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입안예고된 소화기구 화재안전기준 개정안이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 관련 기준 개정안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소방방재청은 지난달 27일 소화기구 화재안전기준 개정안을 입안예고 하고 지난 16일까지 의견 접수를 모두 마쳤다.
이 개정안은 지난 2월 27일 한 차례 입안예고를 했던 사안으로 당시에도 논란이 불거져 일부 내용이 수정돼 재공고된 내용이다.
이번 기준안에는 ▲소화기구의 명칭 및 설치장소별 적응성 변경 ▲소화기구 명칭 및 정의 변경 ▲분말소화약제 적응성 변� ▲주방용자동식소화장치(구 자동식소화기)의 적용 대상 구분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기준안에는 지난해 피트공간의 스프링클러 대체 소화기구로 허용되기 시작하면서 혼란을 빚은 자동소화장치들(소공간자동소화장치, 고체에어로졸자동소화장치, 캐비넷형자동소화장치)의 설치기준 정립이 이뤄지면서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다.
또 통신기기실에 분말소화약제 적응성을 추가하는 내용은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고 주방용자동소화장치(구 자동식소화기)의 적용 대상 구분은 재검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자동소화장치간 형평성 문제 대두 = 현행 캐비넷형자동소화장치는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을 통해 국가검정(형식승인)을 받도록 되어 있지만 기술기준에는 소화시험 및 높이시험 등이 전무한 실정이다.
이로 인해 이번 화재안전기준 개정안에서는 현행 가스계소화설비의 헤드 높이 규정과 같이 3.7m의 높이를 방호할 수 있다고 전제하고 설치 구역의 방호체적만을 만족하도록 규정했다.
반면 최근들어 피트공간에 적용되면서 기술기준이 정립되기 시작한 가스식, 분말식, 고체에어로졸식 자동소화장치는 최대면적과 최대높이, 방호체적 등을 모두 만족하고 이에 따른 소화시험도 거쳐야만 한다.
기준안에서는 동일 개념의 체적방호 자동소화장치이면서도 캐비넷형자동소화장치만 단순히 제조사가 제시하는 소화농도에 안전율(1.3)을 적용한 설계농도로 방호체적을 산정할 수 있도록 한 셈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같은 방호체적 개념으로 사용되는 자동소화장치임에도 특정 제품들만 최대면적과 최대높이, 방호체적을 모두 만족해야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캐비넷형 자동소화장치만 유독 유리하게 개정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쓴소리를 내뱉고 있다.
이 같은 문제점의 근원은 캐비넷형 자동소화장치의 국가 검정기준이다. 현행 형식승인 기준으로 운용되는 캐비넷형자동소화장치가 화재에 대한 소화성능 테스트를 거치지 않고 방출시험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지금도 화재안전기준에는 특성에 맞춰진 최대 방호 높이 규정이 없어 통상적으로 ‘청정소화약제소화설비의 화재안전기준(NFSC 107A) 제 11조(분사헤드)’을 준용하고 있다.
이 같은 기준의 3.7m 높이 규정도 실제 화재시험을 통해 도출된 것이 아니어서 기술기준 보완을 통한 실질적인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분말소화약제 통신실 적응성 확대…의견 분분 = 이번 개정안에는 현행 소화기구별로 구분하고 있는 ‘소화적응성’ 기준을 소화약제별로 변경하고 통신기기실의 소화적응성에 분말소화약제를 추가로 포함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소화약제별로 적응성을 구분하는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여론이 많지만 통신기기실의 분말소화약제 적응성 추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이 같은 논란은 소화약제의 적응성을 어떠한 수준과 시각에서 접근할지에 대한 관점 차이에서 비롯되고 있다.
소화약제의 적응성을 화재를 진압할 수 있는지 여부만을 바라볼 것인지, 2차 피해 등 실용성까지 고려할 것인지에 대해 전문가들의 시각이 교차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신실의 적응성 확대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은 “분말 소화약제가 통신실에 적용될 경우 화재 소화 보다 약제에 의한 피해가 크고 이러한 피해 위험성은 NFPA 등에서도 경고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전기, 전자 단자간 접촉불능에 의한 2차 사고 및 국소적인 화재에서 분말소화약제를 사용해 화재를 진압할 경우에는 전체적인 장비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어 오히려 기존 전기실 및 전산실에 허용되는 적응성 부분도 삭제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분말소화약제가 통신실에 적응성을 갖고 있다는 입장에서는 “우리나라 화재안전기준에서는 화재를 소화시킬 수 있는지 여부만 판단하는 것이 사실이고 장비에 대한 2차적인 피해 등 실용성 부분은 국민이 선택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통신기기실 등에 소화기구를 설치하는 국민이 장비의 2차적인 손실을 감안하고 비교적 값이 싼 분말소화기구를 설치하고자 한다면 이를 법적으로 제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 논란에 대해 소방방재청의 관계자는 “현재 검토중에 있다”면서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지금의 양상에 비춰볼 때 논란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전기렌지 사용시 소화장치 제외 논란 = 이번 개정안에서 전기를 이용해 조리하는 주방에 주방용자동소화장치(구 자동식소화기)의 면제조건이 명문화되면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사실 전기렌지 등의 자동식소화기 면제는 과거 소방방재청에서 내린 질의회신에서부터 시작된 문제다.
소방방재청이 그동안 전기렌지 적용을 앞 둔 건축물 관계자의 적용 여부 질의에 대해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석을 내려왔기 때문이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자동식소화기는 가스탐지부 및 가스차단장치 기능을 갖춰야만 국가 검정(형식승인)을 받을 수 있다. 때문에 전기렌지 등을 사용하는 곳에서는 불필요한 가스탐지 및 차단 기능을 갖춘 자동식소화기를 설치하는 것이 불필요한 낭비를 불러올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전기레인지 등에 적용 가능한 ‘자동식소화기’가 없어 설치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질의회신을 통해서도 최초 면제조치가 내려졌다는 게 관련인들의 전언이다.
특히 일부 전문가들은 전기렌지가 화원을 직접적으로 사용하지 않아 분명 화재위험성이 적은 것은 어느정도 동의하지만 과열된 지방이나 기름, 식용유 등에서 나타나는 화재위험성은 동일해 무턱대고 설치 자체를 면제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공동주택이나 오피스텔 등의 주방에서 발생될 수 있는 화재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관련법의 최초 도입 취지까지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실제 4월 18일에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위치한 한 원룸에서는 인덕션렌지 위에 종이박스 등을 올려놓은 채 전원스위치를 작동시켜 놓고 외출하면서 화재가 발생해 8명이 긴급히 구조되는 사고도 발생됐다.
이처럼 화재위험성을 고려하지 않고 무턱대고 설치 자체를 면제하기 보다는 가스탐지 및 차단기능을 제외한 소화장치가 설치될 수 있도록 국가 검정기술기준을 손질하는 실질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편 소방용품의 국가 검정기관인 한국소방산업기술원에서도 이 같은 의견을 소방방재청에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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