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가까운 지인(知人)들과 어울려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 중에 핸드폰이 진동 하면서 문자 메시지가 들어와 확인해 보니 “빵빵......(알 수 없는 부호가 나열돼 있고), 사탕을 배달해 드립니다. 채희갑” 이런 내용 이였다.
옆자리의 y씨에게 보여주며 무슨 내용이냐고 물었더니 “채희갑 이란 분을 아느냐?” 고 물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후배인데 내가 아끼는 친구”라고 대답해 주었다. y씨의 대답인 즉 “오늘이 화이트 데이라고 남자들이 여성에게 사탕을 선물하는 날인데. 아마 채희갑씨가 사모님께 드리라고 사탕을 배달해 드렸다는 말 같습니다.” 하면서 좋은 후배를 두어서 행복하시겠다고 부러워했다.
나는 고마운 마음에 「통화 키」를 눌러서 “요즘 여러 가지로 어려울 텐데 웬 사탕까지 보내 주느냐?”면서 고마운 뜻을 전했다. 그러자 그 후배는 “가끔 이렇게라도 선배님을 찾아뵈어야지 언제 또 찾아뵙겠습니까?”하고 웃었다.
내 나이 70인데, 형식인 줄을 알면서도 서운한 마음을 줄까봐 매년 화이트 데이에는 아내와 막내딸에게 싸구려 사탕이라도 선물을 해 왔었다.
그런데 오늘 문자 메시지를 받아 본 후 “좋아 하지도 않는 사탕을 이중으로 사다 줄 필요가 있을까?”하고 생각했다. “차라리 배달돼온 사탕으로 생색을 내면서 후배를 자랑하고 나의 위신을 한번쯤 세워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날은 사탕을 사지 않았다.
마침 그날 저녁, 우리 내외는 어느 부부 모임에 참석했었다. 그 자리에서도 화이트 데이에 대한 화제가 떠올랐으나 남자들은 대개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나는 옆에 있는 아내의 귀에다 입을 대고, 오늘「문자 메시지」의 사연을 전해 주면서 “집에 가면 사탕이 배달 돼 왔을꺼야.” 자랑삼아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아내는 감동 하기는 커녕 딱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당신도 참... 그것은 오늘이 화이트데이니까 사탕을 선물하라는 뜻이지, 정말 사탕을 배달했을 거라고 믿어요?” 집에 돌아와 확인해 보니 아내 말 대로 배달 된 사탕은 없었다. 머쓱해진 나는 “아마 사무실로 배달을 했는지 모르니까 내일 확인 해 볼게.” 미련 섞인 말로 마무리를 짓고 다음날 아침 사무실에 출근해 알아보았으나 사탕이 배달 된 일은 없었다.
「온라인 세대」와「오프라인 세대」의 의식차이에서 벌어진 헤프닝 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오후에 작은 아들 내외가 손주들을 데리고 집에 왔다. 그중 큰 손자는 올해 열두살로 초등학교 5학년이다. 운동을 좋아 한다는 녀석은 성격도 밝아서 매번 반장, 어린이 회장 선거에 후보자로 나갔지만 당선 된 일은 한번도 없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좌절 하거나 의기가 소침된 일은 한번도 없었다. “다음에 또 나가면 되죠.”하는 낙천적인 성격이었다.
그런데 이 손자에게 화이트데이날 자그마한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며느리의 말에 의하면 그날 학교에서 손자의 단짝인 남자 친구가 사탕 3개를 손자에게 주었는데 그것을 본 여자 아이들이 “오늘은 남자가 여자에게 사탕을 주는 날이니까 나에게 달라”면서 손자를 쫓아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손자 녀석은 사탕을 준 남자친구를 가리키며 “얘가 나한테 먹으라고 준건데 왜 달라고 하느냐?”면서 그녀들을 피해 달아났고, 여자아이들은 끈질기게 그 뒤를 쫓아 다녔다.
한참 동안 실랑이를 하며 달아나던 손자 녀석의 머릿속에 번개같이 묘안이 떠올랐다. “옳지, 그곳까지는 여자아이들이 못 쫓아 올 거야.” 하고 생각한 그는 부지런히 뛰어서 남자화장실로 들어가 버렸고, 여자 아이들은 사탕을 포기하고 돌아가 버렸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던 녀석의 고모인 막내딸이 끼어들었다. “호승아, 너 여자 친구 있니?” “없어요.” “그러니까, 여자 친구가 없지.” “왜요?” “여자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누어 주었어야 인기도 있고 여자 친구도 생기지. 도망 다니는 사람에게 누가 친구 하려고 하겠어?” “나 먹으라고 남자 친구가 준건데. 왜 여자 아이들을 줘요?”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해진 막내딸이 한마디 했다. “같은 반 친구들에게 사탕도 나누어 주고, 인기를 얻어야 반장이나 어린이 회장에 당선이 되지 너 같은 애에게 누가 표를 찍어 주겠니?”
이 말을 듣던 손자 녀석이 한마디 했다. “나는 사탕사주고 반장되는 거 싫어요.” 「나와 손자 녀석은 수수한 걸까? 좀 모자라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