102개사(2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산품의 일부만을 검사받을 가능성도 있어 사실상 무검사 KFI인정품의 유통량은 산정하기조차 힘든 상황이다.
이처럼 KFI인정서만을 내세운 일부 업체의 비도덕한 행위 의심 사례는 적지 않다. 그러나 강제 검ㆍ인증 제도가 아닌 데다 유통 실태를 전수조사 또는 단속할 마땅한 수단이나 법적 근거가 없어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급기야 기술원은 무검사품 문제를 해소하겠다며 ‘KFI인정’을 받은 이후 2년 동안 제품검사 실적이 없으면 인정 자체를 취소하는 규칙 개정 검토에 들어갔다가 논란에 휩싸이면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큰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 획득한 민간 기업의 자산을 일방적으로 말소시키겠다는 건 문제가 있다는 업계의 강한 반발에 나왔기 때문이다.
A 소방용품 제조사 관계자는 “높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 획득한 KFI인정서는 곧 기업의 지적재산권으로서의 가치가 된다”며 “관리나 행정 편의를 위해 사기업의 재산권을 일방적으로 소멸시킨다는 건 자산을 편취하겠다는 것”이라고 쓴소리를 냈다.
B 사 관계자는 “특수 제품의 경우 수요가 적어 생산이 없거나 소량 제조하는 제품들도 있는데 일정 기간 검사를 안 받는다고 무조건 취소시킨다는 건 문제”라고 비판했다.
C 사 관계자도 “오랜 기간 수요가 없던 제품이 인정 취소를 받는다면 다시 수요가 생겼을 땐 시험비와 인증비를 또 투자해 재인정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밖에 없다”면서 “수요가 없더라도 무조건 2년마다 제품을 제조해 인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건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KFI인정을 득한 후 제품검사를 받지 않고 소비자를 속여 시중에 제품을 유통하는 문제를 막기 위해선 철저한 단속과 관리ㆍ감독에 더해 사용자가 검사 여부를 확인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소방제조업체 단체인 사단법인 한국소방산업협회는 “제품검사를 받지 않았다고 KFI인정 자체를 취소하겠다는 건 행정 편의를 위해 일률적인 잣대로 기업 재산권을 소멸시키는 것과 같다”며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다 태우겠다는 식의 타당성 없는 기준 개정안은 반드시 재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논란이 불거지자 기술원은 “KFI인정이 자체 인정제도다 보니 제품검사는 안 받은 채 인정서만으로 모든 걸 받은 것처럼 제품을 공급하는 사례가 이어져 규칙 개정을 검토했다”며 “하지만 업계의 문제 제기가 많고 타당성도 있어 재검토를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규칙 개정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KFI인정 소방용품의 미제품검사 문제는 여전히 주의가 필요하다. 피해를 막기 위해선 KFI인정 소방용품 사용자가 제품검사 여부를 각 제품 표면이나 명판에 부착되는 ‘합격표시’를 통해 확인하는 게 현재로선 최선의 방안이다.
최영 기자 young@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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