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조사관으로서 여러 현장을 조사해왔다. 작은 불씨가 구조적 취약성을 만나 대형 참사로 이어지는 모습을 수없이 봐왔다.
최근 동대문 다세대주택과 광명 아파트 화재는 1층 필로티 주차장에서 시작된 불길이 상부로 확산되며 큰 피해를 낳았다.
필로티 구조는 20세기 근대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제안한 방식이다. 건물 하중을 벽이 아닌 기둥으로 지탱해 1층을 비우는 개방형 구조다.
원래는 통풍과 채광, 토지 활용 효율성을 높이려는 의도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주차 공간 확보 수단으로 도입됐다. 문제는 이 구조가 화재에 매우 취약하다는 점이다.
조사관의 관점에서 보면 필로티 화재에는 몇 가지 특징이 반복된다.
첫째, 개방된 구조가 불길에 산소를 공급해 ‘아궁이 효과’를 만든다. 마치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바람이 들어와 불길이 세차게 타오르는 것처럼 필로티 주차장도 화세를 급격히 키우는 구조다.
둘째, 차량 화재는 연료와 내장재가 타며 엄청난 열과 유독가스를 발생시켜 기둥을 약화시키고 상부 건물의 붕괴 위험까지 높인다.
셋째, 주출입구가 곧바로 화염에 막히면서 주민이 피난할 기회를 잃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다수의 필로티 건축물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다. 이는 단순한 관리 소홀 때문이 아니라 현행법상 5층 이하 또는 일정 규모 미만의 건축물은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가장 위험한 구조가 오히려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인 셈이다.
해법은 분명하다. 필로티 건축물에는 자동소화설비 설치 확대, 기둥 내화 피복, 주차장과 주거층의 철저한 방화구획, 별도의 피난 경로 확보가 필요하다.
시민 역시 거주 중인 건물이 필로티 구조라면 화재 시 피난 동선을 미리 확인하고 주차장 주변에 불씨를 만들 수 있는 행위를 절대 삼가야 한다.
필로티 구조는 본래 효율성과 개방성을 위한 설계였다. 하지만 화재 안전이 담보되지 않으면 곧바로 재앙의 무대가 된다. 편리함은 안전을 대신할 수 없다. 반복된 참사를 막기 위해 지금 우리가 행동해야 한다.
신안소방서 현장대응단 소방교 이범석
※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 등은 FPN/소방방재신문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