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증품 써야 하는데… 건설 현장 방화포 놓고 ‘갈팡질팡’“성능인증품 반드시 써야” VS “안전보건공단 지침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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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년 4월 29일 한익스프레스 이천 물류센터 신축공사 현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38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
[FPN 신희섭 기자] = 소방청이 건설 현장의 화재 피해를 막겠다며 개선한 방화포 설치 의무 규정을 놓고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현장에선 개선 방향과 달리 성능을 알 수 없는 방화포가 무분별하게 적용되고 있어 관련 법규가 사문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 2020년 4월 발생한 이천물류센터 공사장 화재사고를 계기로 범정부 TF를 운영해 ‘건설 현장 화재안전대책’을 내놨다. 당시 소방청은 소방 분야 개선과제 중 하나로 ‘건설 현장의 화재안전성능기준’을 새롭게 마련했다.
지난해 7월 1일부터 시행된 이 화재안전성능기준에는 건설 현장에서 나타나는 화재 위험을 줄이기 위해 방화포를 설치하고 일정 성능을 확보하도록 했다.
방화포는 건설 현장 내 용접ㆍ용단 등의 작업 시 발생하는 금속성 불티로부터 가연물이 점화되는 것을 방지해주는 차단막이다. 개정된 화재안전성능기준에 따라 건설 현장에서 용접ㆍ용단 작업 시 11m 이내 가연물에는 이러한 방화포를 덮어 보호해야 한다.
화재안전성능기준에 따라 건설 현장에 쓰이는 방화포는 소방청장이 정한 ‘방화포의 성능인증 및 제품검사의 기술기준’에 적합한 것으로 설치해야 한다.
이 같은 고시가 시행된 지 1년 6개월이 흘렀지만 건설 현장에선 성능인증품을 반드시 써야 하는지를 두고 혼란을 겪고 있다. 게다가 방화포 공급 업체들의 무분별한 영업행위 탓에 자칫 위법을 저지를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한국소방산업기술원에 따르면 ‘건설 현장 화재안전성능기준’ 시행 이후 지금까지 방화포의 성능인증을 획득한 업체는 단 두 곳뿐이다. 해당 업체들은 관련 법규에 따라 성능인증품을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영업을 펼치고 있다.
반면 미인증 업체들은 ‘KOSHA GUIDE(안전보건공단의 기술지침)’에 따라 만들어진 방화포도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영업 활동을 전개 중이다. 서로 다른 논리를 내놓는 산업계의 움직임 탓에 혼란스러운 건 건설 현장이다. 성능인증품을 반드시 써야 하는지를 두고 갈피를 못 잡겠다는 반응이 나온다.
건설 현장의 한 소방안전관리자는 “어떤 업체는 성능인증품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어떤 업체는 ‘KOSHA GUIDE’에 맞춰진 제품만 사용해도 된다고 하니 제품을 선택해야 하는 입장에선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명확한 기준 운영을 위한 가이드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소방청은 화재안전성능기준에 따라 설치되는 건설 현장의 방화포는 성능인증품을 반드시 써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소방청 관계자는 “건설 현장에 설치하는 방화포는 반드시 관련 고시에 따라 소방청장이 지정ㆍ고시한 ‘방화포의 성능인증 및 제품검사의 기술기준’에 적합한 제품을 설치해야 한다”면서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방화포가 설치될 경우 처벌받을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KOSHA GUIDE’의 운영 주체인 안전보건공단도 관련 법규를 따르는 게 맞다는 의견이다. 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KOSHA GUIDE’는 사업장의 자율적인 안전보건 수준 향상을 지원하기 위한 기술지침일 뿐 법적 구속력은 없다”며 “방화포를 임시소방시설로 사용할 경우 ‘건설 현장의 화재안전기준’에 따라 성능인증품을 사용해야 하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불명확한 기준 적용으로 인해 성능이 차이나는 방화포들이 우후죽순 보급될 수 있다는 점이다. 성능인증을 받은 방화포와 ‘KOSHA GUIDE’에 따른 방화포의 가장 큰 차이점은 굴곡 시험 여부다. 게다가 성능인증품의 경우 양산 제품에 대한 성능 검증 절차를 무조건 거쳐야 하지만 ‘KOSHA GUIDE’에 따른 방화포는 일정 기간에 실시된 시험성적서만으로도 시중 유통이 가능해 성능을 명확하게 알 길이 없다.
또 다른 문제는 방화포의 불안정한 가격이다. 관련 법규가 마련됐는데도 성능인증품 사용 의무가 불분명하다 보니 방화포는 소수 기업만 성능인증을 획득한 상태다. 이 탓에 기업 간 경쟁 구도가 만들어지지 못해 인증품의 유통 가격은 고가로 형성돼 버렸다. <FPN/소방방재신문> 취재결과 성능인증품과 미인증품 가격은 최대 3배까지 차이가 났다.
미인증 방화포를 공급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성능인증품을 사용하라는 법규는 있지만 현장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않다 보니 성능인증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법규 운영만 명확하다면 성능인증을 안 받을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신희섭 기자 ssebi79@fpn119.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