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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건물의 ‘유령 소방관’, 소방안전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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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방안전원 부산지부 시상수 지부장 | 기사입력 2025/03/13 [10:00]

[기고] 건물의 ‘유령 소방관’, 소방안전관리자

한국소방안전원 부산지부 시상수 지부장 | 입력 : 2025/03/13 [10:00]

 

▲ 한국소방안전원 부산지부 시상수 지부장

어린아이가 물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니 구조할 사람이 없다. 서류상으로는 해수욕장에 안전요원이 배치돼 근무 중이라고 돼있지만 실제로 그 자리에는 안전요원이 없어 어린아이는 참사를 맞게 된다. 참사 후 정부는 안전요원의 자격요건과 교육을 강화하는 것을 개선책으로 제시하고 조만간 관계기관 합동 안전점검을 하겠다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익숙한 상황이다. 뭔가 핵심이 빠진 듯한 느낌이다. 그렇다. 정작 중요한 안전요원의 배치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살펴보면 부족한 예산과 녹록지 않은 경제사정 등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게 주된 이유다.

 

소방안전관리자도 마찬가지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전국 약 40만개의 건물에 소방안전관리자가 법적으로 존재해 소방관의 역할을 대신한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 ‘유령’같은 존재인 경우가 많다. 비상주로 근무하거나 다른 직무와의 겸직이 허용되기 때문에 평소 대한민국에 소방안전관리자는 없다는 게 정설이다. 그나마 새로 제정된 ‘화재예방법’(시행: ‘22.12.1)에 따라 2만여(전체 대상의 5.2%) 건물은 겸직이 금지됐다. 그렇지만 그마저도 비상주로 근무해도 되고 법령에서 제한하는 안전관리자와의 겸직 외에는 어떤 일을 해도 하등의 문제가 없다. 상황이 이러한데 소방안전관리자의 자격과 교육을 개선한들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산업현장에서 안전이 최우선 가치로 인정받는 이유는 그것이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업안전보건법’ 제17조는 사업주에게 산업안전관리자로 하여금 겸직 금지를 넘어 그 업무만을 전담토록 하고 사고 순간에 현장에서 대응하도록 하며 이를 어길 경우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반면 소방안전관리자는 어떤가? 화재 상황에서는 초기 대응이 피해 규모를 결정짓는 가늠자다. 그런데 대부분의 건물에서 상주하지 않거나 겸직해 다른 일을 하고 있어 실질적으로 소방안전관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현실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초기 대응이 이뤄질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사후 대책으로는 법률의 하위법령(시행령, 시행규칙)을 개정해 자격기준ㆍ시설기준ㆍ교육기준이나 행정절차 등을 개선하는 땜질식 대응이 반복된다. 이는 물놀이 사고가 난 후 경제논리를 이유로 안전요원의 자격기준과 교육을 강화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과 진배없다.

 

현실적으로 소방안전관리자가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하지 않아도 법적 책임을 지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처벌규정은 있으나 소방서의 검사 인력 부족을 이유로 전수적으로 이뤄졌던 ‘소방검사’를 특별한 경우에만 실시하는 ‘화재안전조사’ 체계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 소방서의 화재안전조사는 대상 100개소 중 5개소만 실시하는 실정으로 사실상 대부분의 건물은 정부의 감독권에서 벗어나 있다. 이런 이유로 화재가 나면 모를까 평소 소방안전관리자가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하지 않아도 법적 책임을 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더 심각한 문제는 소방안전관리자의 직무 수행 환경을 개선하지 않은 채 이른바 하위법령을 강화하는 게 ‘합리적이고 공정하다’는 착각을 낳는다는 점이다. 이런 법적 형식주의로 소방안전관리자는 건물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없는 것과 다름없는 ‘유령’ 같은 존재가 된다.

 

유령을 실체로 바꿔야 한다. 화재의 예방과 초기 대응의 핵심은 소방안전관리자가 실제로 현장에 상주하면서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법적인 환경 구축이다. 단순히 5% 정도에 해당하는 대상물에 그것도 겸직 제한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산업안전관리자처럼 모든 소방안전관리자도 본연의 직무에 전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만 예외적으로 소규모ㆍ중규모 건물 중 용도의 특성상 화재 위험요인이 낮거나 화재 시 피해가 적을 것으로 예상되는 건물에 한해서만 현행과 같이 비상주를 허용하는 소위 ‘포지티브(positive) 규제’가 필요하다.

 

또 소방안전관리자의 법적 의무 중 하나인 소방계획서(일종의 화재안전관리 매뉴얼을 말함)에 선임된 소방안전관리자ㆍ보조자의 근무 형태를 포함한 인력 운영 방안을 작성하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이를 소방관서 또는 소방안전전문기관에 제출토록 해 소방계획의 실효성, 적용성, 연계성, 실행성 등을 전문적으로 검토토록 하는 등의 법제화도 병행해 소방안전관리자 제도의 실행력을 담보할 필요가 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화재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과 집행하는 소방관서는 더이상 ‘유령 소방관’의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화재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고 그 책임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마지막으로 호소한다. 해수욕장의 안전요원이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게 무의미하듯 소방안전관리자도 실제로 건물에 있어야 한다. 자격과 교육 강화보다 더 중요한 건 소방안전관리자가 현장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한국소방안전원 부산지부 시상수 지부장

 

※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 등은 FPN/소방방재신문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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