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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당신은 멋진 소방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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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용인소방서 박순만 | 기사입력 2020/12/21 [10:00]

그런데도 당신은 멋진 소방관이다

경기 용인소방서 박순만 | 입력 : 2020/12/21 [10:00]

▲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프라자에 위치한 Robert J. Eccleston 작품

 

긴급상황에 처했던 소방관 중 20%는 영구적인 장애를 갖게 됐거나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위험에 빠진 소방관 대부분은 긴급 호출하는 걸 꺼린다. 자신의 경험과 훈련이 위급한 상황을 벗어나게 해줄 수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거나, 자신이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거나, 도움을 청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이다. 

 

임무 수행과정 중 본인이 위험에 처했다는 걸 모든 출동대원이 듣는 무전에 비상 호출하는 건 심적 부담을 준다. 자칫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다면 재발 방지를 위해 원인을 조사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보고서 작성과 조사에 임해야 하는 당사자로선 부담을 떨치기 어렵다. 

 

이렇듯 위험에 빠진 소방관은 여러 가지 이유로 혼자 그 상황을 벗어나려고 애쓰거나 긴급 호출을 주저하다 급변하는 화재 현장 속에서 중요한 타이밍을 놓쳐 도움받지 못하고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 일이 생긴다.

 

▲ 소방관 : 알겠어요. 메이데이를 외칠게요. 메이데이. 메이데이. 메이데이.

천사 : 이미 늦었습니다 (출처 drawnbyfire.wordpress.com).

 

메이데이를 외치는 건 부끄럽거나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긴급호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주저하다가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 것보다 모든 동료가 무전을 듣게 되더라도 무사히 복귀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누군가 긴급 호출을 했더라도 훈련이 부족하다거나 SOP를 준수하지 않았다는 비난은 절대 삼가야 한다. 비난으로 인해 소극적인 현장 활동을 하게 돼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 당신은 메이데이를 외칠 만큼 충분히 용감한가?

악마 : 징징거리지 마. 너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 수 있어.

천사 : 왜 악마의 속삭임을 듣는 거야? 넌 지금 혼자고 위험에 처해 있어. 메이데이를 외쳐. (출처 drawnbyfire.wordpress.com)


필자는 소방관 두 명이 화재 현장에서 고립돼 긴급 호출을 했고 다친 곳 없이 모두 구조됐다는 미국 공영방송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뉴스를 통해 위험한 상황에 빠진 소방관의 모습을 비난하거나 감추지 않고 당시 위급했던 상황을 보도하면서 위험한 현장에서 근무하는 소방관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긴급상황에 빠진 희생자의 37%는 메이데이를 외치지 않았다

우리는 긴급 호출을 하는 정확한 타이밍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매우 위험한 생각일 수 있다. 누군가 우리에게 “긴급상황에 빠졌다면 긴급 호출을 할 건가?”를 묻는다면 당연스레 “무전기의 빨간색 버튼을 누를 겁니다” 혹은 “호스를 갖고 진입하기에 저는 호스를 따라 다시 밖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고 답변한다.

 

이런 교과서적인 답변만 듣게 될 거다. 좀 더 디테일한 긴급상황의 예시를 주고 답을 요구하면 “모든 건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답변으로 대신할 거다.

 

우리가 위험한 상황에 빠졌다고 가정한다면 그 상황은 긴급 호출을 할 만한 정도의 위험성이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빠른 판단을 요구하는 현장 속에서 무전기를 손에 들고 여러 가지 생각으로 주저하는 소방관에게 긴급 호출 타이밍의 기준이 정립돼 있다면 중요한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 거다. 

 

소방관이 어떤 행동을 취하기까지의 결정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 주위엔 긴급상황에서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직업이 있다. 바로 전투기 조종사다. 당신이 만약 추락하는 전투기의 조종사라면 어떻게 할 건가?

 

최고의 조종실력을 인정받고 흠이 없는 경력의 조종사인 당신은 현존하는 전투기 중 가장 값비싼 3942억원 짜리 F-22 랩터를 운항 중이다. 전투기가 결함이나 장애로 인해 추락하고 있다면 쉽게 조종기에서 손을 떼고 비상사출좌석 장치를 작동시킬 수 있을까?

 

▲ Lockheed martin (출처 lockheedmartin.com)

 

공군에선 긴급한 상황에 빠진 전투기 조종사들이 더 쉽고 빠르게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에는 랜딩기어가 작동하지 않을 때, 나쁜 기후와 착륙장 상태, 비행사의 경험 부족 이 세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상황을 극복하기 어려울 때, 1만ft 상공에서 비행기 제어가 안 될 때 등을 긴급한 상황으로 명시하고 있다. 

 

미국 소방에선 이러한 공군의 긴급상황 시 의사결정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메이데이를 외칠 구체적인 상황 예시를 오른쪽 도표와 같이 만들었다.

 

▲ 위 도표는 샌프란시스코 일반 주택의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건물의 형태나 규모에 따라 도표의 내용 또한 수정해야 할 거다.


무전기 사용법이 아닌 무전 교신 훈련

모든 출동에서 무전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출동 시작에서부터 마지막까지 무전으로 시작해서 무전으로 끝난다. 현장에 도착하기 전 무전을 통해 취득할 수 있는 화재의 규모와 피해 상황은 현장에서 어떤 작전을 펼칠지, 어떤 임무가 주어져야 할 지를 결정하게 된다.

 

메이데이 훈련에서 무전 교신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위험에 처한 본인의 상황을 긴박한 상황에서도 잘 전해야 하며 지휘관은 그 정보를 토대로 구출 작전을 진행해야 한다. 

 

메이데이 무전 교신 시엔 몇 가지 필요한 정보가 담겨야 한다. 이 필요한 정보를 U-CAN 또는 LUNAR이라고 부른다. 구조가 필요한 대원은 아래 도표에 나온 정보를 현장지휘관에게 신속히 알려줘야 한다. 

 

 

ㆍ위치 정보 : 화재 현장에서 본인의 위치를 알려야 RIT(Rapid Intervention Team, 위험에 빠진 소방관들을 구하는 팀)가 신속히 접근할 수 있다. 주위에서 작업하던 다른 대원들에게 신속히 도움을 받을 수 있다.

 

ㆍ소속, 이름 : 구조가 필요한 대원의 기본적인 신원이 파악된다.

 

ㆍ공기 잔량, 상태 : 공기의 잔량을 알려줌으로써 주어진 시간을 가늠할 수 있다. 또 공기가 부족하다면 여분의 공기통이 필요한 걸 알 수 있다(참고로 여분의 공기통은 기본적인 긴급구조 장비 리스트 중 하나다). 대원의 상태를 알려 구출 방법과 치료 필요 여부에 대해 알 수 있다.

 

ㆍ임무 : 대원이 수행하던 임무를 알려줘 긴급상황이 발생한 이유와 다른 위험성이 존재할 수 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ㆍ필요한 장비 : 구조가 필요한 대원이 현장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구조 활동에 어떤 장비가 필요한지 알려주는 건 신속한 구출과 직결되는 중요한 정보다. 

 

무전 교신 훈련의 예   

LUNAR의 활용

L : 첫 번째 층으로 정문에서 10m 안. 바닥 붕괴로 현재 지하층에 있음.

U : OO센터

N : 김OO

A : 화재진압 중이었으며 현재 공기 잔량 50%.

R : RIT가 필요하며 붕괴 잔해 제거를 위해 동력절단기 필요. 

작업 인원이 O명 더 필요함.

 

※ 메이데이 무전은 현장지휘관과 고립된 대원이 직접 소통해야 한다. 

 

무전 내용의 예 

대원 : MAYDAY, MAYDAY, MAYDAY

 

지휘관 : 현장의 모든 대원은 무전을 중지. 

여기는 대응단장 MAYDAY 상황을 인지했음. 

LUNAR을 알려주기 바람.

 

대원 : OO센터 김소방. 

1층에서 진압작업 중 바닥 붕괴로 현재 지하에 있는 상태. 

건물 잔해가 누르고 있음. 

공기가 50% 정도 남았고 RIT와 톱이 필요함.

 

※ LUNAR의 순서대로 꼭 무전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게 목적이다.

 

평소에 무전을 하지 않다가 막상 무전기를 사용하게 되는 날이면 혀가 꼬이는 경우가 있다. 무전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특히 신규대원이라면 앞으로 응급상황에 대한 무전 훈련을 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반드시 살아 돌아오라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긴급상황의 내용은 다양하다.

 

ㆍ소방관이 움직이지 못하게 되거나 일정한 장소에 고립된 상태

ㆍ건물 붕괴로 출구가 막혔거나 동료가 사라진 경우

ㆍ지붕이나 아래층으로 떨어진 경우

ㆍ문이나 창문으로 60초 이내에 빠져나갈 수 없는 경우

ㆍ공기가 부족한데 출구를 못 찾는 경우

ㆍ개인보호장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

ㆍ다친 경우

 

이런 다양한 경우의 수에서 본인의 실수로 인해 생기는 상황은 몇 가지일까? 어려움에 처했다고 부끄러워하거나 자책하지 말아야 한다. 비난도 삼가야 한다. 58주년 소방의날 기념식에서 대통령은 우리에게 “반드시 살아 돌아오라”고 명령했다. 우리가 살아 돌아가는 건 혼자가 아닌 함께 있을 때 실현 가능성이 높다.

 

팀 경기에서 팀플레이는 당연하다. 선수 혼자의 힘으론 이길 수 없다. 팀원이 서로 도움을 받기도, 주기도 할 때 득점할 수 있다. 팀에게 도움을 청하는 건 우리가 살아 돌아가기 위해 제일 먼저 행해야 할 일이다. 동료에게 도움을 청하는 순간에도 당신은 여전히 멋진 소방관이다. 

 

경기 용인소방서_ 박순만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0년 12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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