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의 2006년 새해 아침이 밝았다. 잠자리에서 일찍 일어나 솟아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새해에는 좋은 일이 있기를 빌었다. 그 후 전화기를 들고 평소 존경하는 어른들께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시라”고 새해 인사를 드렸다. 1월1일은 마침 일요일이었는데도 전화와 메시지를 통해 새해 인사와 덕담이 끊이지를 않았다.
정치 지도자를 비롯한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tv 앞에 나와서 “금년에는 국민을 위한 정치를 잘 하겠다”, “통일을 위해 모든 힘을 다 받치겠다.”는 등 온갖 포부와 덕담 등을 늘어 놓았다. 새해의 첫날을 시작하는 의례적인 풍경이다.
얼마 전 동네 목욕탕엘 갔었다. 그날따라 동네꼬마들이 떼를 지어 들어와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바가지에 물을 떠가지고 다니며 서로 끼얹는가 하면 냉탕과 온탕을 첨벙거리며 뛰어다니고 소리를 지르고 떠드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것을 보다 못한 어느 손님이 “이놈들아! 떠들지 말아! 하고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아이들은 잠시 조용해 졌지만 그 중 나이어린 꼬마가 “으앙”하고 울음을 터트리며 아빠인듯한 건장한 청년에게로 달려갔다.
그러자 청년은 “왜 아이들에게 소리를 치는거야?”하며 마치 싸움이라도 할 기세로 소리를 질렀다.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던 손님도 지지 않고 “그럼 아이들이 난장판을 쳐도 가만두지 말란 말이야? 아이들에게 공중도덕을 가르쳐야지”하고 대꾸를 했다.
두 사람의 언쟁은 잠시 더 계속되다가 그 애 아빠인듯한 사람이 “당신이나 잘해” 하는 말로 끝이 나고 말았다.
“너나 잘해 !”하는 말은 요즘 마치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다. 한 때 “내 탓이요” 하는 운동이 천주교 계통의 단체를 중심으로 사회개혁 정화 차원에서 전개된 일이 있었다. “모든 잘못이 내게 있으니 반성하고 고쳐서 바른사회를 만들어 보자”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너나 잘해” 하는 말은 속담에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 는 말처럼 다같이 진구렁에서 뒹굴어 깨끗한 놈이 하나도 없는데 “남에게 잘못한다고 충고할 자격이 잇느냐?” 그러니 너 자신 주제 파악이나 잘하고 “네 일이나 잘하라”는 자조적이며 부정적인 눈으로 사회를 보면서 ‘반성’ 같은 것은 아예 할 가치도 없다는 것을 뜻한다. 어쩌다가 사회를 이렇게 일그러진 눈으로 보고 공격적으로 변했을까? 참으로 염려스럽다.
예전에 일본에 갔었을 때 안내인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하나의 제품을 생산하는데 수백 개의 공정을 거치게 됩니다. 그 수많은 공정 중 에서 나 하나가 잘못하게 되면 그 제품은 불량품이 되지요. 그로 인해 그 공정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결과가 되고 회사는 물론이거니와 국가와 사회에도 손해를 끼치게 된다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만은 누구보다도 제일 잘해야 한다는 프로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이곳 일본 사람들입니다”하고 일본인들의 민족성을 이야기해주던 일이다.
아내는 약간의 허리 디스크 증세가 있었는데 지난번 교통사고로 인해 목 디스크까지 앓게 되어 힘든 일이나 무거운 것을 들면 않아야 한다. 때문에 집안 청소며 힘든 일은 내가 대신 하게 되었는데 내가 하는 일이 서투르고 어설퍼서 아내가 보기에 만족스럽지 못한 것 같다 땀을 흘려가며 일하는 내 뒤를 따라 다니며 여기저기를 짚어가면서 잔소리를 한다, 어떤 때는 확 집어 던져 버리고 “당신 일이나 잘하라”고 소리를 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몸이 불편한 아내의 처지를 생각하고 또 잔소리 하는 아내가 곁에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 “처음이라 서툴러서 그러니 관대 하게 봐주시길 부탁합니다. 다음에는 잘 할께요.” 능청을 부리면서 양해를 구한다. 그러면 아내도 나도 웃어 버린다. 가정의 평화가 유지되는 것이다
새해에는 ‘통일’도 좋고 ‘국민을 위한 정치’도 좋고 돈을 벌어 부자가 되는 것도 좋지만 “너나 잘해”에서 “나부터 잘하자” 로 사고를 바꿔보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