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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조사관 이야기] “안전 불감증인가? 대담한 작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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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부천소방서 이종인 | 기사입력 2025/02/06 [10:00]

[화재조사관 이야기] “안전 불감증인가? 대담한 작업인가?”

경기 부천소방서 이종인 | 입력 : 2025/02/06 [10:00]

평소 우린 일상처럼 지나던 일은 자연스레 지나치곤 한다. 그 일이 잘못됐는지는 사고가 생기고 나서야 알 수 있다. 스스럼없이 지내다가도 안전사고나 화재 사고가 발생하면 그 메커니즘(Mechanism)을 한번 되짚어 본다. 

 

‘공장에서는 작업공정에 문제가 있었나?’ 하고 잘못된 부분을 찾지만 도무지 찾을 수 없다. ‘평소에 아무 일 없이 안전하게 수행하던 일인데 뭐가 잘못됐지?’ 다시 생각하고 생각해도 잘못된 부분을 찾기 쉽지 않다. 

 

사고는 평소 작업공정을 순리대로 한 게 아니라 무언가 하나 첨가하거나 빠뜨린 데서 발생한다. 건초더미에서 흡연하지 않는다든지, 주유소에서 휘발유 자동차의 시동은 끄고 주유한다든지 하는 행동은 평소 자연스럽고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흡연자들은 각자의 기호에 맞춰 담배를 피우는 습관이 있다. 흡연 후 담배꽁초 처리는 어떨까? 잔염을 완전히 제거하고 재 처리를 안전하게 하는 애연가가 있는가 하면 담배꽁초를 휙~ 방치하는 애연가도 있다.

 

화물차 운전자가 운전 도중 다 피운 담배꽁초를 던졌는데 풍동1)에 의해 화물차 적재함으로 떨어져 화재가 발생한 일도 있다. 평소에 담배꽁초를 차창 밖으로 던져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서 한 행동이겠지만 막상 화재가 발생하면 책임을 전가 또는 회피하려고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담배 피우고 재떨이에 담뱃불을 껐어요”

“주변을 지나는 다른 차량에서 던진 담배꽁초예요”

 

그런데 달리는 자동차에서 담배꽁초를 던지면 자신이 운전하는 자동차로 회항하는 현상이 풍동이다. 다른 차에서 담배꽁초를 던지면 속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운전하는 자동차로 떨어지기 쉽지 않다.

 

어느 해 춘삼월 작업장에서 발생한 화재다. 작업자는 “평소와 같이 작업을 진행했고 작업하다 보니 타는 냄새가 나서 화재를 인지했다”고 했다. 화재 발생 장소는 폐플라스틱 재활용 과정을 진행하는 작업장이었다. 폐플라스틱을 분류해 파쇄하는 단순한 작업공정이다. 

 

하지만 작업 과정은 여러 가지 악재가 있고 변수가 있다. 폐플라스틱을 분류하기 위해 컨베이어 벨트로 운반하면서 플라스틱을 분류한다.

 

목격자 진술

신고자 문 씨는 2층 작업장에서 폐플라스틱 분류 작업을 하던 중 타는 냄새가 나서 1층으로 내려가 보니 폐플라스틱을 저장하는 장소에서 불꽃과 연기가 발생하고 있어 119에 신고했다고 진술했다. 작업공정에 폐플라스틱을 운반하고 분류ㆍ파쇄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냄새가 난다. 때론 악취가 나기도 한다.

 

작업공정을 확인하라!

작업장은 폐플라스틱을 수집해 오면 선별 작업을 거쳐 2층의 분류 장치로 옮긴 후 두 번째 분류 작업을 한다.

 

▲ [사진 1] 작업장 내부


작업장 내부는 컨베이어 벨트로 연결되고 1층과 2층으로 구분돼 있다. [사진 1]을 보면 왼쪽 2층 분류 장치와 플라스틱 저장소 주변을 중심으로 소훼됐다.

 

▲ [사진 2] 창고 배치도

 

플라스틱 저장소는 창고 1번부터 5번으로 구획해 운영하고 있었다. 화재 현장은 전체적으로 소훼되고 연소 진행 중이었다.

 

작업장 내부 가연물 위치를 확인하라!

작업장은 건물과 가설건축물로 축조돼 있다. 건물보다 가설건축물의 크기가 크고 더 많이 활용했다.

 

▲ [사진 3] 내부 전경


작업장 내부에 빼곡히 상당히 많은 양의 폐플라스틱이 쌓여 있다. 건축물은 364㎡이며 가설건축물은 본 건물의 5배 정도 축조해 사용했다.

 

▲ [사진 4] 외부 탄화 정도


외부 탄화 정도는 미미한 것으로 식별된다. 선착 소방대가 도착해 신속하게 연소 확대를 저지하면서 가설건축물 일부가 소실되고 주변으로 연소 확대는 없었다.

 

연소 확대됐다면 위 평면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일대가 전소했을 가능성도 있다. 건물 전체가 가연물로 가득 차 있었기에 연소 확대가 돼도 이상할 리 없는 현장이었다.

 

▲ [사진 5] 컨베이어 벨트

 

테이블 하단의 컨베이어 벨트는 탄화하지 않은 채 원형으로 잔류해 있다. 수열 형태는 관찰되지 않았다. [사진 5]의 왼쪽 사진 끝부분이 오른쪽 적색 원 부분이다. 적색 원 부분의 컨베이어 벨트는 소실됐다.

 

연소 방향성을 살펴라!

연소 방향성은 그리 어렵지 않게 식별할 수 있다. 그러나 확실한 증거와 물증, 특별한 형태를 찾다 보면 진정한 증거를 못 찾을 수 있다.

 

▲ [사진 6] 연소 방향성


사물을 살피다 보면 주변과 차이가 있는 듯 없는 듯한 증거들이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사진 6]에서 대형 자루(Ton bag) 표면에 잔류한 형태를 볼 때 오른쪽 아래에서 왼쪽 위로 연소 진행 형태가 잔류해 있다.

 

물론 연소 패턴을 100% 맹신할 수 없지만 현장의 가연물 형태와 공기의 유동을 고려해 연소 방향성을 논하면 쉽다. 단순하게 연소 패턴만 보고 연소의 방향성을 결정짓는 건 오류가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 [사진 7] 변색 흔적

 

‘H’ 빔과 샌드위치 패널의 변색 흔적이 관찰된다. 샌드위치 패널은 장시간 수열에 의한 변색ㆍ탄화 형태가 관찰되고 ‘H’ 빔도 가장 많은 수열을 받은 상단이 밝은색으로 식별됐다. 이러한 형태는 연소 패턴을 해석할 때 오판할 수 있다. 

 

[사진 7]을 보면 화염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했는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했는가 하는 문제에 봉착한다. 이 경우 ‘H’ 빔의 수열 형태만을 읽지 말고 화재 현장 전체를 해석한 후 화염 이동 방향을 확인해야 한다. ‘H’ 빔에 잔류한 형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진행된 패턴이 잔류해 있다.

 

‘H’ 빔 상단은 수열을 많이 받아 밝은색으로 식별된다. 하얗게 탄화된 부분이 완전히 연소한 형태로 흔히 ‘백화현상’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백화현상은 이러한 형태가 아니다. 백화현상은 Chlorosis Phenomenon이나 Perfect Combustion Phenomenon이라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이다. 

 

미국화재예방협회(NFPA) 화재 매뉴얼 코드 NFPA 921에서 Clean Burn이라고 표현한 건 완전한 연소로 인한 ‘깨끗한 화상’이란 뜻으로 깨끗하게 연소한 흔적, 더 연소하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번역 과정에서 완전하게 연소한 흔적, 즉 하얗게 밝은 형상을 보고 ‘백화현상’이라고 해석해 오류가 있다. 산호말이 번성했다가 죽으면 석회 성분인 탄산칼슘 때문에 하얗게 보이는데 이를 백화현상이라고 한다.

 

이 화재 현장에서는 컨베이어 벨트 부분 철재에서 적색으로 변한 철재와 군청색으로 변한 철재가 관찰되고 컨베이어 벨트는 완전히 소실된 형태였다. 철재의 적 산화는 수열 받은 상태에서 진압 수에 의해 표면이 급격하게 냉각되고 산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군청색은 장시간 수열이 가해지고 수분이나 다른 물체의 접촉 없이 화염이 전파된 형태로 해석된다. 컨베이어 벨트 하단 부분을 발굴하면서 식별된 모터 전원선에서 전기적 특이점인 용융점이 관찰됐다.

 

▲ [사진 8] 모터 전원선


컨베이어 벨트 구동 모터 전원선에서 식별된 특이점은 단락 흔적으로 보였다.

 

▲ [사진 9] 발화지점


목격자 문 씨가 불꽃과 연기를 목격한 지점이다. 불꽃을 목격한 지점 하단으로 컨베이어 벨트가 지나고 있었다. ‘H’ 빔에 잔류한 형태와 목격자 문 씨가 진술한 화염의 위치를 비교해 일치한다면 발화지점이 맞다.

 

▲ [사진 10] 변색 흔적

 

‘H’ 빔에 잔류한 형태에서 문 씨의 진술과 일치하는 패턴이 식별된다. 이 현장은 전기적 요인이 식별되고 목격자가 불꽃을 봤다고 진술한 지점이 일치해 발화지점과 원인이 특정되는 듯했다. 

 

그러나 전선 피복이 손상되고 전기적 아크(Arc)에 의해 연소가 시작된다면 분명 원인이 있을 거다. 전선이 절연 열화된다든지, 압착에 의한 손상이 있든지, 외력에 의해 전선 피복이 손상된다든지 하는 원인이 있다. 

 

현장을 조사하던 중 진술과 패턴은 일치하는데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 ‘왜 바닥에 고이 놓여 있던 전선 중간에서 단락이 발생했을까?’ 하는 의문점이 드는 건 화재조사관의 촉이라고 해야 할까?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현장을 자세히 조사하던 중 현장에 CCTV가 설치됐던 걸 알게 됐다. 다행히 셋톱 박스(Set-up Box)가 화재지점과 떨어진 사무실에 있어 화재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사진 11] 불꽃 발생

 

CCTV 확인 결과 발화지점으로 추정된 지점 인근에서 불꽃이 확인된다. 자세히 살펴보니 작업자 2명이 보이고 작업을 하다 불티가 낙하하는 모습이 관찰된다. 작업자 문 씨가 불꽃을 목격했다고 한 지점은 자신들이 작업하던 중 불티가 낙하한 지점이다.

 

▲ [사진 12] 불꽃 비산

 

▲ [사진 13] 화염 확인

 

▲ [사진 14] 화염 성장


작업자가 토치 작업 중 비산ㆍ낙하한 불티가 하단 가연물에 착화해 발화한 화재였다.

▲ [사진 15] 작업 도구


작업자 문 씨가 사용했던 작업 도구다.

▲ [사진 16] 작업 지점


백색 사각 부분이 토치를 이용해 작업하던 곳으로 추정된다. 분쇄기 구성 요인은 화재로 인해 변경됐다. 목격자 문 씨가 분쇄기 상단에서 토치로 어떤 작업을 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 [사진 17] 작업 지점


분쇄기 일부가 화재로 인해 변형된 형태다. 불꽃이 오른쪽으로 떨어져 연소하면서 측면의 샌드위치 패널이 모두 소실돼 있었다.

 

전체적인 연소 패턴이 그려진다. ‘H’ 빔에 잔류한 형태가 분쇄기 방향에서 건물 밖으로 출화한 형태인 게 의문이었는데 CCTV 영상을 보고 나니 발화지점이나 연소 확대한 형상이 이해됐다.

 

▲ [사진 18] 작업 지점

 

분쇄기가 있고 하단에 가연물이 산만하게 적치돼 있다. 분쇄기 상단에서 불티가 비산해 하단에 있던 폐자재에 착화한 상황이었다. 목격자 문 씨가 화염을 목격했다고 한 지점과 실제 발화지점이 다른 건 낙하한 불티에 의해 가연물이 연소하며 확대되는 과정에서 오인한 거로 해석됐다.

 

작업자가 처음부터 화재 발생 경로를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은 건 작업공정의 잘못을 은폐하려 했던 거로 이해된다.

 

원인 검토

CCTV 영상에서 불티가 낙하하고 가연물에 착화해 연소가 시작되는 게 확인된다. 따라서 자연적 요인이나 화학적 요인을 배제할 수 있다. 방화 가능성은 CCTV에서 확인되듯 방화 개념보다는 안전 불감증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다. 

 

가연물이 가득 쌓인 형태에서 불티가 비산하는 작업을 할 때 방호조치를 하지 않은 건 안전 의식이 결여된 행태다. 컨베이어 벨트 모터 전원선에서 단락 흔적이 식별됐으나 불티가 비산되면서 가연물이 연소했고 전원선 피복이 손상돼 형성된 2차 증거로 확인됐다.

 

작업자들은 작업에 몰두했는지 불티가 낙하하고 연소하는 과정에서 불티가 비산되고 5분 후 불빛이 목격될 때까지 화재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화염이 수직으로 성장하며 확대하는 과정에서 화재를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 

 

결론

작업장에서 발화한 화재로 관계자 진술과 최초목격자의 진술을 참고해 현장 CCTV 영상과 잔류 된 연소 패턴, 현장의 미연소 잔류물, 철재 수열 흔적, 집중 탄화된 지점 등을 관찰하고 발화부를 추정한다. 

 

작업장은 폐플라스틱을 분류해 파쇄하는 작업공정이다. 2층 높이 작업장에서 플라스틱을 분류하는 작업 중 타는 냄새가 나서 1층으로 내려가 확인하니 컨베이어 벨트 위 플라스틱을 저장하는 장소에서 연기와 불꽃이 발생하는 걸 보고 신고했다는 신고자 문 씨의 진술이 있다.

 

화재 발생 전 폐플라스틱 저장소 내부 분쇄기 작업대에서 토치 작업 중 불꽃이 비산돼 가연물이 연소하고 불꽃이 피어오르는 부분이 일치하는 점, 최초 연기와 불꽃을 목격한 지점에서 전기적 특이점이 식별되나 토치 작업 중 불꽃이 낙하하고 약 5분 후부터 불빛과 화염이 목격된 점으로 볼 때 인적 부주의 때문에 발생한 화재로 판단했다.

 

목격자 진술을 맹신하기보다는 참고만 하길 권장한다. 화재조사관이 현장을 조사하고 목격자 진술과 연소 패턴, 화재조사관 의견, 가연물 위치, 공기 유입경로, 주변 CCTV나 자동차 블랙박스 등을 종합해 발화지점을 판단해야 오류를 좁혀 갈 수 있다. 

 

필자도 처음 화재조사관의 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 여기저기 문의하고 참고서적을 봤지만 현장을 해석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한때는 현장을 조사할 때 목격자의 진술이 최고라는 생각을 갖고 그 진술에 의존한 기억이 있다.

 

목격자 진술이 일치할 때도 있지만 이해관계에 따라 진술이 번복되거나 발화지점이 바뀌는 걸 여러 번 경험했다. 화재조사관이라면 화재 현장에서 화염의 방향이나 연소 흔적을 정확하게 해석하고 현장을 지면에 그대로 옮겨야 한다. 그렇게 가장 바람직한 조사보고서를 작성하길 바란다.

 

 


1) 풍동(Wind tunnel): 인공적으로 기류를 일으키는 장치(자동차가 주행 중 공기의 흐름이 빠르고 센 기류를 형성한다.)

 

경기 김포소방서_ 이종인 : allway@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2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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