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내전- Ⅵ‘Tower Ladder’ 안전과 효율의 일타쌍피 필살템 ③얼마 전 오랜만에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를 다시 읽었다. ‘칼의 노래’의 백미는 이순신 장군의 고뇌다. 마치 실제 장군이 직접 글을 쓰신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문장들이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다. 여기서 이순신 장군의 전략과 전술에 대해 생각해보곤 한다.
장군의 기본 전술 대전제는 ‘아군의 피해를 최대한 피한다’다. 그도 그러할 것이 일본은 본토로부터 대마도를 통해 부산으로 계속해서 물자가 보급된다. 그러나 조선은 이미 조정이 붕괴했고 각 군대는 각자도생의 삶을 살아야만 했다. 따라서 조선 수군은 ‘피해가 있어선 안 되는 일’이었다.
이를 고려해 될 수 있으면 백병전을 피하고 포격전 양상으로 전략을 펼쳤다. ‘가급적 아군의 피해를 줄이는 일’은 어렵고도 힘들었으리라 생각된다. 장군의 전략엔 한 가지 큰 줄기가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의 교전수칙이라고도 할 수 있는 ‘포위 섬멸전’이 바로 그것이다. ‘칼의 노래’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내가 적을 이길 수 있는 조건들은 적에게 있을 것이고 적이 나를 이길 수 있는 조건들은 나에게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길 수 있는 지역에서만 전투했다고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절대 패배해선 안 되는 간절한 전투를 하셨을 뿐이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장군의 백성과 병사들을 아끼는 마음이다. 장군은 용감히 싸우다 전사한 노비 출신 병사까지도 신분의 고하를 가리지 않고 난중일기에 적어 그 희생을 안타까워했다.
장군의 전술 중 ‘적선이 절대 상륙케 하지 말라’는 지시가 난중일기에도 나오는데 이는 육지로 상륙한 일본군은 백성들을 모두 죽였기 때문이다.
[그림 1]은 한산도 대첩의 학익진(鶴翼陣)이다. 학익진은 포위 섬멸의 기본 포메이션이다. 이 전술은 기원전 알렉산더 대왕 때도, 제2차대전 때도, 현대전에도 기본이 되는 전술이다.
섬멸전은 기본적으로 아군의 피해가 적으며 효율이 높다. 원거리에서 발사하는 포탄으로 적선을 부수고 백병전을 피하면서 아군의 피해를 줄인다.
이순신 장군의 가르침을 받들어 나는 언제나 이렇게 주장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당신이 현장지휘관이라면 현장 활동 대원들의 힘듦과 어려움을 헤아려라. 그들의 손발이 내 손발보다 더 소중하고 그들의 안전은 내 안전보다 더 소중함을 명심하라”
포위 섬멸전은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적의 피해를 최대화하는 전술의 기본이다. 화재진압에서도 포위 섬멸 전술은 그 효과가 매우 크다.
포위 섬멸을 하게 되면 진압대의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다. 화재는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진압할 수 있게 된다. 화세를 포위할 수 있는 차량 배치를 완성했다면 해당 화재 현장에서 발생 가능한 경우의 수는 줄어들게 된다.
[그림 2]의 사례에서는 고가차량 위주로 차량이 배치됐다. 유튜브 영상에서 확인 가능한 고가차량은 2면에서 2대씩 총 4대다. 사진에서 정면과 우측면에 고가차량을 배치했고 좌측면과 후면은 차량 진입이 안 돼 옥상에 관창을 배치했다.
또 4면 포위의 압도적인 수세 우위를 통해 화세 확산을 차단했다. 이제 화세는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 된다. 이때 중점적으로 무게를 실어야 하는 소방전술을 알아보자.
이 세 단계가 얼마만큼 빠르고 정확하게 이뤄지느냐에 따라 [그림 2] 화재 현장의 80%가 결정된다. 나머지 20%는 우발적 변수다. 우발적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해당 화재 현장은 안전해진다.
언제나 강조하지만 화재 현장에서 보급(물)이 끊기지 않고 간결한 관창 배치가 이뤄진다면 현장이 효율적으로 운영된다. 화재 현장이 효율적이라면 화재진압 작업이 쉬워지고 쉬워지면 안전해진다.
즉 화재 현장의 안전이라는 건 결과일 뿐이다. 안전을 확보하기 이전에 해당 현장의 형세를 먼저 간결하고 효율적으로 갖춰 놓으면 안전은 자연스레 따라오는 결과물이 된다.
지난 호 ‘소방내전, ‘Tower Ladder’ 안전과 효율의 일타쌍피 필살템 ②’에서도 강조했지만 대한민국 화재 현장에 있어 저층 화재 현장도 고가차량이 사용돼야 한다.
“기본적으로 화재 현장에 최인접해 배치될 권한이 있는 차량은 고가차량이다”
이게 기본 전술로 자리 잡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게다가 이게 정답이라는 구성원들의 동의도 아직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은 ‘필요하다’는 거다. ‘칼의 노래’에서도 이순신 장군은 명량해전을 앞두고 고민이 많았다. 여기서 그 유명한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실제로 이순신 장군이 선조 임금에게 올린 장계에 그대로 기록된 내용이다. ‘칼의 노래’의 한 구절을 빌려본다면
“명량은 적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사지(死地)였다. 사지(死地)에서 삶과 죽음은 뒤엉켜 부딪혔다. 거기서 내가 죽음을 각오했던 것인지 삶을 각오했던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장군은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명량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명량은 나도 죽고 적도 죽는 사지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선택한 건 그게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일 거다.
[그림 3]은 어느 화재 현장이다. 3층 건물에서 현장 활동 중인 소방관들이 뛰어내리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다. 급작스럽게 발생한 폭발로 소방관 1명이 희생됐고 4명이 탈출 중 추락으로 다쳤다.
안전사고가 발생한 화재 현장을 다루는 건 매우 조심스러운 부분이지만 ‘과거 사례를 통해 미래를 대비한다’는 사명감으로 직면하고자 한다.
이는 앞서 말한 예상치 못한 20%의 경우의 수가 발현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화재 현장에서는 아무도 예상치 못하는 상황이 펼쳐질 확률이 20%에 육박한다. 이건 필자가 정했지만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으리라고 믿는다.
아무리 준비를 완벽하게 했더라도 화재 현장에서는 ‘불가항력’이라는 게 존재한다. 그 어떤 산업군에서보다 높은 확률일 거다. 대비한다고 ‘부(不)의 경우의 수’가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다만 우린 발생한 경우의 수에 어떻게 대응할 건가에 대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밖에 없는 포지션에 있을 뿐이다. 어찌 보면 소방의 구조적인 숙명이 아닌가 싶다.
[그림 4]는 [그림 3]의 경우와 유사한 해외의 어느 한 화재 현장이다. 3층에 화재가 발생했는데도 고가차를 배치해 3층 창문에 전개했다. 3층 창문에서 사다리 종단의 방수포를 이용해 화세를 밀어내고 있다.
방수포 주변엔 강한 분무 방수로 Cool Zone을 형성할 수 있을 거다. 유사시에는 바스켓과 사다리를 이용해 탈출로로 이용할 수도 있다. 여러 가지 이점이 많은 전술임에는 분명하다.
이순신 장군의 조선 수군 제1원칙 ‘백병전을 하지 않는다’의 근본적인 이유처럼 피해 없이 이기는 게 최상의 승리다. 그러기 위해 장군의 전략은 2, 3중의 대비책이 있었을 거다.
화재 현장에서 가장 좋은 건 ‘아무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 일’이라고 하는 ‘부(不)의 경우의 수’가 발생했을 때 그에 대비하는 게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다.
[그림 5]를 사례로 살펴보자. 미국 뉴욕시 2층 건물 화재 현장이다. 2층짜리 소형 상가 건물인 듯하다. 사진에서 보면 고가사다리차 4대가 전개돼 있다. 차량이 밀집해 아웃트리거를 펼치기 어려운 지역으로 판단된다.
그런데도 화재 현장 최인근에는 고가차량이 배치돼 있다. 이로써 현장에서 발생 가능한 ‘부(不)의 경우의 수’ 확률을 낮출 수 있게 됐다. 전개된 사다리는 다양한 기능을 해낸다. 진입로가 될 수도, 탈출로가 될 수도 있다. 강력한 방수포로 화세를 밀어낼 수도 있으며 내부에 구조대상자를 구출할 수도 있다.
“저층 화재에도 고가차량은 다양하게 활용된다”
모든 사회와 조직엔 문화라는 게 존재한다. ‘노예제’라는 제도는 수천 년 동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지금은 ‘노예제’에 대해 아무도 용납하지 않는다. “예전엔 어떻게 가능했지?”하고 놀랄 일이지만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는 인류 보편적 질서일 뿐이었다. 이런 개념이 문화라고 생각한다.
갑자기 왜 문화를 얘기하냐면 이런 소방전술이 현장에서 자리 잡기 위해선 소방조직 전체의 문화가 먼저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머릿속으로 그려내지 못한 전술은 절대 실현될 수 없다. 고가사다리 차량을 현장에 적용할 때도 몇 가지 인지 조건이 있다.
따라서 골목길에 차량 앞부분을 밀어 넣어두고 뒷부분을 도로에 남겨둔 채 후방 아웃트리거만 전개해 전개 하중을 지탱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부여된 임무가 있었고 그 임무의 성공적 완수를 위해 원칙대로 행동했다. 그러면서 그 원칙 수행을 위해 개인별로 창의력을 발휘해 변칙을 적용했음을 알 수 있었다.
미국 소방을 보면서 부러운 점은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태도 같은 게 아니다. 미국뿐이 아니다. 선진국이라고 하는 유럽 국가들이나 이웃 나라 일본, 심지어 중국마저도 화재진압의 대원칙이 존재함을 그들의 화재진압 현장 영상을 관찰하면서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필자는 강의를 통해 대한민국 소방전술 대개혁 작업을 하고 있다. 가끔 강단에서 ‘원칙’에 입각한 소방전술이 필요함을 강조하는데 현장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분들이 계신다.
“화재 현장이 모두 같지 않다. 변수가 많고 뜻대로 되지 않는다”
맞는 말이다. 따라서 더욱 필요한 게 ‘원칙’이라고 주장한다. 발전된 조직은 시스템에 의해 운영된다. 여기서 원칙은 체계다. 고대 로마의 번영은 시스템의 확립에서부터 시작됐고 그 시스템에 의해 유지됐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회자되는 게 로마의 도로다.
로마 식민지 어디든 같은 규격과 체계로 도로가 건설됐다. 마차 바퀴가 들어가는 홈까지 일정했다고 한다. 전쟁에서도 균일한 무기체계와 전투 매뉴얼이 존재해 전투 중 지휘관이 죽더라도 바로 직무대리가 이뤄졌다. 그 유명한 로마의 ‘팔랑크스’도 그 규모가 정해져 있었다.
무기는 규격화돼 있었고 팔랑크스 운영방법에 대한 기본적인 원칙이 존재했다. 즉 기본적인 전술 체계 아래 변칙을 적용하면서 위대한 승리를 거두며 제국을 유지해 나갔다. 여기서 ‘체계’라는 개념이 바로 ‘원칙’이다.
“우리 대한민국 소방도 이러한 시스템, 즉 ‘원칙’이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_ 김남휘 : nami002@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2년 8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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