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119] ‘두근두근런’, 한 달 만에 5㎞ 달리기 가능?고등학교 체력장 이후 뛴 적 없는 FPN 최대 약골 마라톤 도전기
평소 FPN 최대 약골임을 인증하는 나는 살기 위해 근근이 PT를 받으며 악으로, 깡으로, 말 그대로 버텨왔다. 그런 내가 달리기라니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하지만 역시 사람 일은 그 무엇하나 장담하거나 단언할 수 없다. 9월 25일 굳이 내 인생에서는 없었을 도전의 벨이 울리는 순간을 맞닥뜨렸다.
“달려야겠다”는 아니었고 “취재하러 가야겠다”는 의미였다. 최근 박준호 기자가 마라톤에 푹 빠져서 그는 ‘달리고’ 나는 ‘취재하면’ 되겠다는 마음에서 박 기자와 함께 가겠다고 했다.
그. 런. 데. 그는 함께 뛰길 원했다. 심지어 기록으로 남겨보자고 했다. 고등학교 체력장 이후로 달려본 거라곤 건널목에서 신호가 바뀔 것 같을 때 빼곤 없는 내가? 뛴다고? 가능하다고?
런린이의 도전기 달리기 좀 한다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할 거라면 제대로 해야 하고 무엇보다 다치지 않아야 한다. 10대 때 이후로 달려본 적 없는 몸이라 분명 자칫하다간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족저근막염이 심해졌다, 나아졌다를 반복해 러닝화부터 샀다(무언가 시작하기 전에 세팅하는 걸 좋아한다). 대회가 끝나도 뛸지 알 수 없어서 무난한 거로 장만하려 했는데 이것저것 신어보니 발에 착 붙는 신발은 20만원 가까이했다.
‘에라, 모르겠다. 다쳐서 병원 신세 지는 것보다 낫지’ 그렇게 자기 합리화하며 거금을 들였다(또 나름의 방식으로 금융치료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무리하지 말고 처음엔 1㎞만 뛰어봐. 걷는 것보단 조금 빠르게… 아무리 조금 달려도 하루 달렸으면 무조건 하루 이상 쉬어. 첫째도, 둘째도 부상 방지. 명심!”
친구의 조언을 상기하며 27일 드디어 첫 러닝에 도전했다. 1㎞를 달렸는데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조금 더 달려도 되겠다 싶어 1㎞를 더 달려 2㎞를 채웠다. 평균 페이스 10’58”. 또 다른 친구에게 얘기하니 심드렁하게 딱 한마디를 건넸다.
“걸었네”
아니다. 나는 분명 뛰었는데 너무 천천히 뛰었나. 그래서 숨이 안 찼던 건가.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하루 뛰고 하루 쉬라고 했으니 28일은 쉬고 29일 달렸다. 10’42”. 조금 빨라졌지만 여전히 나는 느렸다. 그런데도 뭔가 해나가고 있다는 안도감이 들긴 했다.
얼떨결에 시작한 달리기지만 달릴 때 볼을 스치는 적당한 온도의 바람 덕에 마냥 기분이 좋아졌다. 왜 사람들이 그토록 진심을 다해 달리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일이 너무 바쁘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6개월이 넘도록 제대로 가지 못했던 PT도 열심히 했다. 야근하고 집에 가서도 뛰고 저녁 약속이 있을 땐 6시에 일어나 눈곱도 안 떼고 나가서 뛰었다.
한 번은 PT를 받으러 갔다가 트레이너 선생님에게 끌려나가 5㎞ 가까이 뛰기도 했다. 한 2㎞쯤 뛰다가 무릎이 아파 그만두고 싶었다. 걷기라도 하라고 채찍질하는 선생님 덕에 결국 어찌어찌 5㎞에 가까운 거리를 달렸다.
그렇게 달리고 나면 ‘무조건 5㎞ 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줄 알았는데 오히려 자신감이 더 없어졌다. 다 뛰지 못했고 걸은 시간도 상당했기 때문이리라.
마감 탓에 출근한 한글날. 박준호 기자와 함께 달렸다. 박 기자가 페이스메이커가 돼 줘 회사 앞 학의천을 뛰었다. “선배 1㎞입니다, 곧 2㎞예요”라고 알려줬는데 워치를 보면 거기에 못 미치는 ㎞였다. 스타트 버튼을 너무 늦게 눌렀나 싶던 찰나,
“선배 좀 덜 힘드시라고 일부러 줄여서 말한 거예요” “나 확실한 거 좋아한다. 사기 치지 마라”
그날 이후 대회인 10월 20일 전까지 12일 2, 14일 2, 17일 5, 19일 2㎞를 달리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갑작스레 몸이 안 좋아졌고 당분간 숨이 찬 운동은 하지 말라는 의사의 권고에 계획이 무산되고 말았다.
계속 쉬다 17일 다시 한번 박 기자와 학의천을 달렸다. 전날 PT 수업 때 스쿼트를 무리해서 했는지 무릎 통증이 계속됐다. 그래도 대회 전에 연습해 놔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5㎞를 달리고 싶었지만 4㎞로 마무리했다.
빨리 달리려고 한 적이 없고 누구와 경쟁하는 것도 아닌데 희한하게 속도가 계속 빨라졌다. 그간 PT를 받은 후 러닝머신을 탈 때마다 속으로 ‘힘든데 그만할까?’를 고민했다. 그런데 달리기를 한 이후 전혀 힘이 들지 않았다.
뭔가 몸이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달리기 시작하길 잘한 건가…?
대망의 두근두근런! 10월 20일 대회 아침이 밝았다. 일요일에 오전 7시부터 일어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왜인지 모를 긴장감에 눈이 번쩍! 떠졌다. 어제부터 목이 칼칼하고 콧물도 나서 ‘과연 내일 뛸 수 있을까’라는 걱정에 긴장하고 자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몸 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래도 달리고 싶었다. 지금까지 엄청 열심히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준비해 온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도전해 보고 싶었다. 콧물이 나면 좀 흘리고 도무지 안 되겠으면 걸어서라도 꼭 하고 싶었다.
걱정하고 있을 박 기자에게 메시지를 보내자 꽤 추우니 따뜻하게 입고 오라고 언질을 줬다.
주차가 어려울 것 같아 대중교통을 이용해 여의나루역으로 향했다. 목동-오목교…여의도-여의나루.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대회 이름 마냥 마음이 두근두근했다.
설렘 때문인지, 걱정 때문인지 모를 그 두근거림을 품고 2번 출구로 들어서니 대회 공식 티셔츠를 입고 배 번호표를 단 많은 사람이 보였다.
방화복을 입은 신임 간부후보생들도, 모나리자를 코스프레한 분도, 방호복을 입은 가족도 보였다. 베스트 드레서를 선정하는 ‘슈퍼 히어로 어워즈’에 참가하려는 듯 보였다.
현직 소방관의 CPR 교육을 듣고, 하트세이버의 응원을 받으며 달리고, 소생자들이 직접 메달을 걸어주는 두근두근런!이라는 대회 타이틀에 걸맞게 행사장 한편에는 CPR 교육존이 마련돼 있었다.
그곳에선 현직 소방관들이 강사로 나서 일반인에게 심폐소생술을 알려주고 있었다. 마라톤뿐 아니라 심폐소생술에도 열심인 참가자들을 보며 ‘이런 게 바로 제대로 된 대국민 홍보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다들 뭔가 신나 보이는데 나 혼자만 심각했다. 과연 5㎞를 뛸 수 있을까?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등수가 정해지는 것도 아니고 참가하는 데 의의를 두고 있는데도 왜 그렇게 긴장됐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마라톤 시작 전 무대에서는 오프닝 행사가 열렸다. 119구급대원의 처치 덕에 멎은 심장이 다시 뛴 심폐소생술 소생자와 구급대원이 무대에 올라 축사를 했다. 그들에겐 소방청장 표창도 전달됐다. 이어 부상 방지를 위한 준비운동 시간을 가졌다.
드디어 출발 시각. 9시부터 5분 간격을 두고 차례로 10㎞ A, B, C 그룹이 출발했다. 이벤트 광장에서 국회의사당을 거쳐 성산대교에서 다시 돌아오는 코스다. 나는 5㎞ 자율 출발이었기에 9시 15분 출발선에 섰다.
함께 뛰시는 분이 많아 출발은 했지만 병목 현상으로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조금씩 간격이 벌어지고 제대로 뛸 수 있게 됐을 그때. 첫발을 내딛는데 뭔가 불길했다. 몸이 무거웠다. 역시 이 컨디션엔 무리였나 싶은 마음에 ‘걸어서라도 완주하자’로 목표를 선회했다.
한강의 경치를 보고 있자니 왜 그 많은 러너가 한강에서 뛰는지 이해가 됐다. 1㎞, 2㎞, 2.5㎞ 반환점을 돌고 3㎞쯤 됐을 때 마음속 비상벨이 울렸다. ‘무리다!’ 바람까지 너무 세게 불어 자꾸만 모자는 벗겨지고 그렇게 나는 홀로 카오스에 빠져버렸다.
호흡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코로 두 번 마시고 입으로 두 번 내쉬고… 씁씁후후. 발은 끌지 말고 최대한 가볍게… 헛둘셋넷! ‘그만둘까, 이게 뭐라고…’, ‘늘어져 있을 시간에 못 쉬고 연습한 거 생각해서라도 조금만 더 가보자!’
계속 양가감정과 싸우며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4㎞… 이제 1㎞ 남았다. ‘난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할 거야. 꼭 하고 싶어!’ 포기하기엔 지금까지 온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자 힘이 나기 시작했다. 결승선을 300m쯤 남겨두고는 전력 질주했다. 몸에 힘이 하나도 안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뛰어졌다.
결국 한 달도 안 되는 시간에 5㎞를 뛰는 데 ‘성공’했다. 숨은 꼴딱꼴딱 넘어갈 것 같고 땀이 비 오듯 흘렀지만 그 성취감과 뿌듯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39분 13초에 결승전을 통과했다. 평균 페이스 7분 50초. 사람들에 휩쓸려 뛰다 보니 오버 페이스로 뛰었는데도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말 그대로 얼결에 뛴 기분이었다. 기념품 수령소로 가서 완주 메달을 받고 소방 캐릭터 ‘일구’와 인증샷도 찍었다.
그렇게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를 마라톤대회 데뷔를 성공리에 마쳤다.
계속 달릴 건가요? 소방청이 기획한 ‘두근두근런’은 심폐소생술 중요성을 강조하고 일반 국민의 공감대와 수행 역량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2023년 질병청에 따르면 일반인 심폐소생술 수행 시 12%, 미수행 시 5.9%가 생존한다는 보고가 있다.
이런 행사를 통해 국민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 심폐소생술을 직접 알리고 혹시 발생할지 모를 사고에 대비하고자 마련된 ‘두근두근런’. 요즘 러닝 열풍과 맞물려 무려 2700여 명의 일반인이 참여했다. 그런데도 단 한 건의 안전사고 없이 성공리에 마무리됐다.
“계속 달릴 건가요? 계속 달려야지?”
대회가 끝나자마자 사람들이 자꾸 묻는다. 그때마다 내 대답은 늘 한결같이 “글쎄…”다. 마라톤 고인물들이 보면 5㎞로 유난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내 체력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 확실한 건 마라톤은 분명 내 한계를 극복할 때 오는 성취감이 엄청나게 큰 스포츠라는 사실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무릎이 시큰시큰한데 이게 좀 나아지면 더 추워지기 전에 안양천을 달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FPN TV’에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유은영 기자 fineyoo@fpn119.c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12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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