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창세기에는 바벨탑에 관해 짧고도 매우 극적인 일화가 실려 있다. 높고 거대한 탑을 쌓아 하늘에 닿으려 했던 인간들의 오만한 행동에 분노한 하나님은 본래 하나였던 언어를 여럿으로 분리하는 저주를 내렸다.
바벨탑 건설은 결국 혼돈 속에서 막을 내렸고 탑을 세우고자 했던 인간들은 불신과 오해 속에 서로 다른 언어들과 함께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는 이야기다.
초고층 건축물에 화재가 발생하는 건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 어떤 경우의 수라도 최선은 희생을 최소화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길 바라지만 그래도 대안을 생각해봐야 한다.
여기선 외장재나 소방시설은 논외로 하고 사고 발생 이후 현장 대응 단계에 한해 서술하겠다. 이런 현장과 마주한다고 생각하고 시뮬레이션을 한번 해보자.
“뭐부터 해야 할까?”
현장지휘관이라면 10초 이내에 답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10초 이내에 찾은 답을 전 출동대에 전파해야 한다.
이 과정의 논리회로를 재빨리 돌려야 한다. 다만 전략적 목표 설정이 다양해질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먼저 전략적 목표를 설정하자. [그림 1] 현장에서 가장 우선시 돼야 하는 포인트는 추가 붕괴 우려다.
따라서 반경 1㎞ 이내의 모든 사람에 대한 소개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모든 관계기관을 동원해 빠른 ‘주민소개’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또 [그림 1] 규모에서 화재진압은 무의미하다. 가장 중요한 전략적 목표는 건물 내 인명구조다. 60층 정도에서 폭발이 발생해 상층부로 연소확대가 이뤄지는 상황이다. 고열로 건물 코어부가 용융될 경우 건물이 붕괴할 수도 있다.
여기서 첫 번째 Go Point1)가 발생한다. 소방관을 투입할지 아니면 내부로 투입하지 않고 방어에 중점을 둘지 결정해야 한다. Yes와 No의 선택에 대한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정에 충실할 뿐이다. 여기선 구조대 투입을 결정했다.
그렇다면 이번엔 구조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발화층 하층부는 계단을 이용해 내려올 수 있다고는 하지만 60개 층을 내려오기란 쉽지 않다. 수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밀려 내려오면 화재로 인한 사망보다 다수의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발생하는 ‘압사’의 확률이 더 높은 상황이다.
다음은 자원관리다. 현장 투입 가능 인력은 300명이라고 하자. 현장지휘관으로서 임무를 배분해 보자. 100명은 60층 이하 하층부의 인명구조, 100명은 60층 이상 상층부 인명구조를 명령한다. 상층부로 향하는 인명구조 방법은 옥상으로 대피한 후 헬기를 활용해 수행한다.
나머지 100명은 옥내소화전을 활용해 화재진압 활동에 집중한다. 분대는 임무별 10명씩 총 30개 조로 나눈다.
세 번째 다수사상자 관리다. 수많은 사상자 발생이 예상된다. 현장응급의료소와 구급차보다 다수의 버스를 운용토록 지시해야 한다.
반경 10㎞ 이내 모든 병원을 개방해 두고 증상별로 분류해 긴급환자는 가까운 병원으로, 비응급환자는 조금 더 먼 병원으로 분류토록 해야 한다. 또 현장에서 가능하면 식별탭을 사용해 환자를 추적관리 해야 한다.
네 번째 언론브리핑이다. 언론브리핑은 다음에 따로 다룰 계획이 없어 이번 호에서 자세히 다뤄보겠다.
현장지휘관은 ‘대형화재 의식의 흐름’ 마지막 단계, 즉 언론브리핑을 염두에 둬야 한다. 화재 발생 즉시 언론브리핑을 해야 한다는 의무를 잊지 않아야 한다. 언론브리핑은 빠른 것보단 정확한 게 중요하다.
대형화재 현장에서는 언론사뿐 아니라 관계기관에서 문의가 빗발친다. 재난 현장을 책임지는 우리로서는 수십 번 반복해 대답해야 하므로 한두 번 대답하다가 기다리라는 말만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당신이 현장지휘관이라면 다음의 세 가지는 반드시 지켜주길 바란다.
1. 초기에 브리핑하라. 언론사, 관계 기관에게 공식적으로 먼저 공표하라. ‘30분 뒤에 공식 브리핑을 실시하겠다’고 현장에서 예고하라. 대응 초기에 정확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
부족한 정보로 인해 구멍이 뚫린 모호한 상황은 정치인과 언론 그리고 전문가들의 불확실한 추측과 오보를 초래한다. 이는 상황을 악화시킬 수밖에 없고 결국 기관의 신뢰에 커다란 타격을 주게 된다. 발표가 늦어질수록 나중엔 잘못된 언론 보도나 루머를 반박하는 방향으로 커뮤니케이션이 전개되기 마련이다.
2. 확인된 사실만을 말하라. 초기 브리핑에서는 관련한 조치와 진행 상황 위주로 확인된 사실만을 말해야 한다. 세월호 사건의 경우만 봐도 사건 초기에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브리핑해 정부에 대한 신뢰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다. 속도보다는 정확성이 중요하다.
3. 어떤 조치가 취해지고 있는지 말하라. 직면한 위기상황에서 어떤 조치를 하고 있고 이를 통해 어떻게 작전이 수행되는지 정확히 설명해야 한다. 특히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현장 통제와 응급조치를 책임 있게 시행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알려 협조를 구해야 한다.
어떤 조치를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국민에게 전달되지 않을 때 우려와 불안은 커지게 된다. 재난 상황과 관련한 의혹과 루머도 확산된다.
[그림 2]를 살펴보자. 소방차가 현장에 도착했는데 이런 화재 현장이다. 지휘관으로서 어떤 명령을 내려야 할까? 당신이 화재 발생 5분 이내에 모든 작전을 끝내지 못한다면 작전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만일 소방서가 가까운 거리에 있어 신속하게 출동해 인명구조를 위한 진입 명령을 내렸다면 소중한 소방대원까지 잃게 됐을 거다.
이 화재는 2017년 6월 14일 밤, 5분 16초 만에 건물 전체가 화염에 휩싸여 72명이 사망한 런던 서부의 그렌펠 타워(Grenfell Tower) 화재다. 이 현장에서 할 수 있는 건 무엇이 있을까? 불행하게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단지 불이 번지지 않게 하는 ‘연소확대방지’를 할 수 있을 뿐이다.
외부 고가 방수의 높이를 넘는 초고층 건축물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옥내소화전이나 연결송수관을 활용한 화재진압 작전을 수행해야 한다. 하지만 이 작전마저 불가능할 만큼 내부 진입이 안 되는 수준의 화재라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때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고층 건물이니 고가 차량을 배치해야 하고 고가차량을 구조에 활용할 건지, 아니면 화재진압에 집중할 건지 결정해야 한다.
화재가 확산하지 않은 하단부 3층 정도까진 인명구조를 위한 진입을 명령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상층부엔 진입해도 유의미한 결과를 가져오기 힘들다. 오히려 소방관의 희생 가능성만 커질 뿐이다.
이런 현장에서 헬기 방수는 지양해야 한다. 옥상에 구조대상자가 있는 상황이라면 그 어떤 경우라도 헬기 구조작업을 수행해야 할 거다. 헬기에서의 방수는 그 효과가 미비하지만 하강풍으로 인한 연소확대 가능성이 커진다. 따라서 헬기 방수는 신중해야 한다.
그렌펠 타워 같은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현장 전체가 패닉에 빠지지 않도록 강력한 통제권을 확보하는 일이다. 강력한 통제권은 시스템에서 나온다.
아무리 대응하기 힘든 현장일지라도 개개인이 맡은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현장지휘관이 그 임무 상황을 지속해서 확인ㆍ통제한다면 시스템적인 대응을 기대할 수 있다.
아무리 시스템적으로 대응을 잘해도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사고의 충격을 전부 흡수할 순 없다. 그러나 시스템적인 대응체계가 잡힌 현장에서는 그 어떤 충격적인 일들이 벌어지더라도 혼돈의 피해는 최소로 줄일 수 있다.
현장의 지휘관이라면 시스템적인 대응체계를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고하고 반복된 훈련으로 현실화해 나아가야 한다.
시대적 요구에 따라 초고층 건축물은 트렌드가 됐다. 미래 사회는 한 건축물 내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흐르고 건축물은 계속해서 커지고 높아질 거다.
이미 49층짜리 건축물들이 많이 들어섰으며 앞으로 GBC나 롯데타워 같은 마천루가 한강을 빼곡히 채우게 될 날도 머지않았다. 모두가 스카이라인에 감탄하고 있을 때 언젠가 반드시 ‘Black Swan’은 출연할 거고 그 ‘검은 백조’를 컨트롤하는 건 우리 소방관들에게 남겨진 숙제다.
우리 소방관들은 밝은 곳의 영광을 위해 뒤에서 말없이, 끊임없이, 빈틈없이 다가올 어둠을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초고층 건축물이 밀집한 지역에서는 [그림 4]와 같은 장비가 꼭 필요하다. 이런 장비가 초고층 건축물 현장을 완벽히 해결할 순 없을 거다.
방수가 가능한지, 고가차를 활용했을 때 몇 m까지 방수할 수 있는지 테스트해 봐야 한다. 물론 어려움도 있을 거다.
그러나 이런 장비를 보유한 소방서가 있다면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만일의 상황에서 살아남을 확률 또한 커지는 게 아닐까 싶다.
고층 건축물 한 층당 3m로 단순 계산하면 112m 고가굴절차량은 약 37층까지 전개할 수 있다.
만일 112m 고가굴절차를 보유한 소방서 관할구역의 건물 37층에 사람이 매달려 10분 이상 버티고 있다면 구조될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나 37층 이상이라면 구조될 확률은 급격히 감소한다.
그렌펠 타워 화재 같은 상황에서 10층 이상에서 구조를 기다린다면 구조될 확률은 0에 가깝다. 현장지휘관이라면 저 고가굴절 차량을 어떻게 활용할 건가에 대한 그림이 머릿속에 확실하게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소방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현장의 소방관들과 국민에게 전가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고층 건축물을 대상으로 하는 구조훈련과 화재진압훈련 그리고 다수사상자 발생 대응훈련을 지속해야 한다. 제식과 절차에 얽매이지 않고 실제 내용에 집중해서 이뤄져야 한다.
고가차량을 전개해 방수는 몇 층까지 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고 내부 옥내소화전을 활용해 방수하는 방법, 연결송수설비를 활용해 화재를 진압하는 전술, 다수사상자가 발생했을 때 대응할 방안 등에 관해 현장 활동을 하는 모든 구성원이 스스로 몸에 익도록 정기적인 훈련을 해야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제식과 절차에 얽매이지 않는 실질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재난은 이제 재난 분야에 한정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재난 발생은 국가의 안보와 직결됨을 여러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우리 소방은 국민의 안전에 대한 요구가 엄중한 상황임을 인지하고 대형 재난 현장에서 어떻게 대응할 건지에 대한 방법론을 익히고 닦아야 할 거다.
1) Go Point는 와튼스쿨 교수 ‘마이클 유심’이 주장한 이론으로 Yes or No를 반드시 결정해야 하는 순간을 말한다.
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_ 김남휘 : nami002@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2년 12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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