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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영남 지역을 덮친 동시다발적 대형 산불은 우리에게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역대 최대 규모의 기록보다 더 크게 다가온 것은 산불을 둘러싼 환경 자체가 이미 달라졌다는 것이다.
기후 변화로 인한 건조한 날씨와 강풍, 작은 불씨 하나는 언제든 대형 재난으로 번질 수 있는 조건이 됐다. 산불은 더 이상 특정 지역이나 특정 기관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적 총력 대응체계가 가동될 만큼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재난이 됐다.
산불 대응의 출발점은 언제나 ‘예방’이지만 소방의 역할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만약 산불이 발생한다면’이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확실한 답을 준비해야 했다.
광진구는 아차산과 용마산이라는 소중한 자산을 품고 있다. 특히 아차산은 해맞이 명소이자 주말이면 수많은 등산객이 찾는 곳이지만 그만큼 산불 위험에 상시 노출돼 있다.
특히 산림과 민가가 인접한 광진구의 지형 특성상 초기 대응 속도는 피해 규모를 결정짓는 핵심이다. 이에 우리는 도심형 산불에 특화된 전략을 고민했고 그 과정에서 아차산에 설치된 ‘산불소화시설’에 주목했다. 본래 이 시설은 건조한 날 물을 분사해 산림을 적시는 산불 예방 시설로 전국적으로도 널리 설치돼 운영되고 있다.
현재 아차산에는 타워형 살수설비 2기와 지표형 살수설비 1기가 가동 중이다. 이 중 타워형 설비는 풍부한 수원(120t)과 강력한 방수압(20㎏)을 갖추고 있다. “이 훌륭한 인프라를 실제 진화 작전에 바로 활용할 수는 없을까?”라는 의문이 변화의 사작이었다.
우리 소방서의 제안에 구청 공원녹지과가 적극 화답하며 협력이 시작됐다. 구청 예산을 확보해 타워형 설비에 ‘방수구’를 설치하는, 전국 최초의 기능 개선 사업이 추진된 배경이다.
변화는 단순했지만 효과는 분명했다. 기존에는 산 아래 소방차를 배치하고 대원들이 수백m의 수관을 연장하며 산을 올라야 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간 지연과 체력 소모는 초기 진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산림 내 방수구를 활용하면 판도가 바뀐다. 대원들이 산속 활동 거점으로 즉시 진입해 인근 수관보관함의 수관을 방수구에 연결하기만 하면 된다. 선착대가 도착하는 순간 곧바로 진압 작전이 시작되는 구조다.
물론 모든 산불이 항상 같은 양상으로 전개되지는 않는다. 발생 시각과 위치, 바람의 방향에 따라 우리의 전략은 늘 가변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작전이 산불 대응의 위치와 속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결정적 카드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작은 방수구 하나가 모든 산불을 완벽히 막아낼 수는 없어도,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강력한 보루가 되기에는 충분하다.
숲이 다시 푸르러지기까지는 수십 년, 생태계 회복에는 백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찰나의 부주의로 사라지는 숲을 지키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광진소방서의 시작된 산림 속 작은 방수구가 골든타임을 사수하는 희망의 통로가 되길 바라며, 올해는 단 하나의 불씨도 소중한 산림을 침범하지 않는 평온한 한 해가 되길 소망해 본다.
광진소방서 재난관리과 소방위 이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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