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기고] 생명을 살리는 가장 빠른길, 구급대원의 판단을 믿어주세요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우리는 가장 먼저 119를 떠올린다. 그리고 119 구급차가 ‘내가 원하는 병원으로 신속하게 이송해주는 서비스’라고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환자의 ‘골든타임’을 좌우하는 중대한 오해가 발생하곤 한다.
구급차는 단순한 이송 수단이 아니며 구급대원은 환자를 실어 나르는 기사가 아니다. 특히 구급대원은 환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전문적인 판단을 내리고 응급처치를 수행하는 ‘움직이는 응급실’의 핵심 의료 인력이다. 현장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환자의 상태를 면밀히 평가하고 수많은 현장 경험과 응급의료 지식을 바탕으로 가장 시급하고 필요한 조치를 결정한다. 이송할 병원 역시 단순히 가깝거나 유명한 곳이 아닌, 현재 환자의 상태에서 가장 적합한 응급의료를 제공할 수 있는 곳으로 선정한다.
보호자의 조급한 마음에 “일단 이송부터 해달라”거나 특정 병원만 고집하는 상황은 오히려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데 중요한 응급처치를 지연시키고 소중한 골든타임을 놓치게 하는 안타까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에 응급상황이라는 절체절명의 순간, 환자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시민 여러분께 세 가지를 간곡히 당부드리고자 한다. 바로 구급대원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신뢰, 그리고 시민의 작은 협조다. 이 요소들은 한 생명을 살리는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다.
첫째, 구급대원의 전문성을 신뢰해야 한다.
현장에서 자주 부딪히는 장벽은 구급대원의 전문적인 판단에 대한 불신이다. 눈앞의 가족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 이성적인 판단이 흐려지고 무조건 가장 크고 유명한 병원에 가야만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 쉽다. 하지만 구급대원은 그 위급한 상황에서 가장 냉철하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도록 훈련받은 응급의료 전문가다.
구급대원은 엄격한 양성과정을 거쳐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다. 대부분 간호사 면허 혹은 1급 응급구조사 자격을 소지한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국가고시를 통해 전문 면허나 자격을 취득했으며 대학에서 해부학, 생리학 등 기초 의학은 물론 전문 응급질환에 대한 이론 교육을 받는다. 또한 심폐소생술, 기도삽관, 전문 의약품 투여 등 고도의 응급처치 술기를 수백 시간 이상 연마한다. 임용된 이후에도 정기적인 직무교육과 훈련을 받고, 매일 다양한 응급 현장을 마주하며 책으로는 배울 수 없는 수많은 임상 경험을 축적한다.
또한 구급대원의 모든 응급처치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등 법적 근거와 책임에 의해 이뤄진다. 이는 구급대원의 활동이 단순한 도움이 아닌 법적 보호와 책임 하에 이루어지는 전문 의료 행위임을 뜻한다.
둘째, 구급대원에게 환자를 맡겨야 한다.
사랑하는 가족이 위급할 때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마음에 환자를 흔들거나 물을 먹이는 등 섣부른 조치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혹은 구급대원의 처치 하나하나에 개입하며 불안감을 표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은 환자의 상태를 악화시키고 응급처치를 방해하는 가장 위험한 요소가 될 수 있다.
현장에 구급대원이 도착했다면 이제 환자는 가장 안전하고 전문적인 손에 맡겨진 것이다. 심정지 환자의 가슴압박과 약물 투여, 뇌졸중 환자의 의식 확인과 신속한 이송, 중증 외상 환자의 지혈ㆍ쇼크 방지 처치 등 구급대원은 현장과 구급차 내부에서 환자를 살리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이때 안타까운 마음에 섣불리 개입하기보다는 구급대원이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한 걸음 물러서서 협조하고 지원하는 게 진정으로 환자를 위한 길이다.
셋째, 구급대원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응급환자 이송 시 가장 큰 갈등은 ‘병원 선정’ 문제에서 발생한다. 보호자는 환자가 평소 다니던 병원이나 집에서 가까운 병원, 혹은 막연하게 가장 유명하다고 알려진 대형 병원만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응급의료의 핵심은 ‘가장 가깝거나 유명한 병원’이 아닌 ‘현재 환자에게 가장 적절한 치료가 가능한 최적의 병원’으로 가는 것이다. 구급대원은 ‘119 구조ㆍ구급에 관한 법률’과 관련 지침에 따라 다음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송 병원을 결정한다.
먼저 가장 우선적 확인사항인 환자의 중증도다. 급성 심근경색이 의심되면 24시간 심혈관 중재 시술이 가능한 병원으로, 급성 뇌졸중이 의심되면 신경과 전문의가 상주하며 응급 수술이 가능한 뇌졸중 센터로 이송하는 방식이다.
그 다음으로 병원의 실시간 수용 능력이다. 구급대원은 119종합상황실과 스마트 의료지도 시스템을 통해 각 병원 응급실의 혼잡도, 중환자실 여유 병상, 전문의 유무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보호자가 원하는 병원이 환자를 수용할 수 없는 상태라면 그곳으로 이송하는 일은 환자를 방치하는 것과 같다.
지역별 응급의료체계 역시 주된 판단 기준이다. 우리나라는 환자 중증도에 따라 권역응급의료센터, 지역응급의료센터 등으로 응급의료기관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있다. 구급대원은 환자 상태에 맞춰 가장 적합한 등급의 의료기관을 선정한다. 경증 환자가 무조건 최상위 응급의료센터로 몰리면 정작 중증환자가 치료받을 기회를 놓치는 ‘응급실 과밀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힘들어하는 가족을 걱정하는 보호자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응급상황에서 병원선정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다. 구급대원의 전문적인 판단을 믿고 이송 병원을 선정하는 것이야말로 환자의 골든타임을 지키고 생존율은 높이는 최선의 협조다.
응급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과정은 ‘생존의 사슬’에 비유된다. 신속한 신고, 신속한 심폐소생술, 신속한 제세동, 효과적인 전문소생술, 통합적인 심정지 후 치료가 그것이다. 구급대원은 이 사슬에서 ‘전문소생술’을 담당하는 핵심적인 고리이다. 하지만 이 고리가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적극적인 협조라는 또 다른 고리가 단단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응급상황은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다. 구급대원에게 보여준 작은 배려와 협조는 언젠가 나와 내 가족이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더 신속하고 전문적인 응급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튼튼한 사회적 기반이 될 것이다. 119구급대원은 시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24시간 깨어있다. 이제는 우리 시민들이 성숙한 의식으로 그들의 헌신에 화답해야 할 때다. 구급대원과 시민이 서로를 신뢰하고 협력할 때 우리의 소중한 골든타임은 더욱 굳건히 지켜질 것이며, 여러분의 협조가 한 생명을 살리는 기적을 만들 것이다.
양산소방서 중앙119안전센터 소방교 정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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