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광고

[기고] 창백한 푸른 점을 위한 약속

광고
반주완 한국소방안전원 부산지부 교수 | 기사입력 2025/04/21 [11:30]

[기고] 창백한 푸른 점을 위한 약속

반주완 한국소방안전원 부산지부 교수 | 입력 : 2025/04/21 [11:30]

▲ 반주완 한국소방안전원 부산지부 교수

세계적인 암(癌) 연구 권위자인 로버트 와인버그(Robert Allan Weinberg, 1942~) 박사는 “암에 걸리지 않으면 암으로 죽을 일도 없다”고 말하며 암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람들은 암 치료에만 너무 집중하고 암 예방은 소홀히 한다고 말하면서 암과의 전쟁에서 큰 진전을 이루려면 치료가 아닌 예방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런 예방 전략은 지적 자극도 없고 흥미롭지도 않다. 따라서 사람들은 예방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거기에 집중하지 않게 된다.

 

와인버그 박사는 사람들이 담배를 끊게 하는 것이 생물학자인 자신이 평생 이룬 연구 업적보다도 암과의 전쟁에 더 큰 진전을 가져올 거라 덧붙였다. 놀랍지 않은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암 권위자가 금연을 장려하는 것이 암과의 전쟁에서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하니 말이다. 이 뿐만 아니라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누구나 알고 있는 건강 상식을 지키면 된다. 하루 8시간 숙면, 몸을 많이 움직이기, 건강한 식습관 유지, 과식 피하기가 우리가 알아야 할 전부다. 하지만 사람들은 건강보조식품과 빠르고 쉬운 지름길, 온갖 약을 찾느라 난리다.

 

암의 상당수는 외부 요인에 의해 발생하기에 생활습관을 개선하고 환경적 위험요소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예방이 가능하다는 그의 철학은 산불 예방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2025년 봄, 대한민국은 사상 초유의 산불 재난을 마주했다. 경북 의성ㆍ안동을 비롯한 강원도, 경남 산청, 충남 등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대형 산불은 무려 31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갔고 51명의 부상자를 냈다. 산림청 통계에 따르면 이번 경북 산불로 인한 피해 면적은 약 9만ha(연합뉴스, 2025.4.17.)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서울 면적의 1.64배, 제주도 면적의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규모로 역대 최대 규모의 산불 피해 기록이다.

 

경찰조사에 따르면 이번 산불의 원인은 각기 달랐다. 조상 묘지를 정리하던 중 라이터로 나뭇가지를 태우다 강풍을 타고 날린 불씨가 산으로 옮겨 붙었다. 또 예초기에서 발생한 작은 불꽃이 순식간에 주변으로 확산됐다. 농장 내 용접 작업 중 튄 불티 역시 숲을 덮치는 결과를 낳았다. 겉보기에는 사소해 보였던 행동들이 대형 재난으로 비화한 것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원인은 자연이 아닌 사람에게 있었다. 인간의 한 순간 부주의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불러온 셈이다.

 

이는 와인버그 박사가 강조한 ‘예방의 중요성’이 비단 암 예방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인간 삶 전반에 걸쳐 적용될 수 있는 통찰이자 우리가 모든 위험에 대응하는 기본이 돼야 할 자세다. 산불은 한번 발생하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다는 점에서 철저한 예방과 조기 대응을 통해 그 피해를 충분히 막을 수 있다. 산림 지역에 IoT 센서, 드론, 인공지능 감시 시스템을 도입하고 쓰레기 소각 금지, 입산 통제, 사전 벌채 등의 제도를 강화하는 것이 그 시작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칼 세이건(Carl Sagan, 1934~1996)의 우주적 메시지를 다시 떠올릴 필요가 있다. 칼 세이건은 그의 저서 ‘코스모스(COSMOS)’에서 NASA의 보이저 1호가 태양계를 벗어나기 직전 지구를 촬영한 사진, 이른바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지구는 우주에 떠있는 보잘 것 없는 존재에 불과함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모든 인간은 그 위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그 푸른 점을 소중히 여겨야 하며, 그것을 보호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

 

우리의 지구는 단 하나뿐이다. 생명의 터전이자 미래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유산이다. 산불은 단지 산림을 태우는 재난이 아니다. 지구 생태계를 무너뜨리는 위협이자 우리 삶의 터전을 스스로 허무는 자해 행위다. 나무 한 그루를 지키는 일이 결국 인류 전체를 지키는 일이 된다.

 

산불 예방은 단순히 행정이나 정책의 문제로만 국한될 수 없다. 또한 이를 자연 재앙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문제다. 우리 사회의 경각심 부족과 무관심이 키운 인재이자 반복되는 비극이다. 모든 시민의 실천과 책임이 필요한 영역이다. 작은 불씨 하나가 큰 재앙으로 번지듯 작은 경각심 하나가 수많은 생명과 숲을 지킬 수 있다.

 

지구라는 창백한 푸른 점을 위해 이제는 우리가 약속해야 한다. 칼 세이건이 말했듯 우주의 먼지인 우리 인간은 우주 속의 특별한 존재라는 착각을 버리고 대자연 앞에 겸손해야 한다. 우리의 유일한 보금자리인 창백한 푸른 점을 소중히 보존해야 한다.

 

반주완 한국소방안전원 부산지부 교수

 

※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 등은 FPN/소방방재신문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국소방안전원, 산불 관련기사목록
광고
INTO 119
[INTO 119] 무더위도 녹이지 못한 열정… 소방 영웅들의 올림픽
1/4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