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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급 응급구조사가 가야 할 방향은?

30여 년 만에 일본 구급구명사 업무범위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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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부산진소방서 이재현 | 기사입력 2021/11/19 [11:00]

대한민국 1급 응급구조사가 가야 할 방향은?

30여 년 만에 일본 구급구명사 업무범위 개정

부산 부산진소방서 이재현 | 입력 : 2021/11/19 [11:00]

일본은 2021년 10월 1일부터 개정된 ‘구급구명사법’이 시행돼 구급구명사가 병원에서 의료행위를 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일본 병원 전 단계 응급의료의 큰 전환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30여 년 만의 업무 범위 개정으로 일본 구급구명사들이 다양한 현장에서 활약할 것으로 기대되는 상황이다. 한국 응급구조사도 일본의 사례를 참고해 엉킨 실타래를 풀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본 구급구명사의 역사와 현재

일본의 구급 업무는 1933년 가나가와현(神奈川県) 경찰부가 요코하마 소방서에 캐딜락 세단을 개조한 구급차를 배치한 게 시초라고 알려져 있다. 이후 구급 출동이 증가함에 따라 1963년에 ‘소방법’ 일부가 개정돼 구급 업무의 법제화가 이뤄졌다.

 

1990년도에 들어서는 구급 활동에 있어 보다 전문적인 부분이 요구되면서 이에 부응하기 위해 미국의 ‘파라메딕’ 시스템을 참고로 1991년 ‘구급구명사법’이 제정됐다. 1992년부터는 구급구명사가 배출돼 구급차에 탑승1)하기 시작했다. 

 

2021년 현재 일본의 구급구명사 자격자는 약 6만7천여 명이다. 4만명 정도는 소방 기관에서 구급대원으로 근무하고 있지만 나머지 2만5천여 명 중 약 1만5천명은 구급구명사 자격을 보유하고도 의료직종에 전혀 종사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됐다.2)

 

전국 구급구명사 양성시설 협의회(JESA) 데이터에 따르면 구급구명사 양성시설(대학, 전문학교 등)에서 졸업하는 학생은 연간 1200명 안팎이지만 소방조직에 취업해 구급대원으로 근무하는 건 약 60%로 나머지 40%는 민간기업(경비회사, 병원, 사설이송업체 등)에 취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급구명사법 제 44조

 

1. 구급구명사는 의사의 구체적인 지시를 받지 아니하면, 후생노동성령으로 정하는 구급구명처치를 하여서는 아니된다.

 

2. 구급구명사는 구급용 자동차, 그 밖의 중증 상병자를 반송하기 위한 것으로서 후생노동성령으로 정하는 것(이하 2항 및 제53조 제2호에서 “구급용 자동차 등”이라 한다.) 이외의 장소에서 그 업무를 하여서는 아니된다. 다만, 병원이나 진료소로의 이송을 위하여 중증 상병자를 구급용 자동차 등에 태울 때까지의 기간 또는 중증 상병자가 병원이나 진료소에 도착하여 해당 병원이나 진료소에 입원할 때까지의 기간 동안에 구급구명처치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일본 ‘구급구명사법’ 제44조에 따르면 구급구명사가 응급처치와 의료행위를 수행할 수 있는 장소를 구급차 내부, 그리고 현장에서 병원 도착까지로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구급구명사는 병원 내에서 정맥로 확보 등의 의료행위는 물론 심폐소생술과 지혈, 상처 드레싱, 생체징후 측정 등의 아주 기본적인 응급처치도 할 수 없었다.

 

따라서 병원에서 근무하는 구급구명사는 간호조수(간호조무사)의 업무를 수행하거나 병원 소속 구급차 또는 닥터카 운전 정도의 업무만을 수행하고 있어 전문적인 능력을 병원 내에서 발휘하기가 어려웠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일본 구급구명사들은 법률적인 한계를 인정하고 본연의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며 진료기록 입력과 물품 운반ㆍ보충, 환자의 검사실 이송, 병원 내 응급상황 대응, 병원 내 응급처치 강의, 환자 중증도 분류, 소방 구급대의 환자 이송 문의에 따른 핫라인 대응 등 병원 내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업무 영역을 점차 넓혀가기 시작했다.

 

구급구명사의 병원 내 의료행위로 인한 입건 사례

 

2005년 3월 아키타현 오다테시에서 구급구명사가 심폐 정지 상태의 환자를 병원에 이송 후 병원 내에서 제세동을 실시했다고 오다테 지역 조합 소방본부가 4월 8일 발표했다. 본부는 ‘구급구명사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오다테 경찰서에 보고했다.

 

본부에 따르면 구급구명사는 3월 25일 신고를 받은 70대 남성 환자를 시내 병원으로 이송했다. 구급차 내에서 제세동을 시도하려 했지만 제세동기가 작동하지 않았다. 병원 도착 후 당직 의사가 다른 응급환자 대응에 쫓기고 있던 것으로 판단해 구급구명사가 응급실 내에 비치된 제세동기를 사용했다. 그 후 당직 의사도 제세동을 실시해 환자의 심폐 기능은 일단 회복했으나 다음 날 사망했다.

 

위 사례에서 구급구명사의 위법행위는 다음과 같다. ① 병원 내에서 의료행위를 실시한 것 ② 구급구명사의 업무범위가 아닌 수동 제세동을 실시한 것 ③ 의사의 지시 없이 제세동을 실시한 것

 

민간 인정 구급구명사 제도의 시행

일본은 저출산, 고령화 사회가 지속되면서 이로 인해 구급 출동도 증가하고 있다. 2016년 기준 일본 전국의 소방 구급차 출동 건수는 연간 약 625만건3)정도로 구급차를 늘려도 구급 수요를 따라가기 어려울 만큼 업무가 과중해지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로 인해 병원 이송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되고 있다. 

 

해결 방안으로 소방 기관 외에서 근무하고 있는 구급구명사를 활용해 의료기관이나 병원 구급차, 민간 구급차에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검토하게 된다. ‘2015년 구급 업무 본연의 자세에 관한 검토회’에서는 소방 기관에서 근무하지 않는 구급구명사에게 재교육을 시행하도록 했다.

 

또 지역 MC 협의회4)와 긴밀한 연계를 구축해 병원이나 민간 이송단에 근무하는 구급구명사 활동에 대한 프로토콜을 수립하고 사후 검증을 하도록 결정했다. 

 

2017년에 들어서는 일본 의사, 일본 구급의학회와 일본 임상 구급의학회, 일본 구호응급학회, 일본 여행학회, 전국 구급차 교육시설 협의회, 일본 구급의료재단, 일본 구호응급재단 등 다양한 협회에서 선출된 위원들로 구성된 ‘구급구명사의 사회적 활용 협의회’에서 수차례 토론을 거쳐 2018년 ‘민간 인정 구급구명사 제도’5)를 시행하게 된다.

 

이는 소방 기관에 속하지 않은 구급구명사가 병원 전 단계에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발판이 된다.

 

근로 방식 개혁 관련법과 의사의 일하는 방법에 대한 개혁

제22회 의사의 근로방식 개혁에 관한 검토회(2019년 3월 28일 개최) 자료에 따르면 지역의료 확보 잠정 특례6)를 넘는 진료과별 비율은 구급과(응급의학과)가 14.1%로 20.5%인 산부인과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이처럼 일본 응급실 의사의 노동강도가 높고 근로시간이 길어 의사의 건강확보와 고품질, 효율적 의료를 제공하기 위한 논의가 지속돼 왔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24년 4월 1일까지 근로시간을 연간 960시간까지 단계적으로 단축할 수 있도록 ‘의료법’이 개정됐다.

 

의사의 근로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일부 의료직종의 업무 범위를 확대ㆍ재검토하는 동시에 의사의 업무 일부를 타 의료직종에 허용해 의사의 업무 부담을 경감시키고 해당 의료직종을 좀 더 전문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한다. 업무 범위가 확대된 의료직종은 구급구명사와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임상공학기사 등 4종이다.

 

검토회는 총 30개 단체의 의견을 청취해 각 단체에서 제안된 300개 항목의 업무를 정리하고 구급구명사의 업무를 ‘현행 제도하에서 실시 가능한 업무’, ‘현행 제도에서는 명확하지 않은 업무’, ‘현행 제도에서는 실시할 수 없는 업무’로 분류해 업무범위 확대에 대한 논의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게 된다.

 

구급구명사의 병원 내 의료행위 범위에 대한 논의

일본에서는 구급구명사가 현장과 구급차로 병원에 환자를 이송하는 상황에서만 의료행위가 가능했고 병원 내에서 응급처치나 의료행위를 수행한 전례가 없어 어느 정도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 있었다.

 

이에 대한 논의도 심도 있게 진행됐다. 일본 구급의학회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의사의 80% 정도는 구급구명사가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걸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응급실에서 구급구명사가 실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하는 응급처치에는 ①흉부 압박(91) ②필요한 체위 유지, 안정의 유지, 보온(79.1) ③도수 조작에 의한 기도 확보(76.1) ④백밸브 마스크에 의한 인공호흡(73.1) ⑤산소 흡입기를 사용한 산소 투여(73.1) ⑥에피네프린 투여(70.2) ⑦펄스 옥시미터에 의한 혈중 산소 포화도 측정(68.7) ⑧구강 흡입(68.7) ⑨압박 지혈(67.2) ⑩체온 맥박ㆍ호흡수ㆍ의식 상태ㆍ피부의 관찰(67.2) ⑪기관 내 튜브를 통한 기관 내 흡인(65.7) ⑫자동 흉부 압박기를 사용한 체외식 흉골압박 심장 마사지(64.2%) 등으로 나타났다. 

 

앞으로 병원 내 구급 상황에서 구급구명사가 담당했으면 하는 업무에는 ①현재 구급차 내부에서 실시하고 있는 소방 구급구명사의 업무범위(92.9) ②병원 내 응급상황 대응(85.7) ③유도 심전도 기록(82.1) ④정맥 채혈(71.4) ⑤젖산 링거액, 포도당, 에피네프린 이외의 약제 투여(57.1) ⑥수동 제세동(50%) 등이 있었다.

 

많은 논의와 설문조사를 참고해 검토회에서 결정된 구급구명사의 업무범위 확대안은 다음과 같다.

 

구급구명사 업무범위 확대안

 

①병원 구급차 출동 요청 시 탑승 ②환자 병력 청취 ③진료기록 ④환자 이송 ⑤응급실 물품 관리 ⑥생체징후 측정 ⑦환자평가 ⑧심폐소생술 ⑨정맥로 확보(약물투여) ⑩비상용 약물투여 ⑪상처 처지(봉합제외) ⑫의사의 응급처치 일부 보조 ⑬병원 구급차에서 환자 관찰과 처치

 

업무범위 확대안에 따르면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의 1차 평가와 생체징후 측정, 정맥로 확보, 약물투여가 가능해지고 병원에서 운용 중인 구급차 내에서의 응급처치도 할 수 있어 폭넓은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일본의 경우 병원 간 이송의 대부분을 소방 구급대에서 처리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응급환자의 대응이 늦어지는 문제가 있다. 반대로 병원에서 운용 중인 구급차는 1년간 평균 80회도 운행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구급구명사가 병원 구급차에서 응급처치가 가능해지면 안정적인 환자의 병원 간 이송 시 필요한 응급처치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소방 구급대의 병원 간 이송이 줄어들기 때문에 응급환자 출동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점도 장점이다.

 

令和7) 3년, ‘구급구명사법’ 개정 시행을 앞두고

2021년 10월 1일부터 개정된 ‘구급구명사법’이 시행돼 30여 년 만에 구급구명사가 병원 등 의료기관에서 의료행위와 응급처치를 할 수 있게 됐다. 국회에서 ‘구급구명사법’이 통과된 이후 개정사항 시행을 대비해 2차 병원이나 대학병원의 구급구명센터를 비롯해 민간 기관의 구급구명사 채용이 활발해지고 있다.

 

특히 세콤(Secom)에서는 일본 최초로 ‘구급구명사 소속 시설 인증’을 취득해 대규모 행사나 대형 시설에서 보안과 응급환자 구호를 동시에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했다. 이처럼 구급구명사가 의료기관뿐 아니라 민간업체 등 다양한 병원 전 환경에서 활약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구급구명사법 제 44조

 

4.(신설 2021년 10월 1일 시행) 병원 또는 진료소에 근무하는 구급구명사는 중증 상병자가 당해 병원 또는 진료소에 도착하여 당해 병원 또는 진료소에 입원할 때까지 구급구명 처치를 하고자 하는 때에는 미리 구급구명사에 의한 구급구명 처치의 실시에 관한 위원회를 당해 병원 또는 진료소 내에 설치하는 동시에 당해 연수의 내용에 관한 해당 위원회의 협의 결과가 있어야 한다.

 

①의사 및 기타 의료종사자와의 긴밀한 연계 촉진에 관한 사항

 

②상병자와 관련된 안전관리에 관한 사항, 의약품 및 의료기자재에 관한 안전관리에 관한 사항, 기타 의료와 관련된 안전관리에 관한 사항

 

③ 원내 감염대책에 관한 사항

▲ 개정된 ‘구급구명사법’ 제44조. 구급구명사가 의료기관에서 구급구명처치(응급처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개정된 ‘구급구명사법’에 따르면 구급구명사를 채용한 병원에서는 구급구명처치를 지시하는 의사와 의료안전 관리 위원, 응급실에 종사하는 간호사로 구성된 ‘원내 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 구급구명사는 ‘의료안전, 감염증 대책, 팀 의료’에 대한 연수를 받아야 한다. 

 

소방 구급대로 근무하는 구급구명사는 5개 특정 행위8)를 수행할 때 유선으로 의사에게 지시를 받아야 하는데 병원에 근무하는 구급구명사는 해당 의료기관의 의사에게 직접 지시를 받아 수행하게 된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구급구명사의 업무범위는 해당 병원의 위원회가 결정하게 된다. 이는 병원마다 의료진이나 의료장비, 의료 환경의 차이가 있을 수 있고 구급구명사의 술기 능력 등이 달라서 약간의 융통성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A 병원에서는 구급구명사가 기관 내 삽관을 할 수 있지만 B 병원에서는 할 수 없을 수도 있고 사용할 수 있는 약물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일본은 한국보다 구급구명사 업무범위 개정에 있어 더 보수적인 성향을 보여왔는데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환자에게 제세동을 할 때 의사에게 의료지도를 받아서 수행(2003년)해야 하거나 저혈당 환자에게 포도당 용액도 투여(2014년)하지 못하게 했던 것과 비교해보면 이번 업무범위 개정은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구급구명사법’이 개정되더라도 한국의 일부 병원에서 응급구조사에게 지시하고 있는 동맥 채혈이나 비위관 튜브 삽입, 도뇨관 삽입9) 등의 침습적 술기는 검토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에 법 개정 이후에도 허용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후쿠오카 뇌신경 외과병원은 2020년 4월부터 5명의 구급구명사(1명은 민간 인정 구급구명사)를 채용했다. 현재는 병원에서 운용 중인 구급차에 탑승해 본 병원에서 수술을 희망하는 환자의 병원 간 이송을 담당하고 있으며 법 개정을 대비해 구급구명센터 내에서 의료진으로 활약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출처 www.fukuokanh.jp/hospital/paramedic.html).


일본 간호사와 간호협회의 의견

▲ 구급구명사 병원 근무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출처 www.kango-roo.com/yn/details/601)

 

일본의 한 간호사 관련 홈페이지에서 구급구명사가 병원에서 근무하는 것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1435명이 투표한 결과 찬성이 84%(1208표)로 압도적으로 높았으며 구급구명사가 병원에 근무함으로써 간호사의 업무 부담이 줄어들고 응급환자 대응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이 많았다.

 

일본도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가 부족해 간호조수나 준간호사가 간호업무를 보조하는 경우가 많아 현장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은 구급구명사의 병원 내 근무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일본간호협회에서는 구급구명사와 간호사의 업무 범위 중복으로 인한 간호사의 취업 문제나 병원 내 환경에서 의료행위를 한 선례가 없다는 이유 등으로 구급구명사의 병원 내 근무를 반대하는 태도를 견지했다. 반대로 소방에 간호사가 진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짧은 시간 내에 법 개정이 이뤄진 배경은?

2019년 4월 25일 ‘구급 · 재해 의료 제공 체제 등의 본연의 자세에 관한 검토회’에서 구급구명사의 병원 내 의료행위를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처음 제시된 후 2021년 2월 2일 ‘구급구명사법’ 개정을 포함한 ‘의료법’ 등 일부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 가결돼 3년 6개월 만인 2021년 10월 1일부터 시행됐다. 

 

여태껏 구급구명사 업무범위 확대에 매우 소극적이고 신중한 자세를 보여왔던 일본 의료계나 후생노동성의 성향을 생각했을 때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빠른 진행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 배경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보면 ‘후생노동성과 의사협회 등 위에서부터의 법 개정 시도와 코로나19로 인한 급속한 의료 환경의 변화’다. 

 

일본이 직면한 저출산ㆍ고령화에 따른 생산 가능 인구 감소를 해결하고 다양한 근무 방식을 도입해 장시간 노동의 해소와 노동 생산성을 향상하고자 후생노동성10)에서 ‘노동법’ 개정을 추진하게 된다.

 

이게 2019년 4월 1일부터 부분 시행된 ‘일하는 방식의 개혁’이며 법 개정의 주체가 국가 정부 기관이었다는 게 ‘구급구명사법’ 조기 개정의 가장 큰 이유였다.

 

일본의 의료계 역시 ‘일하는 방식의 개혁’에 따라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의사의 근무시간을 줄이는 방법을 논의하게 된다. 의사들도 본인의 업무 강도를 낮추기 위해 구급구명사에게 의사의 업무 일부를 수행할 수 있도록 결정한다.

 

현재 본인들의 편의를 위해 간호사에게 불법적으로 PA를 시키거나 응급실에서 인턴 의사가 해야 할 업무를 응급구조사에게 지시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법 개정에는 미온적인 한국 의사들과 비교하면 일본 의사와 협회의 대승적인 결단은 정말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코로나19 이후 의사와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진들의 업무 강도와 업무 시간이 증가하고 의료진이 부족한 현실에 맞물려 대부분의 의료 관련 협회와 기관에서도 구급구명사의 병원 내 근무에 별다른 반대를 하지 않아 ‘구급구명사법’ 개정이 수월하게 이뤄질 수 있었다.

 

비슷한 사례로 일본에서는 코로나19 백신 접종 시 본인이 동의하면 구급구명사와 임상병리사가 코로나 백신을 주사할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한국과는 다르게 의사협회와 후생노동성이라는 거대한 국가 정부 기관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졌다. 게다가 ‘노동법’과 ‘의료법’ 개정이라는 큰 파도를 잘 올라탔기 때문에 구급구명사가 병원에서 근무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소방 조직에서 근무하는 구급구명사의 업무범위는 기존 28개 응급처치와 5개의 특정행위가 그대로 유지됐다. 일본 의료계가 현장 응급처치 확대에는 미온적인 움직임을 보여 아쉬움을 남기고 있는 대목이다. 

 

일본의 사례가 해답이 될 수 있을까?

2003년 개정된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는 20여 년이 지난 현재, 다변화된 병원 전 단계 응급의료 상황, 발전된 119구급대의 환경과 동떨어져 있다. 무엇보다도 국민이 원하는 병원 전 단계 응급의료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119구급대는 약물이 적재돼 있는데도 팔이 잘려나가거나 다리가 으스러진 환자에게 진통제조차 투여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병원에 근무하는 응급구조사는 불법임을 인지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의사의 지시하에 무면허 의료행위를 하고 때로는 고발돼 형사 처분까지 받는 안타까운 상황이 지속된다. 

 

소방청은 구급대원 업무 범위 확대를, 응급구조사협회는 응급구조사 업무 범위 개정을 추진하며 엇박자를 내고 있다. 다른 의료 단체와 협회들은 저마다의 이해관계를 내밀며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 개정을 어렵게 하고 있어 엉킨 실타래처럼 좀처럼 해결방법이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현장과 병원 내에서의 의료 환경과 필요한 의료행위에는 차이가 있다는 걸 인지해야 한다.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구급구명사의 업무범위 확대에 초점을 두면 정작 병원 전 단계 119구급대원의 현장 응급처치와는 맞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현재 구급대 업무범위 확대안으로는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응급구조사의 업무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사례를 참고로 한국도 병원 내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를 별도로 개정하는 게 방법이 될 수 있다.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응급구조사가 실제로 수행하는 의료행위 중 타 직종의 권익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의사의 지시ㆍ감독하에 충분히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업무를 차차 늘려나가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행히도 5년마다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의 적절성을 조사하고 개정, 확대할 수 있는 법안이 이미 시행됐기 때문에 차차 시대에 맞는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가 마련되리라 생각된다. 

 

글을 마무리하며 소방청이나 대한응급구조사협회, 대한간호협회, 응급구조사 구급대원, 간호사 구급대원의 생각과 이해관계가 각각 다르므로 이 글을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방법이 다를 뿐 병원 전 단계 응급의료 발전에 대한 마음은 소방 공채 출신의 필자 역시 같다는 걸 알아주시고 넓은 마음으로 봐주시길 부탁드린다. 

 

▲ 한국과 일본의 업무 범위 비교

▲ 한국의 1급 응급구조사와 일본의 구급구명사 업무 범위의 구체적인 특성 비교

 


1) 한국은 1991년 응급구조사 양성과 구급 차량의 기준이 마련됐고 1995년 1급 응급구조사 양성을 위한 응급구조과가 개설됐다. 

2) 일반 사단 법인 민간 구명 사의 총괄 체제 인정기구 자료(www.abpmo.jp/about_us.html)

3) 2020년 기준 대한민국 119구급대의 연간 출동 횟수는 약 276만 건이다(소방청 통계자료). 

4) Medical Control의 준말. 지역사회 의사로 이뤄진 협의회로 한국의 의료지도 의사와 유사하다.

5) ‘일반 사단 법인 민간 구급구명사의 총괄 체제 인정기구’에서 발급하는 인증 제도다.

6) 연간 960시간을 넘지 않아야 하지만 교외 지역이나 시골, 의료진이 부족한 지역 등에서는 연간 1860시간의 시간 외 노동을 상한으로 하고 있다.

7) 일본의 연호. 126대 일왕 나루히토 즉위 이후 令和(레이와) 연호를 사용하고 있으며 令和 3년은 2021년이다.

8) 정맥로 확보, 수액 및 약물 투여(포도당, 에피네프린), 기관 내 삽관, 성문상 기도기 삽입

9) 의사가 할 수 있는 침습적 행위이며 응급구조사가 해당 술기를 환자에게 수행하면 무면허 의료행위가 된다.

10) 한국의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 식약처, 여성복지가족부의 업무를 통괄하는 부서로 생각하면 된다.

 

부산 부산진소방서_ 이재현 : taiji3833@korea.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1년 11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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