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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기고] 소방 기술기준 괴리가 불러온 현장 갈등과 제도 개선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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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소방서 현장대응단 소방경 고기봉 | 기사입력 2025/06/12 [10:35]

[119기고] 소방 기술기준 괴리가 불러온 현장 갈등과 제도 개선의 필요성

화천소방서 현장대응단 소방경 고기봉 | 입력 : 2025/06/12 [10:35]

▲ 화천소방서 현장대응단 소방경 고기봉

소방관으로 30년 넘게 근무하며 수많은 화재ㆍ구조ㆍ구급 등 재난 현장을 마주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가장 절실히 느낀 건 ‘위기 상황에서는 명확한 기준이 곧 생명’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때로는 그 기준이 되는 법과 제도가 현장과 어긋날 때 정작 가장 중요한 ‘안전’을 놓치게 된다.

 

최근 성능시험배관 설치 기준을 둘러싼 혼선은 이러한 괴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옥내소화전설비의 화재안전기술기준’(NFTC 102) 2.3.7.1에서는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성능시험배관은 펌프의 토출 측에 설치된 개폐밸브 이전에서 분기하여 직선으로 설치하고, 유량측정장치를 기준으로 전단 직관부에는 개폐밸브를, 후단 직관부에는 유량조절밸브를 설치할 것. 이 경우 개폐밸브와 유량측정장치 사이의 직관부 거리 및 유량측정장치와 유량조절밸브 사이의 직관부 거리는 해당 유량측정장치 제조사의 설치사양에 따르고, 성능시험배관의 호칭지름은 유량측정장치의 호칭지름에 따른다.”

 

즉 현행 법령은 설치 기준을 ‘제조사의 설치 사양’을 따르도록 명확히 규정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히 참고사항이 아닌 법적 구속력을 갖는 조항이다. 그러나 소방청이 발간한 화재안전기술기준 해설서는 여전히 다음과 같이 과거의 설치 기준을 따르라고 안내하고 있다.

 

“전단부는 8D, 후단부는 5D”

(즉, 개폐밸브는 배관 지름의 8배 이상, 유량측정장치는 배관 지름의 5배 이상을 이격시켜 설치)

 

▲ 펌프 성능시험배관의 유량계 설치 예

 

문제는 현행 법령이 2022년 12월 1일 개정 시행됐음에도 불구하고 해설서가 여전히 과거 기준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현장에서는 법령과 해설서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설계자, 감리자, 시공자가 서로 다른 기준을 주장하며 갈등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법령과 해설서는 항상 일치해야 하며 개정 시 해설서도 동시에 갱신돼야 한다. 해설서는 어디까지나 법령의 이해를 돕는 보완자료이지 법령 위에 설 수는 없다. 더불어 법령에 ‘제조사 기준에 따른다’고 명시된 이상 국가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공인된 기술 자료의 확보와 검증절차, 그리고 관련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더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소방감리자는 기술기준과 법령을 정확히 이해하고 ‘해설서 기준이 곧 법’이라는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는 감리자의 책임 회피가 아닌 법적 기준에 따른 공정한 집행의 문제다. 만약 감리자가 해설서와 법령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다면 현장에서는 부실 설계와 시공갈등이 반복되고,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법은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할 때 비로소 생명을 지킬 수 있다. 기준이 모호하면 설계는 위축되고, 시공은 혼란에 빠지며, 결과적으로 국민의 안전이 흔들린다. 소방의 최후 보루는 명확한 법, 그리고 실시간으로 반영하는 제도적 정비다. 현장의 의견이 법령에 신속히 반영될 수 있도록 상시 개정 시스템과 소통 창구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진정한 국민을 위한 소방은 누구도 헷갈리지 않게 명확하고 일관된 기준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 기준의 정립이 지금,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화천소방서 현장대응단 소방경 고기봉

 

※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 등은 FPN/소방방재신문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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