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사가 성능 미달 제품을 팔면서도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의 제품검사를 통과하고 시중에 보급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뭘까. 이는 해당 업체의 비도덕한 행태가 가장 심각한 문제일 수 있지만 소방관련법에 따라 실시되는 제품검사에도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2년전 리모컨 조작을 시도하는 등 이해못할 불법행위가 기술원의 제품검사 과정에서 드러났음에도 뚜렷한 처벌이나 처분이 이뤄지지 않은 까닭도 의문을 낳고 있다.
FPN(소방방재신문)은 이번 불량 불꽃감지기 유통 사태를 계기로 잊을만 하면 터지는 불법 소방용품 유통 실태의 문제점을 따져보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은 없는지 짚어봤다.
기술원만 속이면 ‘일사천리’이번 K사의 불량 불꽃감지기 유통 사건을 보면 제품검사를 받고 나서 내부 회로기판을 바꿔치기해 시중에 보급해 온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유형의 불량 소방용품 유통 문제는 지난 2006년 발생한 청운소화기 사태에서도 드러났었다.
당시 청운소화기 사건은 분말소화기의 주 소화약제인 제1인산 암모늄 대신 값이 싼 황산암모늄으로 채워 넣어 약 22만대의 불량 소화기가 대량으로 유통된 일이다. 제품검사 과정에서 무작위로 샘플링한 제품을 몰래 바꿔치기 하는 등의 수법으로 기술원의 검사를 통과했었다.
현행 소방관련법에 따라 실시되는 소방용품 사전제품검사의 무의미함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믿지 못할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관련 분야에서는 이러한 사전제품검사 체제 보다는 미국 등 선진국처럼 사후관리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개선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제품검사를 거친 소방용품이 시중에 나가면 검사 수준에 맞춰진 정밀적인 관리는 거의 없는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불이 나기 전에는 사용할 일이 없는 소방용품의 특성도 제품의 사후적 관리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더욱이 시중에 보급된 이후에는 설사 오작동 등 문제가 발생되더라도 기술원에 의뢰시험을 맡기지 않는 이상 제품의 정밀한 불량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워 제조업체의 A/S로 감당하는 경우도 많은 실정이다. 다시 말해 기술원의 제품검사만 통과하면 후차적인 문제는 해당 업체가 감당하기만 하면 설사 불량 제품을 유통했더라도 적발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검사과정서 적발한 부정행위는 그저 ‘불합격’경찰 조사로 K사의 리모컨 조작 시도 사실이 알려지면서 소방산업기술원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높다. 제품검사 과정에서 심각한 부정행위를 적발했으면서도 왜 해당 제품의 형식승인만을 취소했냐는 시각이다.
더욱이 당시 소방산업기술원은 해당 제품의 형식승인을 강제로 취소했던 것이 아니라 해당 업체의 자발적인 형식 반납을 유도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의도적인 부정행위에 대한 강제 처분 없이 자진반납을 요구했던 이유는 뭘까.
소방관련법에 따라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형식승인 또는 제품검사를 받은 경우에 한해서는 소방방재청장이 승인을 취소하고 3년 이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제품검사 과정에서 이뤄진 부정행위에 대해서는 명확한 형식승인 취소 규정이나 처벌 규정이 없기 때문에 기술원이 소방방재청에 관련 사태를 보고 하더라도 현재의 법 구조에서는 그저 제품검사의 ‘불합격’ 판정밖에 못 내린다.
소방용품 제조업계에 따르면 과거에도 이러한 부정행위로 제품검사를 받으려고 시도한 사례가 있었지만 이 역시 제조사의 자진 취소를 유도하거나 불합격 조치를 내리는 등 강경한 조치는 취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제품검사 과정에서 드러난 제조업체의 비도덕한 행위에 대해서도 강경한 조치를 내리기 위해서는 허위로 제품검사를 받으려고 시도한 자에 대해서도 명확한 처분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불량 소방용품 유통, 처분기준도 강화돼야부정행위와 불량 소방용품을 유통한 업체에 대해 내려지는 행정처분 수준도 문제다. 이 때문에 비도덕한 업체들에 대한 처분 방안도 한층 강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소방용품을 불법으로 유통하거나 관련법을 어겼을 경우 내려지는 행정처분은 해당 제품에 대한 형식승인 또는 성능인증이 취소되고 동일 품목에 대한 형식승인이 2년간 제한된다. 성능인증 품목의 경우 현재 동일 수준의 관련법이 입법예고 돼 있는 상태로 조만간 이러한 처분 규정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맹점은 이러한 취소 규정은 문제가 발생된 해당 제품에만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수십여 종의 불꽃감지기를 생산하는 업체가 형식승인 취소 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를 했을 경우에도 적발된 해당 제품 딱 한 가지에 대해서만 승인취소가 이뤄진다. 다만 하나의 형식승인 내 여러 종류의 제품 승인이 이뤄진 종류라면 모두가 함께 취소되는 경우도 있다.
비정상적인 제품검사나 허위로 승인을 받았더라도 경중 구분 없이 적발 제품에 대해서만 처분을 내릴 수 있는 구조다. 따라서 불법적 행위 수준에 따라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을 경우에는 동일 유형의 제품군 또는 해당 제조사가 보유한 모든 형식승인까지도 취소할 수 있는 강력한 법적 근거가 필요한 상황이다.
무의미한 제품검사와 허울뿐인 수집검사모든 소방용품은 소방관련법에 따라 최초 개발된 제품에 대해 형식승인이나 성능인증을 받아야만 하고 출고 이전에는 반드시 제품검사를 거쳐 시중에 유통된다.
하지만 이 제품검사에는 허점이 존재한다. 소방용품의 종류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소방용품은 출고 이전 제품검사 과정에서 샘플링을 통해 일정 수량만을 검사받게 된다. 예를 들어 출고 대기 제품이 100개라면 이 중 10개만을 샘플로 선정해 검정을 받는 방식이다. 그 이유는 제품검사 과정에서 소진 또는 파기되는 제품이 있을 수 있고 방대한 양을 전수 검사 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100개 중 5개의 제품이 불량일지라도 운이 좋아 샘플에 걸리지 않으면 모든 제품이 검사를 통과할 수 있다. 샘플 외의 제품은 제조사의 양심과 품질관리 능력에 맡기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제품검사는 소방용품 제조사의 제품 생산 측면에서도 생산성 저하를 불러오고 있다. 대부분의 소방용품 제품검사는 각 제조사가 생산제품의 출고 직전 제품들을 나열하고 기술원 직원이 업체를 직접 방문해 검사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 제품검사를 받기 위해 준비중인 소방용품(소화기)의 모습 © 최영 기자 | |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검사를 받기 위한 별도의 시간과 인력이 필요하고 기술원 입장에선 부족한 제품검사 인력 탓에 제조사가 요구하는 시간을 맞추지 못하거나 인력이 부족해 불만을 사는 등 애로로 이어진다.
이 같은 이유로 소방분야에서는 제품검사의 모순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져 왔다. 사전 제품검사 보다는 품질관리 능력을 확인하고 실제 유통된 제품의 수거 등을 통한 사후 관리를 대폭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소방방재청이 실시하는 소방용품수집검사 모습 | |
소방방재청은 이러한 소방용품의 사후관리를 위해 지난 2012년부터 수집검사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이 또한 실효성이 낮다. 소방용품 수집검사는 시중에 유통되거나 설치된 제품을 무작위로 수거해 해당 제품이 국가 기술(검정)기준 등에 적합한지 여부를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을 통해 확인하는 제도인데 보통 1년에 1회 정도 실시된다.
소방방재청은 이 과정에서 중대한 문제가 확인될 경우 강경하게 조치한다는 방침이지만 구체적인 시행방법을 들여다 보면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을 낳게 한다.
우선 현행 사전제품 검사가 운용되는 상태에서는 제품검사를 받아 유통된 소방용품에 대해서만큼은 절대로 정상적인 수집검사가 이뤄질 수 없다는 시각이 크다. 기술원의 제품검사를 거쳐 유통된 소방용품(형식승인 또는 성능인증품)에서 행여나 불량 사항이라도 발견되는 날에는 소방산업기술원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사전 제품검사를 진행한 기술원이 제품을 수거해 검사하고 문제를 발견하면 스스로 발등을 찍는 꼴이 되는 것이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과 같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 때문에 소방방재청은 품질제품검사(공정심사와 품질관리 수준 등을 평가받아 사전제품검사를 안 받을 수 있는 제도) 품목을 대상으로 집중적인 수집검사를 추진해 나간다는 구상이다.
결국 이번 불량 불꽃감지기나 청운소화기 사건처럼 사전제품검사 과정 또는 이후에 변조된 불량 소방용품에 대해서는 사후관리 방안이 전무한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최영 기자
young@fpn119.co.kr[소방방재신문 2014년 8월 10일자 633호 - 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