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조사로 드러난 K사의 불법 불꽃감지기 유통 사실은 소방산업 전반에 큰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특수 기술이 반영된 고가의 화재감지기를 생산하는 특정 업체가 불량 제품을 유통시킨 것도 모자라 소방용품의 제품검사를 실시하는 소방산업기술원의 감독을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 피해 나갔다.
소방산업기술원이 경찰로부터 의뢰받아 실시한 시험결과를 보면 K사가 보급한 불꽃감지기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소방산업기술원의 제품검사를 받은 후 임의로 센서와 회로기판을 교체했고 내부감도 프로그램을 임의로 변경하기도 했다. 기판 교체와 내부 감도 프로그램 조작은 관련법(소방시설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사항으로 관련 제품의 형식승인 취소는 물론 해당 관계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중범죄다.
K사가 제품검사 이후 센서와 회로기판을 바꿔치기하고 검사 과정에서 시험체를 조작하려 했던 비양심적 행위는 가중처벌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감도 프로그램(감도조절 스위치)의 변경은 관련 분야 관계자들 대부분이 인정할 정도로 보편화된 상황이어서 관련 업계와 분야 관계자들은 이번 사건의 파장이 어디까지 튈지 긴장하는 분위기다.
현장에 설치되거나 유통되는 불꽃감지기의 잦은 비화재보(화재가 아닌 다른 요인에 의해 감지기가 작동하는 것)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감도조절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꽃감지기의 감도조절 실태는 불꽃감지기 생산 업체들의 매뉴얼에 상세한 조절 방법까지 표기될 정도로 보편적인 사실이다.
소방용품은 법에서 정한 기술기준에 맞춰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에 검정(제품검사) 이후 감도를 임의로 조절하는 것은 엄연히 불법이다. 그럼에도 왜 지금까지 불꽃감지기가 보급되는 과정이나 설치 현장에서 감도를 조절하는 행태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
FPN(소방방재신문)은 경찰 조사로 드러난 불량 불꽃감지기 사건을 계기로 국내 불꽃감지기의 감도조절 실태를 들여다 보고 근본적인 문제점과 해결방안은 없는지 긴급 진단했다.
불꽃감지기는 양치기 소년?
불꽃감지기는 최소 60만원 대의 저가 제품에서 많게는 200만원이 넘는 고가의 제품까지 다양한 제품들이 보급된다. 최초 불꽃감지기의 국산화가 이뤄진 2000년대 초반부터 수많은 산업현장에서 사용되던 미국산 불꽃감지기는 국산 제품들로 대체되고 있다.
소방산업기술원 통계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 시중에 보급된 불꽃감지기의 숫자는 1천대가 고작이었지만 2012년 9,369대가 제품검사를 받았고 2013년에는 13,856대, 올해 7월 말 기준으로는 9,255대가 제품검사를 받는 등 관련 시장은 10배 이상으로 성장했다. 이처럼 특수시설에서 사용되는 불꽃감지기의 수량은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문제는 이러한 제품의 보급량 증가와 함께 불꽃감지기의 비화재보 사례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관련 업계 등 분야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모 석유화학플랜트 설비에 설치된 국산 불꽃감지기는 태양광에 의한 비화재보 문제가 이어져 문제를 일으켰고 일부 제철소에 설치된 국산 불꽃감지기는 용접불꽃 등에 대한 심각한 비화재보 문제로 고초를 겪기도 했다.
또 모 지역 고온단조품 제조공장에서는 용광로에서 나온 철강 단조품을 화재로 인식하는 등 잦은 오동작 문제를 일으켜 결국엔 경보가 울려도 생산 작업을 강행하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더욱이 수많은 공장에 설치된 산업용 조명을 화재로 인식하는 불꽃감지기의 비화재보 현상은 꾸준히 나타나고 있으며 2009년에는 주요 국가문화재 중 하나인 경복궁 등에서 국내산 옥외형 불꽃감지기가 햇빛에 경보를 울리면서 설치된 제품을 교체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소방기술자에 따르면 최근에는 한 산업현장에서 발생한 불꽃감지기의 비화재보로 스프링클러가 작동돼 막대한 수손피해를 입는 사례가 나오기도 했다.
이러한 국내 불꽃감지기의 비화재보 문제는 설치 현장의 관리자나 감리자 등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일로 최근에는 소방관서의 인허가 과정에서 비화재보를 우려해 불꽃감지기를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하는 등 불꽃감지기의 총체적인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잇따르는 비화재보… 해결책이 감도조절?
관련업계에 따르면 수많은 특수시설물에서 사용되는 불꽃감지기 오신호의 대부분은 실제 화원 보다는 용접이나 산업용조명, 태양광 등 때문에 발생되는 사례가 많다. 이러한 비화재보를 줄이기 위한 해결책은 비화재보를 일으킬 수 있는 다양한 광원을 걸러줄 수 있도록 불꽃감지기가 확실한 품질을 확보하는 것이다. 간추리면 불꽃감지기의 현실적인 비화재보 품질이 보장돼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기술력이 부족한 일부 제조업체는 불꽃감지기의 비화재보 해소방안으로 감지기의 감도를 조절해 둔감하게 만드는 것을 해답으로 여긴다. 이 같은 비정상적인 감도조절 실태는 불꽃감지기 제조업체의 설치 매뉴얼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취재 결과 최근 문제를 일으킨 K사는 물론 국내 불꽃감지기 대표 제조사들 대부분이 제품설명서(매뉴얼)에 감도조절이 가능하다는 문구와 감도조절 방법에 대해 적시하고 있었다.
불꽃감지기의 감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을 제품 특징 중 하나로 홍보하거나 감도조절 방법을 친절히(?)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소방관련법에 따라 KFI의 제품검사 이후 출고되는 불꽃감지기의 감도조절은 엄연히 소방용품의 형상 등을 변경하는 불법 행위지만 버젓이 행해지고 있는 셈이다.
감도조절에 대한 인식은 설치 현장도 마찬가지다. 많은 현장 기술자들은 불꽃감지기가 설치되는 다양한 환경조건에 따라 감도조절은 불가피한 선택이고 또 조절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한다.
한 소방관련 기술자는 “현장에 따라 감도조절은 필수다. 그렇지 않다면 오작동에 의해 사람이 너무 힘이 든다. 실제 설치했던 곳의 경우 악조건이 많아 감도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다른 기술자도 “주차타워에 불꽃감지기를 설치할 때 테스트를 해봤는데 불꽃감지기가 예민하긴 했다”며 “현장여건에 따라 감도조절은 해야된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기술자는 “화재감지기가 잦은 오작동을 일으키면 신뢰도에 문제가 생겨 오작동이 적은 특수감지기를 선택하는 것인데 이러한 불꽃감지기도 오작동을 하는 경우가 생겨 현장에 따라 감도조절을 해 설비를 유지관리하고 있다”며 “그렇지 않으면 잦은 오작동으로 신뢰성을 잃고 화재감지 쪽은 포기해야 한다. 최선이 아닌 차선책을 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화재보 현상을 줄이기 위한 임시방편 중 하나인 감도조절은 불법 행위이기도 하지만 더욱 심각한 문제는 자칫하면 감지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화재를 조기에 감지하기 위해 설치한 고가의 불꽃감지기가 감도 저하로 비화재보를 줄여줄 수는 있을지언정 동시에 화재에도 둔감해져 제 역할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관련 분야의 한 관계자는 “실제 일부 현장에서는 오동작을 우려해 감도를 너무 둔화시킨 나머지 작동조차 되지 않는 먹통 감지기가 되어 버린 사례도 봤다”며 “무차별적인 감도조절로 비화재보를 거르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말했다.
일본 규정 베낀 국내 기술기준이 문제?
이처럼 잇따르는 비화재보는 불꽃감지기의 감도조절 행태를 불러오고 있다. 그런데 소방관련법에 따라 형식승인을 받아 유통되는 불꽃감지기에서는 도대체 왜 이렇게 비화재보가 빈발하는 것일까.
복수의 불꽃감지기 제조업계 관계자들은 소방방재청이 고시로 운영 중인 불꽃감지기의 형식승인 기준 등 국가 기술기준 자체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관련 기준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히는 것은 ‘부동작 시험’이다. 부동작 시험이란 작은 불꽃에는 불꽃감지기가 감지하지 않고 일정 크기를 넘어가는 불꽃만을 감지해야 하는 시험이다. 기술기준에서 실제 감지해야할 불꽃을 감지하면 안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불꽃감지기의 부동작 시험 기준은 옥내형과 옥외형이 다르다. 옥내형의 경우 16.5cmX16.5cm 크기의 불판에 헵탄을 연소시켜 1분 이내 작동하면 안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실제 이 불의 크기는 0.5~0.8m에 달할 정도로 크다. 즉 이 정도 크기의 화재를 초기에 감지하는 불꽃감지기는 현행법상 형식승인을 통과 할 수가 없는 셈이다.
더욱이 옥외형 불꽃감지기의 부동작시험은 불판 크기가 35cmX35cm에 이르는데 이 때 화원의 크기는 1.5m~2m에 이를 정도로 거대하다. 이 역시 화재로 감지하면 불꽃감지기의 형식승인은 받을 수가 없다.
소방산업기술원 관계자들에 따르면 부동작시험은 불꽃감지기의 비화재보율을 줄이기 위한 성능검증 과정 중 하나로 유일하게 일본과 우리나라만 적용하고 있는 방식이다. 이는 국내 소방용품 기술기준의 대부분이 최초 일본법을 따왔고 불꽃감지기 역시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반면 불꽃감지기의 대표적인 성능 기준으로 평가받는 미국 FM 규격은 이러한 부동작 시험이 없다. 최소한의 화원 크기를 규정하고 이러한 불꽃을 정상적으로 감지하는지를 검증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여기에 비화재보 우려가 있는 태양광이나 아크용접, 보호유리가 없는 할로겐 조명 등에 대한 품질시험을 거의 기본으로 하되 플래쉬라이트나 전기히타, 기타 조명 등 추가적인 비화재 영향에 대해서는 제조사가 부가적으로 성능확인을 신청하고 검증 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미국 등 선진국은 불꽃감지기 본연의 감지 성능인 조기 감지 여부는 별도로 제한하지 않고 비화재보 요인에 따른 실질적인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관련 기준을 정립한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작은 불은 감지하지 말아야 한다는 개념을 중심으로 비화재보 안전성을 걸러 주고 있어 개념자체가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불꽃감지기의 형식승인 기술기준을 실제 화재 불꽃이 아닌 현실적이고 보다 엄격한 비화재보 광원에 대한 시험기준으로 변경돼야 한다”며 “특히 옥외형 불꽃감지기는 부동작 시험의 화원 크기가 너무 커 실제 초기 화재를 감지할 수 없을 만큼 문제점이 심각하다”고 꼬집었다.
업계의 또다른 관계자는 “국내 불꽃감지기 업체도 더 이상 형식승인기준에만 의존하지 말고 선진 외국과 같이 현실적이고 높은 비화재보 품질을 위해 자체적으로 기술개발을 시도하고 책임을 지는 등 설계 개선에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화재보, 감도조절 보다는 기술력 봐야
불꽃감지기는 형식승인 과정에서 공칭감시거리와 공칭감시각도가 명확히 정해진다. 예를 들어 옥내형 30m 거리의 공칭감시거리를 가진 불꽃감지기는 관련 기술기준에 따라 1.2배의 값인 36m미터의 거리에서 부작동 및 작동시험을 거치게 된다. 이렇게 형식승인을 받아 유통된 제품은 30m의 공칭감시거리가 정해지며 감지기를 설치하는 현장에서는 이러한 제품 특성을 이해한 후 설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칭감시거리 보다 좁은 공간에 감지기를 설치하면 민감하게 반응하고 역으로 공칭감시거리가 짧은 제품을 큰 공간에 설치했을 때는 감지가 불가능해 불꽃감지기의 제역할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 국내의 기술기준을 통과한 불꽃감지기는 공칭감시거리 내에서는 거리가 짧아질 수록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멀어질수록 큰 불에만 감지된다는 사실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불꽃감지기를 설치하는 현장과 수요처들은 감지기 가격에 중점을 둬 이 공칭감시거리를 고려하지 않은채 무차별적으로 설치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문제점도 비화재보율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함께 용접이나 산업용 조명, 햇빛 등 비화재보 발생 문제는 각 제조업체들의 기술력에 따라 크게 다르기 때문에 감도조절로 비화재보를 해결하기 보다는 생산업체의 비화재보 품질부터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또 비화재보 요인이 많아 불꽃감지기를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특수한 현장의 경우에는 감도조절로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적응성을 갖춘 다른 종류의 감지기를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