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일지 2월 9일_ 생존자 5명 구조, 사망자 9명 수습 ② 안타까운 사망자 2명 수습
탐색반이 출발한 후 숙영지를 편성하고 있는데 생존자 구조 소식이 전해졌다. 우리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골든타임의 끝자락에서 구조작업을 시작했지만 아직 희망을 잃기엔 시기상조였다.
우리 도움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무너진 건물 아래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바빠졌다. 빨리 현장에서 생존자를 구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오전 7시 27분께 첫 구조 활동 명령이 떨어졌다. 현장 지휘소에서 임무 지역과 위치를 부여받았다. 대원들은 구조에 필요한 장비를 챙겼다.
매몰된 생존자를 찾아 대화를 시도할 수 있는 서치탭과 콘크리트나 철근을 절단하고 무거운 걸 들어 올릴 때 사용하는 배터리식 유압장비, 생존자를 찾아 안전하게 이동시킬 수 있는 들것, 전기를 공급하는 소형 발전기, 사망자를 수습해 안전하게 이동시킬 수 있는 사체낭 등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물과 기본 식량을 챙겼다.
현지 재난ㆍ비상관리 당국에서 제공해 준 밴과 픽업 차량에 탑승했다. 통역사는 현장 지휘소에서 알려준 위치를 현지 운전사에게 구글맵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운전사가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인 후에야 출발할 수 있었다.
통역사가 잘 설명한 덕에 출발도 순조로웠다. 무너지고 부서진 건물을 보며 덜컹거리는 도로를 따라 20분가량 이동했다. 태어나 처음 온 낯선 튀르키예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은 우리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시 전체가 미사일 공격을 받은 것처럼 건물이 무너지고, 벽 곳곳에 금이 가고, 유리창은 깨져있었다. 어떤 건물은 손가락으로 밀어도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이미 현지인들과 튀르키예 구조대는 무너진 건물에서 생존자를 찾기 위해 수색 중이었다.
무너진 건물의 범위가 넓다 보니 생존자 수색이 힘들었다. 무너진 건물 주변에는 구경꾼도 있었지만 대부분 가족의 생사를 몰라 확인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 아래에 가족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수색을 요구하며 아우성을 쳤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장비와 인력으로는 요구사항을 모두 들어주기에 역부족이었다. 지진으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의 울부짖음은 마치 야수의 울음과도 같았다. 우리를 보고 도와 달라는 손짓에는 절규가, 눈빛에는 간절함이 느껴졌다.
‘생존자가 있다면 신고 지역을 수색한 후 다시 돌아올 때까지 생존해 있길…’
우린 광범위하게 무너진 건물을 효과적으로 수색하기 위해 2개 조로 나눠 생존자 신호를 찾는 데 집중했다. 처음 발견한 사망자의 모습이 지금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건물 입구에서 불과 1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사망해 있었다.
‘1m만 나왔으면 됐는데… 조금만 빨리 움직였으면 됐을 텐데…’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빨리 복잡한 감정을 정리하고 이분을 편안하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했다. 주변환경과 건물 안정성을 평가하고 신속하게 구조할 방법에 대해 토의한 후 구조작업을 개시했다.
외부로 보이는 사망자의 옆으로 기어들어 가 내부 상황을 먼저 확인했다. 건물의 상층 바닥 콘크리트와 내력벽 사이에 하체가 끼어있었다. 상부에서 누르고 있는 콘크리트 무게로 구조작업이 쉽지 않았다. 또 간헐적 여진이 있어 구조대원이 진입했을 때 안전을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중 가장 어려운 건 구조대원이 사망자의 신체를 접촉하며 빼내야 한다는 사실이다. 심리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린 사망자의 초상권과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구조작업 장소를 담요로 가렸다. 그런 후 구조대원이 사망자의 옆쪽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 구조 활동을 시작했다. ‘사망자가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왜 1m를 나오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은 내부 상황으로 알 수 있었다.
건물 전체가 무너진 상황에서 사망자가 외부로 노출돼 있으니 건물 입구라고 생각했는데 내부는 침실이었다. 침실에서 자던 중 새벽 시간에 지진이 발생해 건물이 무너지면서 창가 쪽으로 튕겨 나오지 않았을까 추측됐다.
상판 바닥 콘크리트가 사망자의 다리 위로 떨어져 다리가 콘크리트와 침대 프레임 사이에 끼여 사망한 상태였다. 사망자를 구조하려면 상판 바닥 콘크리트와 침대 프레임을 제거해야 했다. 공간이 협소해 몸을 자유롭게 쓸 수 없었다.
개척한 통로는 오직 전진과 후진만 가능했다. 외부에서 무거운 장비를 받아 내부에서 운용하기란 쉽지 않았다. 배터리식 유압장비는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듯 굉음을 내며 있는 힘을 다하고서야 겨우 상판 바닥 콘크리트 일부를 들어 올릴 수 있었다.
장비의 성능한계 이상으로 사용하다 잘못하면 장비가 파열돼 구조대원이 다치거나 그 충격으로 건물이 무너져 고립될 수도 있다. 우린 상판을 지지하고 있는 장비에 어떠한 충격도 주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신속하게 침대 프레임을 하나하나 절단하며 사망자를 꺼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우리의 마음이 하늘에 닿았는지 엎드려 불편한 자세로 있던 사망자를 비교적 이른 시간에 꺼낼 수 있었다.
주변에 사망자의 가족을 수소문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현지 구급차가 있는 곳으로 현지 구조대원들과 함께 사망자를 옮겼다. 편안하게 눕혀주고 싶었지만 사후 강직된 상태라 엎드린 자세 그대로 담요를 덮어줄 수밖에 없었다. 다른 조에 의해 같은 건물 상부에서 또 다른 사망자 한 명이 발견됐다.
몇 층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진 건물의 상부 구조 현장은 큰 외벽이 비스듬히 무너져 쌓여 있어 추가 붕괴 우려가 더 컸다. 사망자의 위치는 확인됐다. 무너진 콘크리트 벽체 사이로 머리카락처럼 엉켜있는 철근을 절단하고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구조대원이 들어가기 쉬운 곳을 선택한 후 철근을 절단하며 기어서 접근했다. 사망자는 산산이 부서진 콘크리트 더미와 가전제품들에 몸 일부가 짓눌려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곳은 부엌이었다. 여러 가지 배관이 엿가락처럼 휘어져 있었다.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협소했다. 휴대용 커터를 이용해 배관부터 절단하고 구조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좁은 공간에서 젖먹던 힘까지 쓰다 보니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정신없이 작업한 결과 구조대원이 접근할 수 있는 통로는 어느 정도 확보됐다.
사망자에게 접근해 주변을 확인했다. 사망자를 짓누른 콘크리트를 장비로 부수거나 잘라내긴 어려운 상황이었다.
“콘크리트 더미가 떨어지지 않게 지지하고 사망자 몸 아랫부분의 잔해물부터 걷어냅시다”
주변에 마땅한 도구가 없어 손과 깨져있던 타일로 콘크리트 자갈과 목재를 제거하고 나서야 사망자를 구조할 수 있었다. 두 곳의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돼 갈 때쯤 우려했던 여진이 발생했다.
주변에서 구조작업을 지켜보던 현지 주민과 아래쪽에 있던 동료 구조대원들이 소리를 지르며 호각을 불기 시작했다. 아래에 있던 또 다른 구조대원은 빨리 현장에서 벗어나라는 손짓을 하기도 했다. 우린 모든 걸 그대로 두고 안전한 도로 가장자리로 대피했다.
다행히 구조작업을 하던 건물은 추가 붕괴가 일어나지 않았다. 여진이 멈추자마자 구조작업은 다시 진행됐다. 아무리 뛰어난 구조실력을 갖춘 대원이라도 하늘의 도움은 필요하다. 움직이지 않던 무거운 콘크리트가 조금씩 옆으로 밀려났고 마침내 사망자를 구조했다.
중앙119구조본부_ 김상호 : sdt1970@naver.com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7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