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일터로 나선 새벽과 밤사이 두 자매가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장소는 모두 부산의 아파트. 숨진 아이들은 초등학생과 유치원생 나이였다. 불은 거실의 멀티탭 등 전기시설에서 시작됐고 아이들은 세대 내에서 발견됐다. 현장은 모두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노후 아파트였다.
사회는 또다시 스프링클러에 주목하고 있다. 정부도, 언론도 어김없이 같은 진단을 반복한다. “스프링클러가 있었더라면…”
하지만 이번엔 근본을 다시 물어야 한다. 스프링클러가 없었던 게 유일한 문제였을까. 부산의 두 아파트에는 화재를 인지하고 경보를 울려주는 감지ㆍ경보설비가 있었다.
과거 법에 따라 열감지기가 설치돼 있었다. 소방은 화재 당시 소방시설이 정상 작동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현관문을 열지 못한 채 방 안에서 숨을 거뒀다.
과연 ‘경보설비가 작동했다’는 건 정말 ‘제대로 작동했다’는 걸까. 가장 먼저 따져봐야 할 건 차동식 열감지기다. 이 감지기는 급격한 온도 상승에 의해 작동한다. 연기감지기보다 반응이 느릴 수밖에 없다. 소방의 과거 실험에 따르면 그 차이는 최대 8분에 달한다. 취침 중엔 이 시간이 생사를 가르기 충분하다.
경보시설의 위치와 음량도 문제다. 두 아파트 모두 세대 외부 복도에 지구음향장치가 설치돼 있었다. 현관문이 닫히면 실내에선 경보음을 듣기 어려운 구조였다. 특히 안방에서 잠을 자는 아이들이 이 소리를 인지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게다가 해당 아파트에는 기록장치가 없는 구형 화재수신기(P형)가 설치돼 있었다. 소방시설이 언제 작동했는지, 어떤 감지기가 먼저 반응했는지, 피난 유도를 위한 경보음은 몇 초 후에 울렸는지조차 알 수 없다. 말 그대로 ‘작동했다’는 주장만 있을 뿐 제 기능을 했다는 증거는 없다. 더는 외면해서는 안 되는 게 바로 이 지점이다.
스프링클러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와 함께 이전 피난 개시 환경이 적정한지를 논해야 한다. 스프링클러는 화재를 제어하는 설비다. 하지만 대부분 시설에서의 피난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피난을 결정하게 만드는 건 ‘경보’고 경보의 정확성과 속도, 전달력은 생명을 좌우한다.
이제 감지기와 경보설비에 대한 기준, 정책, 홍보의 중심축을 이동시켜야 할 때다. 먼저 과거 지어진 공동주택 세대 내 감지기의 유형과 위치에 대한 실질적 대책이 필요하다.
열감지기만 설치된 세대는 경보설비가 없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적어도 침실과 거실에는 연기감지기를 기본으로 설치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지구음향장치의 위치와 출력을 세대 내 기준으로 재정립하는 대책도 필요하다. 이 문제는 과거에도, 지금도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지만 오랜 기간 바뀌지 않고 있다. 현행 1m 거리에서 90㏈은 의미 없는 수치다. 미국처럼 ‘침실 내 기준 75㏈ 이상’이라는 실효성 있는 기준을 도입해야 한다.
놓쳐선 안 될 것 중 하나는 소방시설 작동기록 확보다. 기록장치 없는 수신기가 생산되지 못하는 제도는 이미 오래전 시행됐다. 하지만 현실에선 여전히 기록장치 없는 구형 수신기가 즐비하다.
이런 시설에서 소방시설이 적정하게 작동했다는 소방의 발표는 신뢰할 수 없다. 과거 시설의 개선이 힘들다면 차라리 발표하지 않는 편이 낫다.
앞으로는 소방 스스로가 스프링클러 필요성에 대해서만 외쳐선 안 될 일이다. 경보설비의 실효성을 인식하고 이를 국민에게 알리는 동시에 규정을 고치고 관련 기준을 높여야 한다.
이번 부산 화재는 스프링클러 설치 여부로 시작해 결국 우리나라 경보설비의 현실과 마주하게 했다. 부디 소방은 이 참극에서 다음을 준비하길 바란다. 지금이 그 전환점이다.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8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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