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광고

[Hot!119] "묵묵히 현장을 지키며 꾸준히 시를 쓰고 싶습니다"

‘내일의 한국작가상’ 수상한
소방관 시인,
문경수 서울 동대문소방서 소방교

광고
최누리 기자 | 기사입력 2026/04/03 [10:00]

[Hot!119] "묵묵히 현장을 지키며 꾸준히 시를 쓰고 싶습니다"

‘내일의 한국작가상’ 수상한
소방관 시인,
문경수 서울 동대문소방서 소방교

최누리 기자 | 입력 : 2026/04/03 [10:00]

 

“처음엔 실감이 나지 않아 어안이 벙벙했어요. 부족한 후배의 가능성을 믿어주신 한국작가회의 선배님들, 첫 시집 출간에 도움을 주신 ‘걷는사람’의 김성규 대표님과 김안녕 시인, 그리고 대학 시절 시의 길을 열어주신 장이지 교수님 등 고마운 얼굴이 먼저 스쳤습니다. 그분들의 따뜻한 격려 덕분에 현장의 고단함에 매몰되지 않고 계속 써 내려갈 수 있었어요”

 

치열한 문학정신과 사회적 실천을 보여준 젊은 작가에게 수여되는 ‘내일의 한국작가상’. 한국작가회의 선배 작가들이 후배 문인을 격려하기 위해 마련한 이 상의 10회 수상자로 서울 동대문소방서 구급대원인 문경수 소방교가 선정됐다.

 

 

소방관이 되기 전 문 소방교는 공군 부사관으로 복무하면서 휴일마다 대형 서점에 들렀다. 명확한 의미는 알 수 없지만 시집을 사서 읽는 게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막연히 시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조금씩 키웠다.

 

2017년 전역한 후 대학교에 복학했을 땐 시 관련 수업을 들으면서 시인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2018년엔 4개월간 인터넷 언론사에서 기자로 일하며 글에 대한 감각을 익혔다.

 

그러나 시인이 되기 위한 현실의 벽은 높았다. 정해진 기준이 없다 보니 언제 시인이 될지 알 수 없다는 막연함에 불안한 마음이 커졌다. 잠시 꿈을 접고 취업에 집중했지만 수차례 낙방했다. 그때 구급대원으로 근무하는 고등학교 동창이 권유해 소방관이란 직업에 관심을 두게 됐다.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직업이라 고민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친구가 직업에 대한 만족도나 보람이 크다고 해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시인이란 꿈은 정량적인 평가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반면 소방관 시험은 정량적인 프로토콜이 존재하죠. 일주일 중 6일은 소방 시험공부에 매달렸고 남은 하루는 취미 삼아 시를 썼어요. 그렇게 틈틈이 모은 시로 응모해 2019년에 신인상을 받아 먼저 등단했고 2020년 소방관 시험에 최종 합격했습니다”

 


친구의 말처럼 막상 마주한 현장에서의 보람은 컸지만 육체적 피로도가 상당했다. 바쁠 땐 하루에 십수 번 울리는 출동 벨 탓에 쉴새 없이 현장으로 출동해야 했다. 육체적인 피로와 더불어 그를 힘들게 한 건 현장에서 마주하게 되는 무력감이었다.

 

 

“보통 환자 이송은 구급대원의 임무잖아요. 겉보기엔 소관 업무를 잘하면 모든 게 끝난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돌봄 부재나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분들이 생각보다 많거든요.

 

다만 이런 문제는 소방관 몇 명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여기서 무력감을 느끼곤 합니다. 이 부분이 ‘시’라는 구체적인 언어로 나타난 게 아닌가 싶어요”

 

소방관 준비 때부터의 기록과 감정들은 긴 시간을 통해 50여 편의 시가 됐고 약 5년의 세월을 거쳐 2024년 ‘틀림없는 내가 될 때까지’란 한 권의 시집으로 탄생했다. 고된 근무 환경에서도 비번 날 틈을 내 집필 작업에 몰입한 결과물이다.

 

 

인내 끝에 세상 밖으로 나온 ‘틀림없는 내가 될 때까지’는 타자의 고통을 섣불리 단정 짓지 않고 온전한 자신을 마주하려는 노력이 투영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염두에 두고 쓴 건 아닙니다. 판단은 독자 스스로가 하길 바라고 있어요. 다만 시를 쓰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어떻게 나를 말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치기 어린 지난 날일 수 있고 앞으로의 염원일 수 있겠죠”

 

이제 그에게는 ‘소방관 시인’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런데도 그는 동요하지 않고 여전히 한 명의 구급대원으로서 현장을 지키고 있다. 소방관으로서, 시인으로서 둘 중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감 있게 모두 잘 해내고 싶다는 문경수 소방교.

 


“독특하게 보일 수 있지만 제가 전혀 특별하다고 생각지 않아요. 소방관으로서 동료들과 현장 활동하고, 좋은 추억을 쌓고, 우애를 다지면서 생활하고 싶습니다. 어떤 보직을 받든 시 쓰기도 게을리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다 보면 두 번째 시집도 발간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하트세이버

―준환에게

 

죽고 싶다며 눈감는 사람의 가슴을 함부로 짓이겨도 되는 걸까

   

신고를 받고 출동한 그는 잠긴 문 너머를 상상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까만 동공에 심어 둔 투시경이 두꺼운 갑종방화문을 뚫는다.

   

젖은 옷이 담긴 세탁기 옆 쏟아진 수면제, 삐뚠 글씨로 적은 비문 가득한 유서, 

몇 통의 부재중 전화……

   

갈빗대가 으스러지도록 식어 가는 사람을 누르며 무표정으로 스스로를 향해 “우리의 인생은 왜, 왜! 이토록 허무한 겁니까!”

   

다려진 셔츠를 붙들고 단추가 뜯어지도록 외치지 않으면

   

심장이 멈출까 덜컥 대답을 들어 버릴까

   

손발 구르는 동안 검은 비닐봉지 밖으로 삐져나온 짓무른 귤 두 개 푸른곰팡이 슬고 있다.

   

빨간 십자가 문을 열고 사라진 사람은 소식이 없다

   

그나저나 이 사람 그때 밥은 먹었으려나

 

문경수, ‘틀림없는 내가 될 때까지’, 걷는사람, 2024.

 

최누리 기자 nuri@fpn119.c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6년 4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119플러스 정기 구독 신청 바로가기

119플러스 네이버스토어 구독 신청 바로가기

Hot!119 관련기사목록
광고
[연속 기획]
[연속 기획- 화마를 물리치는 건축자재 ⑧] 내화채움구조 넘어 종합 방화솔루션 기업으로의 도약 꿈꾸는 아그니코리아(주)
1/4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