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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 119] 일제가 뿌리고 간 독소에 희생당한 아홉 의용소방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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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태 스토리텔러 | 기사입력 2023/03/20 [10:00]

[리멤버 119] 일제가 뿌리고 간 독소에 희생당한 아홉 의용소방대원

김진태 스토리텔러 | 입력 : 2023/03/20 [10:00]

소방관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우리는 안전한 일상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를 기억하는 일. 그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첫걸음이지 않을까요?

 

<119플러스>가 순직소방공무원추모기념회와 함께 순직소방관의 이야기를 지면에 담으려고 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해방 직후인 1945년 11월 30일 군산경마장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 현장에 화재 진압을 위해 출동했다가 순직한 9명의 의용소방대의 이야기를 재구성했습니다. 그들의 일대기 속으로 떠나보시죠.


 

일제가 뿌리고 간 독소에 희생당한 아홉 의용소방대원

소속: 군산소방서대장: 권영복

부대장: 김덕제

반장: 이을문, 서정운, 박기봉 대원: 이규철, 곽한수, 김복득, 김남선

1945년 11월 30일 군산경마장 폭발 사고 당시 화재 진압ㆍ구조 업무 수행 중 순직


전북 군산의 ‘해망굴(국가등록문화재 제184호)’ 입구에서 왼쪽 계단을 오르면 아름다운 풍광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월명공원이 있다. 

 

월명산ㆍ장계산ㆍ설림산ㆍ점방산ㆍ대사산 등으로 이뤄진 월명공원은 금강 하구와 서해가 시원하게 펼쳐져 예로부터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던 명소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군산이 개항하던 1899년 5월 공원으로 지정됐다.

 

월명공원 매점에서 전망대 방향으로 20m쯤 걸어가면 좌측으로 ‘의용불멸(義勇不滅)’이 새겨진 석탑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1961년 5월 5일 당시 강정준 군산의용소방대장과 지종환 군산소방서장이 1945년 11월 30일 발생한 경마장 화재(경마장 폭발 사고) 때 불길로 뛰어들어 구조작업을 펼치다 장렬히 산화한 아홉 의용소방대원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자 세운 위령탑이다. 

 

 

위령탑 빗돌 한 면에는 “일제가 뿌리고 간 독소에 숨을 걷우신(거두신) 이 자리에 차거운(차가운) 빗돌을 세우고 그대들의 이름을 새기는 뜻은 의용의 높은 뜻을 받들고자 함이오니 태양과 더불어 길이 빛나소서”라는 문구가 음각돼 있다.

 

군산 의용소방대는 광복 직후 군산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공공의 안녕질서 유지와 지역사회 복리증진에 이바지하고자 조직됐다. 대장 권영복 씨를 필두로 대원 120명이 활동했으며 해방정국의 혼란한 상황 속에서 소중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화재 예방과 진압 활동을 활발히 펼쳤다.

 

기록에 따르면 군산경마장 화재 당시 희생당한 의용소방대원은 권영복 대장과 김덕제 부대장, 이을문, 서정운, 박기봉 반장, 이규철, 곽한수, 김복득, 김남선 대원 등 9명이다.

 

군산소방서와 군산의용소방대연합회는 지금까지도 매년 11월 30일이 되면 유가족들과 함께 당시 순직한 의용소방대원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추모제를 지낸다.

 

사실 군산경마장 화재 사고는 일제식민지의 ‘생채기’라고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이던 1930년대 군산 외곽(지금의 경암ㆍ경장동 일대)에 트랙과 부속 건물을 갖춘 경마장이 조성돼 있었다.

 

1927년 일본인으로 구성된 군산 경마 구락부가 미와자키 대농장주로부터 2만여 평을 기증받아 경마장으로 조성한 것이다. 주로(走路) 1.2㎞의 전국 최초 공식규격 경마장이었다. 1932년에는 주로를 1.6㎞로 늘렸고 부지도 7만8천 평으로 확장했다.

 

군산 경마대회는 벚꽃 시기와 단풍철, 한 해에 두 차례 열렸다. 대회를 앞두고 곳곳에 포스터가 나붙었고 군산역에 도착한 경주마 1백여 마리는 경마장으로 향했다. 경마장에는 일급 가수와 무희가 출연해 춤과 노래로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경마대회는 1941년 가을 경마를 끝으로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마대회가 중단된 이후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기 전까지 경마장은 일본군의 무기고로 사용됐다. 폭발 사고가 있던 날은 무척 추웠다고 한다. 이날 미군이 피운 모닥불이 일제가 매설해놓은 폭약으로 옮겨붙으며 폭발이 일어났고 대형화재로 확산했다. 피해도 엄청났다.

 

‘군산시사’에 따르면 이 사고로 인해 미군 23명을 비롯해 소방관 7, 민간인 3, 의용소방대원 9명 등 총 42명이 사망하고 65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사고로 폐허가 된 경마장은 마을 주민에 의해 개간돼 농지로 사용됐다. 경작료를 꼬박꼬박 냈음에도 마사회가 토지 반환을 요구했고 분쟁이 시작됐다.

 

1954년이 돼서야 농민들의 승리로 막을 내리게 된다. 그 후에도 계속 농사를 지었으나 상권이 형성된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경포천을 가로지르는 ‘경마교’만 외롭게 남아 가슴 아픈 그날의 현장을 말없이 굽어보고 있다.

 

글_ 김진태 스토리텔러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3년 3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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