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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119] “글자에 담긴 정성이 모든 소방관에게 전해지길”

유성읍 경기 시흥소방서 소방위, 대한민국 서화대전 3회 입상
직접 쓴 ‘어느 소방관의 기도’, 부천ㆍ시흥소방서에 세 점 기증
소방설비기사ㆍ화재감식기사 이어 소방시설관리사 자격 갖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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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호 기자 | 기사입력 2021/08/20 [10:00]

[Hot!119] “글자에 담긴 정성이 모든 소방관에게 전해지길”

유성읍 경기 시흥소방서 소방위, 대한민국 서화대전 3회 입상
직접 쓴 ‘어느 소방관의 기도’, 부천ㆍ시흥소방서에 세 점 기증
소방설비기사ㆍ화재감식기사 이어 소방시설관리사 자격 갖춰

박준호 기자 | 입력 : 2021/08/20 [10:00]


“제가 부름을 받을 때에는 신이시여 아무리 뜨거운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그리고 신의 뜻에 따라 제가 목숨을 잃게 되면 신의 은총으로 저의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 주소서”

 

1958년 미국의 한 소방관이 아파트 화재 현장에서 어린이 세 명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리다 작성한 시 ‘어느 소방관의 기도’의 한 구절이다.

 

소방관뿐 아니라 많은 이의 심금을 울린 이 시는 전 세계로 퍼져 현재 모든 소방관이 ‘복무 신조’처럼 여기고 있다.

 

우리나라 일선 소방서에도 ‘어느 소방관의 기도’가 전시돼 있다. 대부분 인쇄물인 것과 달리 경기 시흥소방서와 부천소방서엔 조금 특별한 ‘어느 소방관의 기도’가 걸려있다.

 

경기 시흥소방서 유성읍 소방위가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레 써 내려간 작품들이다.

 

1997년 소방사 공채로 소방에 입직한 유성읍 소방위는 7년 전부터 붓을 잡기 시작했다. 오래됐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늘 곁을 맴돌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동네 어르신께서 붓으로 한문을 쓰셨는데 그게 그렇게 멋있어 보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저도 서예를 하고 싶다고 졸랐지만 그럴 환경이 안 돼 배우질 못했죠. 마침 동네 사회복지관에 서예 강좌가 있길래 더 늦기 전에 붓을 잡아야겠단 생각에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는 퇴근 후면 어김없이 복지관으로 향했다. 수업은 일주일에 두 번. 근무시간과 겹쳐 빠져야 할 때가 많았지만 연습만큼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집에서도 먹을 갈고 또 갈았다. 그러나 늘 의욕만 앞섰지 생각처럼 쉽게 글이 써지지 않았다. 한 자는 둘째치고 ‘ㅎ’의 한 획을 긋는 데 몇 날 며칠이 걸릴 때도 있었다. 

 

“보통 160글자를 쓰는 데 세 시간 가까이 걸려요. 붓이라는 게 먹물을 머금으면 하늘하늘해져서 내 마음대로 선이 그어지질 않습니다.

 

컴퓨터나 핸드폰에선 잘못 쓰면 바로 지울 수 있지만 붓글씨는 그게 안 됩니다. 159자를 정말 잘 썼어도 마지막 글자가 마음에 안 들면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하죠”

 

그런데도 짜증은커녕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모든 신경을 집중하니 붓글씨 쓰는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이 들지 않고 오히려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가 붓글씨를 계속해서 쓰는 가장 큰 이유다.

 

유 소방위는 동료들 사이에서 ‘특별조사 소방관’으로도 유명하다.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소방설비기사(전기ㆍ기계), 2014년 화재감식기사, 2016년엔 5년간 공부한 끝에 소방시설관리사 자격증까지 취득한 그는 소방청이 시행한 화재안전 특별조사를 맡았다.

 

“전기와 가스, 건축 등 각 분야 전문가와 팀을 꾸려 1년 반 동안 약 700개 다중이용시설에서 소방펌프 상태와 방화문 폐쇄, 수신기 작동 여부 등을 조사했습니다. 이 경험으로 경기도소방학교에서 ‘소방특별조사 전문교육과정’이란 주제의 강의를 하기도 했죠”

 

이 교육에서 그는 대형 건물의 많은 소방시설을 효율적으로 점검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물리적으로 모든 소방시설을 점검하는 건 어렵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해야 하는 부분을 중점적으로 강의했다. 

 

소방관 본업에 충실하면서 사적인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유성읍 소방위는 ‘대한민국 전통 서화대전’에서 3회나 입선했다.

 

“한 획, 한 획을 수천 번 연습하고 2년 정도가 지나니 나름 작품이라는 게 탄생하더군요. 아주 잘 쓴 건 아니었는데 한글 붓글씨를 하는 사람이 없다 보니 더 잘하라는 취지로 주신 것 같습니다”

 

대부분 서예가는 교본에 나와 있는 시구나 마음에 드는 구절로 글씨 연습을 한다. 유 소방위는 지난 7년간 ‘어느 소방관의 기도’를 수도 없이 썼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쓰는 동안 사명감과 뭉클함이 가득 차오르곤 한다. “다른 좋은 시도 많지만 현직 소방관인 제겐 어느 소방관의 기도 만큼 와닿는 문구가 없더라고요. 시작 부분인 ‘제가’는 아마 수천 번 썼을 겁니다.

 

제 직업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돼서 참 좋아요. 어휴, 근데 마지막 문구는 쓸 때마다 참 힘들어요. 슬퍼서…” 그는 2017년 부천소방서 개서 40주년과 지난 5월 시흥소방서 119구급대 증축ㆍ개청을 기념해 직접 쓴 ‘어느 소방관의 기도’를 소방서에 기증했다. 시흥소방서 본서에도 전달해 현재 총 세 곳에 그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기회가 된다면 꾸준히 ‘어느 소방관의 기도’를 제작해 여러 소방서에 전달하고 싶어요. 저는 이 글귀가 우리 소방관한테 주는 힘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거든요. 지금 코로나19 여파로 많은 소방관이 힘든 여건 속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조금이나마 힘이 돼 주고 싶어요”

 

1남 2녀를 둔 유 소방위. 그의 아들은 현재 소방방재학과에 재학 중이다. 아버지처럼 훌륭한 소방관이 되고 싶다는 아들의 침대 머리맡엔 ‘좋은 소방관’이란 글귀가 걸려있다.

 

“스스로 조금 나태해졌단 생각이 들 때면 아들 방으로 가 그 글귀를 읽습니다. 또 어느 소방관의 기도를 생각하며 붓을 잡습니다. 퇴직하는 그날까지 아들과 동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소방관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박준호 기자 parkjh@fpn119.c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1년 8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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