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취재] 또다시 불거진 공기호흡기 이상 현상 논란… 문제는?기능 이상 문제 발생한 공기호흡기 두고 재현실험 나선 소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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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PN 신희섭 기자] = 공기호흡기는 유해가스로 가득 찬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이 숨 쉬며 활동할 수 있도록 공기를 공급해주는 개인보호장비(PPE)다. 혹여라도 장비에 문제가 발생하면 순직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소방관들에겐 생명줄로 불린다.
그런데 지난해 11월과 올해 3월 두 차례에 걸쳐 경기소방학교에서 신임자 교육 중 일부 교육생의 공기호흡기에서 작동 이상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3년 전에도 공급 밸브(양압조정기) 동결로 인한 호흡 막힘 현상으로 도마 위에 올랐던 모델이다.
소방청에 따르면 이 공기호흡기 모델은 지난 2018년부터 소방에 공급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총 7만6990점이 일선 소방관서에 보급된 것으로 확인된다.
소방관들 사이에선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소방관 10명 중 6~7명이 이 제품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사람 목숨 갖고 장난치는 거나 똑같은 것 아니냐”며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소방청과 경기소방, 한국소방산업기술원, 제조사 측은 원인 규명에 나선 상태다. 지난달 29일에는 제조사 측에 모여 합동으로 실증실험을 진행하기도 했다. <FPN/소방방재신문>이 소방관들을 불안에 빠뜨린 공기호흡기 작동 이상 문제를 들여다봤다.
잇따른 작동 이상 현상… 원인 규명 나선 소방청
경기소방에 따르면 공기호흡기 작동 이상 문제는 지난해 11월 28일 처음 발생했다. 경기소방학교에서 전문체력측정 교육을 받던 교육생 중 한 명이 공기호흡기의 양압 모드에서 호흡이 안 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틀 뒤인 11월 30일에는 실화재 훈련 중이던 교육생 2명이 양압 모드로 호흡하던 중 타는 냄새와 안구 따가움 증상을 겪는 일이 벌어졌다.
문제 발생 직후 경기소방은 교육생들이 사용한 면체 26개를 전량 회수해 자체적인 조사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양압 불량이 의심스러운 면체 5개를 수거했다.
경기소방은 곧바로 제조사를 불러 현장조사와 재현실험을 진행하고 한국소방산업기술원에 시험성적서를 의뢰했다. 하지만 기술적 결함은 확인되지 않았다.
조사는 올해 2월까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소방청 감사담당관실로 ‘소방 측에서 이번 사건을 은폐하려는 의심이 들어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민원이 접수되기도 했다. 현재 이 민원은 조사가 진행 중인 거로 알려졌다.
그러던 중 올해 3월 7일 양압 상태에서 호흡이 안 되는 현상이 경기소방학교 교육 중 또다시 불거졌다. 경기소방은 경기소방학교와 제조사 측 관계자를 불러 현장테스트를 진행했고 공급 밸브의 동결 현상을 확인했다.
경기소방에서 시작된 이 문제는 현재 소방청이 직접 원인 규명에 나선 상태다. 3월 29일 제조사에서 이뤄진 실증실험 역시 소방청 제안으로 이뤄졌다. 이 실증실험에는 소방청과 경기소방, 경기소방학교, 한국소방산업기술원 등의 관계자만 참석한 채 비공개로 진행됐다.
원인은 공기 공급 밸브 동결… 소방청 “제품 결함은 아냐”
일반적으로 공기호흡기는 고압용기와 등지게, 면체 등으로 구성된다. 평상시 면체를 썼을 땐 일반 공기를 마실 수 있는 ‘대기 모드’와 용기 속 공기로 호흡하는 ‘양압 모드’ 등 두 가지 기능을 사용자에게 제공한다.
공기를 압축해 담은 용기와 면체는 호스로 연결되는데 양압 모드 사용 시 용기에 담긴 공기가 공급 밸브를 통해 면체 내부로 공급되는 구조다. 공급 밸브는 양압 시 들숨과 날숨에 따라 열리거나 닫히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양압 모드에서 호흡을 시작하면 이 공급 밸브가 열리며 면체 내부로 공기를 보내준다. 만약 공급 밸브 기능에 이상이 생긴다면 원활한 공기 공급이 어려워 호흡이 불가능하다. 착용자인 소방관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번에 불거진 공기호흡기 작동 이상 현상은 이 공급 밸브가 얼면서 나타난 문제로 알려진다.
소방청과 경기소방 등에 따르면 외부 비공개로 진행된 3월 29일 실험에선 공급 밸브 수분 유입 시 온도 변화에 따른 동결 현상 문제를 중점 확인했다. 양압 상태에서 외부 연기가 면체 내부에 들어오는지도 검증했다.
실험은 공기호흡기를 착용한 사람이 챔버 내에 들어가는 실증방식으로 진행됐다. 경기소방학교 교관과 용인소방서 소속 현장 대원이 직접 테스트에 나섰다. 실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경기소방학교에서 문제가 제기된 면체를 시료로 사용했다.
동결 현상 확인 실험은 챔버 내 온도를 -20℃, -10℃, 0℃, 10℃로 각각 설정한 후 네 번에 걸쳐 시행됐다.
실험 결과 외부온도가 0℃ 이하일 땐 공급 밸브에 일시적인 동결 현상이 발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기 유입 문제는 이날 실험에선 나타나지 않았다.
소방청은 “실험을 통해 확인한 결과 제품 문제로 인한 작동 이상은 없었으며 동결 현상은 환경적 요인으로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이라고 밝혔다. 또 “동결 현상이 발생해 공급 밸브가 작동하지 않을 경우 바이패스 밸브를 개방하면 호흡이 가능해진다”면서 “일반적인 화재 현장이나 여름철 외기온도가 높을 땐 동결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해외의 유명 공기호흡기 제조사도 면체의 공급 밸브로 수분이 유입될 경우 동결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주의사항을 안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미국 MAS 사의 공기호흡기 사용설명서에는 ‘위험한 환경에 들어가기 전 공기호흡기의 구성품에 습기 등이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공기호흡기 구성품 내부에 습기가 있으면 동결 현상이 발생해 오작동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문이 담겨 있다.
스위덴 기업인 인터스피로 사도 동결에 대한 문제를 사용설명서에 명시하고 있다. ‘세척 후 재조립 시 물기가 남아 있으면 중요한 부품에 얼음이 형성돼 오작동할 수 있다’는 주의사항이다.
“제품 이상 아니다” 결론 낸 소방청, 추가 대책 마련키로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공급 밸브 수분 유입을 완벽히 차단하는 기술을 구현한 제조사는 아직까지 없다. 정확히 말하면 공기호흡기 본연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수분 유입까지 차단하는 기술 구현이 어렵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수분 유입을 막기 위해선 방수 성능이 필요한데 방수는 수분 유입뿐 아니라 공기의 흐름까지 차단한다”며 “결국 공급 밸브가 방수 성능을 갖추면 공기호흡기는 고유 기능을 잃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동결 현상이 언제든지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소방관들이 활동하는 현장 특성상 면체 내부로 수분이 유입될 수 있는 조건은 무수히 많다. 면체 내부에서 과도한 땀 또는 침 등의 분비물이 쌓이거나 면체를 벗었을 때 외부로부터 유입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실증실험 이후 “제품에는 이상이 없었다”고 밝힌 소방청은 우선 면체 세척 시 공기 공급 밸브 분리와 건조방법, 비상시 대처요령 등이 담긴 면체 사용ㆍ관리요령에 대한 메뉴얼을 제작해 일선 소방관서에 배포하겠다는 방침이다.
또 국립소방연구원을 통해 국내 4, 해외 2개사 공기호흡기 면체에 대한 동결 현상 검증실험을 추가 진행하기로 했다.
소방청 관계자는 “일선 소방관들이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는 만큼 공기호흡기의 구조적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면서 “조만간 소방청, 소방산업기술원, 국내 제조사들과 함께 관계자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신희섭 기자 ssebi79@fpn119.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