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응급의료 안전그물 만들기 낯선 땅에서의 생활은 늘 묘한 긴장을 동반한다. 카메룬에 대한 호기심이 사라진 자리를 익숙함과 낯섦이 모호한 경계를 치고 그 주위를 긴장이 어슬렁거린다. 신경을 긁는 일들이 손톱 옆 거스러미처럼 익숙해진 일상에 붙어 다닌다.
한국에 있을 때 누군가에게 들었다. 한국에 유학 중이던 한 이슬람국가 출신 학생이 한국 생활이 두려워 자기네 나라로 돌아간다고.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곳으로 손꼽히는 한국이 두렵다니?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그 무언가가 그에게 위협으로 인식됐을 수 있다.
카메룬 생활 초기, 예상치 못한 고통 때문에 한국의 그 외국 학생처럼 카메룬을 떠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바뀐 생활 환경 때문인지 치질이 왔고 하루하루 반복되는 고통에 정말 힘들었다. 당장 수술을 받고 싶었다.
하지만 이곳의 의료 현실은 “여기서 수술받다 죽을 수 있어요. 수술은 한국에 가서 하세요”라는 카메룬 선배들의 말을 허투루 흘릴 수 없게 했다.
코앞에 닥친 2차 출장업무만 아니면 당장 한국으로 가 수술을 받고 싶을 만큼 절박한 상황에서 정말 고맙게도 같은 아픔을 먼저 겪으신 분의 도움으로 약국을 찾아 약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야운데에는 의외로 약국이 많았고 처방전 없이 받을 수 있는 약도 꽤 된다고 한다.
큐리 병원을 처음 찾던 날 나보다 석 달 먼저 와 큐리에서 봉사활동 중이던 김수미 간호사 선생이 카톡으로 “화장실에 민감하시면 꼭 볼일을 보고 오세요”라는 당부 말을 전해왔다. 선뜻 와닿지 않았던 이 말을 곧 실감할 수 있었다. 변기 뚜껑도 없고, 남녀 구분도 없이 가끔 물마저 끊기던 병원 화장실은 적응이 힘들었다.
지금은 코이카의 병원 리모델링 사업으로 큐리 병원 화장실 여건이 훨씬 나아졌다. 그래도 여전히 카메룬 화장실 사용은 나에게 손톱 옆 거스러미로 남아있다. 이 일을 계기로 절집의 변소를 일컫는 ‘해우소(解憂所)’라는 우리말을 좋아하게 됐다. ‘근심을 푸는 곳’, 이 얼마나 근사한 표현인가!
한국에선 별일이 아닌데 여기선 자주 근심거리가 되기도 한다. 카메룬 거스러미는 모기와 말라리아뿐 아니라 모기처럼 피 같은 돈을 빨아먹으려는 경찰 등 다양하다. 곰보 같은 야운데 도로를 운전하면서 가끔 경찰에게 잡혔다. 카메룬 경찰은 외국인 운전자를 보면 적극적으로 잡아 세운다.
한번은 서울대병원 전문가분들이 2차 출장을 오셨을 때다. 큐리 병원 직원들을 대상으로 오전 교육을 마치고 빠듯한 교육 일정을 고려해 출장팀 모두 나름 유명한 빵집인 ‘Le Moulin de France’로 점심을 때우러 갔다.
점심이 나오는 데 시간이 걸리면서 의료기기 전문가 서경 선생님 다음 수업이 코앞이 됐다. 서둘러 밥을 먹고 서경 선생님만 먼저 모시고 나왔다. 차보다 마음이 급하게 가는 나를 큐리 병원 100m 앞에서 한 경찰이 잡아 세운다.
때론 허울뿐인 교통 법규 위반도 없었다. ‘웬 봉이냐!’ 하는 표정을 숨기지 못한 경찰이 다가와 “여권 내놔요” 한다. 보통 여권, 황열병 예방접종, 운전면허증, 보험, 자동차 등록증 순이다.
문제는 나와 서경 전문가님 모두 여권도, 신분증도 없었다. 일정을 맞추려는 마음이 급해 모든 짐을 병원 사무실에 놔두고 나온 탓이다.
“저희 큐리에서 일합니다. 코이카 병원 전 응급의료체계 구축 프로젝트를 카메룬 보건부와 같이하고 있어요”
“차 저쪽에 세우시고 여권 보여주세요”
기다리는 교육생 생각에 마음이 급하니 말도 더 꼬인다.
“저기 큐리 가면 여권과 신분증 있습니다. 제 차에 타세요!”
급한 마음에 손짓으로 경찰에게 차에 타라고 여러 번 반복했다. 내 말과 손짓을 차에서 협상(?)하자고 이해했는지 경찰이 차에 탄다. 경찰을 옆자리에 태우고 차를 세우라는 경찰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무작정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서경 선생님은 수업에 가시고 경찰을 사무실로 데려가 여권을 꺼내자 됐다고 한다. 원래부터 여권 검사가 목적이 아니다. 통성명을 나누고 경찰 가브리엘을 보내면서 음료수 한 상자를 건네려는데 빵집에서 막 사무실에 도착한 정중식 박사께서 “그걸 왜 줘요?” 하신다.
두 개만 건넸다. 돌아가는 길에 가브리엘이 내 명함을 쥔 손으로 크게 뜬 눈을 가리키며 아프다고 하소연한다. 아직 노안이 시작될 나이처럼 보이진 않았지만 늘 차가 붐비는 원형 교차로(까르푸, Carrefour)에서 온갖 먼지와 매연에 눈이 성할 수 없을 것이다.
쓰고 남겨둔 ‘인공눈물’ 몇 개를 사무실 책상에서 급히 꺼내와 건네고 사용법을 알려 줬다. 돌아갈 차비는 달라는 가브리엘을 돈 대신 내 차를 세웠던 곳까지 태워줬다. 가끔 출퇴근길에 여전히 교통정리 중인 가브리엘이 보였다. 마주치지 않길 바라면서도 인공눈물 한 봉지를 차에 실어뒀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마주쳤을 때 그 눈물액을 건네고 안부를 물었다. 이후 한참 동안 가브리엘을 보지 못했다. 나중에 그의 왓츠앱 전화번호에 ‘Merci, pour la promotion. Seigneur! 신이여 승진 감사합니다!’라는 글귀가 있었다.
큐리 병원 입구 원형 교차로 교통경찰 가브리엘이 승진을 하고 떠난 것이다. 나는 부패한 카메룬 경찰이 싫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근무하는 모습을 보면 가끔 인간적 연민이 생겼다.
“가브리엘, 승진 축하해!”
코이카 규정에 특수지 가산금이 있다. 활동 조건이 불리한 특수지 ‘가’, ‘나’, ‘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전문가에게 가산금을 지급한다는 규정이다. 카메룬은 아프리카에서 나이지리아, 앙골라, 적도기니, 코트디부아르와 함께 ‘가’ 지역에 들어간다.
‘가’ 지역 국가들은 ‘나’, ‘다’ 나라들보다 특수지 가산금과 체재비를 더 받는다. 처음엔 카메룬 물가가 비싸 생활비를 더 준다고 생각했다. 돈을 많이 받아서 좋았다. 지금은 이 ‘웃돈’을 내가 소방관 생활하면서 받았던 ‘위험수당’이라고 생각한다.
크게 아프거나 다치면 카메룬은 비싸고 불편한 나라에서 위험한 나라가 된다. 의료 접근성과 의료 수준이 허약해서 그렇다.
카메룬의 병원 밖 응급의료 시스템과 병원 현실을 알게 되면서 ‘나와 내 아내가 심하게 아프거나 다쳤을 때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 ‘강한 의심’으로 답할 수밖에 없게 됐다.
큐리에서 복막염 수술을 받은 10대 초반 소년이 있었다. 의사 정중식 기금으로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었다. 사뮤 2, 3차 교육 주제를 환자 평가로 준비하면서 대원들에게 큐리 실제 사례로 복막염을 교육했다.
교육 PPT에 카메룬에서 제일 큰 도시인 상업중심지 두알라와 서쪽 지역에서 각각 시행한 수백 건의 복막염 수술사례를 분석한 논문도 같이 소개했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복막염 수술을 자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이 어린 환자를 더는 기억에 담아두지 않았다. 수술을 받았으니 회복하고 퇴원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기억이 의식 저편으로 사라지기도 전에 소년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수술 후 감염 때문인지, 수술 부위가 재발해서인지 모르지만 너무 이른 죽음을 더 캐묻고 싶지 않았다.
어느 금요일에는 큐리 병원 사회복지 공무원 조엘(Joёlle) 씨가 도움을 청했다. 교통사고 환자인데 신원 확인이 안 돼 가족과도 연락이 안 된다고 했다.
1층 외상 병실(Trauma unit)로 내려가 봤다. 환자 진료 기록을 보니 이틀 전 병원으로 왔고 머리 출혈이 있었다. 우측 대퇴부 아래로 고정 효과가 의심스러운 부목에 붕대가 감겨 있었다. 상처를 소독하고 거즈와 붕대를 감은 드레싱(dressing)은 이틀 전에 한 것인지 냄새가 났다.
무엇보다 수술이 시급했다. 이 환자를 받은 의사를 찾아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지만 그인들 뾰족한 수가 있을 턱이 없다. 수술하게 되면 수술비를 지원할 테니 연락 달라고 했다.
수술 결정은 먼저 마취과 의사 키비니(Kyebyene)와 협의해야 한다고 한다. 우선 지금 할 수 있는 드레싱을 새로 하기로 하고 필요한 거즈와 붕대, 소독약을 사러 약제부로 갔다.
치료 물품은 선불이다. 필요한 물품을 간호사가 적어주면 보호자들이 약제부에서 사다 주는 방식이다. 정중식 박사께서 계실 때 후불 시스템을 운영하기도 했다는데 치료비를 못 내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현재는 선불이다.
마침 소독 베타딘이 떨어졌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차로 가까운 약국에 가서 베타딘을 사왔다. 드레싱 비용은 이번 프로젝트 운영을 맡은 김수희 팀장께서 환자를 위해 쓰라고 송금해 주신 돈을 헐어 충당했다.
오늘도 카메룬 위험수당을 받으면 ‘안전그물’을 짠다. 코이카와 함께, 서울대병원과 함께, 그리고 여기 카메룬 사람들과 함께.
카메룬이 위험수당을 받는 나라에서 어서 벗어나길, 아울러 우리가 짜고 있는 그물이 카메룬 사람들을 질병과 사고 위험으로부터 넉넉히 보호할 날이 오길 바라면서… 오늘 하루가 간다.
유기운 서울에서 생계형 소방관으로 30년 근무했다. 현재 소방관 인생을 마무리하고 갑자기 아프리카로 튀어 카메룬 야운데에서 코이카 병원 전 응급의료체계(EMSS) 구축 프로젝트 현지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PMC_ 유기운 : waterfire119@naver.com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10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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