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부터 13일까지 독일에서 열린 인터슈츠(INTERSCHUTZ) 박람회에는 전 세계에서 선진 소방기술을 엿보기 위해 모인 인파들로 북적였다.
지난 2010년 박람회 때와 달리 소방장비와 소방설비는 물론 방재용품도 눈에 띄게 늘었다. 최신 장비와 IT기술이 접목된 장비관리시스템, 화재 안전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등 기술 첨단화에 맞춰진 신기술도 대거 소개됐다.
이번 전시회에 참가한 업체는 총 1,500여 곳. 그러나 우리나라 참가업체는 단 10곳이 전부다. 이 중에서도 소방장비 기업은 2곳 뿐이었고 소방설비 업체 중 해외 인증 등 시장 경쟁력을 어느 정도 확보한 기업은 단 3곳에 불과했다. 산림청과 강원테크노파크 등 관련 기관이 두 곳, 그 외 업체는 해외 인증이 없어 원활한 시장 진출에는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반면 중국에서는 200여 개 가까운 기업들이 참가했다. 소방설비용 부품에서부터 완제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을 선보였다. 우리나라 같은 저가 시장구조에서는 엄두조차 내기 힘든 독특한 디자인의 소화기도 등장했다.
박람회를 찾은 수많은 한국 참관객들은 한숨을 토했다. 세계 시장에서 설 자리 없는 한국 소방산업 실정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다. ‘우리나라 소방산업은 왜 세계 시장으로 뻗어나가지 못하고 내수 시장에만 얽매이고 있나’라는 의문이 생기기에 충분하다.
분야의 많은 관계자들은 관련 정책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소방설비 분야에서는 관련 기술기준을 가장 큰 문제로 꼽는다. UL이나 FM 등 세계적인 선진 기술기준과 달리 일본 규정을 따온 우리나라는 장기간에 걸쳐 선진 규정을 삽입하는 등 여러 차례 변화를 겪었다.
그렇지만 선진국 규정과 동일한 규정은 아니기 때문에 하나의 생산품으로 세계 시장을 넘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별도의 제조생산 라인을 갖추고 타 국가 인증 획득을 위한 또 다른 제품을 생산해야 한다는 얘기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해외 인증비만해도 용품별로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이 필요하다.
우선 수출 제품 개발과 시장 확보를 위해서는 안정적인 재원이 필수지만 이 일도 쉽지가 않다. 품질보다는 가격 위주로 굴러가는 내수 시장이 그리 안정화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혹자는 우리나라 기술기준을 세계 기준과 동일하게 고치면 될 것 아니냐는 논리를 펼친다. 그러나 섣불리 기준을 바꿨다가는 되레 외제품이 국내 시장을 잠식할 우려가 크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수출을 위한 글로벌 기준의 도입인가, 자국 산업의 보호인가를 두고 딜레마에 빠지는 이유다.
또 하나의 문제는 정부차원의 미진한 진흥 정책이다. 지난 2008년 소방산업 발전을 위한 별도의 진흥법이 제정된 지 벌써 7년이 됐다. 하지만 산업계가 실질적으로 체감하는 육성 정책은 미미하다.
특히 산업 진흥을 위한 예산조차 한 푼 없고 분야 산업의 정상화와 발전을 위해 추진되는 정책은 때마다 타 부처나 이해 집단과의 논리 대립으로 무산되기를 반복한다.
정책을 추진하는 주무부처에 대해서도 후한 점수를 주기는 힘들다. 구조적인 문제를 떠안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인력이 진흥 업무를 추진하는가 하면 때 마다 바뀌는 담당자들도 문제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진흥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이 고작 1명 뿐이라는 사실이다. 소방이라는 테두리 내에는 소방장비, 설계와 공사, 감리, 관리, 방염, 제조, 위험물 등 수많은 분야가 존재하는데 이 모든 것을 단 1명이 감당해야 하는 실정이다. 소방산업기술원 내 진흥업무를 위한 별도 부서를 만드는 등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특별한 진척은 없다.
게다가 주무부처 내에서는 소방조직과 행정 발전이 최우선 과제고 소방산업 정책은 항상 후순위로 밀린다. 정부의 부족한 관심과 비효율적인 업무 구조, 과도한 업무 분장 체계가 산업 발전의 길목을 틀어막고 있는 셈이다.
소방장비 산업의 발전도 묘연하다. 공기호흡기나 보호복 등 일부 인명구조장비 생산 업체만이 수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실정이다. 구급차나 소방차량은 국내 기업들이 내수시장을 감당하고 있긴 하나 이 또한 안정적인 사업 구조를 갖추지 못해 해외 시장 진출로 연결되기 어렵다.
이 외에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대부분의 소방장비는 외산에 의존하고 있다. 구조장비 등의 경우 선진국에서 개발된 고품질의 장비들이 오랜 기간 발전을 거듭해 왔다. 기업 역사가 깊은 곳은 100년이 넘는 곳이 있을 정도다. 이렇다보니 후발주자로써 외국 장비 기술을 쫓아가는 것은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설사 국내 기술로 개발을 한다 해도 성능의 신뢰성을 담보하기 어렵고 한정된 내수 시장에서 개발 기업이 끝까지 살아남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다. 더욱이 세계 시장에서 선두적인 글로벌 기업과 경쟁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러한 이유로 국내 소방장비 시장은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는 장비를 누가 수입해 얼마나 전문성을 갖춰 업무를 지원할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진다. 이 때문에 에이젼시를 맡은 공급 업체가 주도권을 갖고 있다.
세월호 사고 이후 정부는 12조 원을 투입하는 등 안전산업을 육성하겠다며 아우성치고 있다. 그러나 소방산업에 대한 현실적인 구상과 정책은 뚜렷히 나타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화재와 재난 예방의 최첨병인 소방산업에 눈을 떠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