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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소방 이야기가 아니다. 11 소방관은 손을 잡아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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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서북소방서 조이상 | 기사입력 2022/04/20 [10:00]

이 글은 소방 이야기가 아니다. 11 소방관은 손을 잡아주는 일이다

충남 천안서북소방서 조이상 | 입력 : 2022/04/20 [10:00]

새벽 3시 반, 신고내용이 접수되었다. 폭행을 당했고 피가 많이 났다는 신고였다. 영하 15℃의 싸늘한 추위였지만 감염방지복을 착용해서인지 그렇게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출동한 지 3분이나 되었을까? 신고내용이 바뀌었다. 옆집 난간에서 남자가 소리를 지르고 있다는 신고였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첫 지령의 신고는 30층이었고 이번 지령의 주소는 28층이었다. 직감적으로 두 사건은 개별된 사건이 아니고 하나의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에 도착했다. 30층으로 올라갔다. 그때 경비아저씨가 여기가 아니고 28층으로 가라고 했다. 구급 장비를 들고 28층으로 갔다. 현관문을 열고 베란다 난간으로 가보니 어떤 남자가 걸려있었다. 걸려있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 2층 위인 30층에서 추락했는데 28층에 걸린 것이다. 머리는 아래쪽을 향했고 무릎과 손으로 난간을 잡으면서 버티고 있었다(철봉에 무릎으로 지탱하는 자세를 연상하면 된다).

 

소름이 돋았다. 창문을 조금 열어봤지만 잘 열리지 않았다.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손을 잡는 것뿐이었다. 자세가 손을 잡는 것만 되어서 일단 손을 잡았다. 온기가 느껴졌으나 남성은 아무 말도 없었고 다만 술 냄새가 느껴졌다. 손을 더 잘 잡기 위해서 창문을 더 여는 순간,

 

그 남성이 지탱하고 있던 무릎이 풀렸다. 그 남성이 지탱하고 있던 지점은 무릎과 손이었는데 무릎이 풀렸고 지구는 중력으로 그를 끌어당겼다. 중력을 극복하는 지점은 내 손의 악력밖에 없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나의 양손과 그 사람의 왼손, 손을 잡은 지 10초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본능이었는지 그 남자의 오른손도 올라왔다. 다른 동료들이 그 손을 붙잡았다. 나도 아드레날린이 솟구쳐 꽤 오랜 시간을 버텼고 도와달라고 소리치니 경찰관들이 왔다. 3명씩 각 손을 잡았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경찰관이 좋은 아이디어를 냈다. 수갑으로 두 손을 연결하자는 의견이었다. 나는 찡그리면서 알겠다고 했다. 그의 손목과 난간을 수갑으로 연결했다. 안전수단이었다. 여전히 바닥은 남성을 잡아당기고 우리도 그 사람을 잡아당겼다. 굴절차도 도착했다.

 

하지만 굴절차는 47m까지밖에 올리지 못한다. 층으로 환산하면 15층 정도이다. 여기는 거의 두 배가 되는 28층의 높이다. 드디어 구조대원이 도착했다. 

 

구조대는 한 층 위로 올라가서 로프로 그를 구하기로 했다. A 구조대원은 로프에 몸을 의지한 채 한발 한발 내려와서 그 사람과 마주했다. 나와 마주친 그 구조대원의 눈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한 층 위에서는 다른 로프가 내려와 구조대상자의 몸의 몇 군데를 결박했다. 나의 수갑도 풀렸다. 자국은 남았지만… 

 

구조대원은 안전하게 한 층을 더 내려와 그를 27층의 바닥에 내려놨다. 구조대상자에게서는 술 냄새가 났다. 알고 보니 지인들끼리 말다툼을 하고 뛰어내렸다고 한다.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환자평가를 하고 근처 병원으로 이송했다.

 

모두 힘을 합쳤을 때 가능한 일이었다. 28층에서 신고를 늦게 해주었다면, 내가 손을 놓쳤다면, 경찰관이 수갑을 건네주지 않았다면, 구조대가 로프를 타고 내려오지 않았다면, 바람이 세게 불었다면, 각 층에서 협조를 해주지 않았다면 그 남성의 온기는 없어졌을 것이다. 여전히 그의 손은 따뜻했고 나는 씁쓸했다. 맞다. 소방관은 손을 잡아주는 일이다(같이 근무했던 구급대원 권순재 반장의 입장에서 기술하였습니다).

 

충남 천안서북소방서_ 조이상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2년 4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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