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이 우거지는 싱그러운 5월도 다 가는 어느 일요일 저녁. s회관 에서는 h씨의 조촐한 고희연이 열리고 있었다. 이날 고희연에는 으레 있어야 하는 차림 상(床)도 없었고, 그 앞에 한복차림으로 앉아 계신 부모님께 헌수하는 의식도 없었다.
「h선생 고희연」이란 플래카드가 벽에 걸려 있는 단상에는 탁자 1개와 의자 2개만이 있을 뿐 이였다. 이날의 주인공 내외가 앉을 자리였다.
그 옆에는 지금 한창 개그맨으로 뜨고 있다는 아들의 친구인 p씨가 보낸 화환 1개가 경축 분위기를 돋구어 주고 있었다.
그러나 150석 규모의 홀 안을 가득 메운 축하객들은 진심으로 이날의 주인공을 축하해 주었고, 그가 살아온 70년 인생 역정에 대해서 따뜻한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이날, 고희연의 자리가 만들어 지기까지 가족 간에 분분한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자녀(子女)들 중에는 “이제까지 많은 행사에 다니며 부조를 했으니 우리도 손님들을 초청해서 남부럽지 않도록 크게 잔치를 한번하자”는 의견이 주류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러나 h씨는 “내가 뭐 잘한 게 있다고 그렇게 폐를 끼치며 떠벌리겠느냐?”면서 조촐한 「가족들만의 식사」를 완강하게 주장했다.
그래서 가까운 친척들 50여명에게만 구두로 알렸는데, 연락을 받지 못한 친척들이 이를 전해 듣고 “그럴 수가 있느냐?”면서 지방에서까지 쫓아 올라와 예상치 못한 성황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초청장도 없었고, 방명록이나 접수대도 없을 뿐 아니라 의당 그 날의 주인공 내외가 가슴에 달아야 할 꽃사지 하나 없는데다, 그 흔한 꽃다발 증정도 없었다.
그러나 정작 축하객들에게 진한 감동을 안겨준 것은 이날 행사 진행의 내용이었다. 행사 중에는 유명인사의 축사도 없었고, 어느 모임에나 빠지지 않고 나타나는 각급 의원님들의 모습도 볼 수가 없었다.
먼저 인사말을 하러 앞에 나온 1남 3년 중 막내아들인 h군은 “부모님의 열심히 살아오신 모습과 어려운 집안 형편에도 불구하고 사랑으로 키워 주시고, 최고 학부까지 가르쳐주신 은혜에 감사드린다.”는 요지의 말을 하는 도중 몇 번이나 목이 메어 말을 못하고, 안경을 벗어들고 손수건으로 눈을 닦았다.
뒤이어, 미국에 체류 중인 막내딸을 제외한 두 딸이 사회자의 호명으로 앞에 나와 “저희들은 울보”라고 전제한 다음 “결혼해서 가정에 매달려 살다보니 부모님께 제대로 효도하지 못한 게 죄스럽다.”면서 끝내 울음보를 터뜨렸다.
순간, 장내는 물을 끼얹은 것처럼 숙연해 지면서 여기저기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는 모습들이 눈에 띄었다.
마지막으로 이날의 주인공인 h씨가 일어나 하객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 다음, “올바르게 자라준 자녀들이 고맙고, 모든 것이 42년간 이라는 긴 세월을 내조해준 아내의 공이 크다.”면서 모든 공을 아내에게 돌렸다.
이어서 자녀들이 마련한 선물 증정이 있은 후 「부모님 은혜」를 합창 하는 것으로 식은 끝났다. 때마침 서쪽 스타디움 지붕위로 지기 시작한 저녁 햇살이 창문으로 하나 가득히 쏟아져 들어왔다.
고희연은 축하를 해야 할지? 위로를 해야 할지? 헷갈리는 모호한 잔치이다. 70년의 긴 세월을 열심히 살아오면서 나름대로 자기의 역할을 충실히 해온 사람에게는 축하를.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앞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데 대한 위로를 해야 마땅할 것 같다.
게다가 고희(古稀)의 연령에 이르게 되면 자손들이 경제 활동의 주체가 되기 때문에 부조금을 받지 않는 것이라고 해서 요즈음 연회를 사양하는 풍조가 늘어가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아직도 얼굴만 알아도 빼놓지 않고 초청장을 돌리고 참석하는 사람의 수가 많을수록 다다익선(多多益善)이요. 유명인사가 참석하면 금상첨화(錦上添花)로 생각하며, 축하화환이 열을 지어 서있는 것이 자신의 위세를 상징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높은 단상에 앉아 기생의 권주가에 맞춰 헌수잔을 받는 그런 고희연을 보아오던 나에게, 그날 h씨의 풋풋한 가족 간의 애정이 넘치는 검소한 고희연은 싱그러운 신록의 내음 보다도 상큼한 느낌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