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병오년(丙午年), 60년 만에 돌아온 ‘붉은 말의 해’가 밝았다. 역학적으로 천간의 병(丙)과 지지의 오(午)는 모두 강렬한 불(火)의 기운을 상징한다. 정열적이고 역동적인 기운은 반갑지만 소방교육을 업(業)으로 하는 필자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올해 설 명절은 예사롭지 않다. 말의 기운이 거칠게 날뛰면 야생마가 되듯 명절의 화기(火氣)를 다스리지 못한 대가는 언제나 참혹했기 때문이다.
소방청의 통계는 명절의 화마(火魔)가 결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님을 보여준다. 최근 5년 동안 설 연휴에 발생한 화재는 총 2689건으로 하루 평균 117건꼴이다. 이 기간 164명(사망 27, 부상 137)의 인명이 피해를 입었으며 330억원에 달하는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연휴 동안 매일 1.2명이 숨지고 6명이 다친 셈이다. 이 기록은 행복해야 할 명절이 누군가에게는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됐음을 의미한다.
가장 위험한 시간은 모두가 분주한 낮 12시부터 오후 4시 사이다. 전체 화재의 28.6%(770건)가 이 짧은 4시간에 집중된다. 실제로 지난 1월 강원 춘천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발생한 화재처럼 명절 음식을 준비하느라 화기 사용이 잦은 낮 시간대는 소방대원들이 가장 긴장하는 시간이다. 점심 식사를 준비하며 가스불을 켜두고 손님을 맞이하거나, 전을 부치다 잠시 자리를 비우는 그 찰나가 화마에게는 가장 좋은 기회가 된다.
특히 주목할 장소는 고향 집이다. 연휴 기간 화재 3건 중 1건(31.3%)은 주거 시설에서 발생하는데 그중에서도 단독주택 화재가 506건으로 주거 시설 전체의 60.1%를 차지하며 압도적으로 높았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 화재 비율(34.4%)이 평소보다 낮아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는 귀성객들이 노후한 단독주택인 고향 집으로 몰리는 명절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다.
단독주택 화재의 주범은 역시 ‘부주의’였다. 특히 불씨나 화원을 방치해 불이 나는 비중은 15.6%로 평상시보다 1.6배나 높게 나타난다. 2018년 대구 주택 화재나 2023년 경북 노후 주택 사례처럼 마당에서 쓰레기를 태우거나 성묘 후 남겨진 작은 향불이 건조한 겨울바람을 타고 지붕으로 옮겨붙는 식이다. "이 정도면 꺼졌겠지"라는 안일함이 가장 무서운 가연물임을 데이터는 증명하고 있다.
여기에 겨울철 필수품인 난방기구는 또 다른 복병이다. 명절을 맞아 일가친척이 모이면 전력 사용량이 급증하는데 이때 멀티탭 하나에 여러 개의 전열기구를 꽂는 '과부하'는 화재의 직격탄이 된다. 특히 전기담요는 내부 열선이 꺾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오랜 시간 접어서 보관했던 전기담요를 다시 펴서 사용할 때 접혔던 부분의 열선이 끊어지거나 과열돼 발생하는 화재는 매년 반복되는 사고다.
보이지 않는 살인자, '일산화탄소(CO)'도 경계해야 한다. 날이 추워 보일러 사용이 늘어나는 명절에는 배기 연통이 이탈했거나 새나 벌집 등으로 막히지 않았는지 반드시 육안으로 확인해야 한다. 일산화탄소는 무색ㆍ무취해 중독 사실을 인지하기 어렵다. 따라서 고향 집 보일러실에 일산화탄소 경보기를 하나 달아드리는 것은 그 어떤 보약보다 값진 효도가 될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번 설 명절, 가족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몇 가지 실천을 제안한다.
첫째, 주방용 K급 소화기 설치다. 음식점 주방은 K급 소화기 설치가 의무이지만 일반 가정은 아니다. 하지만 식용유 화재가 빈번한 명절 주방에 K급 소화기를 비치하는 것은 법을 넘어선 최고의 안전 대책이다.
둘째, 고향 집 안전장치 확인이다. 이번 귀성(歸省) 길에 부모님 댁 천장에 붙은 단독경보형감지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배터리를 꼭 눌러보자.
셋째, 귀경(歸京) 전 마지막 점검이다. 정든 고향을 떠나 일상으로 돌아오기 전 가스 밸브를 잠그고 사용하지 않는 전기 플러그를 뽑는 습관은 화재 예방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병오년의 ‘붉은 말’은 잘 길들이면 천리를 달리는 명마(名馬)가 되지만 고삐를 놓치면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화마가 된다. 2026년 설날, 고향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정성스러운 선물과 함께 ‘안전’이라는 이름의 고삐를 실어보자. 누군가의 희생이 담긴 통계 숫자를 줄이는 것, 그것이 필자가 새해에 간절히 바라는 유일한 염원이다.
한국소방안전원 인천지부 교수 장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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