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제국과 동로마제국과의 전쟁을 그린 ‘오스만제국의 꿈’이라는 시리즈물을 소개한다. 역사적 팩트인데 모든 과정을 매우 자세하고 흥미롭게 고증에 따라 섬세하게 그려낸 수작이라고 평가 받는다. 대략적인 내용은 오스만제국 불세출의 영웅 메흐메드 2세의 동로마제국 콘스탄티노플 정복기다.
콘스탄티노플은 1천년 동안 함락된 역사가 없었는데 이는 높이 12m 삼중구조의 ‘테오도시우스 성벽’ 때문이다.
오스만제국의 젊은 술탄 메흐메드 2세는 이 난공불락의 요새화 된 당대 가장 부유했던 도시를 넘으려는 전략을 세웠다. 전쟁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버린 우르반 대포를 도입해 성벽을 파괴했고 10만의 군사로 7천의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했다.
그러나 한 달이 다 돼가는데도 테오도시우스 성벽을 넘기란 쉽지 않았다. 오스만의 젊은 술탄 메흐메드 2세는 역사에 길이 남을 전략을 세운다.
바로 콘스탄티노플의 유일한 약점인 골든 혼(금각만) 내부로 해군의 배를 투입하는 작전이다. 여기서 만 내부로의 진입이 뭐가 어렵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콘스탄티노플은 금각만 내부로 적들을 진입시키지 않기 위해 쇠사슬을 양쪽으로 걸어 배가 걸려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그 결과 동쪽 성벽의 자연스러운 방어가 가능해져 병력을 북쪽 성벽에 집중 배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스만제국 불세출의 영웅 메흐메드 2세는 이 쇠사슬을 넘지 않고 배로 육로를 이용해 금각만 내부에 진입하는 전격전을 단 하룻밤 만에 성공시킨다.
개전 후 한 달이 다돼가는 시점이던 어느 날 아침 콘스탄티노플 시민은 금각만 내부에 진을 펼친 오스만 해군을 보고 기겁하게 된다. 오스만 해군의 배들을 보면서 ‘질 수도 있겠구나’란 공포가 도시 전체에 퍼진다.
한 달 동안 오스만군은 땅굴 작전과 우르반 대포 포격, 성벽돌격 등 모든 작전에 실패했지만 마지막 육로로 76척의 배를 이동시켜 투입함으로써 콘스탄티노플로의 보급을 끊어내고 동쪽 성벽으로의 병력 분산배치를 유도해낸다. 이렇게 물리적 압박을 가하고 공포를 심어줌으로써 심리전에서까지 승리했다.
지휘관의 판단력은 역사를 바꿀 수 있다. 전쟁과 재난은 그 맥락이 극단에 있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전략적인 부분에서는 결을 같이 하는 부분도 존재한다. 전략적 목표 설정과 적절한 전술 적용, 시시각각 변화하는 환경적 여건 속에서의 빠른 판단력 같은 부분은 모두 핵심적인 요소라고 볼 수 있다.
강남 아파트 화재 현장지휘관의 판단 아래 사진은 2016년 7월 11일 강남구 대치아파트 화재 현장이다. 주민이 촬영한 영상을 유튜브에서 발췌했다. 영상 속 선착 펌프차와 탱크차가 도착했을 때 화재는 7층에서 최성기로 출화 중이었다.
이런 선착대 지휘관을 보유한 지역의 주민은 화재 발생 시 구조되거나, 탈출하거나,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지게 된다고 볼 수 있다. 화재 초기 지휘관의 역할은 재난 현장 진행 양상을 결정한다.
매 순간 현장에서는 재난으로 이어질 건가, 사고로 이어질 건가의 갈림길에서 소방관이 신속하고 적절하게 대응해 사고가 마무리됨에 매번 감사할 따름이다.
일산 산부인과 화재 현장지휘관의 판단 또 다른 사례를 살펴보자. 2019년 12월 14일 조용한 토요일 오전 고양소방서 상황실에서 근무 중이었다. 화재 현장 관제 모니터로 일산소방서 관할 지역의 화재 현장이 송출되고 있었다(경기도 각 소방서 상황실에는 도내 모든 화재 현장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출동 현장 CCTV 시스템이 설치돼 있다).
더욱이 화재 현장에는 산부인과 병원과 산후조리원이 함께 있었다. 검은색 연기가 기둥처럼 솟아올랐다.
아이를 가진 부모의 마음으로 어린 생명과 엄마들이 무사하길 간절히 바랐다. 다행히도 현장은 일산소방서 가까이에 있어 화재 발생 3분 만에 소방관들이 현장에 도착했다. 도착 즉시 현장지휘관은 인명구조를 최우선 전략목표로 선포했다.
적절한 대응이었다. 1층 주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했으므로 연기가 병원 내부로 침투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반대쪽 출구로 인명 대피를 하면 성공 가능성이 큰 작전 설계였다. 현장의 지휘관은 도착과 동시에 빠른 판단을 내렸다.
일산소방서 구조대는 진입로가 화염에 휩싸여 막혔는데도 과감히 돌파해 옥내로 진입했다. 여기서 구조대 팀장의 기지가 빛을 발한다.
영아들은 연기에 매우 취약하다. 성인에겐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연기도 막 태어난 신생아에겐 그 위험성이 하늘과 땅 차이다. 이 사실을 인지한 구조대 팀장은 긴급히 무전으로 공기통(현장에서는 봄베라고 함)을 다량 요청한다.
신생아실로 진입한 구조대는 일제히 공기통을 개방해 신생아실 내부를 양압 상태로 만들어 연기가 진입하지 못하게 하는 동시에 건물 복도에 잔존 연기마저 확실히 제거하는 작업을 진행한 후 신생아들을 옥상으로 대피시켰다.
그 후 옥상으로 대피한 산모들과 아기들을 고가사다리차와 굴절차를 이용해 무사히 1층으로 구조 완료했다. 이런 사실이 추후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전체에 퍼져 나가자 소방관들은 ‘구조대가 또 구조대 했네’라며 그들에 대한 경의를 표했다. 구조대에 대한 설명은 뒤에서 다시 자세히 하도록 하겠다.
당시의 현장지휘관은 ‘운이 좋았다’며 겸손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절대 운이 아니고 화염에 휩싸인 현장에서 산과같이 무겁고 침착한 지휘와 현장 대원들의 일사불란함이 만들어낸 ‘대응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추운 겨울이기 때문에 인근의 은행 건물과 소방서의 3층 강당을 활용한 판단력은 가히 압권이었다. 여기 더해 2차에 걸친 언론브리핑까지… 완벽한 현장지휘의 표본이었다.
357명이 건물 내부에 있었고 그중 177명을 완벽히 주변 12곳의 병원으로 분산 이송했다. 가장 다행이었던 건 신생아 56명이 무사히 병원으로 이송됐다는 사실이다. 이날의 수호신은 빠른 판단력과 현장 장악력을 보여준 현장지휘관이다.
일산소방서 관할의 일산동ㆍ서구 주민은 이런 현장지휘관을 보유한 결과 완벽한 현장 대응으로 희생자를 발생시키지 않을 수 있었다. 더욱이 아기천사들과 새로운 생명을 세상에 만들어낸 고귀한 생명으로 가득 찬 산부인과 병원이어서 그 보람은 더욱 크다.
화재 현장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평범한 영웅이 많다. 우리 소방이 보유한 자산의 실체는 바로 이런 것이다.
현장에서 묵묵히 초인적인 능력으로 임무를 완수해내는 대다수 소방관은 이런 일들을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여긴다. 우리가 존경의 경례를 표해야 하는 곳은 계급장이 아니라 이런 평범한 영웅을 향해야 한다.
캐나다 몬트리올 시티 화재 현장지휘관의 판단 다음은 해외사례를 한번 살펴보자. 아래는 2016년 11월 17일 캐나다 몬트리올 시티 화재사례다. ①번 사진에서 굉장히 특이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장의 펌프차 2대가 화점에 직접 주수하는 게 아니라 발화건물과 발화건물 좌측면의 중간쯤에 방수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②번, ③번 사진이다. 후착대 두 대는 좀 더 발화건물 쪽으로 방수하고 있다. ④번 사진에서는 고가굴절차량이 도착했음을 알 수 있다. 자세히 보면 화점에 직접 방수하는 게 아니라 발화건물 뒤편건물에 방수하고 있음이 관찰된다.
⑤번 사진에서야 비로소 건물 화점을 직접 공격하고 있다. ⑥번 사진은 고가사다리차를 이용해 뒤편건물 옥상에 올라간 진압대원들이 옥상에서 방수를 준비하는 모습이다.
위 사진의 현장지휘관은 이미 화재 최성기를 지난 발화건물로 연소범위를 한정하고 주변으로 확산 방지를 전략목표로 설정했다고 볼 수 있다.
1차로 방수포 2개를 건물 좌측면에 배치했고 직접 공격조로 2개 조(관창 2기)를 배치했다. 고가굴절차량은 발화건물 뒤편 방어를 지시했다. 그 결과 연소건물로 화재 범위를 묶어둔 채 완전 진압에 성공했다.
화재 현장뿐 아니라 재난 현장에서는 언제나 한정된 자원이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는 재난과 대응 사이에서 불가피한 일이다. 재난 초기에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공급할 건가란 판단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판단법 중 하나로 경우의 수 판단법을 생각해 보곤 한다.
만약 저 위 현장처럼 화재 확산 가능성이 매우 큰 현장에서 화점을 직접 공격할 시 화재확산 가능성이라는 경우의 수가 남게 된다.
하지만 주변부부터 확산 방지를 전략적 목표로 설정했을 때 경우의 수는 확산 가능성의 경우의 수를 사라지게 한다. 물론 예기치 못한 상황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승률이 높은 경우의 수에 투자하는 게 위태롭지 않을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위 사례의 현장지휘관 판단이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자원(인력, 물)이 부족한 상황에서 확산 방지만을 명령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화재 초반에 소방력이 부족한 실정인데도 과감하게 방수포 2기를 최우선으로 건물 좌측면 방어를 지시한 점은 소신 있고 정확한 판단이라고 볼 수 있다.
용인 주상복합 공사장 화재 현장지휘관의 판단 또 다른 사례를 제시한다. 2019년 3월 27일 수요일 오후 용인 성복동 주상복합 공사장 화재 현장이다.
공사 현장 4층 상부에서 용접ㆍ용단 작업 중 발생한 불티가 단열재와 마감재 등에 비화하면서 최초 발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4층 상부에서 단열재 등이 타면서 상층부로 연소가 확대됐다. 여기엔 또 한 명의 영웅이 있었다. 관할대 선착 대장인 용인소방서 수지119안전센터장이다.
선착 지휘관은 해야 할 일을 알았고 후착대에 말해줘야 할 것도 알았다. 선착 대장은 현장 도착 전 다량의 검은 연기가 발생했음을 전파했다.
용인 수지안전센터 선착 대장은 현장 상황 확인 후 대응 2단계를 즉각 발령시킨다. 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수의 인명피해가 예측됨에 따라 임시 응급의료소를 지정하고 운영토록 지시했다.
게다가 자상하게 주변 아파트 연기로 인해 주민 대피 또한 본부 상황실로 요청까지 해 줬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용인 수지의 水호신들은 가장 먼저 조를 나눠 현장을 분할했다.
인명 대피 유도를 최우선 전략목표로 설정하고 임무별 용인 수지안전센터 대원 4명을 2개 조로 나눴다. 1조는 5층 창문을 통해 로프를 내려 수관을 끌어올려 방수하고 2조는 지하층 우선 인명검색 후 1조와 합류해 진압작업을 하기로 했다.
지휘차는 약 20분 뒤 현장에 도착했다. 용인 수지의 선착 대장과 현장 대원들은 이른바 골든타임을 위대하게 커버해줬다.
건물 내부에는 1139명이 공사작업 중이었다. 다행히 사망자 없이 현장은 마무리됐다. 용인 수지구는 용인 수지119안전센터장을 보유한 결과 1천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는 현장을 단 한 명의 사망자 없이 15명의 부상자만 발생시키고 완벽하게 마무리했다.
그날의 용인소방서 수지119안전센터장은 영웅이었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영웅들은 이렇게 번쩍하고 나타나선 슬그머니 사라지고 만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노력 재난 대응은 사회적으로도 피해가 크지 않으면 별 게 아니었나 보다 하고 조용히 끝이 난다. 재난 현장은 위 사례들과 같이 빠른 판단력과 적절한 조치로 인해 다수의 인명을 구해 낼 수 있는 티핑포인트를 최적의 타이밍으로 수행해낸 소방관들이 있었기에 더 큰 인명피해 없이 마무리될 수 있었던 거다.
보이는 곳에서의 영광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노력이 지금 이 순간에도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이 부분에 대한 인지가 부족한 점이 안타깝다. 아니 우리 조직이 이에 대한 인지와 보상이 부족한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져본다.
뉴질랜드에는 아름다운 사연을 발굴해 지속해서 언론에 보도하는 정부 정책이 존재한다고 한다. 인간의 심리 중 모방심리가 있는데 좋은 사연을 계속 접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좋은 일을 하려고 하는 습성이 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런 점이 안타깝다. 자극적인 한 줄의 기사가 주목받고 광고를 끌어낼진 몰라도 사회 전체의 효용을 위해 아름다운 사연이 의도적으로라도 많이 보도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다분히 의도적이더라도 말이다.
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_ 김남휘 : nami002@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3년 1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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