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회사망에 접속한다. 커피를 내리고 신문을 펼친다. 하루는 일정한 순서 위에 놓인다. 순서가 어긋나면 마음도 흔들린다. 잠시 다른 일에 신경을 쓰거나 신문이 나를 끌어당길 때면 커피는 이미 식어 있다. 다시 타야 할지, 그냥 마셔야 할지 망설인다.
커피가 식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자연스럽다는 것은 방향이 있다는 뜻이다. 자연은 스스로 질서를 보존하지 않는다. 열역학 제0법칙은 서로 접촉한 물체가 결국 같은 온도에 이른다고 말한다.
화재에 대입해 보자. 화재가 없는 건물은 열적으로 균형 잡힌 상태다. 벽과 공기, 설비와 사람은 큰 차이 없이 한 공간에 놓여 있다. 그러나 균형은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외부에서 관리하지 않으면 미세한 기울기는 점차 커진다. 작은 차이는 결국 방향이 된다.
제1법칙은 에너지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종이와 모니터, 전화기 속에는 이미 에너지가 저장돼 있다. 화재란 없던 힘이 생기는 일이 아니라 잠자던 에너지가 다른 형태로 빠르게 이동하는 과정이다. 즉 고정돼있던 에너지가 통제되지 않은 속도로 방출되는 것이다.
제2법칙은 그 이후를 설명한다. 엔트로피(Entropy, 無秩序度)는 감소하지 않기 때문에 외부에서 에너지를 투입하지 않으면 질서는 풀린다. 쉽게 말해 질서는 스스로 유지되지 않는다. 열은 퍼지고, 연기는 번지며, 구조는 약해진다. 국소적이던 고온은 공간 전체의 불안정으로 확장된다. 질서는 해체되고, 무질서는 가속된다. 그래서 화재를 ‘무질서의 폭주’라 부른다. 이 폭주는 우연이 아니라 자연이 허용한 방향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가. 우리는 자연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속도를 관리한다. 냉각은 분자 운동을 낮추고, 질식은 반응을 끊으며, 연료 제거는 전환의 연쇄를 차단한다. 점검은 이상을 미리 발견하고, 교육과 훈련은 대응 시간을 줄이며, 유지관리는 균형이 무너지기까지의 시간을 늦춘다. 눈에 띄지 않는 이 반복이 폭주의 시작을 지연시킨다. 소방이 하는 일은 결국 시간을 벌어오는 일이다.
제3법칙은 완전한 질서의 한계를 제시한다. 분자 운동이 극도로 낮아진 이론적 기준점. 그러나 우리는 그곳에 도달할 수 없다. 완전한 안전 역시 그렇다. 도달의 대상이 아니라, 지향의 기준일 뿐이다.
존재는 시간 속에서만 유지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하루가 사실은 가장 많은 개입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건물의 안전도, 사람의 생명도, 조직의 신뢰도 지속될 때 비로소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화재는 시간을 압축한다. 몇 분 만에 수십 년의 축적을 무너뜨린다. 소방은 그 압축을 늦추는 일이다. 사라질 시간을 다시 벌어오는 일이다.
커피가 식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모든 자연의 법칙을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무질서의 방향은 피할 수 없어도, 그 속도는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한 번의 점검은 하루를 더 지켜낸다. 한 번의 교육과 훈련은 몇 분을 더 확보한다. 그리고 그 몇 분이 삶을 가른다.
오늘도 이런저런 이유로 커피는 식어 있다. 나는 식는 것을 알면서도 붙잡지 못한다. 따뜻함은 붙들어두지 않으면 흩어진다. 균형은 저절로 유지되지 않고, 따뜻함은 관리하지 않으면 흩어진다.
우리가 하는 일은 불을 이기는 일이 아니라 무너짐이 시작되는 속도를 늦추는 일일 것이다.
어쩌면 존재란, 사라지지 않기 위해 끝없이 시간을 건너오는 일인지도 모른다.
한국소방안전원 부산지부 시상수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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