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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해내지 못할 과한 계획을 세우면 결국 중도에 포기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난 할 수 있어, 이 정도까진 할 수 있어’와 같은 마음을 먹으면 뜻대로 된다.
어떤 일의 결과가 실패로 나타난다면 그건 튼튼한 계획으로 준비한 게 아니라 실패를 준비한 것과 같다. 실패엔 이유가 있다. 하던 걸 중단하거나 포기하면 실패한다.
어설픈 노력으로 일을 풀어 나가려다가 힘에 부치면 멈춰버려서 실패한다. 또 너무 광범위하고 무모한 계획을 세워 결승점이 보이지 않으면 포기하게 돼 실패한다. 다들 경험이 있을 거다.
특히 흡연자는 매년 새해가 밝으면 신년 계획이랍시고 금연에 나선다. 하지만 대부분 작심삼일에 그치고 만다. 의지가 없어서일까 계획이 막연해서일까. 물론 습관을 바꾸려면 의지와 계획이 있어야 한다. 어떤 목표를 설정하고 어떻게 이뤄 나가야 실패하지 않을지는 사실 스스로가 더 잘 안다.
평소 “난 할 수 있다”고 외치지만 막상 닥치는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이 정도는 이룰 수 있다고 세웠던 계획이지만 수정해야 할 때가 있다. 때론 시행착오 때문에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화재현장 조사도 예외는 아니다. 한정된 공간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땐 ‘이 정도야 쉽지’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현장을 확인하다 보면 전혀 엉뚱한 현실에 부딪힌다.
가연물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연소 현상은 해석이 안 될 때가 있다. 많은 경험칙과 현장에 맞는 논리, 아니 억지로 맞추기 위한 논리를 적용해 보기도 하고 증거와 발화지점을 연결하려 해봐도 연소의 연속성이 확인되지 않는다.
이런 경우 화재조사관은 참 답답한 심정이 된다. 화재 원인을 현장에서 척척 해결하고 싶은 마음은 대한민국 화재조사관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다. 하지만 화재현장은 정해진 방향으로 연소하지 않는다.
가연물의 양과 종류, 적재 형태, 공기 유입 경로 등이 연소 방향을 결정하기에 현장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화재조사관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최성기나 전소 형태로 잔류해 있다면 더 어려울 수 있다.
화재조사관은 화염이 모두 사라진 현장에서 잔류한 연소 형태로 발화지점을 조사한다. 잔류한 연소 형태를 역추적해 발화지점을 찾아내고 그 지점에서 가장 발화 열원에 가까운 요인을 확인한다.
문제는 화재조사관의 노력에도 끝까지 원인이 규명되지 않는 현장이 많다는 점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찾을 수 없는 발화 열원과 요인이 있다.
어느 해 완연한 봄, 비닐하우스에서 발생한 화재다. 화재 원인을 쉽게 규명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세 차례에 걸친 현장 조사에도 화재 열원이나 요인을 찾을 수 없었다. 사실 발화지점을 규명하기조차 어려웠다.
비닐하우스를 사무실과 창고, 공장으로 사용하던 업체 세 곳이 모두 전소했다. 비닐하우스는 일단 화재가 시작되면 가연물과 관계없이 대부분 전소된다. 내부에 가연물이 많다면 더 그렇다.
화재 전 상황
일반적으로 비닐하우스는 사람과 차량의 왕래가 적은 곳에 축조된다. 주변 도로를 통행하는 차량은 가끔 있었지만 창고에 출입한 사람은 없었던 게 인근 CCTV를 통해 확인됐다.
현장에 설치된 무인경비 시스템에선 오전 6시 45분 정전 신호가 발생했고 당시 세 업체엔 모두 사람이 없었다. 화재 신고 시간은 오전 6시 51분이다.
화재조사관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비닐하우스는 물론이고 컨테이너, 자동차가 모두 연소하고 있었다. 어디가 발화지점이고 어디가 연소 확대 부분인지 확인이 어려웠다.
[사진 2]를 보면 바람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듯하다. 하지만 화재현장은 대류가 있어 풍향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 다만 대류가 없는 지점에서 풍하(風下)를 확인하면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장에선 화열에 의해 공기가 데워지고 대류 현상이 일어나거나 와류가 형성된다. 심하면 선풍(旋風)에 의해 기류가 바뀌기도 한다. 풍향과 풍동을 잘 살펴야 한다.
각 동의 연소 형상을 확인하라!
비닐하우스는 세 개 업체가 점유 중이었다. 점유한 지점별 연소 형태를 확인해야 한다. 첫 번째 확인 대상은 A 업체다. 비닐하우스와 컨테이너를 사용하고 있었고 어디가 먼저 연소했는지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모두 타 버렸다.
A 업체는 장난감을 보관ㆍ유통하는 곳이다. 특정되는 발화 열원은 관찰되지 않았다. 가연물이 소락ㆍ응착돼 발굴하지 못할 정도였다.
연소 형태는 전소이고 연기 방향으로 봤을 때 바람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불었다. 전면 출입문 형태는 수열에 의해 도색이 모두 소실돼 회색빛으로 식별된다.
D 업체는 연소 확대로 인해 일부만 소훼된 형태다. 비닐하우스도 일부 잔류해 있고 컨테이너엔 수열 흔적이 관찰되지 않았다. A 업체와 B 업체는 전소돼 비닐하우스 철골을 철거한 모습이다.
주변에 숨은 증거를 찾아라!
ADT캡스 정전 신호를 확인하기 위해 인입 전선을 먼저 본 뒤 각각에 설치된 계량기ㆍ차단기를 살폈다. [사진 9]는 A 업체 측면 전봇대에 있던 계량기와 메인 차단기다. D 업체와 B 업체가 함께 사용했다.
B 업체 무인경비 시스템 신호 내역에선 화재 전일 오후 5시 59분 Close와 다음 날 오전 6시 46분에 AC Loss가 확인된다. 즉 오전 6시 46분께 전원이 단전됐다. 단전은 내부 전기에서 이상이 발생했기 때문일 수도, 외부에서 끌어들여지는 전기 문제일 수도 있다.
[사진 11]에서 B 업체 차단기가 ON 상태로 확인된 건 인입 전선에 이상이 발생해 단전된 형태로 해석했다. 비닐하우스와 컨테이너에 설치된 열 감지기, 출입문 감지기 등은 전혀 작동하지 않은 상태였다.
D 업체 무인경비 시스템 신호 내역이다. 오전 6시 45분에 정전 신호가 확인된다. 현장에 출동한 무인경비 시스템 직원 휴대폰에 있는 내용을 촬영했다. 화재 감지 내역 없이 정전 신호가 접수된 건 전원에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현장의 CCTV 촬영 각을 확인하라
또 다른 각도에서 촬영 각과 연기 목격지점을 확인하기 위해 원거리에서 비교했다. CCTV와 연기가 분출한 부분을 촬영했다. 적색으로 표시된 부분에서 연기가 분출됐다. 발화지점을 추론하기 위해 여러 각도에서 연기 목격지점을 확인했다.
화염이나 화재 징후는 관찰되지 않았다. 사진의 적색 사각 부분은 태양 빛 반사가 없고 어두운 형태로 관찰된다. 이는 내부에서 연소하는 검은 연기에 의해 빛의 투과성이 저하돼 음영이 형성된 거로 해석했다.
적색 사각 부분을 보면 비닐하우스가 복사열에 의해 연소하며 백색 연기를 분출하는 모습이 관찰된다. CCTV 촬영 각도와 설치 위치, 목격자 진술, 주변 CCTV, 무인경비 시스템 신호 내역 등을 종합해 발화지점을 규명했다.
발화지점과 연소 확대 경로를 확인하라
초기 목격자 박 씨는 인근 유통업체 직원이다. 거래처로 이동하던 중 비닐하우스 전면에서 연기와 화염이 올라오는 걸 목격하고 신고했다는 진술이 있었다.
두 번째 목격자인 이 씨는 두 번째 비닐하우스 앞면과 다섯 번째 파이프까지 연소 중이었다고 진술했다. 또 다른 목격자 최 씨는 두 번째 비닐하우스 중간 앞부분에서 불길이 빨갛게 지붕 밖으로 올라왔다고 했다.
오전 6시 44분께 연기 분출이 확인되는 점과 D 업체 무인경비 시스템에 오전 6시 45분께 정전 신고가 기록된 점, B 업체 무인경비 시스템 정전 신호는 오전 6시 46분에 기록된 점, A 업체 무인경비 시스템은 전혀 작동하지 않은 점, 전기가 연결된 전봇대는 A 업체 측면 전봇대에서 B 업체, C 업체 방향으로 연결된 점 등으로 볼 때 비닐하우스 외부에서 발화돼 비닐하우스와 컨테이너로 연소 확대한 거로 추정했다.
화재 원인을 검토하라
시청 CCTV와 피아노 창고 CCTV를 확인한 결과 오전 6시 30분 이후 비닐하우스 인근을 출입한 사람은 없다. 또 B 업체와 D 업체에 설치된 무인경비 시스템이 있어 침입은 없었던 거로 확인됐다.
A 업체의 경우 화재 발생 전일 무인경비 시스템의 경계가 확인된다. 화재 발생으로 전소될 때까지 선로 이상 등은 나타나지 않았다. 선로의 이상이나 무인경비 시스템에서 신호경계를 해제하고 경계했을 개연성도 있지만 화재로 인해 경제적 손실이 크게 발생한 만큼 내부인에 의한 개연성은 적을 거로 판단했다.
최초 연기가 목격된 시간이 오전 6시 44분이고 연기가 흰색인 걸 고려할 때 종이류가 소훼된 거로 판단되지만 단정할 순 없다.
외부에서 발화된 형상으로 불특정인이 불을 붙였을 개연성도 있다. 하지만 시청 CCTV나 피아노 창고 CCTV로는 비닐하우스 주변에 출입하는 사람이 확인되지 않기에 방화 가능성은 적을 거로 생각했다.
전선은 A 업체 측면 전봇대에서 A 업체와 B 업체, C 업체 등으로 연결됐다. D 업체의 단전 신호는 오전 6시 45분 33초로 확인됐다.
B 업체의 단전 신호는 오전 6시 46분 17초다. 전선이 A 업체 방향에서 연결된 걸 고려할 때 단전 신호가 약 44초 차이 나는 건 A 업체 방향에서 화염에 의해 B 업체, D 업체로 연결되는 전선에 이상이 생겨 단전된 거로 해석했다.
단전 시간은 최초 연기가 목격된 오전 6시 44분 이후 발생한 거로 확인된다. A 업체와 B 업체, C 업체의 소훼 상태가 심해 전기적 요인을 논하기 어려웠다.
비닐하우스는 철골조만 남고 완전히 소실된 상태다. 컨테이너 내부 집기류도 전부 연소됐다. 잔류된 형상만으로 관계자들의 부주의 개연성을 논하긴 어렵다. 기타 다른 요인도 살펴봤지만 특정되는 원인이나 발열 가능성이 있는 열원은 확인되지 않았다.
화재지점 남쪽과 북쪽에서 촬영한 장면이다. 카메라 촬영 각과 최초 연기가 목격된 지점을 추론해 정방향과 역방향으로 촬영 각을 확인했다. 교차하는 지점을 발화지점으로 추론했다.
결론
관계자와 최초 목격자 진술을 참고하고 시청 CCTV에 촬영된 최초 연기를 확인했다. 위성지도와 현장 사진을 촬영하고 도면을 작성해 연기가 올라온 각도를 추론한 후 발화지점을 추정했다.
D 업체와 B 업체 무인경비 시스템에서는 단전 신호가 각각 오전 6시 45분, 오전 6시 46분으로 확인된다. 최초 신고자 박 씨는 차량 운전자로 도로를 지나가면서 신고했고 첫 번째 비닐하우스 컨테이너 구석에서 불꽃이 보였다고 했다.
두 번째 신고자 이 씨는 오전 6시 52분께 차량을 멈추고 컨테이너 앞에서 신고하면서 B 업체 오른쪽 부분 앞면과 다섯 번째 파이프까지 연소 중이라고 했다.
세 번째 신고자 심 씨는 철길 주변에서 일하다가 세 번째 비닐하우스와 두 번째 비닐하우스 중간 부근에 나무 테이블 같은 게 타면서 C 업체 비닐하우스 벽면부터 연소하는 것 같다고 진술했다.
네 번째 신고자는 뒤편 비닐하우스 공장 관계자로 비닐하우스 뒤편에서 볼 때 왼쪽 두 번째 비닐하우스 지붕 중간에서 뒤편으로 연소 중이었다고 진술했다.
관계자에게 확인한 결과 전기선은 A 업체 컨테이너 뒤쪽에서 두 개로 연결돼 한 개는 A 업체 전용으로 사용 중이었다. 다른 한 개는 B 업체와 C 업체, D 업체로 연결돼 있었다.
백색 연기가 약 5초간 목격된 지점은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최초 신고자 박 씨의 진술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최초 연기가 목격된 시간과 최초 신고 시간은 약 7분의 차이가 난다.
A 업체와 B 업체, D 업체엔 무인경비 시스템이 설치돼 있었고 모두 열이나 침입 감지가 없었다. 화염이 비닐하우스 내부에서 발생한 게 아니라 비닐하우스 외부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A 업체의 무인경비 시스템 감지신호가 전혀 없었다는 건 의문이 남는다. 다만 신호가 전혀 없었던 걸 추론해 보면 비닐하우스와 컨테이너 외부에서 미상의 원인으로 화재가 발생해 무인경비 시스템의 통신선이 먼저 소훼됐을 가능성이 있다.
B 업체와 D 업체의 정전 신호는 차이가 있지만 업체별 신호 내역 통보 시간 지연에서 오는 현상일 수 있다. A 업체 컨테이너 위 전봇대에 연결된 전원선이 A 업체, B 업체, C 업체, D 업체 순으로 연결돼 있었다.
비닐하우스 외부에서 먼저 화재가 발생해 화염에 의해 전원선이 소훼ㆍ단전돼 감지된 신호로 판단된다. 조사 내용을 종합할 때 최초 목격자가 진술한 첫 번째 비닐하우스와 컨테이너 사이에서 미상의 원인에 의해 발생한 화재로 추정된다.
경기 부천소방서 이종인 : allway@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6년 3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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