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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호텔화재-단독/집중취재②] 화재경보는 울렸나… 구닥다리 화재감지시스템이 피해 키웠다

취침 시간대도 아닌데 피해 커진 이유, “화재감지ㆍ경보시스템이 문제”
객실 내부 ‘연기감지기’보다 8분 느린 ‘열감지기’, 골든타임 손실 원인
법 고쳐놓고 적용 안 된 화재경보시스템들… “스프링클러만 문제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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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 박준호 기자 | 기사입력 2024/08/27 [18:33]

[부천 호텔화재-단독/집중취재②] 화재경보는 울렸나… 구닥다리 화재감지시스템이 피해 키웠다

취침 시간대도 아닌데 피해 커진 이유, “화재감지ㆍ경보시스템이 문제”
객실 내부 ‘연기감지기’보다 8분 느린 ‘열감지기’, 골든타임 손실 원인
법 고쳐놓고 적용 안 된 화재경보시스템들… “스프링클러만 문제 아냐”

최영, 박준호 기자 | 입력 : 2024/08/27 [18:33]

▲ 화재가 발생한 부천 호텔  © FPN


[FPN 최영, 박준호 기자] = 취침 시간이 아닌 초저녁에 불이 났는데도 7명이나 숨진 부천 호텔화재 당시 화재경보설비가 제대로 울렸는지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화재경보가 울렸더라도 골든타임을 놓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FPN/소방방재신문>이 최초 보도한 사고 당시 8층 복도 CCTV 기록에 따르면 810호 입실자가 “방에 타는 냄새가 난다”며 퇴실한 시각은 오후 7시 34분 31초다. 이후 오후 7시 37분 7초에 810호 상층부에서 연기가 분출하는 모습이 호텔 복도 CCTV에 포착됐다. 즉 이 2분 36초 사이 내부에선 이미 연기와 함께 불길이 일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일부 언론 등에서 나온 투숙객들 증언에 따르면 이날 화재경보음은 어디선가 울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과연 이 경보음이 적정한 대피 시간이 주어질 만큼 빠르게 울렸는지는 의문이다. 경보를 꺼놓았다 나중에 풀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 화재 당시 8층 복도를 비춘 CCTV 영상에는 문이 열린 810호에서 새어 나오기 시작한 연기가 복도로 급격히 번지는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FPN

 

이 같은 화재감지시스템의 작동 여부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는 건 화재 수신기에 남은 기록이다. 문제는 해당 호텔의 화재 수신기에는 기록장치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최근 제조되는 화재 수신기에는 기록장치 기능이 무조건 탑재된다. 이 기록장치에는 화재경보시설의 동작 상태와 소방시설 고장 등의 이력이 고스란히 남는다. 일종의 블랙박스와 같은 개념이다.

 

일부 건축물에서 관리 주체 등이 소방시설 임의조작 등 비정상적 관리를 하고도 화재 이후 이를 명확히 알 수 없는 사례가 나타나자 정부는 2016년 1월 수신기의 기록장치 설치를 의무화했다. 

 

그러나 불이 난 호텔은 2003년 3월 건축허가, 2004년 10월 사용승인을 받았다. 만일 당시 구형 화재 수신기를 그대로 사용했다면 ‘기록장치’는 탑재되지 않았을 수밖에 없다. 경찰이나 소방 등의 조사 과정에서도 이를 밝혀내려면 CCTV 음향이나 목격담에 의존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골든타임 날려버린 화재감지시스템

문제는 불이 난 호텔에 설치된 화재감지시스템이 적기 피난 시기를 알려주지 못하는 태생적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FPN/소방방재신문> 취재결과 이 호텔엔 ‘연기감지기’가 아닌 ‘차동식 열감지기’가 설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차동식 열감지기는 주위온도가 온도상승률 이상이 됐을 때 경보를 울려주는 방식이다. 열은 어느 정도 화재가 성장해야만 감지할 수 있기 때문에 연기감지기보다 동작이 훨씬 느리다.

 

▲ 불이 난 부천 호텔의 객실에 설치된 차동식 스포트형 감지기(반도체식)는 화재 시 연기가 아닌 열을 감지하는 방식이다.  © FPN


열감지기의 감지 지연 문제는 외국은 물론 우리나라의 실증 실험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지난 2008년 소방방재청(현 소방청)이 주택화재 실물화재 실험에서 가정용 가스레인지 튀김기름 화재를 재현한 결과 열감지기는 연기감지기보다 무려 8분이나 감지가 느렸다.

 

에어컨에서 시작된 이번 화재 역시 연기가 나오면서 서서히 성장했을 특성을 고려한다면 피난을 위한 골든타임의 손실은 화재감지시스템에서부터 시작된 셈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건축물에는 이러한 열감지기가 가장 많이 쓰이고 있다. 연기감지기보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이다. 연기식 감지기의 경우 열감지기보다 예민해 비화재보(화재가 아닌 상황에서 경보가 울리는 일)가 잦다는 것도 이유다.

 

정부는 이 같은 비용과 비화재보 우려에도 이미 숙박시설과 같은 곳에는 연기감지기를 오래전 의무화했다. 지난 2015년 1월 23일 소방청(당시 국민안전처)은 공동주택과 숙박시설, 오피스텔, 노유자시설, 수련시설, 교육연구시설 중 합숙소, 근린생활시설 중 입원실이 있는 의원ㆍ조산원, 근린생활시설 중 고시원 등에 연기감지기 설치를 의무화했다. 사람이 취침하거나 장시간 체류하는 장소 특성을 고려해 인명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 2008년 진행된 소방방재청(현 소방청)의 주택실물화재 실험에서는 상부에 여러 종류의 감지기를 실제 설치해 놓고 감열 속도를 확인한 결과 열감지기는 연기감지기보다 8분이나 반응속도가 느렸다.   © FPN


하지만 2003년 3월 28일 건축허가를 받은 부천 호텔에는 개정 법규가 적용되지 않았다. 이 역시 스프링클러처럼 소급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가 드러난 유사 화재 사례로는 2022년 4월 11일 2명이 숨진 굿모닝고시원 화재가 있다. 1977년 지어진 이 건물 역시 차동식 열감지기가 설치돼 있었다. 뒤늦게 화재 사실을 인지한 이들은 대피를 시도했지만 복도와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화재 때도 오래된 수신기 탓에 경보설비의 작동 여부를 정확하게 확인하지 못했다.<관련 기사 - [집중취재-종합] 4년 만에 또다시 반복된 고시원 화재 참사… 문제는?>

 

구닥다리 화재감지기… 말로만 외치는 소방기술 선진화

화재 발생 호텔은 물론 현행 화재감지시스템에 대한 법규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호텔처럼 불특정다수가 이용하는 숙박시설에 구닥다리 화재감지시스템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호텔에 적용된 화재감지시스템은 불이 나면 몇 호실에서 발생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저급 시설로 구비돼 있었다. 흔히 먹는 커피 한 잔보다 싼 가격의 감지기다. 가격은 차치하더라도 기능적 문제는 더 치명적인 취약성이 있다. 화재가 감지될 때에만 수신기에 화재 발생 신호를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감지기들은 평상시 문제가 있거나 고장이 나더라도 알 수 없다. 이상 상태에 대한 감시기능이 없어서다. 게다가 일정 공간 내 많게는 수십 개를 모두 묶어 한 회로로 구성된다. 이로 인해 화재 감지 시 정확한 위치조차 파악할 수 없다. 

 

부천 호텔을 예로 들면 810호에서 최초 시작된 불로 화재 감지가 이뤄졌더라도 8층에서 불이 났다는 신호만 보일 뿐 어느 방 감지기가 작동한 건지는 알 수 없는 셈이다. 이곳 역시 한 층의 감지기를 모두 한 회로로 묶어 설치했다. 화재감지시스템의 전반적인 선진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관련 기사 - [기자수첩] 커피 값 화재감지기에 거는 허황된 기대>

 

▲ 화재가 발생한 810호에는 화마가 휩쓸고 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 윤건영 국회의원실 제공

 

소방청은 이 같은 화재감지시스템의 후진성을 개선하기 위해 고층 건물과 아파트 등에는 아날로그식 감지기를 설치하도록 법규를 강화했다. 아날로그식 감지기는 개별 주소값을 가져 정확한 화재 위치 확인이 가능하고 실시간으로 감지기의 이상 상태를 감시할 수 있다. 화재 대처는 물론 비화재보가 일어나더라도 문제의 감지기를 쉽게 찾아낼 수 있어 신속한 조치가 가능하다. <관련 기사 - [긴급진단] 걸핏하면 꺼놓는 화재경보시설, 대책은 없나>

 

불이 난 부천 호텔처럼 타인이 일정 시간 소유하는 구획된 숙박시설 같은 경우 비화재보 시 대처도 힘들다. 비화재보 원인을 찾기 위해선 투숙객이 있는 방에 들어가 이상이 생긴 감지기를 일일이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은 경보 자체를 아예 꺼놓는 상황까지 불러온다. 

 

전문가들은 이번 화재사고의 문제를 스프링클러설비 부재만으로 바라볼 게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오랜 기간 미비한 법규를 개선해온 정부의 노력조차 무색할 만큼 방치되고 있는 구식 소방시설에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는 시각이다.

 

이영주 경일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이번 화재에서 연기감지기가 설치됐다면 화재를 초기에 감지해 연기가 복도로 확산되기 이전에 경보가 울렸을 것”이라며 “숙박시설 같은 특성을 가진 대상물은 많은 구획이 이뤄지고 취침도 하기 때문에 화재감지시스템의 성능을 대폭 선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시원은 고치고 숙박시설은 두고… 안 들리는 경보음

<FPN/소방방재신문> 취재결과 불이 난 호텔에는 화재 시 경보를 울려주는 경종은 엘리베이터 앞 옥내소화전 쪽 한 곳이 다였다. 만약 경종이 울렸더라도 각 실의 투숙객들이 화재 사실을 알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FPN/소방방재신문>이 확보한 해당 호텔 도면에 따르면 화재 당시 에어매트로 뛰어내린 희생자가 있던 방과 이 경종까지의 거리는 17.3m에 달한다. 방마다 현관문과 중문까지 있음을 고려할 때 경보음이 제대로 들렸을 리 없다. 소방법상 경종의 음량은 1m 떨어진 곳에서 약 90㏈ 정도다.

 

▲ 화재가 발생한 부천 호텔에는 화재감지 신호를 받아 경보를 울려줘야 하는 지구음향장치(경종)가 복도에 단 하나만 설치돼 있는 구조였다. 끝 방까지의 거리는 17.3m에 달한다.  © FPN


정부는 지난 2013년 화재사고를 많이 겪은 고시원의 경우 경종과 같은 ‘지구음향장치’를 구획된 실마다 설치하도록 법규를 강화했다. 하지만 숙박시설에는 이 기준을 반영하지 않았다. 과거에도, 지금도 여전히 경보시설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화재사고를 계기로 화재 감지시스템의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김성한 한국소방시설관리협회 부회장(소방기술사)은 “자동화재탐지설비(화재경보시스템)가 중요한 이유는 화재 시 조기 피난을 위해 경보를 울려주는 가장 기초적인 소방시설이기 때문”이라며 “지금처럼 구식 자동화재탐지설비로는 다양한 대상물의 화재안전성을 높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영, 박준호 기자 young@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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