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에서 발표한 ‘2022년도 주거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전체 가구 중 아파트 거주 비율은 51.9%에 달한다. 이는 2006년 41.8%에서 계속 증가해 2019년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선 후 지속해서 늘어나는 추세1)다.
한국에서 지배적인 주거방식으로 자리 잡은 아파트와 그곳에서 일어난 화재를 짚어보고 근대 이후 대한민국이 만들어 온 도시주거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 보려 한다.
최근 <FPN/소방방재신문>을 비롯해 많은 언론의 관심을 받은 아파트 화재는 불과 약 한 달 전인 지난해 크리스마스 당일 새벽에 일어났던 도봉구 방학동 아파트 화재 사고일 거다.
사망자뿐 아니라 중ㆍ경상자가 발생하는 등 인명피해가 많았다. 추락으로 인한 사상자를 제외한 인명피해는 피난 중 공동계단 내 가득 찬 연기흡입으로 인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공동계단은 다른 주거시설에서는 보기 힘든 공동주택에 속하는 아파트의 특수한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주거시설의 특정한 구조가 재난 현장을 결정짓는 역할을 한다는 걸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말하면 주거시설의 구조와 주거환경에 대한 이해는 일분일초를 다투는 급박한 재난 현장을 수월하게 장악하는 데 있어 필수라고 할 수 있다.
소방청에서 올해 1월 발표한 2023년 화재통계 분석 보도자료2)에 따르면 주거시설에서 전체 1/4 이상의 화재가 발생했다. 주거시설 가운데는 공동주택(아파트) 화재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아파트가 다른 주거형태를 제쳐두고 압도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근대 이후 대한민국 도시주거환경 변화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주거시설의 근대화는 일제강점기를 지나오면서 본격적인 변화의 싹이 시작됐다고 보는 게 시대적으로 합당하다. 조선 후기 근대태동기를 거치고 나서 한반도는 본격적인 근대를 맞이함과 동시에 근대화된 도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다.
근대의 대표적인 시대정신인 ‘대량생산’과 ‘모듈화’라는 두 개의 기치를 내걸고 한국의 주거는 근대 도시와 발맞춰 변모하기 시작했다.
가장 처음 눈에 띄게 일어난 변화는 한옥에서 도시형 한옥으로의 이행이다. 사회경제적으로 중산층 이상이 거주하던 한옥은 대량생산과 모듈화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넓은 마당과 그 마당을 중심으로 넓게 포진한 홑집 구조 평면은 땅을 너무 많이 차지했고 모듈화를 하기에 예외성이 수두룩 했다.
1910년 8월 이후 식민지화된 조선에서 일제는 토지구획사업을 통한 도시계획을 대대적으로 감행한다. 이때부터 도시 곳곳에서는 흔히 우리가 시대극에서 보던 양반집의 마당 큰 한옥이 잘게 쪼개졌고 그 자리에 모듈화된 도시형 한옥이 들어섰다.
1934년 6월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도시계획법인 조선시가지계획령3)이 제정됐다. 도시 내 공업지역 주변에 감당하기 어려운 주택 수요와 난립하는 불량주택들로 인한 어지러운 주거환경을 개선하려는 조치였다.
당시 경성부의 경계 확장으로 돈암과 영등포, 대현, 한남, 용두, 사근, 번대, 청량리 신당, 공덕 일대 10개 지구 총 563만평(1857만9천㎡)에 달하는 큰 규모의 주거지가 조성됐다. 이때 개발된 주거지에는 1962년까지 도시형 한옥을 필두로 한 단독주택이 많이 건설됐고 이는 도시 주거환경에 큰 영향을 줬다.
개별주택 단위로 보면 모듈화4)된 평면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 상승 등 근대화돼 가는 사회문화와 맞물려 도시 사람들의 생활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또 여러 개의 주택 단위로 시야를 확장해보면 주택과 주택을 구성하는 도로 또는 골목길의 형성이 도시주거환경에 영향을 끼쳤다.
서울의 각 소방서에서는 매달 관내 소방차량진입 곤란ㆍ불가 지역을 대상으로 실제 재난 현장에서 소방차량진입을 수월하게 하기 위한 불시출동훈련 등을 실시한다. 1962년 전까지 형성된 소방차량이 진입하기 어려운 골목길은 불시출동 훈련 대상지가 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
참고로 위에 언급된 1962년은 광복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며 그 상흔이 제대로 치유되기 전인 시기이자 대한민국 정부에서 ‘도시계획법’과 ‘토지수용법’을 제정한 해다.
지금 시점에서 1962년 전까지 도시형 한옥이 들어섰던 곳은 도시계획으로 개발됐거나 아파트가 들어선 곳도 있다.
하지만 필자가 근무하는 성북소방서 관내인 보문동과 돈암동, 정릉동, 그 인근인 동대문구 용두동, 청량리 등에서는 여전히 50년이 훌쩍 넘은 도시형 한옥들이 밀집한 지역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사실 화재를 진압하는 관점에서는 도시형 한옥들이 썩 반갑지만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대개 지어진 지 50년이 지나 낙후된 건 차치하더라도 도시형 한옥채 사이 형성된 좁은 골목길로 인해 화재 현장까지 진입이 어렵다.
게다가 불이 난 대상물 지붕과 같은 주요 구조부가 목재라 붕괴 위험도 있어 진압 활동이나 인명구조 활동 시 상당한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960년대부터는 본격적으로 콘크리트를 주거용 건축물에 널리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한 번의 변화가 더 일었다.
도시형 한옥은 한옥의 대량생산과 모듈화를 적용하긴 했지만 수공예적 생산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당시 급격하게 진행된 도시화가 요구하는 주거 수요의 양적 팽창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철근 콘크리트는 재료의 물리적 특성을 바탕으로 공간 수직화의 가능성을 열어줬다. 수직화는 2층 주택부터 시작해 3ㆍ4층 연립주택, 5층 이상 아파트 등으로 점점 고도를 높여가면서 지금의 극단적인 양상인 30층 이상 고층아파트까지 이르게 됐다.
수직화는 대지 활용의 효율성 측면에서는 성공했지만 진압대원에게 있어서 중력이라는 큰 숙제를 안겨줬다. 10㎏이 훌쩍 넘는 개인보호장비를 착용하고 진압 장비들을 파지한 상태에서 중력을 거슬러 위로 향하는 건 체력적으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소방용수인 물이 중력을 거슬러 높은 아파트 화점실까지 도달하려면 펌프라는 기계장치의 힘을 빌려야 한다. 그러나 화점층이 높아질수록 적정수압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더욱이 철근 콘크리트라는 건축재료의 물리적 특성은 화재진압과 인명구조 전술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철근 콘크리트는 최근 한국에서도 활발히 교육되는 CFBT(구획실 화재훈련)의 맨 앞글자에 해당하는‘Compartment(구획실)’, 즉 구획실의 대중화를 안겨줬다.
철근 콘크리트를 주거용 건축물에 대중적으로 사용하기 이전에는 구획실 화재이론에 완벽히 부합하는 구획실을 만나기 어려웠다. 지금도 철근 콘크리트로 벽체와 슬라브가 구성되지 않은 건물의 구획실은 CFBT를 통해 배운 내용을 현장 실정에 맞도록 수정해 적용할 필요가 있다.
구획실의 존재는 주거시설 화재에 있어 공기의 존재감을 상당히 높여줬다고 볼 수 있다. 구획실 내 급작스러운 공기 유입으로 인한 이상연소 현상으로 대원 안전사고나 화점실 내 구조대상자에게 생명의 위협이 되는 피해를 가할 수 있다.
계단식 아파트의 경우 철근 콘크리트 건물의 특성상 상대적으로 높은 공기의 차폐성으로 인해 아파트 공동계단 내 화재 연기의 굴뚝효과가 발생하기 쉽다. 도봉구 방학동 아파트 화재에서처럼 이로 인한 인명피해도 자주 발생한다.
공기의 차폐성이 높은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건축물은 그렇지 않은 건축물에 비해 화점실 진입, 배연 등과 같은 화재진압 전술뿐 아니라 인명구조 활동 등에 있어서도 기존과는 다른 접근법이 있어야 한다. 철근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변화된 도시주거환경으로 인해 우린 CFBT라는 달라진 접근법의 필요성을 간접적으로 체득하고 있다.
다소 어렵더라도 정공법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그걸 정복할 경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철근 콘크리트라는 건축재료는 역설적이게도 소방대원에게 정공법을 제공해 줄 여지가 충분하다.
전 세계에서 지금까지 철근 콘크리트 건축물 화재로 인해 알려진 건물 붕괴 사고는 단 두 건이다.5) 2001년 9월 11일 발생한 미국 뉴욕의 월드트레이드센터 테러, 2017년 1월 19일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발생한 17층 규모 건물 화재와 이어진 붕괴 사건이다.
이마저도 월드트레이드센터는 비행기와 충돌 전 건물 내에 추가 설치된 폭발물로 인한 팬케이크식 붕괴라고 의심받고 있다. 테헤란에서 발생한 붕괴는 1962년 지어진 건물로서 전례 없는 부실시공이 겹친 최악의 인재(人災)로 평가받는다.
월드트레이드센터 테러의 경우 폭발물로 인한 붕괴라고 주장하는 측의 근거는 2004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56층 건물이 17시간이나 타고 2개 층이 내려앉았어도 붕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2005년 스페인 마드리드의 32층 ‘윈저빌딩’ 또한 이틀 동안 탔는데 붕괴하지 않았다.
또 2010년 상하이의 28층 아파트에서는 53명이 사망하고 화재가 4시간이나 지속됐는데도 건물이 붕괴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1971년 크리스마스에 166명이 사망하고 7시간이나 불에 타 현재까지도 대한민국 역대 화재사고 중 최악이라고 기억되는 대연각 호텔 화재가 있다. 대연각 호텔 건물은 보수를 거쳐 오늘날까지 잘 사용하고 있다.
다시 아파트 화재로 돌아가 보자. 아파트 화재가 발생한 재난 현장에는 법에서 국민주택이라고 정해놓은 85㎡ 이하의 화재 세대가 있고 확장이 안 된 일반적인 발코니가 제 기능을 한다면 상층부로의 확대도 최소화된다.
소방대가 도착해 활동한다는 가정하에 보수적으로 잡아도 상층부 확대는 최대 3개 층으로 제한할 수 있을 거다. 얼마 전 소방청이 진행한 조사자료도 아파트 화재 시 다른 세대로 연소확대가 많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최근 5년(2019~2023)간 총 아파트 화재 건수 1만4112건 중 1만2718건(90.1%)은 발화지점에 한정한 화재로 조사됐다. 아파트 상층부로의 신속한 호스 전개 또는 옥내소화전 등 소방시설 사용에 숙달됐다면 불과 싸우기 위한 소방용수도 무리 없이 준비돼있다.
85㎡ 이하의 구획실 화재는 플래시오버에 도달한 최성기가 아닌 이상 500ℓ/m 정도의 유량(40㎜호스 피스톨 관창 1개, 0.7㎫ 기준)으로 소화6)할 수 있다. 또 도시 내에 촘촘하게 포진된 대한민국의 숙련된 소방력들은 아파트 화재 출동지령을 받은 후 누구보다 황금시간을 사수하면서 현장으로 도착할 것이다.
이제 우리에겐 주어진 장비와 소방용수를 활용해 이미 충분히 터득한 정공법으로 도시에 군집해 수직으로 솟아있는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의 한 부분을 공략하는 일이 남았다. 콘크리트 전장 위 불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우리가 되길 바란다.
1) ‘아파트 거주 51.9%, 단독주택은 30% 아래로[집피지기]’-뉴시스, 2023.12.30. (mobile.newsis.com/view.html?ar_id=NISX20231229_0002575937) 2) ‘23년 화재통계분석’-소방청 (www.nfa.go.kr/nfa/news/pressrelease/press/?boardId=bbs_0000000000000010&mode=view&cntId=2079) 3) 한국 주거의 공간사, 전남일, 돌베개 4) 도시형 한옥 이후 아파트 평면으로 이행하면서 거실을 중심에 두고 방사형으로 포진된 개별실을 가졌으며 부엌과 화장실의 개선(여성의 사회적 지위 상승)도 눈에 띈다. 5) 건물이 무너지는 이유, 함인선, 글씨미디어 6) 현장에서 직관적으로 적용하는 적정 유효수량, 박지수, www.fpn119.co.kr/157626
서울 성북소방서 _ 박지수 : pjs8891@seoul.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3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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