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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지진 7.8- 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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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119구조본부 김상호 | 기사입력 2024/08/01 [10:00]

튀르키예 지진 7.8- Ⅺ

중앙119구조본부 김상호 | 입력 : 2024/08/01 [10:00]

상황일지 2월 9일_ 

생존자 5명 구조, 사망자 9명 수습 ③

 

사망자 6명 수습

▲ 위치(위도, 경도): 36.2040811, 36.1573443

 

첫 번째 생존자 구조 소식이 전해지자 숙영지에 남아 있던 대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가슴 한편이 뜨거워졌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흩어져 수색ㆍ구조작업을 하던 팀별로 사망자를 수습했다는 내용이 보고됐다.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사망자가 많았다. 

 

특히 우리가 맡은 섹터-I는 지진의 직격탄을 맞은 곳이자 위험지역으로 외국 구조대의 전개가 늦어지고 있었다. 광범위한 지진 피해지역에서 구조할 수 있는 인력과 장비가 부족하다 보니 사망자를 수습할 여력이 없었다.

 

순식간에 대한민국 구조대가 수습한 사망자는 6명이 됐다. 현장 지휘소에서도 당황했다. 앞으로 사망자가 얼마나 더 수습될지 모르지만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많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물류반은 사체낭 재고를 확인했다. 아침에 대원들이 출동할 때 대부분 가져가서 몇 장 남지 않았다. 한국에서 항공 수화물로 가져오기엔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코이카와 영사관 관계자를 통해 튀르키예 정부에 사체낭을 보급해달라고 협조 요청을 했다(다음날 10박스 정도의 사체낭이 도착했다). 

 

현장 활동 중인 대원들에게 수습한 사망자에 대한 예의를 지켜달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1분 1초가 아까웠다.

 

거리에서 도와달라는 유가족과 수색 중 발견된 사망자를 수습하지 않고 간다는 건 심리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치 죄를 짓고 도망가는 죄인처럼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많은 사망자를 모두 수습하다 보면 아직 생존 가능성이 있는 구조대상자를 포기해야 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팀장과 대원들의 고민이 깊어졌다. 결단이 필요했다. 

 

구조대장(중앙119구조본부장)은 향후 수색과 구조에 있어 짧은 시간에 수습이 가능한 사망자만 수습하고 나머지는 현지 구조 인력에게 위치를 알린 후 생존자 수색과 구조에 집중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맞는 말이었다. 사망자 수습도 중요하지만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가 튀르키예에 온 목적은 한 명의 생존자라도 더 구조하기 위해서다.

 

막내아들을 잃은 슬픔의 눈물

▲ 위치(위도, 경도): 36.2052167, 36.1584795생존자: Mahmut tṻtṻncṻ(남, 40), Rawa(여, 35), Ruz(여, 2)

 

우린 다시 생존자를 찾기 위해 무너진 건물을 수색했다. 구조견 해태와 함께 도로 좌ㆍ우측에 붕괴된 건물을 빼놓지 않고 샅샅이 뒤졌다. 이 지역은 도로 양쪽에 있는 주거용 건물이 모두 무너진 상태여서 수색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무너진 건물의 벽면을 오르고 철근이 튀어나온 콘크리트 구조물을 넘어야 했다. 깨진 유리가 가득한 거실과 방을 기어 다니며 수색하기도 했다. 대원들은 체력적으로 지쳐가고 있었다. 그때 현지 주민이 다급하게 달려와 건물 아래에 사람이 있다며 구조를 요청했다. 

 

우리 팀은 모든 행동을 중지하고 현지 주민을 따라 무너진 건물로 신속히 뛰어갔다. 도착한 곳은 외관상 5층 건물이었다. 지하 1층과 지상 1층이 무너진 상태로 건물 전체가 약 30° 기울어져 옆 건물에 기대어 있는 형태였다. 

 

이 건물이 안정화된 상태인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었다. 여진이 발생하면 안전을 장담하기 힘들었다. 수색ㆍ구조하는 대원에게는 심리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주저하지 않고 수색에 들어갔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1m가량의 틈이 있었다. 몸만 들어갈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뚫고 들어가는 게 우리 구조대원의 특기다.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 건물의 측면으로 진입했다.

 

2층 바닥 콘크리트 한쪽이 1층 바닥으로 무너져 기대어 있었다. 반대쪽 한 면도 벽에 기댄 상태로 아래쪽에 약간의 공간이 남아 있는 형태였다. 진입한 구조대원이 소리를 지르면서 생존자를 확인했다. 

 

그때 무너진 2층 바닥 콘크리트 반대편에서 생존자의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생존자에게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생존자가 의사소통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하늘에 감사했다.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너진 2층 바닥 콘크리트를 해머로 깨면서 철근을 절단해야 했다. 우린 거침없이 생존자가 있는 곳으로 전진했다. 가정집이라 목재로 된 가구의 잔해물이 많았다. 장애물들을 하나씩 제거하며 생존자가 있는 곳으로 통로를 개척했다. 

 

구조대원이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은 어린 여자아이였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구조대원의 눈빛과 손짓을 보며 손을 내밀었고 마침내 잡을 수 있었다. 좁은 공간이었지만 아이는 있는 힘을 다해 작은 몸을 움직였고 부모로 보이는 남성이 아이가 구조대원에게 인계되도록 도와 빠르게 구조할 수 있었다. 

 

▲ 생존자 구조

 

하지만 문제는 다음 생존자 구조부터였다. 처음 들어간 구조대원의 덩치가 커서 더는 생존자에게 접근할 수 없었다. 구조대원을 교체하기로 했다. 처음 들어간 대원이 엉거주춤 기다시피 뒤로 빠져나왔다. 곧바로 몸이 작고 날렵한 구조대원을 다시 투입했다. 

 

두 번째 생존자는 성인 남성이었다.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와 목재에 눌려 하체를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생존자 몸 상태를 살펴보니 몸에 특별한 외상은 없어 보였다.

 

3일간 움직이지 못하고 무거운 콘크리트에 짓눌려 있어 압좌증후군1)(크러시 증후군)을 의심해 볼 수도 있었지만 좁은 공간에서 생존자 신체를 확인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게다가 언어 때문에 몸 건강 상태를 구체적으로 물어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처음엔 착암기로 콘크리트를 깨고 구조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큰 장비를 사용할 공간이 없어 휴대용 톱을 이용해 목재부터 절단하며 내부 공간을 확보해 나갔다. 어느 정도 공간을 확보했다고 판단된 이후 해머로 콘크리트를 깨며 철근을 절단하기 시작했다. 

 

남성을 누르고 있던 콘크리트를 걷어낸 뒤 엎드려 있던 남성의 몸을 돌려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오랫동안 하체가 고정돼 있어 걸을 수 없을 거로 판단했지만 잠시 안정을 취한 후 구조대원의 부축을 받으며 밖으로 걸어 나왔다. 

 

부녀(父女)의 구조가 완료되고 주변을 수색하던 중 아주 약하게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두 번째 남성 생존자에게 가려 보이지 않던 성인 여성이 아래쪽에 있었다. 여성은 침대에 누워있는 듯 보였다. 다행히 무너진 2층 바닥 콘크리트 일부가 침대 헤드 보드(머리맡 목재 틀)에 닿아 주저앉지 않았다. 

 

하지만 오른팔이 머리 위로 꺾여 손가락 일부가 부서진 침대 헤드 보드와 콘크리트 사이에 끼여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구조대원이 힘으로 여성의 손목을 잡고 빼내면 손가락 일부가 절단되거나 2차 피해가 발생할 확률이 높았다. 

 

외부에서 상황을 전달받은 구조반장이 휴대용 톱으로 침대 헤드 보드를 절단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휴대용 톱을 사용하기 위해선 몇 가지 구조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구조대원이 침대로 올라가 작업하면 하중을 받아 생존자 손가락이 절단될 가능성이 있었다. 침대가 부서지면서 콘크리트가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었다. 

 

토의 끝에 최종 결정을 내렸다. 구조대원이 침대로 올라가 헤드 보드를 자르는 동안 침대가 무너지거나 유동이 생기지 않도록 침대 아래에 공간을 확보해 침대를 지지하자는 것이었다. 

 

우리 토의 내용을 듣고 있던 건장한 튀르키예 구조대원이 자신의 등으로 침대를 지지하겠다고 나섰다. 대한민국과 튀르키예 구조대원은 현장으로 들어가 외부에서 토의했던 내용대로 각자의 임무를 수행했고 무사히 여성을 구조해 외부로 나왔다. 이것이 대한민국과 튀르키예의 첫 번째 연합 구조작전이었다. 

 

▲ 여성 생존자 구조

 

생존자 3명을 모두 구조한 후 세 번째 생존자인 여성은 침실에 남자아이 한 명이 더 있다는 말을 통역사에게 전했다. 우린 신속하게 네 번째 생존자를 찾기 위해 다시 좁은 통로로 기어들어 갔다. 

 

3명의 생존자를 발견한 지점에서 가까운 곳에 있을 가능성을 두고 주변을 수색했다. 구조대원들은 기어 다니며 손으로 직접 만져 보고 소리도 질러 봤지만 반응이 없었다. 

 

한참을 수색하던 중 첫 번째 여자아이를 구조한 지점에서 조금 뒤쪽 잔해물 속에 웅크리고 있는 조그마한 남자아이를 발견했다.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한 아기였다.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아장아장 걸음마를 배울 나이인데 이렇게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니 구조대원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외상이 없는 것으로 보아 3일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추위에 노출돼 사망한 것 같았다. 너무 가슴이 아팠다. ‘우리가 조금만 더 빨리 왔으면 살아서 구조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구조대원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구조된 사람들은 3일 동안 움직이지도, 먹지도 못한 상태였다. 의료팀에서는 “탈수증이 심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쇼크로 사망할 가능성이 컸다”고 말했다. 

 

행복한 가족이 하루아침에 지진이라는 재앙으로 생이별을 했다. 생명을 구한 부모는 아들을 잃은 슬픔을 평생 마음속에 묻고 가슴 아파하며 살아갈 것이다. 지진이 원망스러웠다. 자연의 재앙 앞에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소방관의 삶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중앙119구조본부_ 김상호 : sdt1970@naver.com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8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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