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두 명 숨진 영등포 고시원 화재… “간이스프링클러는 비정상이었다”소방법규 안 맞는 스프링클러 헤드 설치, 웬 일반형 스프링클러 헤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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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일 화재가 발생한 영등포 고시원 내 비좁은 통로 옆으로 다닥다닥 붙은 방들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 최영 기자 |
[FPN 최영 기자] = 두 명의 목숨을 앗아간 영등포 고시원의 간이스프링클러 설비가 법규와 맞지 않게 비정상적으로 설치됐던 것으로 <FPN/소방방재신문> 취재결과 드러났다. 사고 직후 일각에서 제기되는 간이스프링클러설비의 효용성 부족 주장도 설득력을 잃을 전망이다.
12일 영등포소방서에 따르면 지난 11일 화재가 발생한 고시원은 2011년 최초 고시원으로 다중이용업소 완비증명을 받은 뒤 2019년 한 차례 업주가 바뀌면서 재완비 증명을 받았다.
업주 변경 과정에서 해당 고시원은 기존에 설치돼 있던 간이스프링클러를 강화된 최근 법규에 맞춰 다시 설치했다. 과거 상수도 직결방식이었던 간이스프링클러설비를 이때 강화된 법규에 따라 수원 1천ℓ를 자체 저장하는 일명 ‘캐비닛형 간이스프링클러 설비’로 교체ㆍ시공했다.
간이스프링클러설비는 ‘캐비닛형’과 ‘상수도직결형’ 등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상수도직결형은 수조를 사용하지 않고 상수도에 직접 연결해 항상 기준 압력과 방수량을 확보하는 설비다.
화재 발생 고시원에 설치돼 있던 ‘캐비닛형’은 물을 배관에 보내주는 가압송수장치(펌프)와 법규에서 정한 양의 물을 저장하는 수조, 스프링클러 헤드 개방 시 물의 흐름을 감지해 펌프를 동작시켜주는 유수검지장치 등이 하나로 결합된 패키지 시스템이다.
![]() ▲ 불이 난 고시원에 설치된 캐비닛형 간이스프링클러설비 © 최영 기자 |
하지만 이 간이스프링클러설비가 엉망으로 시공된 사실이 <FPN/소방방재신문> 취재결과 밝혀졌다.
현행법상 간이스프링클러는 두 개의 스프링클러 헤드가 열릴 때 각각 분당 50ℓ의 물이 10분 동안 쏟아질 수 있도록 설치해야 한다. 두 개의 각 헤드를 합쳐 총 100ℓ가 10분 이상 뿌려지도록 소방관련법(화재안전기준)에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을 통해 반드시 성능인증을 받아야만 하는 캐비닛형 간이스프링클러설비에 1천ℓ 용량의 수조가 기본으로 구성되는 이유기도 하다.
특히 간이스프링클러설비에는 법규에 따라 반드시 분당 50ℓ를 뿌려줄 수 있는 ‘주거형(간이형) 스프링클러 헤드’를 설치해야 한다.
그런데 <FPN/소방방재신문>이 불이 난 고시원의 스프링클러 설비를 직접 확인한 결과 ‘간이형’이 아닌 ‘일반형’ 스프링클러 헤드가 설치돼 있었다. 법규에 어긋날 뿐 아니라 작동을 하더라도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는 엉터리 설비였던 것.
분당 80ℓ를 뿌려주는 이 일반형 스프링클러 헤드는 두 개가 개방되면 분당 160ℓ의 물이 쏟아지게 된다. 1천ℓ 물이 저장된 수조는 법에서 정한 10분에 훨씬 못 미치는 6분 정도밖에 물을 뿌리지 못하는 셈이다. 만약 헤드 한 개가 개방됐을 땐 간이형 헤드의 경우 20분, 일반형 헤드는 12분가량 밖에 방수하지 못한다.
![]() ▲ 불이 난 영등포 고시원에 설치된 스프링클러 헤드. 해당 제품의 인증 표시 번호를 추적해 한국소방산업기술원과 제품을 만든 제조업체에 확인한 결과 ‘일반형’ 헤드인 것으로 확인됐다. © 최영 기자 |
고시원에 적용된 일반형 스프링클러 헤드는 2011년 제조된 제품으로 확인됐다. 2011년 최초 완비증명 이후 2019년 다시 완비를 받는 과정에서 강화 법규에 따라 ‘캐비닛형 간이스프링클러설비’로 교체하면서도 배관과 스프링클러 헤드 등을 그대로 유지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엉터리로 설치된 간이스프링클러설비의 부실성이 드러나면서 사고 이후 일각에서 제기하는 간이스프링클러설비의 무용론은 설득력을 잃게 됐다.
비정상적으로 적용된 간이스프링클러설비가 제 기능을 발휘했을 가능성이 낮아서다. 게다가 시설의 정상여부는 물론 정확한 발화부조차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스프링클러가 정상 작동했으나 소용없었다는 식의 사고 대응 브리핑을 한 건 섣불렀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윤영재 영등포소방서 소방행정과장은 현장 브리핑에서 “고시원 각 방과 복도에 간이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었고 화재 당시 10분간 작동한 것으로 조사됐다”면서 “간이스프링클러로 방수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열기가 강하면 그 방수량으로는 화재 진압이 안 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후 일각에선 사고 당시 간이스프링클러가 정상 작동했다는 전제하에 고시원의 소화설비가 역부족이라며 최소 스프링클러 헤드 10개가 각각 분당 80ℓ의 물을 20분간 방수하는 일반스프링클러설비를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쏟아졌다.
최영 기자 young@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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