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도착했을 때 환자로 보이는 남자는 머리에 피를 흘리는 채로 의식이 없었고 외관상 다른 신체 손상은 보이지 않았다. 목격자는 “약 70~80㎞ 속도로 달리던 차량에 킥보드가 부딪친 후 날아갔다”고 했다.
대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 명은 머리를 고정하고 다른 한 명은 목 고정대를 착용하며 의식을 확인했다. 환자는 전혀 반응하지 않고 쌕쌕거리는 듯한 호흡 양상을 보여 외상성 뇌손상을 의심했다.
펌프차 동료들과 함께 긴척추고정판에 고정한 후 구급차로 옮겼다. 활력 징후를 측정하고 이송 병원을 선정하기 시작했다. 3인 탑승의 장점은 이송 중에도 한 명이 환자 상태를 보면서 병원을 선정하는 동안 다른 대원이 응급처치에 집중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때 구급대원이 할 수 있는 건 진행되는 뇌손상을 최소화하며 적절한 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이송하는 거다. 더 이상의 뇌손상을 방지하는 방법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모두가 한번쯤은 고민해 봤을 법한 주제라 생각된다.
과거 뇌손상 환자의 두개강내압 상승 치료와 예방 목적으로 과환기(PaCO₂(동맥혈 이산화탄소 분압) 25㎜Hg 이하를 유지) 제공이 추천됐다. 과환기가 PaCO₂를 감소시키고 뇌혈관 수축(뇌혈액용적 감소)을 일으켜 두개내압을 떨어뜨리는 거로 알려졌다.
하지만 과환기가 두개강내압은 떨어뜨리는 반면 뇌허혈이 발생해 더는 추천하지 않는다(이는 심장질환자에게 고농도 산소공급이 도움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번 호에서는 뇌손상 환자 소생을 위한 ‘EPIC-TBI’라는 프로그램 관련 구급장비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EPIC-TBI(Excellence in Pre-hospital Injury Care - Traumatic Brain Injury) 대한응급의료지도의사협의회와 대한구급지도의사협회에서 추진하는 ‘EMS Korea’에 매번 빠지지 않는 프로그램 이름이다. 한 번쯤 본 것 같지 않은가?
이는 미국 애리조나에서 EMS 대상자를 위한 외상성 뇌손상 환자 처치 중 하나의 지침으로 개발됐다. 풀어 말하자면 ‘뇌손상 환자에게 훌륭한 처치를 통해 생존율을 높이자’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애리조나대학교, 보건 서비스부 지역 소방서, 지상ㆍ항공 EMS 이송기관과의 협력체를 말한다.
이들은 교육과 연구를 통해 중증 뇌손상 환자의 생존율을 향상하는 걸 목표로 한다. 2007~2015년(8년간) 애리조나에서 새로운 외상성 뇌손상 처치 프로토콜을 연구했고 2019년 ‘EPIC-TBI’라는 프로그램으로 발표했다.
이 프로그램에서 중증 뇌손상 환자 생존율은 두 배가 증가했고 기관 내 삽관이 필요한 환자 생존율은 세 배로 증가하는 효과가 있었다.
이 프로그램을 수행하기 위해선 세 가지의 중요한 원칙이 있다.
앞의 세 글자를 본떠 ‘3H-Bombs’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2015년부터 PATOS(Pan-Asian Trauma Outcomes Study)를 통해 아시아 전역의 TBI에 참여하고 있다. 병원 전과 밖의 응급의료 종사자들을 위해 교육 중이다.
외상성 뇌손상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1. 일차성 뇌손상: 직접적인 사고 그 자체로 인한 뇌출혈이나 뇌 타박상, 미만성 축삭 손상 등의 증상을 말한다. 이는 현장 구급대원과 의료진 모두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다.
2. 이차성 뇌손상: 일차 손상의 결과에 따른 저산소증과 저혈압(뇌 혈류 감소)은 예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초기 발견자와 의료진의 노력으로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으므로 매우 중요하다.
그럼 3H-Bombs에 대해 알아보자.
1. 저산소증(Hypoxia): 가장 초기에 적용해야 하는 것 중 하나로 기도 관리와 호흡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저산소증은 중증 TBI 환자들에서 약 50%가량 흔하게 발생한다.
- 조기에 산소를 공급해야 하며 SpO₂(맥박산소계측기로 측정한 산소포화도) 90% 이하면 사망률이 두 배 높게 증가하므로 잘 유지해야 한다. 비강 캐뉼러보다는 산소마스크를 사용하는 게 효과적이다. 최근엔 교환할 필요 없이 산소농도를 44~97%로 공급 가능한 마스크도 있으니 사용해보는 것도 편리하겠다.
- 전문기도기를 시행했다면 병원 도착까지 ETCO₂(호기말 이산화탄소 분압)를 감시해야 한다.
- ETCO₂의 목푯값은 35~45㎜Hg가 되도록 한다. 양압 환기를 제공할 때 호흡수나 호흡량이 증가하면 ETCO₂는 감소한다. 반대로 적용하면 증가한다. 성인의 적정 환기횟수는 분당 10회, 호흡량은 7㎖/㎏(성인 70㎏이면 490㎖가 된다).
- 될 수 있으면 기도관리와 환기를 담당하는 대원을 지정하는 걸 추천한다.
2. 저혈압(Hypotension): 초기 환자평가에서 수축기 혈압 90㎜Hg 이하는 사망률이 증가하므로 의료지도 후 정맥로 확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 생리식염수나 락테이드링거액으로 초기 1ℓ를 투여하고 혈압이 오르지 않으면 500㎖를 추가 투여한다.
- 될 수 있으면 18G 이상의 굵은 바늘로 큰 혈관을 이용한다.
- 머리 외상 자체만으로 저혈압이 발생할 가능성은 적으며 다른 외상에 의한 저혈압일 가능성이 크다.
- 주의할 건 수축기 혈압을 140㎜Hg 이상으로 올리게 되면 ICP(뇌내압력)가 상승하게 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절대로 정맥로 확보를 위해 구조작업이나 이송을 지연시키지 않아야 한다. 여의찮다면 구급차로 옮긴 후 바로 수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게 효율적이다.
3. 과환기(Hyperventilation): 저산소증 예방뿐 아니라 호흡과 관련된 내용으로 전문기도기(기관 내 삽관)를 유지한 환자에서 과환기가 사망률을 증가시킨다는 보고가 있다. 과환기는 뇌혈관 수축을 통해 ICP를 감소시킬 순 있지만 뇌의 저산소증 상태를 만들어 발작증상을 일으키는 등 뇌손상을 가속한다.
이는 일반 기도유지기와 비교하면 기관 내 삽관 튜브가 환기량 소모를 적게 전달했고 ETCO₂ 관리가 좋지 않았다는 보고서에 의한다. 적절한 환기는 6초에 1회꼴로 7㎖/㎏의 환기량을 제공하도록 한다.
Bag을 너무 강하고 빠르게 많은 양을 제공하는 건 높은 기도내압과 정맥환류의 감소, 폐 손상(ARDS(성인호흡곤란증후군) 등)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최근 병원 전 단계의 심폐소생술과 중증외상환자에 대한 적절한 환기를 제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장비와 도구가 등장했다.
관련 장비와 소모품 기존의 산소공급 장치(비강 캐뉼러, 안면 마스크), 호기말 이산화탄소 분압 측정기와 결합할 수 있도록 하거나 심장 충격기에 환기량 측정기능을 업그레이드한 제품들이 등장하고 있어 편리함을 더한다.
호기말 이산화탄소 분압 측정기능은 거의 모든 심장 충격기에 적용되는 추세다. Zoll X-Series의 Advanced 모니터에서는 ‘Real BVM Help’ 기능을 통해 적정 환기량과 환기율 제공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호흡량 측정기능은 환기량이 설정값의 ±50㎖ 내에 도달, 호흡수 ±20% 내로 제공되면 녹색 값으로 표시된다. 기기 자체적으로 환기 품질지표 기능이 있어 설정값 내로 제공된다면 등급에 맞는 점수가 중간에 표시되는 흥미로운 기능이 있다.
호흡량 측정기능을 설정하면 심폐소생술 도중 고품질의 가슴압박과 환기 제공을 위해 가슴압박 깊이와 호흡량을 실시간으로 표시하는 기능이 있다(소생술 대상에 따른 목표 볼륨과 횟수를 설정할 수 있다).
TBI Dashboard라는 이름이 붙여진 기능은 기존의 호기말이산화탄소분압 측정기능에 소프트웨어적 요소를 더한 것으로 3H(저산소증, 저혈압, 과환기) 현상을 예방하기 위해 추세를 한눈에 관리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됐다.
TBI DashBoard라는 기능을 통해 호기말 이산화탄소 분압 측정값을 확인하며 적정 환기횟수를 설정할 수 있다.
마무리 PHTLS 책의 첫 머리말에 “부상자의 운명은 맨 처음 드레싱을 시행하는 바로 그 한 사람의 손에 달려있다”고 적혀있다.
외상성 뇌손상 환자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초기 몇 분에 의해서도 예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현장 단계에서부터 저산소증(Hypoxia)과 저혈압(Hypotension), 과환기(Hyperventilation)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내가 만나는 외상성 뇌손상 환자의 ‘3H-Bombs’를 얼마나 관리하느냐에 따라 그 환자의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음을 꼭 기억하자.
참조 1. 박윤택, 김준호, 119 구급현장 시나리오, 한미의학. 2023. 2. 119구급대원 현장 응급처치 표준지침, 소방청. 2023. 3. Gaither, Spaite, Bobrow: Ann Emerg Med; 2012 4. 2023 EMS Korea EPIC-TBI
경북 경주소방서_ 박윤택 : fatimaemt@naver.com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1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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