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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pus Vesta 훈련- Ⅲ

불에 질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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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완주소방서 장준희 | 기사입력 2025/08/04 [10:00]

Campus Vesta 훈련- Ⅲ

불에 질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전북 완주소방서 장준희 | 입력 : 2025/08/04 [10:00]

지난 호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이번 벨기에 훈련에서 3~4년 전부터 마음속에 자리한 풀리지 않는 숙제 하나를 떠올렸다.

 

▲ 출처 www.youtube.com/watch?v=IEOmSN2LRq0  

 

“우리가 지금 많이 배우는 전통적 vs 현대적 건물 화재 실험에서 나오는

현대 모델’이라고 불리는 것조차 이미 수십 년 전인데 과연 저 모델을 현대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대처해야 할 ‘현대 모델’은 어떤 것일까?”

 

이런 의문은 벨기에 출발 전 준비한 카렐 램버트(Karel Lambert)에게 물어볼 질문지 중 가장 첫 번째에 페이지에 있었다.

 

“당신이 생각하는 현대 모델은 무엇입니까?”

 

하지만 이 질문을 꺼내 보기도 전 두 번째 날 이론 수업에서 오래된 숙제가 의외로 빨리 풀렸다.

 

그날 오전 이론 수업은 ‘배터리 화재’로 시작했다. 플래시오버(Flash Over)가 발생하기까지 옛날 천연연료는 30분, 현대 석유화학제품은 5분, 배터리팩은 45초 걸린다는 내용의 영상을 상영했다. 

 

유레카! 내가 가진 숙제의 해답은 배터리였다. 문득 출국 전 출동했던 아파트 화재가 생각났다. 현장까지 1㎞ 거리에서 발생한 화재로 현관문 앞에서 전동킥보드를 충전하다 불이 났다. 현장 도착 전 구조대상자는 이미 심한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땐 그 출동을 단지 한 건의 ‘배터리 화재’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화재 출동이 아니라 이미 ‘새로운 시대’에 대한 신호였다. 이처럼 극단적으로 짧아진 최성기까지의 시간에 맞춰 현장대응과 전술이 변해야 한다. 이는 우리가 고민하고 풀어야 할 문제다.

 

카렐 램버트도 지금 알고 있는 것과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내용조차 이미 구식이기에 “강사라면 계속 공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론수업과 콜드 존(COLD ZONE)에서의 사전 훈련을 마친 후 본격적인 실화재 훈련에 들어갔다. PPE와 공기호흡기를 착용한 뒤 컨테이너 셀 안에서의 훈련이 시작됐다.

 

2주간 총 20번의 Burn을 할 예정이란 계획을 듣고 연료 적재를 시작했다. 연료 적재와 점화는 항상 동일한 양과 방법으로 했다. 심지어 점화하는 신문지의 모양까지도 철저히 동일하게 유지했다.

 

▲ 연료 적재 방법에 관해 설명 중인 보조강사 스티브(Steve) 

 

연료 점화에 실패하면 재점화까지 시간이 소요되고 불필요한 공기호흡기 공기 소모로 인해 훈련시간이 줄어드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연료 적재에 진심을 다했다. 표준을 정하는 게 사고를 방지할 수 있고 모든 교육생이 동일한 훈련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게 또 다른 이유였다. 

 

물론 이 연료 적재 방식은 그동안 수없이 많은 실수와 실패, 훈련과 계산을 통해 얻은 최상의 결과물일 것이다. 기상 조건인 비나 바람, 기온 등은 통제할 수 없지만 연료는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교육 중에는 교육생을 대상으로 새로운 방법의 연료 적재와 훈련을 하면 절대 안 된다는 점, 셀 안의 사고는 모두 교관 책임임을 주지시켰다.

 

캠퍼스 베스타에서의 훈련은 지금까지 교육을 받고 하던 방식과는 여러모로 달랐다. 그동안 중요하게 강조해 온 물 입자의 크기, 방수 시간, 중성대에 대한 언급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가스 냉각 후 물방울이 떨어진다? 상관없다.

관창이 실수로 열렸다? 상관없다.

환기 실수나 교육생의 실수로 연기층이 무너졌다? 역시 상관없다.

 

다만 이 모든 실습의 시작은 철저한 이론 세팅을 기반으로 했다. 관창을 잡은 팔의 각도와 같은 몇몇 세부 동작을 중요 포인트로 짚었다.

 

▲ 가스 냉각을 통한 중성대 변화 관찰 

 

▲ 캠퍼스 베스타 컨테이너 셀 내부 환경

 

▲ 캠퍼스 베스타 컨테이너 셀 내부 환경

 

이곳에서는 훈련 중 랜턴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 꽤 인상 깊었다. 이유를 물으니 “우리가 훈련하는 이 셀보다 실제 화재 현장은 훨씬 더 열악한 환경입니다. 랜턴을 켤 수 없는 상황도 많고 항상 좋은 중성대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결국 연기 속에서 활동해야 하므로 일부러 랜턴 없이 훈련합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 말을 들으며 이곳의 훈련은 컨테이너 셀을 실험실이 아닌 현장으로 인식한다는 점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모든 훈련이 ‘현장과 현실’에 맞춰져 있었고 그것이 이 훈련의 가장 큰 차별점이었다.

 

훈련할 때 컨테이너 셀 내부가 그리 뜨겁지 않았는데 지금까지 경험과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였다.

 

기존 훈련에서는 플래시오버 현상까지 성상을 관찰하며 높은 온도 환경을 경험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롤오버(Rollover) 단계에서 내부 환경을 적절히 제어하며 훈련했다.

 

▲ 열화상 카메라를 통해 확인한 내부 온도 

 

낮은 온도에서 화재 성상을 관찰하고 그 성상의 진행에 따라 적절한 주수와 행동 절차를 반복해서 훈련하는 방식이었다. 훈련 중에는 팀원 간 자리를 바꾸거나 역할을 교대하며 각자 바뀐 임무를 수행했다.

 

좁고 어두운 환경 속에서도 이러한 전환이 원활하게 이뤄지는 걸 보며 사전에 진행된 콜드 드릴(Cold Drill)의 중요성과 효과를 다시금 실감할 수 있었다.

 

실화재 교관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방화복이 타고 헬멧이 녹을 정도로 극한의 고온 환경에서 훈련한 경험이 있을 테다. 필자 역시 그렇게 강도 높은 훈련이 교육 효과가 높다고 믿어왔다.

 

▲ 고온으로 인해 변형된 헬멧과 액션캠 하우징

 

물론 뜨거운 훈련은 분명 교육생이 실제 화재 현장의 위험성을 직관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존재한다. 불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를 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효과는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카렐 램버트는 다른 철학을 갖고 있었다.

 

그는 훈련 중 자주 이렇게 강조했다.

 

“우리는 불에 질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실제 화재 현장에는 ‘비김’이라는 개념이 없다는 것이다. 이기고 있지 않다면 이미 지고 있는 것이고 그렇다면 즉시 철수나 진입 여부를 고려해야 한다. 

 

컨테이너 훈련장은 교육을 위해 사람이 이기도록 세팅된 공간이지만 실제 현장은 전혀 다르다. 우리가 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철학은 그간 간과하던 부분에 대한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훈련을 대하는 태도와 관련해 깊은 울림과 함께 자극을 줬다.

 

 

 

카렐 램버트에게 “낮은 온도에서 훈련하면 교육생들은 실제 현장이 덜 위험하다고 착각하진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그는 단호하게 자신의 교육 철학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높은 온도에서는 진입하지 않아야 하며 진입 후 내부 상황이 악화된다면 즉시 탈출을 교육해야 한다”

 

지금까지 받아왔고 교육해 온 방식은 플래시오버를 체감하며 버티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그러나 캠퍼스 베스타 훈련은 플래시오버 시점을 인식하고 그 전에 진입을 피하거나 탈출하는 게 핵심이었다.

 

뜨거운 훈련만 알고 있던 필자에게 이번 교육은 큰 고민을 안겨줬다. 

 

‘전북 실화재 훈련 과정은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가? 교육생에게 가장 효과적인 온도는 어느 정도인가?’

 

검게 그을리고 녹아버린 헬멧들을 바라보며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하지만 이런 미래에 대한 고민보다 더 시급한 현실적인 문제가 눈앞에 있었다. 이미 기존 방식인 높은 온도의 훈련을 전제로 설계된 실화재 훈련장 5종 시설이 설계를 마치고 우리가 벨기에로 떠나기 전 시공 단계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 기존 플래시오버 셀 디자인

 

이에 함께 훈련받은 동료들에게 두 가지 온도 환경에 대한 차이를 설명하며 장단점을 비교한 표를 만들어 공유했다. 그리고 늦게 시작한 전북 실화재 훈련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심도 있는 토론을 이어갔다.

 

마음속으론 이미 결정을 내렸지만 다른 동료들에게 선입견을 주지 않으려고 최대한 중립적인 자세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하루는 ‘뜨거운 훈련’의 장점, 다른 날은 ‘덜 뜨거운 훈련’의 장점을 얘기했다. 

 

이 결정이 후배 교관에게 짐이 되지 않길, 교육생들에겐 최선의 교육 효과를 주길 바라며 열띤 논의가 이어졌다.

 

 

이 치열한 토론은 2주간의 훈련이 모두 끝나는 마지막 날까지도 계속됐다. 결과를 갖고 귀국한 우리 팀은 본부 담당자와 본부장님까지 의견을 공유하고 논의한 끝에 최종적으로 덜 뜨거운 플래시오버 셀 2기, 뜨거운 플래시오버 셀 1기를 운영하기로 했다. 더 많은 셀을 보유하게 돼 더 다양한 훈련을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이 자리를 빌려 어려운 결정을 함께 해준 팀원들과 전북소방본부에 깊은 감사를 전한다.

 

다음 호에서는 캠퍼스 베스타 훈련 이야기를 잠시 멈추고 주말 동안 방문한 벨기에 소방서를 소개하고자 한다. 

 

전북 완주소방서_ 장준희 : jangjuni@gmail.com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8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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