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참으로 숭고하다. 그건 반드시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해서도 대단한 명분이 있어서도 아니다. 당연히 내 이야기만은 아니고 세상을 지키는 거창한 영웅의 서사 역시 아니다.
그저 본인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내는 사람들, 그리고 매일 교육 현장에서 내가 마주하는 수강생들처럼 일상의 작은 선택으로 ‘안전’을 지켜내려는 모든 이의 삶을 말한다.
내 직장, 한국소방안전원에서 이러한 아름다운 사람들을 매일 마주하며 살아간다. 소방이라는 분야를 선택한 건 어린 시절부터 품어 온 소방관에 대한 막연한 경외심 때문이다.
이 땅의 위급한 순간마다 가장 먼저 달려가는 존재, 생명을 구하고 재산을 보호하는 사람들. 그들은 내가 어릴 적 마음속에 그린 ‘진짜 어른’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진로는 소방학으로 향했고 학사와 석사까지 마쳤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공무원의 경직된 업무 특성과 여성으로서 상대적으로 부족한 신체 능력은 화재진압이나 구조ㆍ구급 현장에서 자칫 타인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선택지를 다시 펼쳐 들었다. 그리고 결국 직접 구조하진 않지만 누군가의 구조 활동을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는 길을 택했다. 그 길 끝에서 만난 게 바로 ‘한국소방안전원’이다. 누군가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길이었을 수도,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는 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없이 고민하고 망설인 끝에 내린 선택이었다. 그래서 더욱 진심으로 임하고 있다.
강단에 서는 순간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강사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첫 계기를 만드는 사람일 수 있다는 책임감과 자긍심을 느낀다. 그 책임감을 가장 뜨겁게 체감하는 순간은 강의실 안에서 수강생들의 눈빛이 달라질 때다.
처음에는 억지로 교육에 임하던 이들이 어느 순간 메모를 시작하고, 질문을 던지고,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며 ‘안전’이라는 가치를 자신만의 언어로 녹여낼 때 그 어떤 박수보다도 깊은 감동을 느낀다.
그 변화의 징후는 아주 미세하지만 분명한 전환점이다. 그리고 그들의 그러한 변화가 언젠가 현장에서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를 감동시키는 사람들’은 동료도, 상사도 아닌 바로 이 교육을 받는 수강생들이다. 사소한 것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익숙한 건 낯설게 바라보며 불편한 절차 뒤에 숨겨진 ‘가치’를 이해하려는 그들의 태도는 늘 새로운 각성과 격려를 안겨 준다.
그들이 있기에 나도 내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고 더 나은 전달자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배운다.
누군가 “다시 태어나도 한국소방안전원에 입사하고 싶냐”고 묻는다면 진술거부권을 행사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선택지들 앞에서 끊임없이 고민한 그 날들로 되돌아간다 해도 결국 지금과 같은 길을 다시 택했을 것이다.
가능성의 나뭇가지들이 무성했던 그 순간 이 길을 택했고 그 선택은 지금의 나를 길러냈다. 인생은 실험이 아닌 실전이기에 이미 증명된 길을 다시 밟을 이유는 충분하다.
인생은 비가역적이다. 우린 어떤 선택이 좋은 결정이었는지 되돌아 확인할 수 없다. 과거는 이미 존재하지 않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며 존재하는 건 오직 현재뿐이다.
그래서 오늘도 내 책상 위 어질러진 서류들을 정리하듯 높아져 가는 엔트로피(Entropy, 무질서도)를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애쓰며 하루를 살아간다. 그리고 그런 적은 노력이 누군가의 삶에 의미 있는 도움이 되길 바란다.
한국소방안전원이라서 좋다.
아직은 한국소방안전원의 새내기다. 조직의 깊은 뿌리와 광활한 활동 영역에 비하면 이제 막 땅을 밟은 묘목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 초입의 설렘이 있기에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모든 일이 배움의 연속이다.
‘한국소방안전원이라서 좋다’는 말에는 단순한 직장의 만족을 넘어 추구하던 삶의 방향과 이 조직이 만나는 지점에서 느끼는 강한 공감과 확신이 담겨 있다.
이 풋것의 설렘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언젠가 시간이 흘러 익숙함이 설렘을 잠식하려 할 때도 오늘의 감정과 각오를 되새기며 초심을 붙들고 나아가고 싶다.
지금 이 순간이 나에게 시작점이라면 그 끝은 반드시 누군가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돼 있는 내 모습일 것이다. 나를 성장시켜 줄 이 소중한 공간 안에서 매일 조금씩 더 단단해지고 싶다.
그리고 이곳에서 나를 감동시키는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사실이 더 좋다.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과 매일을 함께하는 이 삶이 내가 택한 가장 의미 있는 선택지다.
우선희 한국소방안전원 부산지부 교수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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