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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말 국회에서 열린 반얀트리 리조트 화재 대책 토론회 이후 소방청이 대책을 내놨다. 그간 소방시설공사 감리 결과보고서에만 의존해 온 관행을 바로잡아 소방관서의 현장 확인을 우선 확대하겠다는 방향이다.
반복된 대형 화재 참사를 겪은 사회 분위기를 고려하면 당연한 대책이다. 그러나 실행 방식의 합리성은 부족해 보인다. 소방공무원의 현장 조사 대상물을 확대하는 대책은 자칫 또 다른 구조적 위험을 낳을 수 있어서다.
이번 대책의 핵심 중 하나는 완공검사 단계에서 소방관서가 직접 현장을 확인해야 하는 대상물을 늘리겠다는 거다. 대형 숙박 시설과 노유자시설, 백화점, 대형병원 성능위주설계 대상 등을 포함했다.
문제는 현장을 확인하라는 지침은 있지만 소방공무원이 현장에서 무엇을 어디까지 확인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상은 넓어졌지만 책임의 경계가 설정되지 않은 셈이다.
현장 확인의 범주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책임만 넓어지면 결과는 불 보듯 빤하다. 완공 이후 화재나 인명피해가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지목되는 건 현장을 확인한 소방공무원이다. “왜 이 설비를 놓쳤나, 왜 이 구조를 확인하지 않았나” 하는 질문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사후 결과만을 쫓는 책임 추궁은 언제나 현장 공무원을 무력하게 만든다. 법이나 지침으로 확인 범위가 명확히 규정되지 않으면 사실상 소방공무원은 무한 책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소방공무원의 현장 확인은 감리와 다르다. 감리는 소방공사 전 과정의 적정성을 관리하는 제도다. 반면 완공검사 단계의 현장 확인은 제한된 시간과 인력 속에서 이뤄지는 행정 행위다.
이 둘을 동일 선상에 놓고 결과의 책임을 물었다간 제도 설계 자체의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더욱이 순환보직 체계로 근무하는 소방공무원은 특정 시설 유형이나 복잡한 설계 방식에 대한 장기적 전문성을 축적하기 어렵다.
소방청 자체도 이번 대책 문건에서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있다. 제한된 인력과 촉박한 처리 기한 속에서 모든 현장을 철저히 확인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진단이다. 그런데도 후속 대책의 결론을 단순한 현장 확인 확대만으로 설정한 건 문제 인식과 처방 사이의 현실감이 부족한 게 아닌지 의문이 든다.
더 큰 문제는 사고 이후의 책임 구조다. 허위 감리나 부실시공의 1차 책임은 공사업자와 감리업자에게 있다. 그러나 현실에선 사고가 발생하면 행정기관의 책임이 함께 거론된다. 이때 현장 확인을 수행한 소방공무원 개인은 방어 논리를 갖기 어렵다. 확인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서다.
결과적으로 안전 강화를 위한 제도가 현장 공무원을 위축시키고 소극 행정을 유도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대책의 접근 방식을 바꿔야 한다. 우선 소방공무원이 확인해야 할 시설의 범주를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핵심 안전 요소 중심의 확인 항목을 법령이나 고시 수준에서 구체화하는 게 필요하다. 그 범위를 넘어선 사항에 대해선 행정 책임을 묻지 않는 원칙도 명문화해야 한다.
현장 완공검사의 법적 성격 역시 분명히 해야 한다. 소방관서의 현장 확인은 감리를 대체하는 종합 안전 보증이 아니다. 최소한의 행정 확인이라는 점을 제도적으로 명시하지 않으면 모든 책임을 떠안는 ‘만능 도장’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
전문성의 보완책도 필요하다. 성능위주설계 대상이나 초대형 시설은 외부 전문가나 기관의 검사 결과를 활용하는 방식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 소방공무원의 예방 직무 역량을 전문가 수준으로 고도화하지 않는 한 분명 한계는 존재한다.
반얀트리 화재는 제도의 실패이자 구조의 문제였다. 그 책임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또 다른 희생양이 만들어져선 안 된다. 안전은 책임의 확장에서 시작되지 않고 역할의 명확화와 책임의 경계 설정에서 출발한다.
소방공무원에게 더 많은 현장을 맡기려면 그에 상응하는 기준과 보호 장치가 반드시 함께 마련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후속 대책은 제도 개선이 아니라 ‘책임 이전’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6년 3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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