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119는 국내를 넘어 해외 대형 재난의 수많은 현장에서 이미 그 우수한 수준을 여러 차례 입증했다. 대형 재난의 구조 현장은 대원들의 기본체력과 전문장비, 그리고 팀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사고 유형별 구조기법을 요구한다. 여기까지는 일정 수준 이상 선진국의 모든 RESCUE TEAM들이 보유한 유사한 능력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 119구조대는 이에 더해 어느 나라 팀보다 앞서는 생명에 대한 열정과 무모하리만치 높은 용기를 탑재하고 있다. 이는 저절로 형성되는 기질이 아니며 팀 리더의 판단과 지시만으로 움직이는 영역도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안전과 생명 구호라는 복지 분야에서 ‘119’라는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의 소방 서비스를 받고 있다 해도 결코 과장된 설명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열정과 용기만으로는 앞으로도 계속 세계 최고의 브랜드를 유지할 수 없는 시대와 세대가 우리 앞에 도래했다. 화재와 구조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맞닥뜨리는 부상과 생명에 대한 위험성은 기존 사례를 굳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모든 국민이 깊이 공감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다. 그런데 이런 고난이도ㆍ고위험성의 현장 활동들이 완전한 무보수로 이뤄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계셨는가.
자료에 의하면 미국 소방관의 경우 기본급이 연봉 1억원(평균)일 때 현장 활동 수당이 최고 2억원으로 총 3억원의 연봉이 책정되는 보수 체계를 갖고 있다. 필자는 미국 소방관이 한국보다 연봉이 많다는 금전적인 수치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기본급 외에 현장 활동에 대한 보수 체계가 현실화돼 있다는 사실이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이다. 기본급보다 현장 활동 수당이 두 배가 되는 구조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임에도 한국의 보수 체계와 비교하면 매우 놀라운 대목이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는 한 달 동안 현장 활동이 전혀 없던 소방관과, 한 달에 수차례 현장에서 위험을 감수하며 활동한 소방관이 근무 연수와 계급이 같다는 전제하에 동일한 급여를 받는다. 호봉과 직급 중심의 일반 행정직 공무원 보수 체계를 그대로 적용한 제도의 맹점이, 목숨을 담보로 한 현장 활동의 대가를 무보수로 귀결시키는 오늘의 소방 현실을 만들었다.
인천광역시에는 11개의 소방서가 있다. 그중에는 지역 특성상 화재 발생 빈도가 높고 대형 화재 위험이 특히 큰 소방서가 존재한다. 지휘관급을 비롯한 대원들이 이러한 환경의 특정 소방서 근무를 상당히 기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안타깝지만 같은 보수를 받으면서도 더 위험하고 근무 강도가 높으며, 부상과 순직에 대한 긴장도가 가장 높은 부서를 피하고자 하는 심리는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라 생각한다.
노동 관련 법률을 굳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지금의 현실은 매우 불합리하다. 문화ㆍ경제ㆍ기술ㆍ산업 전반에서 세계적 수준으로 평가받는 K-퀄리티에 비해 119의 보수 체계는 상당히 뒤처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 소방의 사례를 보자. A 소방관이 현장에 출동했을 때 지하로 진입했는지, 지상 3층으로 사다리를 이용했는지, 유독성 물질이 있는 화재 현장인지 등 구체적인 위험도를 등급화해 활동 수당 단가를 정하고 활동 시간을 곱해 월 급여에 반영한다. 출동팀의 리더는 대원들의 활동 상황을 상세히 기록ㆍ관리한다. 이러한 보수 체계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시행돼 온 일본 소방의 일반적인 제도다.
필자는 30년 넘게 근무하며 수많은 영웅 같은 선배들을 봐왔다.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동료를 손으로 직접 수습한 경험도 있다. 그러나 이제 대형화되고 다변화된 재난 현장은 더이상 한 사람의 영웅에 의존할 수 없는, 소방 조직도 고도화되고 숙련된 시스템으로 작동돼야 할 시대가 왔음을 매일 피부로 각인시켜준다.
소방관의 열정과 용기에 기대어 응원과 동정의 시선으로 버텨오던 ‘봉사자’ 혹은 ‘희생자’의 관점을 MZ 세대 후배들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지 않다. 전문가로서의 지지와 위험도에 따른 정당한 대우를 받는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119를 바라는 것이 과도한 주장일까.
AI가 일상을 지배하고 로봇이 산업 현장을 대체하는 미래가 오더라도, 수관을 잡은 관창수가 화염 속에서 끝까지 화점을 찾아 방수해야 화재 현장은 마무리된다. 소방관의 존재감이 명확해야 하는 이유다.
필자는 세계 속에 우뚝 선 K-브랜드의 위상에 결코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 119’임을 감히 자부한다. 화염 속에서 목숨을 담보로 싸운 고귀한 땀의 대가 역시 이웃 나라에 부끄럽지 않은 진정한 ‘선진 소방’으로 이어지길 간절히 기대해 본다.
인천 부평소방서 김태영 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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