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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구급대 이대로 괜찮은가?- 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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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양양소방서 안지원 | 기사입력 2023/09/20 [10:00]

119 구급대 이대로 괜찮은가?- Ⅰ

강원 양양소방서 안지원 | 입력 : 2023/09/20 [10:00]

 

최근 어느 통계에 의하면 소득 하위 20% 계층에서 로또 복권을 사는 사람들의 수가 늘었다고 합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마지막 희망이 로또가 돼버린 셈인데 몇 장을 사야 수지타산이 맞는 걸까요?

 

어느 팟캐스트에서는 이런 로또류의 복권은 한 장을 샀을 때 가장 가성비가 좋다고 주장하는데 이유가 꽤 그럴듯합니다.

 

단돈 1천원 혹은 5천원으로 ‘로또가 되면 뭐 할까?’ 따위의 행복한 상상과 희망으로 일주일을 살 수 있기 때문인 거죠.

 

당장 상황이 어려워도 작은 희망이 있으면 사람은 힘을 내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보다 내일이 기대되고 개선된다고 믿고 있으면 말이죠. 그런데 우리 구급대원들이 근무하는 소방서엔 희망이 있을까요?

 

▲ 2023 119구급서비스 통계연보(출처 소방청)

 

늘어가는 구급 건수와 갈수록 어려워지는 병원수용, 병원 앞 대기, 쉴새 없이 몰아치는 출동, 병원의 서명 갑질, 늘기만 하고 줄진 않는 월보, 뭔가 ‘전문, 전문’ 하는데 하는 일은 주취자ㆍ비응급환자 이송, 어렵기만 한 중증환자 처치, 그리고 뭔가 나만 고생하고 있다는 억울함.

 

이런 여건 속에서도 오늘보다 내일이 나아진다는 희망이 있다면 또 보람을 갖고 하루를 버텨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많은 구급대원과 얘기해 보면 구급대에 이런 핑크빛 미래가 올 거로 믿는 분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몇 회에 걸쳐 아주 불만만 잔뜩 늘어놓는 영양가 없는 글을 써볼까 합니다. 불만 사항은 산더민데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할지도, ‘뭣이 중헌지’도 모르는 현 상황에서 조금의 희망이라도 찾으려면 불만 사항을 유형별로 정리하고 통계를 통해 객관화, 개선 가능성을 예측해 보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최근 문제가 되는 ‘핫이슈’, 병원수용 문제에 대해 다뤄볼까 합니다. 구급대원 사이에서 병원수용문제는 이미 하루 이틀 얘기가 아닙니다.

 

하지만 최근 대구 뺑뺑이, 서울사건 등을 계기로 언론에 알려진 후 마치 최근 갑자기 생겨난 것처럼 비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검색해봐도 이미 오래전부터 응급의료시스템의 붕괴를 경고한 기사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안타깝게도 구급과 관련한 문제는 소방청 내에서만 풀 수 없는 외부적 요인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특히 병원수용 문제에 대해선 구급대가 소방만의 조직이 아닌 응급의료시스템의 일부인 걸 인식해야 합니다.

 

‘환자를 받을 병원이 없다’, ‘무조건 빨리 받아줘야 한다’, ‘병원에서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게 문제가 많다’ 등 단순한 접근으론 해결될 수 없습니다.

 

결국 응급의료시스템에 걸린 부하를 줄일 수 있도록 시스템 자체를 개편하는 게 근본적 해결방법인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논리 앞에 망가진 시스템 속 피해자들끼리 싸우고 헐뜯으며 서로에게 더 많은 책임을 넘기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망가지고 있는 필수의료

사실 필수의료에 대한 경고가 나오기 시작한 건 이미 한참 전입니다. 최근 현장에서는 시스템이 급속도로 망가져 가고 있다는 게 온몸으로 느껴집니다.

 

특히 지방에서는 사표를 쓰는 병원 의사들이 많아 대형병원인데도 심혈관질환 같은 응급진료가 불가하거나 소아청소년과의 경우 아예 진료를 보지 않는 응급실이 늘고 있습니다. 

 

2023년 주요 수련병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201명 모집에 고작 33명(16.4%)이 지원했습니다.1) 저출산을 극복하려고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있다는데 이런 현실에서 누가 애를 낳을지 웃기는 일입니다.

 

이는 구급대로선 도저히 어찌해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뚜렷한 대책이 없는 한 이런 현상이 당분간 계속될 거란 생각이 들어 암담할 뿐입니다.

 

늘어난 현장 도착시각과 현장 활동시간

병원수용 대기가 오래 걸리고 현장 활동시간이 길어지며 가장 문제가 되는 건 현장 도착시각이 지연된다는 사실입니다.

 

비응급환자의 경우 크게 문제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촌각을 다투는 심정지 출동이나 현장 체류 몇 분을 줄이기 위해 이송 전술 자체가 달라지는 중증외상 같은 경우 분명 환자 예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여기엔 각종 비응급정책 남발과 전진 배치, 행사장 배치, 비응급 주취자 이송 등의 영향, 전체 이송환자의 영향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구급대원과 구급대 수가 늘었는데도 현장 도착시각이 지연된다는 건 문제가 심각합니다.

 

▲ 2023 119구급서비스 통계연보(출처 소방청)

 

현장 활동시간 증가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게 ‘환자 인계 서명’입니다. 응급환자를 이송하고 환자 상태 파악과 재이송 결정까지 기다리느라 병원에서 장시간 대기하는 건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응급환자를 이송하고 의료진 서명을 받기 위해 병원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건 구급대가 있어야 할 관내가 계속 비어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차후 병원 전 중증도 분류기준(Pre-KTAS)이 시행되면 level 4, 5 환자들은 더욱 진료 대기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의료진 인계 서명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현장 활동 지연 문제 역시 해소되기 어렵습니다.

 

병원 응급실 앞에 구급차들이 줄지어 발이 묶인 만큼 해당 지역의 응급환자 대응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보호받지 못하는 구급대원들

구급대원이라면 정말 단순 찰과상 정도에 불과한 상처, 혹은 상급병원으로 가달라고 우기는 환자를 민원이 무서워 원하는 대로 이송해 준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겁니다. 분명 우리에겐 이송거절이란 항목이 있지만 상당수 구급대원에겐 사문화된 조항일 정도로 이송거절에 부담을 느끼는 게 현실입니다.

 

▲ 이송 거절ㆍ거부 확인서

 

비응급환자의 이송거절을 제대로 하지 못해 인계받는 의료진이 ‘이런 환자가 도대체 왜 구급차를 타고 와요?’라는 표정으로 바라볼 때 드는 회의감과 부끄러움은 잠시지만 민원을 받고 나서 처리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고통은 이보다 훨씬 큽니다.

 

비응급 줄이기 등 적극적으로 캠페인을 하는 시도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도적으로 뒷받침 되지 않고 홍보나 의식 수준 개선 등에 머무른다면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소방청에서는 앞으로는 Pre-KTAS를 통해 중증도 분류를 병원과 통일하고 구급대원의 병원이송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민원 보호에 대한 대책 없이는 이 또한 큰 효과를 보기 어렵습니다.

 

많은 공무원이 민원인의 괴롭힘을 못 이겨 직장을 떠나고 심지어 목숨까지 끊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구급대원이라고 다르겠습니까.

 

누구를 위한 사전 연락인가


 ① 응급환자 등을 이송하는 자(구급차등의 운전자와 제48조에 따라 구급차등에 동승하는 응급구조사, 의사 또는 간호사를 말한다)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방법에 따라 이송하고자 하는 응급의료기관의 응급환자 수용 능력을 확인하고 응급환자의 상태와 이송 중 응급처치의 내용 등을 미리 통보하여야 한다. <개정 2017. 10. 24.>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48조의 2항에 따라 구급대는 이송하려는 병원에 응급환자의 상태 등을 미리 통보해야 합니다. 구급대와 응급실 간의 소통으로 응급환자의 소생률을 높이려는 원래 취지와 달리 지금은 응급실 수용을 어렵게 만드는 조항이 되고 있습니다. 

 

미리 연락하면 못 받는다 하고, 연락을 안 하면 왜 안 했냐고 타박 듣기 일쑤입니다. 조항에는 ‘응급환자’라고 돼 있지만 그 응급환자가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별표1에서 규정하는 응급환자인지 해석의 차이가 있습니다. 게다가 현장에서 법 조항을 하나하나 따져가며 일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병원 사전연락으로 이송하지 못한 병원에서 자기 발로 접수해 들어가는 환자는 진료를 볼 수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병원도 병원으로서의 고충이 있겠지만 중증환자가 아닌데도 환자 상태 한번 보여주지 못하고 흔히 말하는 ‘입구 컷’, ‘전화 컷’ 당하는 건 병원 측에서도 바로잡아야 할 부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역의 일은 지역에서 해결

수가를 조정하거나 법률을 개정하는 일은 짧게는 수년, 사람들의 인식을 개선하는 일은 수년~수십 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병원 선정 수용개선이 간단한 일이었다면 굳이 이런 내용을 기고할 필요도 없었을 겁니다.

 

비용이 들지 않으면서 그나마 빠른 효과를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지역협의체를 운영하는 겁니다. 말이 거창해서 지역협의체지 해당 소방서 구급대원들과 응급실 의료진이 직접 만나 서로의 불만을 말하고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 게 의외로 효과가 좋다는 얘기들이 많이 들립니다.

 

그간 작은 경험에도 과거엔 구급대원과 의료진 사이에 라포가 형성돼 좋은 관계로 지내곤 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로 근무여건이 열악해지고 구급대원과 의료진의 접점이 제한되면서 서로 협력하는 관계에서 날을 세우고 대립하는 관계로 변했다는 얘기들이 많습니다. 

 

지금이라도 지역별로 협의체를 구성해 그 지역 현실에 맞도록 이송에 관한 규칙을 세우고 소통 핫라인 등을 개설해 갈등을 빠르게 풀어내는 방법 등이 필요합니다.

 

물론 좋은 의도로 시작된 협의체가 안 좋은 결과로 끝나는 때도 있겠지만 뭐라도 해보지 않으면 개선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더 나빠질 게 뭐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너무 ‘라떼는 말이야’ 같은 식의 방법 제시겠지만 예전엔 병원과 관계가 삭막해지면 때때로 밥 한번 먹고 술 한잔하면서 푸는 곳도 많았습니다만 요즘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노조의 힘을 빌려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병원은 소방보다 노조의 역사가 깊고 체계가 잘 돼 있어 소방노조와 보건의료노조 간의 미팅을 통한 해결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방이 할 수 있는 일,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일

근본적인 해결책은 모든 이가 알고 있습니다. 응급의료시스템에 걸린 과부하를 풀어 주는 겁니다.

 

병원은 병원대로 의료 수가 조정이나 비응급환자 본인부담금 확대 등의 노력을 해야겠지만 소방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은 많습니다. 비응급 이송을 줄이고 병원 선정을 적절하게 해서 상급병원 응급실의 부담을 줄여 주면 됩니다.

 

민원이 두려워 끊임없이 비응급환자를 병원에 옮겨주며 병원의 환자수용률이 나아지길 기대할 순 없습니다. 구급과 병원이 한팀이라 생각하고 정책의 방향성을 잡아야 합니다. 옛날 병원이 환자유치를 위해 소방서에 명절마다 과일 통조림 선물세트를 돌리던 시절을 생각해선 아무런 답도 없습니다.

 

▲ 응급의료통계 포털, 국립중앙의료원

 

구급대가 응급실에 이송하는 환자는 전체 내원 환자 수의 약 22%(2021년)입니다. 물론 구급대가 이송하는 환자 중 중증환자의 비율이 평균보다 더 높긴 하지만 구급대의 비응급 이송이 줄면 그만큼 응급실도 여유를 찾게 됩니다. 

 

구급대에 대한 부하도 줄여나가야 합니다. 소방에서는 지금도 각종 선전성 정책이 난무하고 효과도 검증되지 않은 임산부구급대와 장애인구급대, 노인구급대 같은 걸 만듭니다.

 

출동 건수보다 구급차가 현저히 모자란 상황이지만 그 모자란 인원을 쥐어짜서 생색내기용 업무들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각종 전진 배치에 구급차는 빠지지 않고 동원됩니다. 이런 상황을 청에 건의하면 본부가 따로 추진하는 거다, 본부에 건의하면 청 핑계를 대거나 시도지사 핑계를 댑니다.

 

구급차는 벌집 제거 정도를 제외한 모든 출동에 따라 나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본서 문서수발까지 도맡아서 하는 지역도 있습니다. 말은 항상 구급대가 고생한다고들 합니다만…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지만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다음 원고에서는 구급대를 둘러싼 각종 정책과 내부의 갈등에 대한 문제를 짚어보겠습니다.

 

매우 암울하고 어두운 글이 됐지만 나아지기 위한 과정이라 믿고 계속 상처들을 후벼내 볼까 합니다. 글에 대한 반박이나 다른 의견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1) 전공의 지원율 10%대로 떨어진 소아청소년과 ‘충격’, 청년의사(www.docdoc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00316) 

 

강원 양양소방서_ 안지원 : ajwon119@korea.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3년 9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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