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가 순간 우리가 타고 갈 수송기가 궁금해 자리를 옮겨 수송기가 보이는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공군의 새로운 수송기라 기대했지만 보통의 민간 항공기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단지 회색빛을 띠고 있어 군용기라는 느낌만 있을 뿐이었다.
저 수송기를 타고 튀르키예까지 갈 생각에 멍하니 창밖을 주시하고 있는데 탑승 방송이 나왔다. 대원들은 개인 가방을 챙겨 일렬로 통로를 따라 수송기에 탑승했다. 통로의 마지막, 기내 입구에서 우리를 맞이한 사람들은 민간 항공기 승무원이 아닌 건장하고 잘생긴 공군 장병들이었다.
기내에 들어오는 순서대로 자리를 잡고 개인 가방을 자리 위 선반에 넣은 후 자리에 앉았다. 이어 특전사 대원들이 큰 군장(전투용 배낭)을 갖고 기내로 들어왔다. 큰 군장은 자리 위 선반에 들어가지 않았다.
당황한 공군 장병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결심을 받는 눈치였다. 곧이어 책임 승무원이 뒤쪽 남는 좌석에 군장을 잘 쌓아 보라고 했다(군장을 안전장치가 없이 쌓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특전사 대원들이 좌석에 앉을 때까지 기내는 분주하고 어수선했다. 하지만 훈련이 잘된 부대답게 일사불란하게 짧은 시간 내 마무리하고 좌석에 앉았다. 실내는 다시 조용해졌다. 시계를 보니 어제 첫 번째 출동 문자를 받은 후 약 24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2023년 2월 8일 오전 1시 12분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 118명은 국방부가 제공해 준 공군의 공중급유기(KC330, 에어버스 사)를 타고 인천국제공항을 이륙해 아시아의 끝이자 형제의 나라 튀르키예 아다나 공항으로 향했다.
공군의 공중급유기는 우리가 생각했던 수송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객실은 민간 항공기와 동일했다(조금 아쉬운 부분은 좌석에 영화를 볼 수 있는 모니터가 없었다). 기내 앞쪽에 비즈니스석이 일부 있었고 가운데와 뒤쪽에는 일반석이 배열돼 있었다.
C-130H 수송기가 여관이면 공중급유기는 호텔이었다. 비행 중 두 번의 기내식이 제공됐고 모두 본도시락 제품이었다. 첫 번째 식사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따뜻한 도시락을 먹었다. 대원들은 “당분간 먹지 못할 한식이니 남기지 말고 맛있게 먹자”는 인사를 나누며 식사했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바쁘게 하루를 보낸 대원들은 식사 후 대부분 기절하다시피 깊은 잠에 빠졌다. 온종일 출동 준비에 지치고 긴장한 몸과 정신이 이제야 휴식에 들어갔다. 한참을 자고 일어났지만 창밖은 여전히 어두웠다.
튀르키예와 우리나라 시차는 6시간이다. 한국 출발 시각에서 6시간을 빼면 되니 튀르키예는 오후 7시다. 우린 튀르키예 도착 전까지 계속 어둠 속을 비행했다. 마치 불확실한 우리의 여정을 알려주듯이….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다 실내등이 켜지고 두 번째 식사 안내 방송이 나왔다. 본도시락이었지만 첫 번째 도시락과 달리 찬밥이 돼 식탁에 올라왔다. 지금은 찬밥, 더운밥을 가려 먹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냥 든든하게 먹어둬야 했다.
민간 항공기와 달리 공군의 수송기 실내 생활은 자유로웠다. 오랜 시간 좁은 의자에 앉아 있으면 허리가 아프기 마련이다. 그럴 때면 자연스럽게 통로로 나와 객실을 앞뒤로 걸으며 스트레칭을 할 수 있었다.
수송기는 인천국제공항을 이륙했지만 우리가 착륙할 공항은 명확하지 않았다. 우리가 착륙을 요청한 공항은 튀르키예 지진 진원지에서 안전지대인 아다나 공항이었지만 가지안테프 공항에 착륙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가 나왔다(당시 가지안테프는 피해지역으로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는 첩보가 있었다. 그래서 더욱 긴장된 분위기였다).
정보가 차단된 수송기에서 목적지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조종사뿐이었다. 수송기 탑승 전 외교부에서 튀르키예까지 단시간에 갈 방법은 ‘러시아 영토를 통과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러시아 영토 통과 승인을 조율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직접 듣진 못했지만 아마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잘 조율됐다면 우린 지금 러시아 영공을 통과하고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비행 10시간이 지나면서 지면에 불빛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가로등 불빛도 보였다. 불빛의 규모로 보아 도시는 아니었다. 띄엄띄엄 불빛이 있어 시골 마을들이 있는 상공을 비행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2시간 뒤에 튀르키예 공항에 착륙한다. 착륙 시간이 다가올수록 주변은 밝아졌다. 이 난리에도 태양은 어김없이 떠올랐다.
잠에서 깨어난 대원들이 창밖을 보며 같은 배열에 앉은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자 기내는 다시 활기가 돌았다. 조금 있으니 기내 방송으로 “우리 수송기는 곧 가지안테프 공항에 착륙하겠습니다”라는 안내가 나왔다. 창밖 어두움도 사라지고 밝은 햇살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2023년 2월 8일 오전 6시 57분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는 아침 햇살이 가득한 튀르키예 가지안테프 공항에 착륙했다.
수송기 문이 개방되자 차고 맑은 공기가 기내로 들어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날씨는 좋았고 공기가 어찌나 맑던지 저 멀리 보이는 산이 Full HD 화질로 보는 것처럼 선명했다.
기온은 한국의 2월 겨울 날씨보다 포근했지만 얼굴을 스치는 바람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휴대전화로 현지 날씨를 검색해 보니 영하 5℃였다.
낯선 이방인을 튀르키예에서 환영해 준 사람은 튀르키예 한국대사와 대사관 관계자, 우리보다 하루 빨리 떠난 선발대원들이었다. 수송기 출입구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서 먼저 도착한 선발대원들과 악수하며 인사를 나눴다.
해외긴급구호대원들과 수송기 탑승 승무원까지 모두 내려 튀르키예 땅을 밟고 단체 사진을 촬영했다. 다 같이 오른손을 들고 파이팅했던 첫 사진이 며칠 후 한국에서 문제가 됐다는 소문이 들렸다.
피해국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임무를 잘 수행하자는 뜻에서 했던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다른 의도로 보일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어떤 행위를 하기 전 현재 상황을 잘 파악하고 그 행위로 인해 돌아올 후폭풍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튀르키예 대사관에서 준비한 수송 버스에 개인물품 가방을 옮겨 싣고 수송기에서 화물을 내리기 위해 화물 리프트기를 기다렸다.
먼저 도착한 노르웨이와 이탈리아, 프랑스, 카타르 구조대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가지안테프 공항 터미널 내부에는 침낭에서 자고 있는 외국 구조대원들도 있었다. 먼저 도착했지만 이동 수단을 구하지 못했거나, 구조작업을 수행할 지역을 할당받지 못했거나, 또 다른 이유로 대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외국 구조대 중에는 소방관도 있지만 군대에서 구조 임무를 수행하는 나라도 많다. 우리나라 특전사도 비슷한 임무가 있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총을 휴대하고 실탄까지 갖고 온 군인들을 보니 ‘이곳이 전쟁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와 조직, 피부색은 달라도 모두가 튀르키예 지진 피해를 돕기 위해 이곳으로 파견된 사람들이다.
우리보다 먼저 가지안테프 공항에 도착한 국가 중에서 RDC1)를 구성할 수 있는 국가는 Heavy 등급을 보유한 프랑스가 유일했다. 하지만 도착한 시간이 비슷하다 보니 RDC 구성을 위해 튀르키예 정부, 공항 측과 협의 중이었다.
시골 동네 작은 공항 터미널에 많은 나라의 구조대원이 한 번에 몰려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작은 공항 활주로에는 비행기가 쉴 틈 없이 이륙과 착륙을 반복하며 긴박한 튀르키예 지진 상황을 대변하고 있었다.
통상의 공항에는 항공기에서 화물을 내리는 화물 리프트기를 여러 대 보유하고 있다. 가지안테프 공항은 규모가 작다 보니 리프트기가 2대뿐이다. 그중 1대가 고장 나 운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먼저 들어온 비행기부터 차례대로 화물을 내리고 있어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우린 공항 측에 신속하게 하역을 주문했지만 우리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한 시간 정도 기다리자 화물 리프트기가 우리 공군의 수송기 쪽으로 천천히 왔다. 얼른 수송기 후미 화물칸 문을 열고 출동 장비를 내리기 위한 준비를 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볼 때와 달리 수송기 후미에는 공중에서 전투기에 급유할 수 있도록 붐이 달려 있었다. 실제 공중급유기를 가까운 곳에서 실물로 보니 신기했다. 공중급유기 화물칸에는 철판 팔레트 7개를 적재할 수 있었다.
철판 팔레트마다 비닐로 덮인 일반 플라스틱 팔레트가 4개씩 적재돼 고정 로프로 패킹 돼 있었다. 수송기 화물칸은 레일로 자동화돼 있어 화물 리프트기에 올려만 주면 지면까지 내리는 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지게차를 구하지 못해 리프트기로 내린 철판 팔레트를 옮기지 못하니 다음 작업을 진행할 수 없었다.
시간만 계속 흘러갔다. 골든타임 내 튀르키예에 도착했지만 현장은 아직 저 멀리 있었다. 그걸 알기에 더는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다. 대원 중 누군가가 패킹을 풀어 옮기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 말에 모두 동의했고 패킹을 풀어 무거운 건 함께 옮기고 가볍고 수량이 많은 건 대원들이 신속하게 옮겼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가서 따지고 할 시간이 없었다. 다행히 공군에서 지게차 운용에 능숙한 대원이 있어 지게차를 이용해 장비 하역을 완료했다.
완료 후 잠시 쉬는 동안 또 한 번의 산을 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수송기에서 하역한 장비를 트럭에 옮겨 실어야 했다. 왜 산이라고 표현했냐면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 트럭이 아닌 흙이나 모래를 싣고 다니는 덤프트럭이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게차로 덤프트럭 후방 램프에 장비를 적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닫혀있는 무거운 램프를 들어 올려 화물을 싣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일반 트럭으로 교체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피해지역에서 가까운 가지안테프에 있는 중장비와 트럭이 피해지역으로 동원되다 보니 여분의 트럭을 찾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마냥 한숨만 쉬고 있을 순 없었다. 대원 중 누군가가 손으로 패킹을 풀어 옮겼는데 덤프트럭에 짐을 손으로 옮기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때부터 인간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는 역사의 한 장면이 펼쳐졌다.
덤프트럭 적재함 옆으로 큰 장비 상자를 쌓아 발판을 만들고 힘 좋은 대원들이 올라가 지게차로 올려준 장비 상자를 덤프트럭 적재함 내부로 옮겼다. 키 180㎝ 이상 대원들이 적재함으로 들어가 장비를 적재했는데 외부에서는 머리만 보일 정도로 덤프트럭 적재함이 깊었다.
먼저 가벼운 상자를 받아 덤프트럭 적재함 바닥에 쌓고 그 위로 올라가 장비 박스를 받은 후 적재함에 쌓았다. 이렇게 수송기 가득 적재해 온 장비들은 하나, 둘 덤프트럭에 적재됐다. 무거운 상자를 옮길 때 부상자가 발생할 위험도 있었지만 다행스럽게 그런 일은 없었다.
덤프트럭에 장비 적재를 완료하고 지게차는 트레일러형 탑차에 개인장비 가방과 나머지 물자를 적재했다. 그리고 우리를 튀르키예 가지안테프 공항까지 안전하게 수송해 준 공군 수송기는 다음 목적지인 이스탄불로 가기 위해 항공유를 보충하고 활주로로 이동했다.
함께 왔던 수송기를 보내는 마음이 찡했다. 조종사가 손을 흔들며 안전한 임무 수행을 기원했듯이 우리도 안전하게 비행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손을 흔들었다. 파견 임무가 끝나면 다시 우리를 가족이 있는 대한민국으로 데려다주리라고 믿었다.
수송기에서 장비와 물자를 하역하고 트럭에 적재까지 완료되는 데 4시간이라는 말도 안 되는 시간을 보냈다. 하나, 둘 떠나는 외국 구조대원들을 볼 때마다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가 가지안테프 공항에서 떠나는 마지막 구조대가 아니길 기원했다.
오전 11시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원들이 탑승한 수송 버스는 튀르키예 한국대사관의 안내를 받으며 피해지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1) Reception & Departure Center, 출입국센터
중앙119구조본부_ 김상호 : sdt1970@naver.com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2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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