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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소방안전관리자의 아웃소싱과 책임의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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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방안전원 부산지부 시상수 지부장 | 기사입력 2025/03/18 [14:30]

[기고] 소방안전관리자의 아웃소싱과 책임의 완성

한국소방안전원 부산지부 시상수 지부장 | 입력 : 2025/03/18 [14:30]

 

▲ 한국소방안전원 부산지부 시상수 지부장

아파트에 살고 있다. 아파트 관리비 내역에 소방안전위탁관리 수수료 항목이 있는 걸 보니 소방시설은 잘 유지되고 있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지난 주말에 한바탕 소동이 났다. 화재경보가 계속 울려 불안한 마음에 입주민들이 하나둘씩 집 밖으로 나왔고 나도 그 중 일부가 돼 긴장을 유지한 채 수신기가 있는 관리실에 갔다. 소방안전관리자인 관리소장은 출근하지 않았고 그를 대신해 경비원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확인 결과 한 세대에서 인테리어 업자가 도배를 하던 중 감지기 전선을 잘 못 건드려 감지기가 작동하고 화재경보가 울렸던 것이다. 화재경보 시 조치사항을 수신기 옆에 붙여 둔다면 누구라도 신속하게 대응하지 않겠냐고 입주민으로서 요구하고 발길을 돌렸다.

 

이처럼 소방시설이 정상적으로 작동되더라도 그것이 실제 화재든 비화재든 간에 누군가는 대처해야 하는 숙제가 있다. 또 한편으로는 ‘소방시설이 있으니 안전하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화재는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자연현상이기 때문이다. 2023년 발생한 ○○타이어 화재에서 보듯 신뢰도가 높다는 스프링클러가 작동했지만 무용지물이 되지 않았는가. 소방시설은 화재 대응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지 절대적이지 않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소방시설의 유지관리가 소홀하면 화재로 인한 인명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소방안전관리자의 업무 중 중핵이다. 그렇다고 해서 화재가 발생하면 다른 것들을 차치하고 소방시설의 작동 여부에만 혈안이 되는 것도 문제다. 이러한 편협한 관점은 소방시설에 대한 과도한 의존과 위험한 환상을 조장한다. 그 결과 불과 10여 년 남짓 만에 소방시설 등에 대한 소방안전관리 업무대행 비율이 2011년 소방안전관리자 선임 대상 건물(공공기관 제외) 21만8671개소 중 14.3%(3만1295개소)에서 44.6%(2024년 말 36만4596개소 중 16만2678개소)로 급증했다. 이 중 소방안전관리 업무대행이 원천적으로 불가한 5%(특급ㆍ1급 소방안전관리대상물 중 일부) 정도의 대상물을 제외하면 거의 절반 수준으로 100개 선임 대상 건물 중 50개 건물이 소방안전관리 업무를 대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정도 상승세라면 몇 년 안에 대행을 하지 않는 게 오히려 비정상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소방안전관리자의 9가지 업무 중 법적으로 업무대행이 가능한 범위는 2가지, 즉 소방시설과 피난ㆍ방화시설 유지관리뿐이다. 그러나 많은 건물의 관계인과 소방안전관리자가 모든 업무를 위임할 수 있다고 오인하고 해당 사실을 오인한 부분을 적절히 이용하는 일부 소방시설관리업체의 상술과 맞물려 소방안전관리 업무대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이는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건물의 ‘유령 소방관’인 소방안전관리자가 급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소방안전관리 업무대행 자체에 있지 않다. 소방안전관리 업무대행을 통해 법적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책임의 외주화’가 소방안전관리에 관한 책임성에 중대한 공백을 낳는다는 것이다. 사람들로 가득 찬 건물에서 소방설비가 작동될 수 있어도 화재 시 중요한 결정은 결국 사람이 내려야 한다. 소방설비는 단지 화재예방의 도구일 뿐 비상상황에서 소방안전관리자가 없다면 그건 반쪽짜리 안전장치에 불과하다.

 

지난 21대 국회 입법 과정에서 모 국회의원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 바 있다. 당초 법안은 소방안전관리자의 상시적 업무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소방안전관리에 관한 업무일지의 작성’을 소방안전관리자 9대 업무 중 하나로 규정하려 했다. 그러나 최종 가결안은 당초 안에서 한참 후퇴해 ‘소방안전관리에 관한 업무수행에 관한 기록ㆍ유지’로 변경돼 한 달에 한 번 이상만 소방안전관리에 관한 기록을 작성ㆍ관리하는 것으로 시행됐다. 입법의 후퇴는 또 다른 편법을 양산했다. 한 달에 한 번 소방안전관리 업무대행업체에서 대상처를 방문해 소방안전관리에 관한 기록을 친절하게 작성해 준다고 한다. 이 또한 소방안전관리 업무대행의 수가 느는데 한 몫 했다는 후문이다.

 

또 다른 문제는 이러한 소방안전관리 업무를 대행한 경우 업무대행의 감독자를 소방안전관리자로 지정해 2일간의 강습교육을 받으면 소방안전관리자로 선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소방안전관리 업무대행을 했으니 2일 교육으로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증과 ‘퉁 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기적ㆍ형식적 교육으로는 소방안전관리자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소방시설 유지관리 기술, 비상시 의사 결정 방법, 위험 평가 역량을 함양할 수 없으며 화재 예방 전략을 수립하고 수행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주지의 사실은 소방안전관리 업무를 대행했다는 이유로 단 이틀 교육을 받은 사람이 소방안전관리에 관한 전문역량을 갖춘 소방안전관리자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소방시설 등에 대한 유지관리를 대행하는 일은 소방시설의 정상적인 작동을 담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는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건물에서 본연의 소방안전관리자로서의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에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증을 가진 사람을 소방안전관리자로 선임토록 하되 소방시설 등 소방안전관리자의 업무 중 일부를 소방시설관리업체에 대행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또한 형식적으로 한 달에 한 번만 확인하는 현 건물의 소방안전관리에 관한 기록 방식으로는 건물의 화재안전을 신뢰할 수 없다. 책임을 회피하는 데 사용되는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다. 따라서 소방안전관리에 관한 기록은 건물의 ‘블랙박스’ 역할을 하도록 개선돼야 하며, 소방안전관리가 상시적으로 준수되고 있어 건물이 실질적으로 화재로부터 보호되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로 활용돼야 한다.

 

‘위험물안전관리법’ 제15조에 따른 위험물안전관리자의 경우 위험물 취급 시 현장에서 이를 감독하고 ‘위험물 취급일지’를 반드시 작성해야 한다. 이처럼 건물 운영ㆍ업무 시간만큼은 건물에 전문 자격을 가진 소방안전관리자가 근무토록 하고 ‘소방안전관리에 관한 업무일지의 작성’을 법에서 강제할 필요가 있다.

 

비상 상황에서는 찰나의 선택이 중요하며 그 선택으로 생명을 구할지 잃을지가 결정된다. 이것이 훈련된 전문가가 항상 현장에 있어야 하는 이유다. 소방시설의 유지관리를 대행한다고 해서 건물 관계인으로서 책임이 면제되는 건 아니다. 진정한 책임은 전문성을 갖춘 소방안전관리자가 현장에 있고 언제든지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에만 담보된다.

 

소방안전관리는 외주화될 수 없는 책임이다. 소방안전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지지 않으면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잃을 수 있음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한다.

 

한국소방안전원 부산지부 시상수 지부장

 

※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 등은 FPN/소방방재신문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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