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긴급구조대(국제구조대)의 수색과 구조 절차는 유엔 인사락 가이드라인(UN INSARAG GUIDELINES)을 따른다.
수행 절차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설명하긴 어렵지만 평소 주기적인 훈련과 학습, 연구를 병행해 온 결과 이번 튀르키예 지진 피해 대응에 어려움은 없었다.
기존 국제구조대는 운영반과 물류반, 탐색반, 4개 구조반, 의료반으로 편성된다.
이번에는 특전사와 국군의무사령부가 합류해 조직을 새롭게 편성했다. 의료반 임무를 수행할 NMC1) 대신 국군의무사령부에서 의료반 임무를 수행했다.
그리고 구조반과 탐색반은 중앙119구조본부 소방관 8명과 특전사 6명을 한 개조로 구성했다. 구조반 인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힘든 구조 활동을 할 때 서로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로 판단했다.
인사락 지침에 따라 탐색반은 구조견과 화학ㆍ건축전문가 등으로 편성된다. 붕괴된 건물의 유해화학물질을 탐지하고 건물에 대한 안정성 평가 후 사람보다 1만 배 후각이 뛰어난 구조견을 붕괴된 건물에 투입시켜 생체 반응(연속으로 짖음)을 탐지한다.
구조견이 반응을 보인 해당 지점에 첨단 탐색 장비(써치탭, 내시경 등)를 사용해 생존자 유무를 탐지한다.
즉 광범위한 지역에 대한 인명 탐색과 부상자 분류 평가를 시행한다. 탐색반이 현장에서 ASR2) 2단계(섹터 평가)를 수행하고 생존자 발견 시 자동으로 ASR 3단계(신속한 탐색ㆍ구조)를 수행하면서 구조반이 출동해 신속한 구조가 이뤄진다.
만약 탐색 과정에서 생존자를 구조했거나 사망자를 수습했다면 건물 외벽과 각 출입구에 ASR 단계를 표시해(USAR Marking System) 두는데 이는 다른 나라 구조대가 동일 건물에 중복된 탐색구조작업을 해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또 붕괴된 건물에 대한 평가ㆍ매몰자의 위치에 관한 정보를 명확하고 통일성 있게 전달하기 위함이다.
운영반은 탐색반으로부터 생존자 위치를 좌표로 받아 숙영지에서 대기하는 구조반을 출동시켜 본격적인 구조작업을 실시한다. 말은 간단하지만 이 절차에 따라 탐색반에서부터 구조반까지 출동하는데 수많은 우발상황에 대처해야 한다.
이번 튀르키예 지진 피해 대응 출동에서도 여러 우발상황이 발생했다. 첫 번째는 통신체계의 문제였다. 우리가 가진 무전기(UHF)3)는 파장이 짧아 전송 거리가 줄어들어 도심지역에서 사용이 제한됐다.
휴대전화도 로밍을 했지만 중계소나 기지국이 지진으로 인해 그 기능을 할 수 없어 부분적으로 사용할 수 없었다. 탐색반이 어렵게 알려준 위치로 구조반을 보내려 해도 주소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GPS와 구글맵에서 제공해 주는 8단계 좌표를 사용하기로 했다. 우리가 8단계 좌표를 통역사들에게 전달하면 통역사가 현지 운전사에게 좌표 지역 지도를 보여줬다. 현지 지형에 익숙한 운전사들은 한 번에 그 지역을 찾아갔다.
두 번째 문제는 이동 수단이었다. 현지에서 대원들을 이동시킬 수 있는 차량이 충분하지 않아 출동 시간이 많이 소요됐다. 재난 현장에서 정해진 건 없다. 그때그때 순발력 있게 일을 해결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튀르키예 재난ㆍ비상관리 당국, 튀르키예 한국 대사관ㆍ총영사관 관계자분들이 한마음으로 도와주셔서 많은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었다.
오전 4시 30분께 중앙119구조본부장을 포함해 총 22명(소방 16, 군 6)이 첫 번째 ARS 2단계 임무 수행을 위해 출동했다. 자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차량이 없어 재난ㆍ비상관리 당국에 도움을 요청해 힘들게 차량 2대를 지원받았다.
현지 기온은 영하였고 바람이 찼다. 출동대원들은 밤을 꼬박 새우고 생존자를 구조하겠다는 일념으로 차량에 몸을 실었다.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대원들의 표정에 만감이 교차했다.
픽업 차량 1대와 천막 탑차 1대는 빛 하나 없는 캄캄한 도시의 도로에서 오직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의존해 목적지를 찾아 나갔다. 탐색반이 출동하고 숙영지에 남은 대원들은 내린 장비들을 세부적으로 재정리했다. 분주하게 정리하다 보니 주변이 밝아지며 튀르키예에서의 두 번째 아침이 시작됐다.
지난밤 가로등 불빛 하나 없는 깜깜한 도시에서 우리를 반겨준 건 끊임없이 지나다니는 구급차의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푸른색 경광등 불빛이었다.
아침이 돼도 숙영지 앞 도로의 구급차 사이렌 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지난밤에 도착했을 때 숙영지 맞은편에 5층으로 보이는 건물이 있었다. 날이 밝은 후 제대로 보니 1층이 완전히 무너진 6층 건물이었다.
도로 한쪽 인도에는 가족 단위로 모닥불을 피우며 추위를 이겨내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을 보니 너무나 안쓰럽고 가슴이 아팠다.
전기도 끊겨 사용할 수 없었다. 자체 발전기를 돌리며 밤을 보냈다. 이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콧수염이 멋진 재난ㆍ비상관리 당국 사람이 아침에 현장 지휘소로 찾아 와서 전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말을 전했다.
그를 따라 학교 건물 뒤로 갔다. 그곳에는 울타리로 안전하게 보호된 대형 발전기가 가동되고 있었다. 그는 발전기 하단부에 있는 콘센트 코드 2개를 사용하라고 손짓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발전기는 소중하니 무분별하게 사용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어젯밤 자체 발전기를 돌리며 보낸 시간에 비하면 콘센트 코드 2개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무척 감사했다. 그리고 매일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발전기 가동을 중단하고 점검한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자체 발전기를 돌리지 않고 현장 지휘소 노트북과 물 끓이는 보온통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것에 만족했다.
현장 지휘소와 장비 정리가 마무리돼 가면서 이제 남은 숙영지 편성을 시작했다. 고생한 대원들이 쉴 수 있도록 텐트를 설치했다. KDRT에서 보유한 주황색 돔 형태의 텐트는 10동이었다. 협소한 공간에 10동을 설치하기란 쉽지 않았다.
재난ㆍ비상관리 당국에 양해를 구하고 어젯밤 설정했던 구역에서 조금 더 확장해 텐트를 설치했다. 국군의무사령부 진료실 겸 여자 숙소 1동과 특전사에 2동을 지급했다. 그리고 구조팀, 외교부와 코이카가 함께 사용하는 텐트 7동을 설치했다.
지난밤 한숨도 자지 못한 대원들에게 오늘 밤부터 추위를 피해 휴식할 수 있는 장소가 생겨 마음이 가벼워졌다. 텐트를 다 치고 나니 또 다른 우발상황에 맞닥뜨렸다. 텐트 내부 바닥재(깔판)가 없었다.
추운 날씨에 바닥재 없이 콘크리트 바닥에서 등을 대고 잔다는 건 얼음판에 등을 대고 자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주변에 있는 종이박스와 천 조각을 구해 와 바닥재 대신 텐트 내부에 깔았다. 임시방편으로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침낭 8개가 든 물자 박스 하나가 함께 오지 못했다. 영하의 추위에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한 필수 물품인데…… 물류반 대원들의 고민이 깊어 갔다. 오늘 밤 8명은 침낭 없이 보내야 했다. 과연 그 8명을 누구로 할 건지, 결정할 수 없었다.
결국 운영반ㆍ물류반 일부 대원이 침낭 없이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그들은 그날 밤 모닥불과 함께 뜬눈으로 보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다른 대원들이 편하게 잠을 청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만족했다.
난방도 문제였다. 전기 등유 난로를 가져 왔지만 하이타이주 안타키아 일대에서 등유를 구할 수 없었다(주유소가 붕괴돼 영업하는 곳이 없었고 튀르키예는 등유를 잘 사용하지 않았다).
전기난로는 전력이 부족해 사용 시 발전기의 차단기가 내려가 사용할 수 없었다. 추위와 허기는 사람을 나약하게 만들었지만 누구 하나 불평 없이 열악한 환경에 맞춰 휴식했고 묵묵히 각자의 임무에 충실했다.
최초 해외긴급구호대가 소집되기 전날 국제구조대 물류반은 인천공항 물류창고에서 수송기에 적재할 물자 모두를 포장해 항공 수화물 위탁업체에 넘겼다. 그 후 군 인력이 급파되면서 수송기 이륙 중량을 맞추기 위해 최초 수송기에 적재된 화물 일부를 빼고 군 화물을 적재했다.
그때 시간이 부족한 탓에 임무 우선순위에 대한 고려 없이 화물칸 입구에서 가까운 것부터 내리면서 장비 일부가 함께 오지 못해 이런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현장 지휘소로 사용할 텐트도 대원들 숙소로 전환했다. 이게 바로 운동장에 있던 정자가 현장 지휘소로 사용된 이유다. 처음엔 종이박스로 책상을 대신했지만 재난ㆍ비상관리 당국의 협조로 교실에 있는 책상과 의자를 가지고 나왔다.
천장에는 텐트용 전등을 달고 추위를 이겨내기 위한 저전력 전기난로를 설치했다. 부처별 행정업무에 필요한 노트북과 프린터도 준비됐다. 사전에 출력해 온 인사락 가이드라인 양식에 수기로 간단한 현황들을 적었다. 이를 정자 비닐 외벽에 붙여 현장 지휘소 기능을 갖추도록 했다.
나름 구색은 갖췄지만 비닐랩 사이를 파고드는 영하의 차가운 바람은 앉아서 업무를 처리하는 대원들에게 혹독했다.
현장 지휘소가 협소하다 보니 물류반이 함께 들어오지 못했다. 고민 끝에 학교 운동장에 있는 축구 골대를 가져와 현장 지휘소처럼 화물 패킹용 비닐랩을 이용해 별도의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현장 지휘소에 이어 붙여 하나의 실로 만들었다.
물류반 대원들은 이곳에서 장비 입출을 확인했다. 곁에서 지켜 보던 주변 대원들이 고생한 물류반 대원들을 위해 박수를 보내줬다. 아무것도 없던 이곳에서 KDRT는 하나씩 무엇인가를 만들어 갔다.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는 세계 어디에 파견돼도 살아남을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들었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 튀르키예 재난ㆍ비상관리 당국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었을지 궁금하다.
숙영지 편성이 완료됐다. 고정식 위성전화기로 소방청ㆍ특전사 상황실과 연락도 완료됐다. 이제 본격적인 구조작전을 할 수 있는 모든 여건이 갖춰졌다.
1) National Medical Center, 국립중앙의료원 2) Assessment, Search and Rescue. 수색ㆍ구조 평가로 1~5단계로 구분된다. 특히 2단계는 생존 가능성이 큰 곳을 명확히 해 우선 활동을 수행한다. 3) Ultra High Frequency, 극초단파
중앙119구조본부_ 김상호 : sdt1970@naver.com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5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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