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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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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중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07/03/06 [09:33]

'미얀마' 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이재중 논설위원 | 입력 : 2007/03/06 [09:33]

 
▲이재중 논설위원    
새벽 6시 15분. 양곤 공항을 이륙한 쌍발 푸로펠라 국내선 여객기는 1시간여의 비행 끝에 「바간」비행장에 도착했다

어제 저녁, 미얀마 「양곤」국제 공항에 호기심과 아울러 약간의 불안감을 가지고 도착해 짐을 챙겨 공항 밖으로 나오니 h여행사의 베테랑 가이드라는 l씨가 마중 나와 반겨 주었다. 

  짐이 든 여행 가방을 버스에 실으려 하는데 맨발에 남루한 옷차림을 한 12~3세가량 되어 보이는 소년들이 달려들어 짐을 들어 올렸다. 깜짝 놀라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저렇게 하고 나서는 자기네들도 짐을 운반 했으니 팁을 달라”고 손을 내민다는 것이다.

  일행이 모두 승차하고 버스가 그날의 숙소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자 l씨는 마이크를 잡고 인사말과 더불어 “앞으로 미얀마 관광도중에 어린이 들이나 아기를 안은 여인들이 원 달러(1달러)만 달라고 쫓아  다닐 텐데 물건을 산다던지 하는 정당한 행위 외에는 절대로 돈을 주지 마십시오. 불쌍하다고 돈을 주게 되면, 그들이 그만큼 잘 살게 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학교에도 안가고 관광객들이나 쫓아다니는 등 그들을 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말했다. “차라리 그들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 있으신 분은 볼펜이나 캔디를 한 개씩 나누어 주십시오. 그것도 못 받는 사람이 없도록 골고루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여행 일정 상 미얀마의 천년고도(古都)이며 2천5백여 개의 불탑으로 조성되어, 유네스코 지정 문화재 보호 지역인 「바간」부터 관광을 해야 한다고 해서 「양곤」에서 하루 저녁을 묵고 이른 시간에 이곳으로 날아 온 것이다.

  일행을 태운 버스가 공항을 떠나 약 15분가량 달리고 났을 때 l씨가 마이크를 들더니 “관광에는 체험 관광 이란 것이 있습니다. 현지 사람들의 생활상을 직접 느껴 보는 것입니다.  이 앞에 초등학교가 하나 있는데 잠깐 들르셔서 이 곳 어린이들의 공부하는 모습과 해맑은 눈동자를 한번 보고 가시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떠신지요?” 하고 일행들의 의사를 물었다. 모두 좋다고 해서 버스를 학교 앞에 세우고 학교로 들어갔다.

학교 정문은 나무로 만든 삽작문 같았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니 자그마한 운동장이 있었고 그 한 가운데에는 커다란 고목나무 한그루가 서 있었다. 조금 더 들어가니 목조 단층으로 된 자그마한 학교 건물이 있었는데 꽤 오래된 듯 낡아 보였다.

  그 건물을 여러 개로 칸을 막아 교실을 만들었는데 우리는 그 중 한 교실로 안내되어 들어갔다. 교실 크기는 약 9평쯤 돼 보였고 3~4학년 교실인 듯 10여세쯤 돼 보이는 20여명의 학생들이 옛날 우동 집 긴 의자처럼 생긴 얕으막한 나무 책상 하나에 4명씩 맨 바닥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앞에는 나무 받침대 위에 세워놓은 칠판 앞에, 선생님이 서서 공부를 가르치고 있는 중이였다.
 
우리 일행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학생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방인들을 쳐다보다가 잠시 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칠판으로 눈길을 돌렸는데 그들의 눈은 진지했고 초롱초롱 빛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교실을 나오면서 56년 전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잠시 회상에 잠겼다. 56년 전 여름, 대구 방천 둑 위에 초등학교 6학년을 다니다가 6.25 전쟁으로 피난 온 학생들이 겨우 하늘만 가릴 수 있는 천막을 치고 바닥에 가마니를 깔고 앉아 공부를 하던 것이 바로 어제 일 만 같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때 우리는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네모난 철제 탄약통을 하나씩 들고 다녔는데, 등, 하교 시에는 책가방으로, 수업시간에는 무릎 앞에 놓고 책상 대용품으로 사용했으며 비가 오고 난 후 바닥이 빗물에 젖었을 때는 의자 대신 깔고 앉아 다용도로 소중하게 사용했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밖으로 나온 나는 l씨에게 “수업을 참관하고 가는 정표로 성의표시를 좀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더니 “그것은 제가 준비를 했으니 염려 마십시오.”하면서 보여주는데 볼펜 2타스, 그리고 돈이 든 것 같은 봉투가 하나 있었다.
 
 나는 남의 일 갖지 않아 “내가 한 50달러 정도 협찬하면 안 되겠느냐?” 했더니 “뜻은 고맙지만 다음에 이곳을 찾는 분들에게 부담이 되고, 이들에게 의타심을 심어주는 결과가 되어 곤란하다.”면서 거절했다.  할 수 없이 10달러를 협찬하고 50달러를 l씨에게 맡기면서 “유용하게 써 달라”고 당부를 했다.

56년 전, 모진 고생을 하면서 살아 온 우리 세대는 밤을 낮 삼아 일했고, 일요일이나 공휴일도 제대로 쉬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 결과 오늘 우리는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해 본다.

  「미얀마」라는 나라는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면적이 가장 큰 나라이고 지하자원도 풍부하다. 부존된 천연가스나 원유 매장량도 엄청나다고 한다. 다만 정치 체제가 군부 독재로서 외세를 배격하고 세계에서 고립되어 있기 때문에 개발할 엄두를 못 내고 낙후 되어 가난에 찌들어 살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지도 체제가 바뀌어 경제 성장이 활력을 얻을 때, 그들은 오늘의 가난이 성장의 큰 촉진제가 되어 엄청난 부(富)를 창출할 시기가 올 것이라고 전망한다.

「다만 오늘 우리의 신세대가 고생을 모르고 자랐기 때문에 어떤 태풍이 불어 닥칠 때 어떻게 견디어 낼 수 있을지, 그것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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