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로애락 119] #32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 31일간의 기억광주 남부소방서 이태영 소방위의 실제 이야기를 글로 정리했습니다.
종잇장처럼 구겨졌던 아파트는 이제 온데간데없다. 고개를 들어 한참을 올려봐야 했던 아파트는 가림막으로 흉측한 모습을 감추기에 급급했고 뭐가 그렇게 바빴는지 쫓기듯 주변은 정리됐다. 그렇게 시나브로 시야에서 사라져 간 아파트.
3년여의 세월이 지난 지금 이곳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타워크레인의 분주한 움직임과 함께 콘크리트 구조물이 다시 하늘 높이 올라서고 있다. 애써 외면하며 잊고 싶은 곳이지만 이곳을 지날 때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그날의 현장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마치 그날을 잊지 말라는 듯.
여느 때와 달리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치던 2022년 1월 11일 광주 도심 한복판에서 신축 중인 아파트가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반장님, 오늘 아파트 무너졌다는 데가 어딘가요?” “네? 뭐라고요? 제가 지금 병가 중이라… 임 기자님! 아파트가 무너졌다는 건가요?”
통화가 채 끝나기도 전에 기자들의 전화가 끊이지 않고 걸려 왔다. 소방본부 홍보업무를 담당하면서 많게는 하루에 수십 통씩 기자들과 통화를 한다. 하지만 그날의 통화는 계속해서 어떤 묘한 기시감에서 헤어날 수 없게 만들었다.
특별한 지시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바쁘게 움직여야만 할 것 같았다. 스마트폰 화면을 이리저리 쓸어내리며 급하게 병원을 빠져나가던 중 병원 대기실 앞 대형 TV에서는 아파트 붕괴사고 소식을 속보로 전했다. 그렇게 광주 신축 아파트 붕괴사고 구조 활동의 첫날이 시작됐다.
현장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건축물 붕괴 잔해가 도로를 점령했고 주변 상가와 주차된 차들은 으깨진 두부처럼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기울어진 타워크레인과 불안한 상태의 외벽. 작은 중장비 작업에도 건물은 흔들렸다.
전문가들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며 내부 진입에만 2주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도 소방은 실종된 6명의 근로자를 찾기 위한 탐색과 구조를 시작하고 있었다. 이미 내부에서.
“이거 봤어요? 솔직히 이건 아니잖아요” “뭐야! 이스라엘 특수부대?”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 더딘 구조 작업에 유력 대선후보가 이스라엘 특수부대인 유닛 9900 투입을 제안해 온종일 이슈가 됐다. 미국 플로리다주 12층 아파트 붕괴사고 현장에 투입돼 미 구조대를 지원한 이력을 바탕으로 한 제안이었다. 구조대원들의 볼멘소리가 여기저기 흘러나왔다. 나 역시도 속상하고 화가 났다.
‘대한민국 구조대의 도시탐색 구조 능력은 UN에서 최고 등급(Heavy) 인증을 받을 만큼 세계 최고 수준이다’
소방청은 서둘러 언론을 통해 설명자료를 내고 이스라엘 특수부대 투입에 선을 그었지만 이미 대한민국 소방의 자존심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우린 일희일비하지 않고 오로지 구조에만 집중했다.
사고 발생 사흘째 밤. 첫 번째 실종자의 위치를 찾았지만 켜켜이 쌓인 콘크리트 잔해물과 거미줄처럼 뒤엉킨 철근 더미가 가로막고 있었다. 31시간 35분. 실종자 발견과 수습까지 꼬박 하루가 넘게 걸렸다.
방화복은 흙먼지로 얼룩져 있었고 장갑을 꼈다지만 영하권 날씨에 대원들의 손가락은 아려왔다. 그도 그럴 것이 신체 손상을 막기 위해 호미와 손으로 콘크리트 더미를 파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장갑을 겹쳐 방화복을 털어내며 동료 대원들과 ‘고생했다’, ‘수고했다’라는 말을 주고받은 뒤 약속이라도 한 듯 실종자를 이송하는 구급차 길목에 나란히 서서 거수경례로 예우를 갖췄다. 구급차가 현장을 떠날 때까지….
어둠이 긴 겨울이다. 영하권 한파 속 샛별을 보고 출근해 다음 날 아침에 교대하는 2교대 근무 체계가 계속되고 있었다. 육체적, 정신적 피로가 역력했지만 살아있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한시도 현장을 떠나지 않았던 실종자 가족을 생각하면 피곤도 사치였다.
소방본부에서는 대원들의 피로도를 고려해 사고 현장 인근 숙박업소에 임시거처를 마련했고 어느 날부턴가 나는 집에 가지 않고 계속 현장에 머물렀다.
소방청에서는 중앙119구조본부와 전국 시도에 119구조견 동원령을 내렸다. 중장비가 투입되면서 위험 요소였던 타워크레인이 해체되고 안정화 작업도 함께 이뤄져 구조에 탄력이 붙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낙하물과 내부 균열 발생으로 하루에도 몇 차례 구조 활동이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마블 영화 ‘어벤져스’가 떠올랐다. 슈트를 입은 아이언맨과 엄청난 힘을 가진 헐크가 나타나 잔해물을 제거하고 실종자를 찾는 상상.
영화가 현실이 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만큼 간절했기에 잠들기 전 엉뚱한 상상을 하며 턱 끝까지 이불을 끌어 올려 잠을 청하곤 했다.
하루 두 차례 진행되는 정례브리핑을 준비할 때였다. 낯익은 이름이 스마트폰 화면 위로 표시됐다. 친분이 있던 한 언론사 기자의 전화였다.
“이 반장님, 구조대원 인터뷰 진행하려고 하는데… 섭외 좀 부탁드릴게요!” “죄송합니다. 지금은 구조에만 집중해야 해서 구조가 완료되면 그때 하시죠” “아니… 지금 구조도 답보 상태고 여론도 안 좋고… 이럴 때 미담 하나 만들어야죠”
홍보 담당자로서 거부할 수 없는 솔깃한 제안이었지만 ‘최고의 홍보는 최선의 구조다’라는 언론 대응 방침을 세웠다. 공식(비공식) 요청에 단 한 건도 응하지 않고 객관적 자료 제공에만 집중하며 현장을 지켰다.
설 연휴가 시작된 19일 차 밤이었다. 이미 두 명의 실종자를 발견했지만 겹겹이 쌓인 잔해물로 구조에 속도가 나지 않은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고 현장에 심각한 균열이 감지돼 작업 중단이 내려졌다.
갑작스러운 구조 중단 소식이 전해지자 실종자 가족들은 ‘우리가 직접 구조에 나서겠다’며 경찰통제선을 뚫고 무단으로 붕괴사고 현장으로 진입했다. 하지만 구조대원은 없고 외국인 노동자 등 근로자 다수가 대피하지 않은 상태로 콘크리트 잔해물을 긁어모으는 현장을 목격하자 참아왔던 울분이 터져 나왔다.
“구조대원도 없이 야적장에 쓰레기 퍼 나르듯 작업을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정례브리핑을 통해 전달 과정에서의 혼선이 발생했다고 설명했지만 구조대원 없이 근로자들로만 작업이 이뤄졌다는 속보가 전해지자 여론은 싸늘해졌다.
‘구조에도 용역을 줬다’라는 다소 거친 표현들이 인터넷 댓글에 달려 곤혹스러운 상황에 부딪혔다. 그때였다. 정례브리핑이 끝난 뒤 실종자 가족 대표가 마이크를 잡으며 브리핑을 자처했다.
“우리가 지금 믿을 수 있는 건 오직 구조대원뿐입니다. 서운하지만 더 이상 그들을 욕하지 마십시오. 그들이 힘을 내서 다시 우리 가족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차가웠지만 슬픔을 꾹 참아낸 실종자 가족 대표의 말에 브리핑장은 숙연해졌고 기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고개를 한참이나 들지 못했다. 이틀 뒤 실종자 가족 대표는 지휘부를 불쑥 찾아와 설 연휴에도 구조 활동에 매진하는 대원들을 위해 피로회복제를 건넸다.
우연일까? 몇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이날 이후로 구조에 속도가 붙어 실종자 발견과 구조 소식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구조대원들은 최대한 온전하게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일념으로 매몰된 실종자의 신체를 온몸으로 끌어안고 지탱하며 구조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2022년 2월 8일. 마침내 발견된 지 7일 만에 마지막 실종자를 구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휘부는 가장 먼저 실종자 가족을 찾아가 구조 경과를 설명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구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실종자 가족은 지휘부의 손을 잡아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에 내 두 뺨 위에는 멈출 수 없는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내부 진입에만 2주, 구조까지는 최소 3개월 이상 걸릴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29일 만에 6명의 실종자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붕괴사고 현장에서 있었던 수많은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사고 첫날부터 내렸던 눈은 이제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쉽게 잊을 수 없겠지만 실종자 가족들의 아픔도 눈 녹듯 사라지길 기대하며 마지막 날을 마무리한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차가웠지만 구조대원들의 가슴은 누구보다 뜨거웠다’
광주 남부소방서_ 이태영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9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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