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근무하는 경상북도는 면적의 약 69.9% 정도가 산림지역으로 이뤄져 있다. 이는 대한민국 전체 산림 면적의 20.5%에 달할 정도로 방대한 규모다(2025, 산림임업통계연보). 경상북도는 이 풍부한 산림자원을 도민의 생활 수준을 높이는 데 십분 활용하고자 임산업 확대, 도시 조성사업, 임업인ㆍ귀산촌인 교육 등 각종 시책을 적극 추진하는 중이며 산림 인접지 곳곳에는 주택, 축사, 농경지 등 도민의 생활 터전이 자리잡고 있다. 경상북도에서 나무와 산은 그저 전망 좋고 하늘로 높게 솟은 자연물이 아닌 경제발전의 원동력이자 핵심 성장 기반인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지역적 특색, 혹은 장점은 불의의 화재와 만나는 순간 산불이라는 매우 위험한 재난으로 돌변한다. 어느 지역이건 작은 야산 하나 없는 곳 없다는 대한민국이라지만 산과 도시(마을)의 경계가 인접한 경북에서 산불이 난다는 건 얼마든지 인명ㆍ재산피해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경북의 소방공무원들에게 산불 대응은 각자의 맡은 업무를 막론하고 공동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즉 산불이 났을 때 어떻게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지는 경북 소방관들의 머리를 언제나 자극하고 짓누르는 끝나지 않는 숙제다.
필자는 경북소방학교 교육훈련과에서 근무하던 2024, 2025년 산불의 급격한 확산을 방지하는 방법과 환경에 대해 두 차례에 걸쳐 연구를 수행했다. 이는 2022년의 호주 국외파견 출장이 계기가 됐다. 당시 그들은 실험을 통해 산불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과학적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산불 대응을 위한 이같은 실증 실험은 한국 소방에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진행한 실험 주제는 ‘겨울철 수목의 수분 함유량 분석’과 ‘경사면 실화재 실험’이었다.
겨울철 수목의 수분 함유량 분석 연구
이 연구는 2024년 11월 18~20일 겨울철 수목에 함유된 수분량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산불의 확산 양상을 예측할 수 있는 수종별 수분 함유량, 즉, 각 수목이 가지고 있는 수분의 함유량(Fuel Moisture Contents, FMC)을 확인해보는 실험이었다.
시료로 활용된 수종은 침엽수 6그루와 활엽수 4그루다. 필자는 수분 측정기(Wood Moisture Tester)로 각 수종 수피(나무 껍질)의 수분 함유량을 측정하고 측정값은 %로 환산해 1~7단계로 구분했다. 단계 중 1단계는 수분 함유량 28% 이상(‘연료에 불이 붙지 않음’), 7단계는 5% 미만(‘화재 양상이 예측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하고 극단적임’)이다.
실험 결과 수피가 상대적으로 두꺼운 침엽수 6개 시료의 수분 함유량은 모두 10.8~11.7%의 수분 함유량을 보였다. 이는 5단계, 말하자면 ‘착화 시 화재 양상의 예측은 가능하나 연소가 쉽게 이뤄지는 정도’로 분류됐다. 반면 활엽수 4종에서는 모두 측정 한계치값인 41.5%(1단계)가 산출됐다. 즉 침엽수는 낮은 수분 함유량과 두꺼운 수피의 박리 발생으로 연소 확대를 유발할 가능성이 농후하나, 활엽수는 수분 함유량이 높아 초기 화재 전이가 다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실험 결과를 고려할 때, 산불이 발생할 경우 침엽수림 밀집 지역에 소방력을 우선 배치하고 정교한 방화선을 구축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또 활엽수 위주의 조림정책을 펼쳐야 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경사면 실화재 실험
산불이 발생하면 소방대가 먼저 파악하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산의 경사도이다. 아래 실험 결과를 보면 알겠지만 산의 경사도는 불의 성장세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필자는 여러 경사각도에 따른 산불 확산 속도를 수치적으로 도출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 기간은 근래 가장 충격적 재난으로 기억될 2025년 3월 경북 산불이 발생한 뒤인 지난해 8월 5일~12월 19일이다.
실험은 0˚(평지), 10˚, 20˚, 30˚ 경사면에 각각 동일한 연료를 배치하고 실제 점화한 뒤 경사별 연소 확대 속도를 측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연료는 목재 이쑤시개가 1㎝ 간격으로 다수 부착된 가로 50, 세로 80㎝ 크기의 불연스티로폼이다. 이는 대한민국 입목밀집도를 고려한 실환경을 구현한 것으로 이쑤시개는 나무, 스티로폼은 지면에 해당한다.
실험 결과 하단부 이쑤시개에 불을 붙여 상단재(80㎝)까지가 모두 타는 데 걸린 시간은 0˚에서 182초, 10˚에서는 152초로 나타났다. 그런데 20˚에서 갑자기 108초로 평지보다 무려 1.68배 빨라졌다. 30˚에 들어서는 120초로 둔화세를 보였다.
20˚는 산림지형에서 ‘급경사지’로 분류되고 산림지역의 약 80%가 이 급경사지에 속한다. 필자는 이 20˚에서 화염이 연료를 ‘예열’시켜 상승 연료층에 더 밀착됨으로써 확산 속도가 크게 증가하는 점을 확인했다. 또한 지표면과의 화염 접촉면적 증가(복사와 대류 효율)로 인해 단위시간당 연소량이 증가하면서 화염 강도가 더 커지는 양상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에 더해 경사각도가 증가할수록 상향 경사 부분의 연소가 많이 이뤄지는 형상도 나타났다(참고로 30˚에서는 대류효과에 의해 화염이 연료에서 뜨는 모습을 보였다). 이 20˚ 내외의 지형이 바로 산불이 가장 ‘효율적으로’ 번지는 조건이자 왜 산불이 치명적이고 끄기 어려운지를 설명하는 이유인 것이다.
지금까지 산림ㆍ소방당국은 산불이 나면 소방력(인력) 규모로 상향진행측 정면 대응하는 전술을 주로 택해왔다. 하지만 이번 실험 결과로 봤을 때 이제는 기존 방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우선 실험 과정에서 관찰됐듯 이쑤시개(미연소 연료층)와 화염의 밀착으로 확산 속도가 증가하는 만큼 측면 제압을 시도하며 방어선(연료 차단선)을 구축하는 방식이 주효할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경사 상단(능선)에서 순간적으로 매우 높은 화염이 솟구치며 화염을 따라 흐르는 공기 흐름(저압) 속도가 가속되는 점, 급경사지에서 열기류가 매우 빠르게 타고 오르는 양상 등도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다. 평소 20˚ 내외의 급경사지를 사전 파악해 위험구역으로 지정ㆍ관리하는 일도 필요하다.
필자가 이달 부임한 청송소방서 진보119안전센터는 아주 ‘전형적으로 경상북도스러운’ 곳에 위치해 있다. 센터 주변을 360˚로 둘러보면 4분의 3 가까이가 산이고 그 가운데 주택과 일반건축물이 밀집해 있다. 산불이 나면 도로 하나 하나가 주민의 유일한 탈출로다. 이 새로운 근무지의 지휘관으로서 산불의 위험성, 그리고 화마에 효과적인 대응방안이 무엇일지 고민한다.
전 국민이 지난해 3월 경악스러웠던 경북 산불을 TV 화면으로 생생히 목도했을 것이다. 짙은 녹읍으로, 알록달록한 단풍으로, 혹은 소복히 쌓인 눈으로 절경의 정취를 선사하던 산자락을 마치 지옥에서 뿜어져나온 듯한 거대한 화마가 집어삼키는 참혹한 광경에 안타까워하지 않은 국민이 있었을까. 이번 실험이 부디 그런 괴물 산불을 조금이라도 막고 주민 피해를 줄이는 작은 방어막이 되길 소망한다.
청송소방서 진보119안전센터장 소방경 강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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