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취재①]불량 불꽃감지기 대량 유통 파문 확산
- 불량 불꽃감지기 불법 유통한 K사, 경찰 수사 진행
- 회로기판 바꿔치고 리모컨 조작 시도까지… KFI 속여
불꽃감지기 전문 기업인 K사가 비정상적인 불법 불꽃감지기를 시중에 대량 유통해 온 것으로 드러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지난달 불꽃감지기 제조업체인 K사를 압수수색하고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관련법에 따른 기술기준에 미달되는 불꽃감지기를 주요 시설에 대량 납품해 온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방재청 등 관계 기관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달 21일 압수수색 과정에서 K사가 생산한 불꽃감지기 531점을 수거했다. 압수된 불꽃감지기의 감도시험 등을 지난달 23일 소방산업기술원에 의뢰한 결과 대다수 제품이 관련법에 따른 기술기준에 부적합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K사가 불꽃감지기의 감도를 낮추는 등 성능 조작을 거친 제품을 보급해 온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제품들은 기술원의 제품검사 과정에서 정상적인 회로기판을 장착해 검사를 받고 통과 이후에는 다른 기판으로 바꾸는 등 제품을 변조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특히 K사는 과거 기술원의 제품검사 과정에서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리모컨으로 불꽃감지기에 공급되는 전력량 조작까지 시도했던 것으로 밝혀져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현행 불꽃감지기의 제품검사는 일정한 화원크기에는 작동하지 않고 비교적 큰 규모의 화원에만 작동하는 ‘부동작’, ‘동작’시험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K사는 검사 과정에서 불꽃감지기 전원 공급기에 미리 심어 둔 리모컨 센서를 통해 부동작 시험 때에는 전력량을 줄이는 수법으로 감지기를 동작하지 않도록 조작하려 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소방산업기술원에 따르면 2년 전 제품검사 과정에서 이러한 리모컨 조작 사실이 적발됐었다. 기술원은 당시 제품검사 과정에서 이 사실을 적발하고도 기 유통된 제품의 현장조사는 커녕 K사의 자진 취소를 유도해 해당 제품에 대해서만 형식을 반납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기술원이 봐주기식 조치를 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이에 대해 기술원의 관계자는 “문제를 적발한 날 해당 업체의 리모컨 구입 계산서를 확인해 보니 문제가 적발된 동일한 달에 구매했었던 것으로 확인됐었다”며 “이를 근거로 기 검사 제품에 대한 성능 문제는 없는 것으로 판단했었다. 또 이전에 유통된 제품은 문제가 없다는 내용과 문제가 있을 시 민형사상의 책임을 지겠다는 내용의 각서도 받았었다”고 해명했다.
불꽃감지기는 소방용품 중 형식승인 대상품으로 최초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의 형식승인을 받은 이후에는 생산되는 모든 제품 마다 제품검사(개별검정)를 반드시 받아 시중에 유통해야 한다.
K사는 이 제품검사 과정에서 정상적인 회로를 적용해 검사를 통과하고 검사가 끝난 이후에는 내부 회로기판을 다른 부품으로 교체해 시중에 유통했으며 과거에는 시험체 조작까지 시도했던 것이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경찰로부터 시험을 의뢰받은 불꽃감지기 중 6개 품목에서 내부 센서와 회로기판 등을 교체한 사실이 확인됐다. 또 2개 품목에서는 감도 프로그램을 임의로 변경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총 455개(수출용 제품 76개 제외) 중 322개 제품의 성능이 부적합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방방재청은 경찰 조사가 시작되자 해당 업체의 제품검사를 중지시켰으며 형식승인 취소처분을 내리는 한편 원전과 문화재, 공공기관 등에 설치된 불꽃감지기에 대한 수거시험을 진행하기로 했다. 시험 결과에 따라 교체나 폐기 명령 등의 추가적인 조치도 취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경찰은 지난 6일부터 K사의 불꽃감지기가 설치된 일부 시설물을 대상으로 제품 수거에 들어가는 등 추가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국회의사당과 삼성에버랜드 AWS공연장, SK하이닉스 위험물자재창고, 해양경찰항공대, 숭례문, 연세대학교 기숙사, 원자력발전소 광양제철소 등 21곳이 대상이다.
[집중취재②] 잊을만 하면 터지는 불법 소방용품, 대책은 없나
- 대량으로 유통된 불량 불꽃감지기, 문제는 무엇인가
- KFI 속이면 일사천리? 비양심 업체들도 문제지만…
- 검사과정서 부정행위 드러나도 처벌 근거조차 없어
- 사전검사에 중점 둔 소방용품 검사제도, 한계 봉착K사가 성능 미달 제품을 팔면서도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의 제품검사를 통과하고 시중에 보급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뭘까. 이는 해당 업체의 비도덕한 행태가 가장 심각한 문제일 수 있지만 소방관련법에 따라 실시되는 제품검사에도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2년전 리모컨 조작을 시도하는 등 이해못할 불법행위가 기술원의 제품검사 과정에서 드러났음에도 뚜렷한 처벌이나 처분이 이뤄지지 않은 까닭도 의문을 낳고 있다.
FPN(소방방재신문)은 이번 불량 불꽃감지기 유통 사태를 계기로 잊을만 하면 터지는 불법 소방용품 유통 실태의 문제점을 따져보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은 없는지 짚어봤다.
기술원만 속이면 ‘일사천리’이번 K사의 불량 불꽃감지기 유통 사건을 보면 제품검사를 받고 나서 내부 회로기판을 바꿔치기해 시중에 보급해 온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유형의 불량 소방용품 유통 문제는 지난 2006년 발생한 청운소화기 사태에서도 드러났었다.
당시 청운소화기 사건은 분말소화기의 주 소화약제인 제1인산 암모늄 대신 값이 싼 황산암모늄으로 채워 넣어 약 22만대의 불량 소화기가 대량으로 유통된 일이다. 제품검사 과정에서 무작위로 샘플링한 제품을 몰래 바꿔치기 하는 등의 수법으로 기술원의 검사를 통과했었다.
현행 소방관련법에 따라 실시되는 소방용품 사전제품검사의 무의미함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믿지 못할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관련 분야에서는 이러한 사전제품검사 체제 보다는 미국 등 선진국처럼 사후관리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개선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제품검사를 거친 소방용품이 시중에 나가면 검사 수준에 맞춰진 정밀적인 관리는 거의 없는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불이 나기 전에는 사용할 일이 없는 소방용품의 특성도 제품의 사후적 관리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더욱이 시중에 보급된 이후에는 설사 오작동 등 문제가 발생되더라도 기술원에 의뢰시험을 맡기지 않는 이상 제품의 정밀한 불량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워 제조업체의 A/S로 감당하는 경우도 많은 실정이다. 다시 말해 기술원의 제품검사만 통과하면 후차적인 문제는 해당 업체가 감당하기만 하면 설사 불량 제품을 유통했더라도 적발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검사과정서 적발한 부정행위는 그저 ‘불합격’경찰 조사로 K사의 리모컨 조작 시도 사실이 알려지면서 소방산업기술원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높다. 제품검사 과정에서 심각한 부정행위를 적발했으면서도 왜 해당 제품의 형식승인만을 취소했냐는 시각이다.
더욱이 당시 소방산업기술원은 해당 제품의 형식승인을 강제로 취소했던 것이 아니라 해당 업체의 자발적인 형식 반납을 유도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의도적인 부정행위에 대한 강제 처분 없이 자진반납을 요구했던 이유는 뭘까.
소방관련법에 따라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형식승인 또는 제품검사를 받은 경우에 한해서는 소방방재청장이 승인을 취소하고 3년 이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제품검사 과정에서 이뤄진 부정행위에 대해서는 명확한 형식승인 취소 규정이나 처벌 규정이 없기 때문에 기술원이 소방방재청에 관련 사태를 보고 하더라도 현재의 법 구조에서는 그저 제품검사의 ‘불합격’ 판정밖에 못 내린다.
소방용품 제조업계에 따르면 과거에도 이러한 부정행위로 제품검사를 받으려고 시도한 사례가 있었지만 이 역시 제조사의 자진 취소를 유도하거나 불합격 조치를 내리는 등 강경한 조치는 취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제품검사 과정에서 드러난 제조업체의 비도덕한 행위에 대해서도 강경한 조치를 내리기 위해서는 허위로 제품검사를 받으려고 시도한 자에 대해서도 명확한 처분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불량 소방용품 유통, 처분기준도 강화돼야부정행위와 불량 소방용품을 유통한 업체에 대해 내려지는 행정처분 수준도 문제다. 이 때문에 비도덕한 업체들에 대한 처분 방안도 한층 강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소방용품을 불법으로 유통하거나 관련법을 어겼을 경우 내려지는 행정처분은 해당 제품에 대한 형식승인 또는 성능인증이 취소되고 동일 품목에 대한 형식승인이 2년간 제한된다. 성능인증 품목의 경우 현재 동일 수준의 관련법이 입법예고 돼 있는 상태로 조만간 이러한 처분 규정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맹점은 이러한 취소 규정은 문제가 발생된 해당 제품에만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수십여 종의 불꽃감지기를 생산하는 업체가 형식승인 취소 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를 했을 경우에도 적발된 해당 제품 딱 한 가지에 대해서만 승인취소가 이뤄진다. 다만 하나의 형식승인 내 여러 종류의 제품 승인이 이뤄진 종류라면 모두가 함께 취소되는 경우도 있다.
비정상적인 제품검사나 허위로 승인을 받았더라도 경중 구분 없이 적발 제품에 대해서만 처분을 내릴 수 있는 구조다. 따라서 불법적 행위 수준에 따라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을 경우에는 동일 유형의 제품군 또는 해당 제조사가 보유한 모든 형식승인까지도 취소할 수 있는 강력한 법적 근거가 필요한 상황이다.
무의미한 제품검사와 허울뿐인 수집검사모든 소방용품은 소방관련법에 따라 최초 개발된 제품에 대해 형식승인이나 성능인증을 받아야만 하고 출고 이전에는 반드시 제품검사를 거쳐 시중에 유통된다.
하지만 이 제품검사에는 허점이 존재한다. 소방용품의 종류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소방용품은 출고 이전 제품검사 과정에서 샘플링을 통해 일정 수량만을 검사받게 된다. 예를 들어 출고 대기 제품이 100개라면 이 중 10개만을 샘플로 선정해 검정을 받는 방식이다. 그 이유는 제품검사 과정에서 소진 또는 파기되는 제품이 있을 수 있고 방대한 양을 전수 검사 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100개 중 5개의 제품이 불량일지라도 운이 좋아 샘플에 걸리지 않으면 모든 제품이 검사를 통과할 수 있다. 샘플 외의 제품은 제조사의 양심과 품질관리 능력에 맡기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제품검사는 소방용품 제조사의 제품 생산 측면에서도 생산성 저하를 불러오고 있다. 대부분의 소방용품 제품검사는 각 제조사가 생산제품의 출고 직전 제품들을 나열하고 기술원 직원이 업체를 직접 방문해 검사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 제품검사를 받기 위해 준비중인 소방용품(소화기)의 모습 © 최영 기자 | |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검사를 받기 위한 별도의 시간과 인력이 필요하고 기술원 입장에선 부족한 제품검사 인력 탓에 제조사가 요구하는 시간을 맞추지 못하거나 인력이 부족해 불만을 사는 등 애로로 이어진다.
이 같은 이유로 소방분야에서는 제품검사의 모순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져 왔다. 사전 제품검사 보다는 품질관리 능력을 확인하고 실제 유통된 제품의 수거 등을 통한 사후 관리를 대폭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소방방재청이 실시하는 소방용품수집검사 모습 | |
소방방재청은 이러한 소방용품의 사후관리를 위해 지난 2012년부터 수집검사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이 또한 실효성이 낮다. 소방용품 수집검사는 시중에 유통되거나 설치된 제품을 무작위로 수거해 해당 제품이 국가 기술(검정)기준 등에 적합한지 여부를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을 통해 확인하는 제도인데 보통 1년에 1회 정도 실시된다.
소방방재청은 이 과정에서 중대한 문제가 확인될 경우 강경하게 조치한다는 방침이지만 구체적인 시행방법을 들여다 보면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을 낳게 한다.
우선 현행 사전제품 검사가 운용되는 상태에서는 제품검사를 받아 유통된 소방용품에 대해서만큼은 절대로 정상적인 수집검사가 이뤄질 수 없다는 시각이 크다. 기술원의 제품검사를 거쳐 유통된 소방용품(형식승인 또는 성능인증품)에서 행여나 불량 사항이라도 발견되는 날에는 소방산업기술원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사전 제품검사를 진행한 기술원이 제품을 수거해 검사하고 문제를 발견하면 스스로 발등을 찍는 꼴이 되는 것이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과 같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 때문에 소방방재청은 품질제품검사(공정심사와 품질관리 수준 등을 평가받아 사전제품검사를 안 받을 수 있는 제도) 품목을 대상으로 집중적인 수집검사를 추진해 나간다는 구상이다.
결국 이번 불량 불꽃감지기나 청운소화기 사건처럼 사전제품검사 과정 또는 이후에 변조된 불량 소방용품에 대해서는 사후관리 방안이 전무한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집중취재③] 기판 교체에 감도조절한 불량 불꽃감지기, 숨겨진 문제는?
- "감도조절 보편적인 일" 불법인데, 만연하는 이유는?
- 특수 현장 적용된 불꽃감지기들 비화재보 ‘심각’
- 기술력 부족하자 일부 업체들 ‘감도조절’로 해소
- 현장서 빈발하는 오작동 문제, 기술기준이 ‘큰 몫’
- 근본적 문제는 빈번한 비화재보… 해결책은 없나경찰 조사로 드러난 K사의 불법 불꽃감지기 유통 사실은 소방산업 전반에 큰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특수 기술이 반영된 고가의 화재감지기를 생산하는 특정 업체가 불량 제품을 유통시킨 것도 모자라 소방용품의 제품검사를 실시하는 소방산업기술원의 감독을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 피해 나갔다.
소방산업기술원이 경찰로부터 의뢰받아 실시한 시험결과를 보면 K사가 보급한 불꽃감지기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소방산업기술원의 제품검사를 받은 후 임의로 센서와 회로기판을 교체했고 내부감도 프로그램을 임의로 변경하기도 했다. 기판 교체와 내부 감도 프로그램 조작은 관련법(소방시설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사항으로 관련 제품의 형식승인 취소는 물론 해당 관계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중범죄다.
K사가 제품검사 이후 센서와 회로기판을 바꿔치기하고 검사 과정에서 시험체를 조작하려 했던 비양심적 행위는 가중처벌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감도 프로그램(감도조절 스위치)의 변경은 관련 분야 관계자들 대부분이 인정할 정도로 보편화된 상황이어서 관련 업계와 분야 관계자들은 이번 사건의 파장이 어디까지 튈지 긴장하는 분위기다.
현장에 설치되거나 유통되는 불꽃감지기의 잦은 비화재보(화재가 아닌 다른 요인에 의해 감지기가 작동하는 것)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감도조절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꽃감지기의 감도조절 실태는 불꽃감지기 생산 업체들의 매뉴얼에 상세한 조절 방법까지 표기될 정도로 보편적인 사실이다.
소방용품은 법에서 정한 기술기준에 맞춰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에 검정(제품검사) 이후 감도를 임의로 조절하는 것은 엄연히 불법이다. 그럼에도 왜 지금까지 불꽃감지기가 보급되는 과정이나 설치 현장에서 감도를 조절하는 행태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
FPN(소방방재신문)은 경찰 조사로 드러난 불량 불꽃감지기 사건을 계기로 국내 불꽃감지기의 감도조절 실태를 들여다 보고 근본적인 문제점과 해결방안은 없는지 긴급 진단했다.
불꽃감지기는 양치기 소년?불꽃감지기는 최소 60만원 대의 저가 제품에서 많게는 200만원이 넘는 고가의 제품까지 다양한 제품들이 보급된다. 최초 불꽃감지기의 국산화가 이뤄진 2000년대 초반부터 수많은 산업현장에서 사용되던 미국산 불꽃감지기는 국산 제품들로 대체되고 있다.
소방산업기술원 통계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 시중에 보급된 불꽃감지기의 숫자는 1천대가 고작이었지만 2012년 9,369대가 제품검사를 받았고 2013년에는 13,856대, 올해 7월 말 기준으로는 9,255대가 제품검사를 받는 등 관련 시장은 10배 이상으로 성장했다. 이처럼 특수시설에서 사용되는 불꽃감지기의 수량은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문제는 이러한 제품의 보급량 증가와 함께 불꽃감지기의 비화재보 사례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관련 업계 등 분야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모 석유화학플랜트 설비에 설치된 국산 불꽃감지기는 태양광에 의한 비화재보 문제가 이어져 문제를 일으켰고 일부 제철소에 설치된 국산 불꽃감지기는 용접불꽃 등에 대한 심각한 비화재보 문제로 고초를 겪기도 했다.
▲ 불꽃감지기의 비화재보를 일으키는 다양한 요인들(참고사진) © 소방방재신문 | |
또 모 지역 고온단조품 제조공장에서는 용광로에서 나온 철강 단조품을 화재로 인식하는 등 잦은 오동작 문제를 일으켜 결국엔 경보가 울려도 생산 작업을 강행하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더욱이 수많은 공장에 설치된 산업용 조명을 화재로 인식하는 불꽃감지기의 비화재보 현상은 꾸준히 나타나고 있으며 2009년에는 주요 국가문화재 중 하나인 경복궁 등에서 국내산 옥외형 불꽃감지기가 햇빛에 경보를 울리면서 설치된 제품을 교체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소방기술자에 따르면 최근에는 한 산업현장에서 발생한 불꽃감지기의 비화재보로 스프링클러가 작동돼 막대한 수손피해를 입는 사례가 나오기도 했다.
이러한 국내 불꽃감지기의 비화재보 문제는 설치 현장의 관리자나 감리자 등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일로 최근에는 소방관서의 인허가 과정에서 비화재보를 우려해 불꽃감지기를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하는 등 불꽃감지기의 총체적인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잇따르는 비화재보… 해결책이 감도조절?관련업계에 따르면 수많은 특수시설물에서 사용되는 불꽃감지기 오신호의 대부분은 실제 화원 보다는 용접이나 산업용조명, 태양광 등 때문에 발생되는 사례가 많다. 이러한 비화재보를 줄이기 위한 해결책은 비화재보를 일으킬 수 있는 다양한 광원을 걸러줄 수 있도록 불꽃감지기가 확실한 품질을 확보하는 것이다. 간추리면 불꽃감지기의 현실적인 비화재보 품질이 보장돼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기술력이 부족한 일부 제조업체는 불꽃감지기의 비화재보 해소방안으로 감지기의 감도를 조절해 둔감하게 만드는 것을 해답으로 여긴다. 이 같은 비정상적인 감도조절 실태는 불꽃감지기 제조업체의 설치 매뉴얼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취재 결과 최근 문제를 일으킨 K사는 물론 국내 불꽃감지기 대표 제조사들 대부분이 제품설명서(매뉴얼)에 감도조절이 가능하다는 문구와 감도조절 방법에 대해 적시하고 있었다.
▲ 불꽃감지기를 제조하는 대부분의 제조사들은 감도조절 기능을 카다로그나 사용설명서 등에 명시하고 있다. © 소방방재신문 | |
불꽃감지기의 감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을 제품 특징 중 하나로 홍보하거나 감도조절 방법을 친절히(?)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소방관련법에 따라 KFI의 제품검사 이후 출고되는 불꽃감지기의 감도조절은 엄연히 소방용품의 형상 등을 변경하는 불법 행위지만 버젓이 행해지고 있는 셈이다.
감도조절에 대한 인식은 설치 현장도 마찬가지다. 많은 현장 기술자들은 불꽃감지기가 설치되는 다양한 환경조건에 따라 감도조절은 불가피한 선택이고 또 조절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한다.
한 소방관련 기술자는 “현장에 따라 감도조절은 필수다. 그렇지 않다면 오작동에 의해 사람이 너무 힘이 든다. 실제 설치했던 곳의 경우 악조건이 많아 감도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다른 기술자도 “주차타워에 불꽃감지기를 설치할 때 테스트를 해봤는데 불꽃감지기가 예민하긴 했다”며 “현장여건에 따라 감도조절은 해야된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기술자는 “화재감지기가 잦은 오작동을 일으키면 신뢰도에 문제가 생겨 오작동이 적은 특수감지기를 선택하는 것인데 이러한 불꽃감지기도 오작동을 하는 경우가 생겨 현장에 따라 감도조절을 해 설비를 유지관리하고 있다”며 “그렇지 않으면 잦은 오작동으로 신뢰성을 잃고 화재감지 쪽은 포기해야 한다. 최선이 아닌 차선책을 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화재보 현상을 줄이기 위한 임시방편 중 하나인 감도조절은 불법 행위이기도 하지만 더욱 심각한 문제는 자칫하면 감지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화재를 조기에 감지하기 위해 설치한 고가의 불꽃감지기가 감도 저하로 비화재보를 줄여줄 수는 있을지언정 동시에 화재에도 둔감해져 제 역할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관련 분야의 한 관계자는 “실제 일부 현장에서는 오동작을 우려해 감도를 너무 둔화시킨 나머지 작동조차 되지 않는 먹통 감지기가 되어 버린 사례도 봤다”며 “무차별적인 감도조절로 비화재보를 거르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말했다.
일본 규정 베낀 국내 기술기준이 문제?이처럼 잇따르는 비화재보는 불꽃감지기의 감도조절 행태를 불러오고 있다. 그런데 소방관련법에 따라 형식승인을 받아 유통되는 불꽃감지기에서는 도대체 왜 이렇게 비화재보가 빈발하는 것일까.
복수의 불꽃감지기 제조업계 관계자들은 소방방재청이 고시로 운영 중인 불꽃감지기의 형식승인 기준 등 국가 기술기준 자체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관련 기준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히는 것은 ‘부동작 시험’이다. 부동작 시험이란 작은 불꽃에는 불꽃감지기가 감지하지 않고 일정 크기를 넘어가는 불꽃만을 감지해야 하는 시험이다. 기술기준에서 실제 감지해야할 불꽃을 감지하면 안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불꽃감지기의 부동작 시험 기준은 옥내형과 옥외형이 다르다. 옥내형의 경우 16.5cmX16.5cm 크기의 불판에 헵탄을 연소시켜 1분 이내 작동하면 안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실제 이 불의 크기는 0.5~0.8m에 달할 정도로 크다. 즉 이 정도 크기의 화재를 초기에 감지하는 불꽃감지기는 현행법상 형식승인을 통과 할 수가 없는 셈이다.
더욱이 옥외형 불꽃감지기의 부동작시험은 불판 크기가 35cmX35cm에 이르는데 이 때 화원의 크기는 1.5m~2m에 이를 정도로 거대하다. 이 역시 화재로 감지하면 불꽃감지기의 형식승인은 받을 수가 없다.
▲ 불꽃감지기 관련 기술기준에 따라 실시되는 부동작 시험과 동작시험 © 소방방재신문 | |
소방산업기술원 관계자들에 따르면 부동작시험은 불꽃감지기의 비화재보율을 줄이기 위한 성능검증 과정 중 하나로 유일하게 일본과 우리나라만 적용하고 있는 방식이다. 이는 국내 소방용품 기술기준의 대부분이 최초 일본법을 따왔고 불꽃감지기 역시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반면 불꽃감지기의 대표적인 성능 기준으로 평가받는 미국 FM 규격은 이러한 부동작 시험이 없다. 최소한의 화원 크기를 규정하고 이러한 불꽃을 정상적으로 감지하는지를 검증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여기에 비화재보 우려가 있는 태양광이나 아크용접, 보호유리가 없는 할로겐 조명 등에 대한 품질시험을 거의 기본으로 하되 플래쉬라이트나 전기히타, 기타 조명 등 추가적인 비화재 영향에 대해서는 제조사가 부가적으로 성능확인을 신청하고 검증 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미국 등 선진국은 불꽃감지기 본연의 감지 성능인 조기 감지 여부는 별도로 제한하지 않고 비화재보 요인에 따른 실질적인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관련 기준을 정립한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작은 불은 감지하지 말아야 한다는 개념을 중심으로 비화재보 안전성을 걸러 주고 있어 개념자체가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불꽃감지기의 형식승인 기술기준을 실제 화재 불꽃이 아닌 현실적이고 보다 엄격한 비화재보 광원에 대한 시험기준으로 변경돼야 한다”며 “특히 옥외형 불꽃감지기는 부동작 시험의 화원 크기가 너무 커 실제 초기 화재를 감지할 수 없을 만큼 문제점이 심각하다”고 꼬집었다.
업계의 또다른 관계자는 “국내 불꽃감지기 업체도 더 이상 형식승인기준에만 의존하지 말고 선진 외국과 같이 현실적이고 높은 비화재보 품질을 위해 자체적으로 기술개발을 시도하고 책임을 지는 등 설계 개선에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화재보, 감도조절 보다는 기술력 봐야
불꽃감지기는 형식승인 과정에서 공칭감시거리와 공칭감시각도가 명확히 정해진다. 예를 들어 옥내형 30m 거리의 공칭감시거리를 가진 불꽃감지기는 관련 기술기준에 따라 1.2배의 값인 36m미터의 거리에서 부작동 및 작동시험을 거치게 된다. 이렇게 형식승인을 받아 유통된 제품은 30m의 공칭감시거리가 정해지며 감지기를 설치하는 현장에서는 이러한 제품 특성을 이해한 후 설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칭감시거리 보다 좁은 공간에 감지기를 설치하면 민감하게 반응하고 역으로 공칭감시거리가 짧은 제품을 큰 공간에 설치했을 때는 감지가 불가능해 불꽃감지기의 제역할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 국내의 기술기준을 통과한 불꽃감지기는 공칭감시거리 내에서는 거리가 짧아질 수록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멀어질수록 큰 불에만 감지된다는 사실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불꽃감지기를 설치하는 현장과 수요처들은 감지기 가격에 중점을 둬 이 공칭감시거리를 고려하지 않은채 무차별적으로 설치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문제점도 비화재보율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함께 용접이나 산업용 조명, 햇빛 등 비화재보 발생 문제는 각 제조업체들의 기술력에 따라 크게 다르기 때문에 감도조절로 비화재보를 해결하기 보다는 생산업체의 비화재보 품질부터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또 비화재보 요인이 많아 불꽃감지기를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특수한 현장의 경우에는 감도조절로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적응성을 갖춘 다른 종류의 감지기를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최영 기자
young@fpn119.co.kr [소방방재신문 2014년 8월 10일자 633호 - 1, 8, 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